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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Sep 03. 2020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5

나는 입덧이 없었다.

어떻게 그렇게 하나도 없을 수 있는지.

(좋았다는 뜻이다~~^^)

단지 차를 타면 (20살 이후) 사라졌던 멀미가 올라와 그 해 추석에 시골행 면제라는 혜택이 주어졌다.

시댁 가족 모두 시골로 떠난 집에서 남편과 둘이 신났었던 기억이.

가까운 곳으로 놀러도 가고.


근데 입덧이 없으니 딱히 당기는 음식이 없어 남편에게 "(한겨울에) 여보~나 수박이 너~~~~ 무 먹고 싶어. 수박 좀 사다 줘~~~~" 뭐 이런 걸 못해봤다.


그리고 먹고 싶은 게 떠올랐던들 맘껏 사 먹을 수도 없었다.

일단 가족 수가 많다 보니 한번 사 오려면 온 가족이 먹을 수 있도록 많이 사 와야 한다는 거. 우린 돈이 넉넉하지 않으니 그런 상황조차 부담. 또 뭔가를 사 먹자 해도 "너넨 돈도 잘 못 벌면서 그런 쓸데없는데 돈을 쓰면 어떡하니? 돈은 언제 모을래?"라고 혹시나 어머님께서 한소리 하실까 봐(한소리 안 하셨다. 셀프 눈치..)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말씀은 하셨다. "식구가 많으니 과일 값이 반찬값보다 많이 든다. 과일은 자제하자" 뭐 이런 류의 말씀. 그러니 뭐 하나 사갈래도 눈치가 보일 수밖에..


빵을 좋아하는 빵순이인 내가 빵을 못 먹으니 어느 날은 출근해서 점심으로 부러 빵을 사 먹고 일하러 가기도 했다.

입덧 없는 와중에 시원한 귤, 또는 구운 오징어가 먹고 싶은 적있었다. 새콤한 귤이 아니라 그냥 시원한 귤. 귤은 남편이 퇴근하면서 사 와서 먹었는데 오징어는 밤에 냄새 피우며 굽기 눈치 보여 전기 구이 오징어로 사 먹었다는..ㅎ


아니.. 내 히스토리 쓰다가 어쩌다 보니 시집살이 한 이야기?

시어머니의 구박 아닌 구박 이야기?

이게 아닌데...ㅎㅎ

이제 와서 시어머니를 디스 할 목적은 아니었는데..ㅎㅎ(지금은 많이 힘이 빠지셨다. 그래도 여전한 우리 집 실세!!!^^)

애니웨이...^^


남편은 재미나게 일을 했다.

일을 해보니 가르치는 게 적성에도 맞다고 했다.

나의 임신으로 이듬해 봄부터는 외벌이가 될 예정이었기에 섣불리 다른 직장을 찾을 수도 없었다.

그렇게 교사하다 관리자가 되면 뭐 괜찮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었나 보다.

그런데 그때도 한 가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학습지 회사의 관리자란 모름지기 웬만큼의 깡!! 이란 게 필요하다는 사실.

영업력, 말발  뭐 그런 건 기본이고.

내 남편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단 말이지.

그러니 관리자까지 갈 수 있을지 아님

나이 먹어서도 교재 가방 들고 다니는 평교사를 계속하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본인의 성격을 파악하고 (곧 아이까지 있는 세 식구의 가장이 될 예정이니) 좀 더 미래를, 직업을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찾아봤어야 했다.

우리 둘 다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한 발짝 앞도 내다보지 못했다.

생각이 짧았었다.

세상 물정을 너무나 몰랐었다.

치열함도 부족했었다.


-나중에 몇 년이 지나고 남편이 고백하길

학습지 교사를 하고 있는 중에 직장을 소개해주시려는 대학원 교수님의 전화가 몇 번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학생들을 놓고 갈 수가 없다고 거절을 했었단다.

왓!!!!!

뭐라고????

으이그... 속 터져...!!!!

도대체 그게 뭐라고...


그때 교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였으면 우리의 인생이 끼익... 선로를 바꿨을라나?


나중에 돌아보니 이것이 내 남편의 성향이었다.

큰 욕심보다 자기맡은 (어찌 보면 작아 보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러느라 10년 20년 후를 바라보기보다는 너무 근시안적으로 삶을 본다는 거.

가끔씩 쓸데없는 똥고집을 잘 부리는 그의 성격도 한몫했을 수도 있다.

유순한 듯 한 사람이 웬만해선 자기 생각을 안 바꿔..


대학원 가지 말라는 어머니 말씀도 안 듣고 대학원 가.ㅡ학사만 따고 취직을 했으면 IMF를 만나지 않았지. 물론 나도 못 만났을 거고. 아... 아깝다!!!ㅎㅎ

군대도 육군이 아닌, 복무기간이 가장 긴 공군(당시 복무기간이 34 개월인가? 암튼 30개월 이상)을 다녀오느라 시간이 남들보다 더 걸려. ㅡ물론 이때도 더 짧은 육군을 다녀왔더라면 대학원을 다녔어도 IMF는 안 만났다. 아, 물론 나도. 그가 공군 복무 중일 때 만났으니. 으그.. 이것도 아까워!!!ㅎㅎㅎㅎ


운명이 비껴갈 수도 있었는데...

이건  뭐 온 우주가 나서서 우리의 만남을, 우리의 삶을 응원해주었던 것 같잖아!!!!... 허허허;;;


* 또 계속.. 다음 회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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