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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Sep 02. 2020

쉰이 되어보니

짧은 나의 히스토리 4

*내가 글에서 남편이 명문대 나왔다는 얘길 몇 번 썼는데... 이는 당연히 자랑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 목적으로  이 글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아니, 관련이 없진 않다.

보통 우리가 아이들을 다그치지 않나.

공부 열심히 해라. 그래야 좋은 대학 가고 좋은데 취직해서 인생이 편하다..라고.

그리고 그것은 꽤  일반적인 일이긴 하다.


내가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오히려 그 반대, 평탄하게, 평범하게 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이 환경적 또는 개인적, 사회적 이유로 그렇게 살지 못했던 것(특히 재정적으로  어렵게 살아왔다. 그의 대부분의 동기, 친구들과 비교해서도 훨씬 어렵게)을 한번 되돌아보고자 시작한 것이다.

그럼 그렇게 살아오는 삶의 여정에서 나는 무얼 깨달았나...하는 것을 얘기해 보고 싶었다.


물론 아직 다 산 것도 아니요 내 나이는 이제 고작 쉰이기 때문에 이 이후의 삶이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

그래도 반백년을 산 기념으로 지나간 시간을 한 번 되돌아보고 또한 좀 다른 미래를 준비해 보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다.*


남편은 취직을 했다.

학습지 교사로.

더구나 나랑 같은 사무실로.

막상 취직을 하고 보니 (다행인 건지 어쩐 건지 모르겠지만 ) IMF의 여파로 실직 또는 명퇴를 한 꽤 여러 명의 남자분들이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었다는 것.

대기업에 있다 나오신 분, 울 남편처럼 꽤 괜찮은 대학을 나오신 분, 마흔이 넘은 머리 벗어진 분 까지...


처음엔 말렸던 나도 막상 남편이랑 같이 출근하니 너무 좋았다.(으그.. 철없는 여인 같으니라고.. 더 야물딱지게 미래를 계획했어야지!!!!  스물여덟의 나야!!!)


지금 생각하니 화딱지 나는 일 하나.

(물론 하나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둘이 같이 출근하는데, 더구나 하는 일도 같은데..

시댁에서의 우리 생활은 차이가 많았다.


일단 아침에 나는 어머님이랑 같이 아침식사 준비를 한다.  ㅡ남편은 잔다.

밥을 먹고 출근 시간까지 여유가 있으므로 설거지는 며느리인 내가. ㅡ남편은 출근 준비.

여기서 잠깐!!! 웨이러 미닛!!!

나도 출근 준비해야 하는데? 여자인 내가 아무래도 시간이 더 걸릴 텐데?

그런 배려 따윈 없다.

내가 알아서 시간 조절을 잘해야 했다.


일찌감치 울 시어머니는 설거지를 도우려고 주방 쪽으로 오는 아들에게 "이 집에 이제 여자가 둘인데 니가 왜 주방에 오니? 그럴 필요 없다!"라고 쐐기를 박아놓으셨더 랬다.


그럼 어머니~제가 들어오기 전엔 여자가 어머님 혼자라 아들들한테(세 아들. 딸이 없으시다) 설거지, 청소, 음식물쓰레기 버리기... 뭐 이런 거 다 시키셨던 거군요. 과연 난 이 집에서의 역할이 뭔가? 위치는? 집안일 할 일꾼 하나 늘어난 것인가???


물론 그땐 아무 소리 못했다.

어머님이 그렇다고 하면 그건 그 집안에선 법!!

남편도 아들들도 딴지 걸지 못하는 어머니의 규칙에 새내기 며느리의 반론 같은 건 들어갈 여지도 없었고 받아들여 지지도 않을 일이었다.


다행히 나는 손이 빠른 편이라 설거지하고 화장하고 후다닥 준비하면 샤워, 화장실 볼 일, 로션 바르기, 옷 입기까지 거의 한 시간쯤 걸리는 남편과 얼추 시간이 맞았다. ㅡ이것은 나의 속을 터지게 하는 또 하나의 복병. 느려도 너무 느린 남편 님. 결혼 23년  차인 지금까지 여전하시다. 나도 여전히 그것에 적응 못해서 닦달을 하고 신경질을 낸다. 이해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화장에 머리 손질까지 하는 내가 딸 둘 외출 준비까지  다 시키고(어렸을 때부터.  옷 입히기에서 머리 묶기 끼지 다) 집안 단속 다 해놓고 가방까지 혼자 다 챙기고도 준비 덜 된 남편을 기다리고  있냐고요!!!!!!  승질이 안 나겠냐고요????


물론 그때까지는 아직 남편에 대한 파악이 덜 되어 있던 때라 남편이 느린지 어떤지 신경도  못 쓰고

 또 집안일 마무리하느라 바빠서 남편과 출근 준비가 얼추 비슷하게 끝나면 룰루 랄라 신난다 하며 손잡고 출근을 했다.(순진한 거였니, 속이 없는 거였니...ㅠ)


학습지 교사는 퇴근이 늦은 편인데 내가 집에 오는 시간은 9시쯤.

남편은 수업이 좀 더 많아 10시쯤.

내가 퇴근해 오면 다른 식구들은 저녁을 다 끝낸 시간이면 좋으련만 마침 시아버님 퇴근이 8 시 반 무렵. 내가 집에 들어가면 딱 밥상 치울 시간이었다.

"어머니.. 제가 밥 먹고 설거지할게요~" 하며 자연스레 식구들 저녁 설거지도 내 차지.

그러면 시부모님은 조카애 데리고 주무시러 들어가시고 나는 뒷 마무리하다 퇴근한 남편 밥 차려주고 다시 설거지, 정리.

남편은 밥 먹고 휴식, 당연히.


그땐 그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20세기 끝자락이어서 그랬을까?

여전히 나조차도 집안일은 여자 일!! 이라며 당연히 여기고 있었다.

남편이 도와주면 그건 너무 고마운 일이고.


가지고 있는 돈도 없을뿐더러 분가라도 할려면 저축 부지런히 해서 다만 얼마간이라도 모아야 했기에 아이는 나중에 갖기로 했다.

그런데 여태까지도 우리 뜻대로 흘러오지 않았던 인생, 여기서도 계획대로 흘러갈 리가.. 허허허;;;;


남편이 취직을 하고 얼마 후 예기치 않게 아이가 생겨버린 것이다.

계획 없이 찾아왔다고 아이를 홀대할 수야..

크리스챤인 우리는 여기에도 분명 뜻이 있을 거라 믿으며 다시 계획을 짜야했다.

다시 짠 들  뭐 별게 있는 건 물론 아니었지만.

아이 낳고 그러면 내 직장생활은 물 건너간 것이니ㅡ이미 5살 손녀딸을 키우고 있던 시어머니는 미리 나는 너희 애 키워줄 수 없다고 선언하셨었다.ㅡ '분가'라는 말은 더구나 저~~~ 멀리, 안드로메다 어디쯤에서 방황하는 단어가 된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 뿐.


아이를 임신하고 학습지 교사를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뭐 무슨 일이든 임신 상태로 일하는 게 쉬울까  마는... 학습지 교사는 일단 무거운 교재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하고(차가 있으면 좀 낫지만 ㅡ남편은 차를 갖고 다녔다.ㅡ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운전면허가 없다),  이 집 저 집 다녀야 하기 때문에 계속 움직여야 한다. 앞에서 썼듯이 퇴근 시간도 늦다.

다행히 나는 입덧이 전혀 없어 식사도 가리는 것 없이 평소처럼 할 수 있었고, 괜히  학생 가르치다 엉뚱한 냄새에 왝왝 거려 임신한 걸 티를 낼 일은 없었다.


임신한 몸으로 학습지 교사를 하며 여기저기 다녀야 하는 생활인데도 그에 대한 시어머니의 배려는 거의 없었다는 나의 기억. 입덧을 하느라 먹은 거 토하고 못 먹어 비리비리 말라갔으면 좀 배려를 하셨을라나..


임신했던 그 겨울 김장에 관한 에피소드가 내 글 어디메쯤 하나 있을것이다..^^(불러 올 줄을 몰라..^^)


* 5회로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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