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적 인간
"이타적 인간이 진화에 유리하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거론하기도 했지만, 나의 존경하는 스승인 데니스 노블 교수의 핵심 키워드이다. 노블 교수는 시스템 생물학의 창시자이시기도 하다. 노블교수와 대화하다보면 그는 늘 "동양 철학은 이타적 유전자 이론과 맥이 닿아 있다"고 말씀하시고는 했다. 시스템 생물학은 동양의 주역 및 공자와 맹자의 유교 사상, 불교의 골자와도 맞닿아 있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블 교수는 '이기적 유전자'로 전 지구적으로 공전의 홈런을 날린 도킨스 교수의 박사 논문 심사자이기도 했고, 두 분은 함께 옥스포드 대학의 밸리올 컬리지의 명예 교수이다. 수년 전에는 두사람이 이타적 유전자와 이기적 유전자에 대해 공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토론의 결과는 노블 교수의 승리였으나, 사소한 이벤트가 있었다고 해서 주류 생물학의 이기적 유전자론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앉아 바라본다
월트 휘트먼
나는 세상의 모든 슬픔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모든 억압과 수치의 얼굴들을 바라보며
숨죽여 떨리는 울음을 듣는다
자기 자신과 싸우다 지친 젊은이들
저지른 일을 뒤늦게 후회하며
가슴을 마구 움켜쥐는 그들의 소리를
낮고 어두운 방에서 늙어 가는 어머니를 본다
버려지고, 여위고, 절망 속에 홀로 남겨진 어머니를
남편에게 학대받는 아내를 본다
젊은 여자들을 속여 파멸로 이끄는 자를 본다
돈과 권력을 사고파는 재판관과 정치가들을 본다
잘난 체하는 자들이 가난한 이들,
일용직으로 고용된 이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모욕당하는 이들에게
던지는 조롱과 멸시를 본다
그칠 줄 모르는 질투와 짝사랑의 상처,
숨기려 애쓰는 마음의 곪은 자국들을 본다
전쟁과 질병과 폭정의 움직임을 본다
수감자들, 고문받는 이들, 쓰러진 이들을 본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런 비열함과 고통을
나는 앉아서 바라본다
보고, 듣고, 그리고 침묵한다
이를테면 휘트먼은 이타적 인성을 일부 가지고 있으나, 다른 시각에서는 침묵하는 자기 중심적 인간이다. 내 옆지기도 비슷하다. 마치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 같다.
"원칙은 있었지만, 실천에는 평생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칸트는 배려 없는 자기중심성은 “타인의 존엄을 침해하고 도구화하는 행위”로 규정했다. 그렇다. 나는 뇌경색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야 하는데, 옆지기는 매주 월요일 오전 진행되는 정기 미팅에 참석해야 하므로 내 진료는 다음으로 미루고 아들 병원을 가라고 했다. 본인은 감기만 걸려도 몸이 금덩이인양 소란을 피우면서 내 병은 무시한다. 내가 첫 암수술을 했을 때도 하룻밤 병실에서 보낸 후, 다음날은 친구들과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신 후 병실로 왔었다. 아마도 스스로 또는 친구들과 "재수없이 암환자와 결혼했네?"를 공감하며 퍼마셨을 것이다. 그를 보면서 생각한다. 자기애적 인격장애인가 또는 나르시시즘과 공감 결여 인가?
시몬느 베이유는 "주의는 가장 순수한 관대함"이라 했다. 윤리란 요약하면 자기 내부(자기 욕구·체면)만 바라보던 시선을, 타자의 현실과 고통으로 돌리는 ‘집중된 주의’의 훈련이라는 입장이다. 나는 옆지기의 관대함의 결여를 목도할 때마다 "이혼을 해야하나?"라는 의문에 빠지곤한다. 공감 능력의 부족.
이 나이에 이혼은 좀 그렇고 졸혼을 할까도 생각해 본다.
"그러데 차이점이 뭐지?"라고 HSP 인간은 생각한다. 아마도 아들의 다음 진료도 "점심 약속이 있다"는 옆지기의 주장에 밀려 내가 가야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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