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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Sep 05. 2020

내 이야기

아픔의 기억

아팠던 기억이다.

마음의 아픔? 뭐 그런 거 아니다.

진짜로 몸이 아팠던 일이다.(^^)


우리 애들한테, 가까운 사람들한테

"나 죽다가 살아났잖아~~"라고 가끔 관심을 끌기 위해 얘기하는 일이 있는데

그 일이 진짜로 죽을 만큼 심각한 병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내가 허풍을 떨고 싶거나 혹은 어떤 관종기가 있을 때 그런 얘기를 꺼내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한데...ㅎㅎ

(혹시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의료계 종사하시는 분이 계시면 코멘트를 달아도... 죽을병 아닙니다..라고 ㅎ)


나는 어렸을 때부터, 아니 태어날 때부터 체격이 컸다. 엄마 뱃속에 예정일보다 보름을 더 있었 그래서인가 많이 커있어서 엄마가 난산으로 고생을 하셨다 했다.

 이후 쭉 자라면서  또래보다 큰 체격.

뚱뚱한 건 아닌데 그냥 큰 체격(지금은 뚱뚱..ㅠ).

중학교 때까진 늘 뒷자리, 뒷번호 차지.

그런데 몸이 그닥 건강하진 않았다.

편식이 심했는데(어렸을 땐 모든 종류의 고기를 전혀 먹지 않았다. 냄새랑 물컹거리는 식감이 싫어서) 그래서인지 빈혈이 있었다.


시골이라 가까운 곳에 병원 없어서 빈혈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었는데, 몇 번을 쓰러지고 나니 엄마가 걱정이 되셔서 버스로 한 시간쯤 떨어진 병원에 데리고 가셨고 병원에서 빈혈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이다.


흔히경험하는 -  운동장 조회하다가도 완전히 정신을 잃고 쓰러지기도 했고, 합창 연습한다고 서있다가도 식은땀을 흘리며 쓰러지기도 했다.

쓰러질 때는  티비에서 정신 잃기 전을 묘사할 때처럼 시야가 뿌예졌다 맑아졌다 오락가락하다 정신을 잃게 된다.

정신을 잃기 전 현상인걸 알았으면 주저앉기라도 했을 텐데 처음 경험하는 거라 이게 뭐지... 하다가 땅에 꽝 쓰러져 턱이 (심하게는 아니고..ㅎ) 깨지기도 했다.

오래 달리기는 숨이 차서 한 번도 완주한 적이 없는데 그건 심지어 대입 체력장을 할 때도 그랬다.


병원에서  영양제(아마 철분제)를 먹으라고 했다.

 영양제를 사 오긴 했는데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보니) 계속 사 먹일 수 없어서 두 달쯤인가 먹고 말았나 보다.


6학년 때쯤 또 쓰러지니 엄마는 없는 살림이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한약을 사줄려고 알아보다가 한약이 아니라 (그 이름도 찬란한) 흑염소 육골즙이란 걸 사주셨다.

 그대로 흑염소 고기가 들어있는 걸쭉한 수프 비슷한 것이었는데...웩!!!! 약이라고 하니 먹었지 그냥은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이었다.

엄마가 힘들게 산 걸 알기 때문에 버릴 순 없 꾸역꾸역 먹었는데 정 안 넘어갈 때는 뒤뜰에 살짝살짝 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그 흑염소를 먹고 살이 찌기 시작했다 것이다.

시시비비를 정확히 밝혀낼 수는 없지만(ㅎㅎ) 나는 그놈의 흑염소가 나를 살찌웠다고 확신한다.

흑염소를 먹은 후부터 어찌나 밥 맛이 좋던지..

농사짓는 아버지처럼 밥을 먹더니 1년 새 몸무게가 10킬로나 늘어버렸던 것이다.

그 이후로 키 성장은 멈추었는데 몸무게는 매년 기록을 경신하더니 스무 살 이후로 쭈~~~ 욱 77 사이즈를 입는 몸매가 완성되었다. (결혼할 때도, 쉰이 된 지금도. 지금은 오히려  큰소리친다. 난 몸매가 변함이 없어. 관리의 끝판왕이지?~~라고..ㅎㅎ)


그런데 그렇게 체격이 좋으면 이영자 씨처럼 힘도 세고 튼튼해야 할 거  아냐.

근데 아니었다.

십 대부터 있던 빈혈은 스무 살이 넘어서도 쭈욱.

얼굴은 늘 핏기가 없이 누런 색이었고 늘 피곤을 달고 살았다.

조금만 피곤하면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부었는데 아무래도 그것도 빈혈 때문이었던 듯하다.(너무 부으니 신장, 심장, 간 검사를 다 했지만 이상 무)


그렇게 빈혈은 친구처럼 늘 내 곁에 있었다.


문제는 임신.

임신 후 반드시 해야 하는 빈혈검사에서 헤모글로빈 수치가 8 정도로 나왔다.

첫애를 임신했을 때는 의사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보통은 하루에 철분제 한 알을 먹는데 나는 빈혈이 있으니 두 알씩 드세요.. 했다.

꼭 먹어야 합니다. 피가 모자라면 위험해요.. 뭐 그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보건소에서 빈혈약을 무료로 주는지 몰라 돈 아낀다고 하루 한알씩만 사 먹었다.

빈혈약 먹으면 변비가 올 수 있다 해서 그것도 먹다가 말다가.

다행히 그땐 쓰러지거나 하진 않았다.

막달 빈혈검사에서도 수치가 낮아 출산 때 수혈을 몇 팩 맞았다.

다행히 산후에 회복이 빨랐다.


5 년 후 둘째를 갖고 또 빈혈 검사를 했더니 그때는 수치가 7.

의사가 이러면 위험해요, 피가 모자라면 심장에도 부담이 많이 가요, 철분제 2알씩 꼭꼭 챙겨 먹으세요.. 했다.

의사가 위험하다니 살짝 걱정이 되었다.

철분제를 부지런히 먹었지만  막달에도 여전히 심한 빈혈. 아기를 낳기 전 링거처럼 생철분제를 몇 번 맞았다.

아기 낳고 또 수혈.

 

그러고는 다시 그냥 그냥 살았다.

철분제는 더 이상 먹지 않은 채.


둘째가 6살이 되었을 무렵 어느 날부터 생리양이 급격히 늘었다.

감당을 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나왔다.

생리를 하는 동안에 다시 얼굴이 붓기 시작했다.

누우면 얼굴이 너무 부어 앉아서 잠을 자야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니 얼굴엔 핏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보는 사람들 마다 얼굴이 왜 그러냐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원래 얼굴이 하얘요~"하며 웃었다. 살이 빠진 것도 아니요 여전히 퉁실퉁실한 몸에 핏기만 없으니 몸에 이상이 생겼다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빈혈과 살 빠지는 건 상관이 없을 텐데.. 단순하기는..ㅠ)


어느 날은 출근을  하는데  아랫배가 너무 아팠다.

출근을 못하고 병원으로 갔다.

배가 아프니 내과로 갔다. (아.. 또 단순.. 배가 아프내과? 무식한 건지 단순한 건지..ㅠ) 청진기만 대어본 의사는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배가 아픈 것도 시간이 좀 지나니 사라졌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얼굴은 점점 더 노래져가고 이제는 단순히 걸어갈 때도 기운이 달리고 숨이 차는 게 느껴졌다.

걸어서 5분 거리 딸아이 어린이집을 10분을 넘게 걸려 천천히 걸어갔다. 도저히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다녀오면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원인은 '살쪄서 그래'.

잉???? 바보!!!..ㅠ 그렇게 기운이 없는데..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데?

살이 원인이라고 혼자 판단하고는 운동을 하러 갔다. 공원을 힘겹게 걷는데 땅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땅이 빙글빙글.

그런데도 병원을 갈 생각을 안 했다. 단순히 살 때문이라고...(으그 바보..)


한 달 여가 더 지나고 몸이 더 힘들어졌을 때야

 아, 빈혈검사나 한번 받아볼까 하고 병원을 가게 됐다.

자리에 앉아서 빈혈검사해보려고요.. 했더니 의사 선생님(이 분은 따뜻하게 얘기해주셔서 선생님 붙인다^^)이 보기에도 그렇게 보이네요.. 하셨다.

일단 검사를 하고 며칠 내로 결과를 알려준다고 했다.

걸어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의 병원에서 느릿느릿 돌아온 후 또  소파에 누워서 쉬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너무 낮아요. 의사 선생님이 지금 빨리 오셔서 수혈받으라고 하셔요. 얼른 병원에 오세요" 한다.


다시 느릿느릿 걸어서 병원으로 갔다.

간호사가 "에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4 예요.

사고로  갑자기 이 수치가 되면 과다출혈로 죽을 수도 있는 수치예요. 오늘 수혈받으시고 며칠 있다가 또 받으셔야 해요." 한다.

수혈을 받고 있는데 좀 전에 진료했던 의사 선생님이 오더니

"원래 이 수치면 위험한 수치예요.

그런데 환자분은 피가 서서히 빠져나가는 동안 몸이 조금씩 적응을 해와서 그나마 견디신 거예요.

출혈의 원인을 찾아야 하니까 일단은 산부인과 진료 먼저   받아보시구요 거기서도 원인이 안 밝혀지면 위나 이런 곳도 검사해봐야 해요. 얼른 예약해서 꼭 검사받으세요" 하셨다.


그러고 나서 받은 검사에서 밝혀진 건 자궁근종으로 인한 과다출혈이었다.

생리양이 갑자기 늘어난 게 5개월 전쯤.

의사 말로는 빠른 시간 내에 근종이 급격히 자란 것 같다고 했다. 5개월짜리 근종이었나?

크기가 꽤 크고 빈혈이 심한 몸이니 아기를 더 가질게 아니면 자궁을 드러내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그때 내 나이 39살. 물론 아기를 더 가질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자궁을 없애도 되나?

사실 몇 달의 힘든 생리 때문에 내 자궁에 대한 미련은 별로 없었다.

편할 것도 같았다.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빈혈과도 이별할 수 있다고 하니 좋을 거 같았다.


그렇게 내 자궁과 이별을 했다.

수술할 몸이 아니었기에 수혈을 몇 번 더 받고

수술할 때도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기며 고생고생한 후 나의 자궁과 이별을 했다.


그리곤..

그 이후 (태어나서 처음인 건가?) 헤모글로빈 수치가 완전 정상이 되어 지금까지 십여 년간 이십 대 때보다 더 건강하게 살고 있다.


지금도 가끔씩 흐억!!! 하는 건 내가 그때 살 때문에 힘든겨.. 하며 계속 병원을 안 갔더라면 어느 날 길에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갔거나 쇼크사를 했을까?... 싶은 거다.


몸이 안 좋으면 얼른얼른 병원을 가야지 왜 그리 미련을 떨고  있었는지..

그런데 아직 그 버릇 잘 못 고쳤다.

아직도 병원 가는 건 뒤로 뒤로 자꾸 미루게 된다... 헤;;;^^


내 몸은 내가 알아서 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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