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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Nov 29. 2017

누구에게나 있는 흔한 이야기

김장

나에게 '김장'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씁쓸하고도 슬픈 이야기...(벌써부터 눙물이...ㅠ)


때는 바야흐로 나의 새댁 시절.

봄에 결혼을 하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찬바람이 부는 김장의 계절이 돌아왔던 것이다.


우리 부부는 그 당시 IMF의 여파로 둘다  백수인 상태로 결혼하느라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시부모님댁 방 한칸에 그야말로 얹혀살고 있었다.


나로 말하자면 결혼 두어달후 학습지 방문교사로 일을 하고 있었고, 뱃속에는 계획 임신에 실패한 결과로 (ㅎ) 첫 아이가 막 자리잡아가고있는 임신 3개월의 몸이었다.

생각해보라.

학습지 교사는 퇴근 시간이 평균 밤 9시.

또한  임신  초기는 무지하게 잠이 쏟아지는 시기.

가만히 있어도 힘든 임신 초기인데, 낮에는  이집저집 돌아다니느라 움직임도 많고...

낮에 사무실에 가면 수업 나가기 전까지  교재가 쌓여있는 한쪽 창고에서 꼬박꼬박 졸기 일쑤였다.


어느날 밤 9시가 넘어 퇴근하고 오니 시어머님이 김장을 한다고 그 시간에 거실 바닥 한 가득 판을 벌려놓고는 김장속에 들어갈 재료들을 막 손질하고 계셨다.

하필 그 시간에. ..

하필 그 다음날은 주말도 아닌데..

난 내일도 출근해야하는데...


저녁을 먹는둥 마는 둥 하고 재료 손질에 달려들었다.

무생채 썰기를 몇통이나 하고나니 시간은 12시가 넘어있고.

화장실 한켠에는 절여놓은 배추들이 한가득.

다음날 난 어차피 출근을 해야하기에 속 준비만 도와드리면 되긴했지만 그래도 너무, 너~~무 힘들었다.

일하며 임신까지 한 며느리 배려안하는 시어머님도 너무 야속하고.

주말에 하면 맘 편히 도와드릴수 있는데 왜 평일에 하시는지...이해도 안되고..


정작 문제는 다음날 아침에 터졌다.

내가 평소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6시 반에서 7시 사이.

그 시간에 일어나 아침 준비하시는 어머니 도와 같이 아침을 차린다. (출근하는 며느리를 위한 시어머니의  아침 밥상  같은건 없습니다. 욕심도 많지...휴..)

식구들이랑 같이 아침을 먹고나면 상대적으로 출근이 좀 늦으니 설거지까지 끝내고 출근준비해서  나가는 것이 평소의 일과.

다음 날 아침에도 김장의 스케쥴이 남아있었지만

전날 속 준비하느라 늦게 자기도 했고, 새벽부터 김장 속을 넣을 것 같진 않았기에 난 평소대로 일어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고 있었는데...

그냥 평소처럼 자고 있었는데..

 하필 그날 아침 남편이 화장실을 간다고 6시쯤 일어났던거다.

그리곤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나는 시간을 보고 30분 쯤  더 자고 일어나야지..하고 꼼지락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고있는 우리부부에게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쿵쿵 방문을 두드리시며 얘, 너네들 둘다 나와봐라

하시는 어머니  호출.

이미 방문 두드리는 소리에 가슴은 두방망이질..

거실에 영문도 모르고 무릎 꿇은  나에게 시어머니, 너는 시어머니가 밖에서 배추 물빼고 김장 준비하고있는지 모르고 그렇게 자고 있냐고 하시고, 또 남편에게는 너는 엄마가 일하는거 보면 안사람을 깨워야지 다시 그렇게 들어가 둘이 자고 있냐고  다그치시고..


아..아..만약 남편이 화장실 간다고 그 시간에 일어나지 않고 평소처럼 일어났으면 그런 꾸중을 듣지않아도 됐을까?

아님 그래도 김장 일정이 있는데 평소보다 빨리 일어나지 않았다고 지청구를 들었을까?

어머니의 마음은... 모르겠다.

그래도..그래도...난 시어머니도,

하필 그날따라 새벽에 화장실에 간 남편도 모두 미웠다.


하여 그 일이 내가 '김장'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씁쓸한 추억이 되어버렸다.


그리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난 결혼 이십년차의 주부.

이제는 나혼자 김장을 척척해서 시어머님께 갖다드리는 프로 주부가 되었다....고 하면 참 좋겠지만...ㅎ

난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으며, 김장이라곤 내 손으로 직접 해본건 한번도 없는 날나리 주부.

울시어머니는 건강이 여기저기 안좋은 칠십 중반의 할머니가 되셨다.


그리하야..작년까진 어찌저찌 김장을 담궈 먹었는데 (이제 울 시어머니는 일하는 며느리 바쁘면 당연히 못가는거 아시고 아버님이랑 두분이서 김장을 하셔서 우리에게 나눠주신다).

올해부턴 나의 의사를 적극 반영하여 사먹기로 했다는 거...ㅎㅎ

(내가 제안했기에 내가 비용을 대서 어머님 사드리는 걸로..^^)


격세지감.

세월이 약...이런건 모두 이때 쓰는 말인가?(아님말고..ㅎ)


김장철이 되니 아직도 내 마음속 한켠에 쬐금 아픈 추억으로 남아있는 기억을 소환해보았다.


앞으로도 김장김치는 계속계속 사먹을거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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