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유효기간

정해진 결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Pia

제목만 썼을 뿐인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환자가 의사로부터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 이런 기분과 느낌이 드는 걸까? 생각하기 싫지만 모른 척 지나갈 수도 없는 일에 대해 적어보려 한다. 30년이 각자에게 의미하는 바는 모두 다를 것이다. 인생을 살아온 시간, 직장생활을 마무리하는데 걸린 시간, 사업 성공을 위해 투자한 시간 등.. 숨만 쉰다 해도 어느 하나 의미 없는 시간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30년은 또 어떻게 더 의미 있게 보내야 할까?


주말 근무를 마치고 오랜만에 부모님을 만나러 갔다. 같이 쇼핑하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먹으며 그간 지내온 일상들을 공유했다. 요즘 들어 부쩍 눈에 띄게 왜소해진 체격과 늘어가는 주름이 어릴 적 내가 봐 온 세상 제일 듬직했던 부모님의 모습과 교차하며 지나가는 시간이 야속하다는 생각만 들게 했다. 부모님 댁은 매주 방문했는데 갈수록 찾아가는 횟수가 줄어 미안함이 담긴 마음의 짐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퇴근 후 단 5분이라도 매일 통화했고 목소리만으로라도 시시콜콜한 서로의 하루를 나누었다. 1분이라도 얼굴 보며 나누는 대화는 전화로 얘기한 1시간보다 더 애틋하고 소중함을 알지만 이렇게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은 이러한데 부모님 곁은 세상 무풍지대라 그런지 집에만 가면 송장처럼 잠에 취해 일어나질 못하고 정신이 들면 다시 직장이 있는 곳으로 떠날 시간이라 의도치 않게 자는 모습만 보여드리게 되었다. 미안한 마음에 휴일 이틀 중 하루라도 무언가 같이 하고 오자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이번엔 뒷동산 산책을 하고 왔다. 등산은 전에도 종종 했지만 이사 후 낯선 산에 혼자 오기가 무서워 매일 천변 산책만 나갔다는 엄마의 말은 동시에 내리쬐는 햇빛의 힘을 받아 내 마음을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함께 한 산책길


함께여서 마음이 편했는지 여름엔 여기로 와야겠다며 엄마는 산책 내내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았다. 잘 유지해오던 간헐적 단식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다음 주 건강검진에서 좋은 성적표를 받을 수 있을까, 이 길은 종일을 걸을 수 있다, 이 나무는 결이 특이하다, 소나무가 별로 없어 아쉽다 등 재잘재잘 늘어놓는 말들이 바람과 나뭇잎이 만들어낸 배경음악에 나름의 가사처럼 어우러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중 "이제 길면 30년 정도 더 같이 있을 텐데.."라는 예정에 없던 불청객이 호흡을 깨버렸다. 얼어붙었다.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얘기할 수 있지?', '지금 살아온 시간도 금방인데 앞으로 30년?' 수만 가지의 생각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지나갔고 무엇보다 30년이라는 수치가 주는 함축적인 사실은 정곡을 깊게 찌른 느낌이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30년 동안 지금보다 더 행복한 시간 보내면 되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내려올 수 있었던 길이 당장 어떤 해결책이라도 찾아야 할 것 같은 조급한 마음에 길게만 느껴졌다. 언젠가는 부딪히고 지나가야만 하는 일이지만 벌써부터 연습이라도 하듯 자꾸 떠올리고 싶지 않다. 함께 보내는 시간을 더 마련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현실을 탓하며 불편하고 무거운 마음을 계속 짊어지게 된다. 끝없는 내리사랑에 조금이라도 답할 길은 내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 보람을 느끼게 해 드리는 것뿐인 듯하다. 30년이라는 슬픈 유효기간을 의미 있는 일들로 채워나가야겠다.

항상 응원해주는, 조건없는 내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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