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촛불은 80%만 태워야 한다. 남은 20%는 컨틴전시로 남겨 두어야 한다. 사람도 그렇다. 에너지의 80%까지만 쓰며 사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들 한다. 선배들로부터 주치의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도 HSP 인간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A는 국회 청문회를 거쳐야하는 자리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중이다. 내가 3기가 하드에 가득 담긴 음악을 선물한 다음 날, 그는 심상치 않은 메시지를 보냈다. HSP 인간이 전화 했을 때 그는 울고 있었다. 선물한 하드의 첫 곡이 베르디의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었는데, 내려오는 법을 익히기 전에 그의 자존심을 생채기 내는 일이 생겼고, 참았던 울음이 터져나온 것이었다. 이순이 되니 커리어의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친구나 지인들이 대부분이다. 아직 현직에 있는 이들은 오너거나, 운 좋게 이순이 되어서도 사장 자리를 유지하고 있거나 정년이 보장된 교수들 정도이다. 하긴 구조조정 프로젝트들를 진행했던 경험을 복기해보면, 이미 오래 전부터 명예퇴직 대상자들을 40대 중반부터 선별했었으니 그 나이 즈음부터는 내려올 준비도 미리 하는 것이 적절한 것이 아닐까..
"가거라 생각이여 황금 날개를 타고
가서 앉아라 언덕과 구름 위에
따스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고향의 흙내음과 함께 돌아오네
...
자유의 날개를 타고 다시 만나리 .."
바빌론의 포로 생활을 하면서 고향과 자유를 그리워 하듯이 생의 내리막길을 걷는 시기가 되면, 황금 날개를 달고 언덕과 구름위에서 유영하던 날들을 그리워 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산을 탈 때도 내려오는 길이 더 위험한 법이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리막길을 만나면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심리학적으로 절망의 곡선을 보면, 처음엔 실감이 나지 않다가 현실을 자각하면 충격을 받고, 부정하는 단계를 거친 다음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어서 왜 미리 준비하지 않을을까 하는 죄책감에 빠지고, 이젠 정말 끝인가.. 절망에 빠졌다가, 체념을 하고 현실을 받아 들이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게 마련이다. 객관적 현실을 인정하게 되면 비로소 새로운 길이 보인다. 정부에서 제공라는 아웃플레이스먼트(퇴직 후 재취업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는 매우 형식적이어서 명퇴를 선택한 이들은 상당히 많은 경우 자영업을 시작한다. 우리나라에 유난히 자영업자의 비율이 높은 이유이리라..
난 어느 순간 생일이나 명절 선물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이미 화양연화 끝났음을 알았다. 그럼에도 80%가 아니라 내일의 10%도 끌어다 썼다. 뇌경색이 오고 휴직을 하면서 객관적 현실을 받아 들이고, 이젠 80%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80%는 자유의 날개를 달고 오르막길을 오를 때와는 다른 방식으로 따스하고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사는 것을 허할 것이다.
노력 중이다. 하지만 HSP 인간에게 80%는 여전히 어렵다.
#HSP #80% #화양연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