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에서 부드러운 크림으로

라떼라는 눈치 말고 애정어린 눈빛으로 응원해주세요

by Pia

친구가 말했다. 네가 눈치 보는 습관은 이미 어릴 때 형성된 거라고.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부모님 맞벌이로 어린 시절 이웃집에서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사람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나 아직까지 연락하는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지만, 그 시절 본능적으로 갖게 된 경계심과 마음 한 켠의 불편한 느낌은 사회생활의 눈치라는 타이틀로 나를 조기 교육시켰다. 다른 사람들보다 유독 눈치를 많이 보던 습관 탓에 스스로를 힘들게 만든 적도 있지만 덕을 보기도 했다. 상대방의 기분을 빨리 헤아려 필요로 하는 부분을 함께 하려는 태도를 보여주니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었고, 직장에선 업무로도 이어져 선배들과 부서장의 신뢰를 받는 이쁜 막내 생활을 계속해 나갔다.


이직 포함 8년 차 직장인이 되었고, 이젠 막내의 자리를 벗어나 신입직원과 중간관리자 사이라는 새로운 위치에 적응하는 과정에 있다. 윗물과 아랫물을 연결하는 다리를 어디에 어떤 식으로 두어야 할지, 신규직원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등 이 직급에서 내가 수행해야 할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다. '90년생이 온다'를 시작으로 새로운 직장 분위기가 조성되고 라떼, 꼰대 등 신조어들이 생겨나면서 변해가는 흐름에 맞춰 조심스럽게 적응해나갔지만 처음 마주한 새 부서의 신규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바뀐 세태를 느끼게 해 주었다. 숨겨진 지뢰가 터지듯 신규들의 돌발행동에 '나는 저러지 않았는데..', '왜 저렇게 눈치가 없지',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나도 고인물이구나', '너무 개념없는데' 라며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가는 기분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당황스러움이 커서였을까? 처음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반복되어 화가 났지만, 앞으로 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기에 신입직원들을 이해하고 나의 감정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꼰대 데드라인을 정했다.


'먼저 물어보지 않는 한 내가 오지랖 부리지 않으리라'

'정말 잘못한 일에 대해서만 알려주겠어'

'내가 솔선수범을 해야지'

'팀장님이 있는데 내가 뭐라고..'


목구멍까지 내뱉고 싶은 말이 많이 차올랐지만 심호흡으로 감정을 추스르고 데드라인을 기본수칙처럼 잘 지켜나가고 있다. 초반에 서로를 알아가는 단계에선 각자가 좋은 모습을 어필하며 일도 잘할 것 같은 기대감을 주지만 일로 만난 사이에서 첫 이미지를 유지하기란 쉽지 않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은 만큼 공적인 모습 외에 인간적인 면을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갈등도 겪게 된다. 일련의 행위가 반복되면 대화의 빈도가 줄어들고, 이런저런 실망에 사무적인 관계로 바뀌면서 인사이동을 회피의 수단으로써만 기다리는 불상사가 생긴다. 모두에게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새 분위기에서 일한 지 6개월, 생각이 달라지고 있다. 신입직원들을 겪어보니 정말 몰라서 서로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기는 게 90%인 것 같다. 신규들도 나름 눈치를 보며 조직생활에 적응하려고 하지만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눈치만으로는 모르는 일들이 많고 혼자 고민해봐야 알 리가 없다. 알려줘야 한다. 알려주지도 않고 욕하는 선배나 직장상사는 진정한 의미의 꼰대라는 생각이 든다. 말하는 사람도 감정적으로 어렵지만 최대한 업무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다. 알려주니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지만 결국 맞다는 걸 알고 실수하지 않으려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고마워한다. 짜증 섞인 말투와 듣기 싫은 말의 반복은 어쩌면 평생을 보내야 할 직장에 본인의 감옥을 스스로 만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동료가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진심어린 응원과 격려가 담긴 말투, 단어를 사용하자. 이 또한 짧고 간결하게.


크림 가득 올라간 커피 기프티콘이 쌓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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