끊을 수 없는 감각
창백한 연회색 대기에 문득 한기가 든다. 조금전까지도 황금빛 석양이 베란다 정원 너머로 뉘윗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이 집의 정경은 오랜 시간 변한게 거의 없다. 로코코 양식의 틸 블루 컬러 벨벳 커튼이 거실 양벽을 우아하게 흐르고, 에머랄드 그린의 마라룽가 소파와 크림슨 컬러의 르 코르뷔지에 카우치가 화이트 샤기 카페트 위에 놓여 있다. 벨벳 커튼은 오로지 오디오를 위한 것이다(아니었으면 귀차니즘으로 부재했을게다). 이 곳은 하루 종일 소파에 기대고 누워 음악을 들으며 수십종의 식물이 나름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베라다 너머의 하늘빛이 시나브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와인과 담배를 친구삼아 책을 읽기에 딱 좋은 장소이다. 칼 뵘이 지휘한 리하르트 스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가 흐르고 있다.
오후에 TMS를 받은 후 주치의와 짧은 상담을 했다. 눈을 뜨고 있는(잠들어 있지 않는) 모든 순간에 나의 오감은 휴식 없이 나름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최근 몇년 사이 유행하는 멍 때리기가 내게는 몹시 어려운 까닭이다.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고 .. 이러한 감각들을 나는 저버리지 못한다. 때문에 내 몸과 뇌는 적어도 잠에서 깬 이상은 쉴 새가 없다. 나도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HSP(Highly Sensitive Person)형 사람들에겐 어려울 걸요. 감각이 무뎌지는 약을 처방해 드릴끼요? 대신 조금은 멍한 느낌이 들 겁니다."
"약 없이도 요즘은 늘 몽롱합니다"
"그럼 된 것 아닌가요?"
"그냥 사소한 것은 좀 지나치고 하는 절제력을 갖게 하는 약은 없나요?"
"안타깝게도 아직은 명징한 정신을 유지하면서 감각을 더디게 할 약은 없는 것 같네요. 만약 있더라도 복용해서는 안되는 약이겠지요"
암도 큰 병이 아닌게 된 세상에 끊임 없이 몸과 마음을 시달리게 하는 감각을 무디게 할 약이 없다니..
나의 예민한 오감은 어떤면에서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끊을 수 없는 감각으로 몸도 마음도 지쳐 간다면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나는 시력이 그다지 좋지 않음에도 오더에서 어긋나는 경우는 바로 포착하고 교정한다. 아니 해야만 안심이 된다. 청력이 소머즈처럼 좋지 않음에도 닫힌 창을 스쳐가는 바람결을 느끼며 숙면에 들지 못한다. 두꺼운 양말을 신고 밑창이 두툼한 신발을 신어도 바닥의 좁쌀같은 무언가를 찾아내고, 두터운 잠옷을 입어도 침대의 뒤틀어진 패드를 느낀다. 물이 필요한 식물들이 이파리를 떨어뜨릴 때, 후각이 공기의 환기를 필요로함을 간파할 때, 누군가를 스쳐가며 그의 표정이 어두울 때 나는 쫓아가서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다. 이러한 HSP 성향을 무난하게 바꿀 수 있다면 통장을 털 수도 있을 것 같다.
몹.시. 피곤하다. 때문에 나는 식사 때마다 마주치는 부모님의 표정을, 특히 어머니의 표정을 지나치지 못한다. 알츠하이머 초기인 어머니는 시시각각 표정이 바뀌고, 나는 간병인으로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또는 HSP 인간으로서 어머니께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인지 고민한다. 나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닐 뿐더러, 해결사가 될만한 역량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감지한 나의 감각세포들은 깊은 고민의 늪에 빠진다. 말씀을 들어드려야 하는데 시작도 전에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사이버지 병수발할 때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한두시간 동안 반복되는 스토리를 경청해 드렸지민, '시'라는 접두어가 빠진 어머니의 반복되는 스토리를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 드리기 힘들다. 어머니 말씀 중의 오류를 수정해 드리다보면 "딸 하나 있는게 엄마 이해를 못해?"라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앞르로는 "시어머니리 생각하고 잘 들을께요"로 대개는 마무리 된다.
언젠가 회사에서 조직관리 차원에서 마련해준 자리에서 상담사는 물었다.
"어떤 순간에 가장 행복할 것 같으세요?"
"푹 자고 일어나서 샴페인 한잔을 들고 아침 이슬이 내린 정원을 걷다가, 갓 태어난 여린 아침 햇살을 맞으며 신문을 읽으며 아침 식사를 하는 것"
HSP 인간은 '행복'이라는 단어를 만끽하기 어려울 것이라 지레 짐작한다. 하지만 그런 날도 잠시 있었던 것 같다. 지금보다 젊은 날에는 회사일에 지쳐서 번아웃 되었을 때, 휴가를 내고 싱가포르의 샹그릴라 호텔 밸리 윙에서 책을 읽으며 몇일을 보내곤 했었다. 밸리 윙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하루 종일 아프터눈 티 세트와 샴페인, 와인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라운지가 있다는 점, 그리고 아침이면 이슬 내린 잔디위에 흰 테이블보가 깔린 작은 식탁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7시간 비행을 하기 어려운 체력이 아니었을 뿐더러, 알츠하이머로 고생하시는 어머니와 각종 질환으로 끙끙 앓는 사람말 못하는 아들도 없었다. 생각해보면 다시 가질 수 없는 귀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시간들은 나만의 멍 때리기였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현재의 나는 무던한 Non-HSP 형제와 옆지기가 내키는대로 세계 곳곳을 드나들며 그들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음을 부러워하며 '언.젠.가.'는 이라는 희망을 가지거나, 또는 상당히 자주 다시 없을 지나간 호사를 기억만 할 뿐이다. 와인을 탐닉하는 것은 샹그릴라를 그리워하는 무의식 때문이 아닐지 ..
문득 든 생각 하나. 언젠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지 오래지 않았던 코리안-캐나디안이 나에게 " 오지랍이 참 넓으시군요"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오지랍'의 뜻을 알고 하는 표현인가 궁금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HSP 인간들은 오지랍이 넓을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시간 내에 일을 못마칠까봐 고민하는 동료들의 표정을 읽고 "내가 할께요. 먼저 가세요"라는 대사가 제어할 틈 없이 입 밖으로 나와서 밤샘을 하거나, "제가 이런 고민이 있는데요.."라고 시작하는 지인들을 위하여 내 통장을 탈탈 털기가 다반사다. 덕분에 노후대책 없는 나는 죽는 날까지 '품위있는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하겠지만 ..
복기해보자면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반 친구들의 숙제를 대신 해준 뒤에야 내 숙제를 했던 어린 날부터 HSP 인간으로서의 싹이 보였던 것 같다. HSP 인간들은 성직자가 되거나 또는 바지런히 쌓은 명예로 어디서나 대접을 받는 까닭에 통장 걱정할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이도저도 아닌 나는 언제 깡통이 될지 모를 통장으로 불안에 떨며 각종 병원비를 감당하고 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파스빈더도 HSP 인간일 것이다.
#TMS #H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