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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Sep 07. 2020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6

시간이 흘렀다.

나는 8개월까지 꽉 채워 학습지 교사를 하고 그만두었다.

두꺼운 옷을 입는  계절을 지나고 봄옷으로 갈아입을 즈음 그만두었으니 학부모님들은 내가 임신한 줄을 몰랐었다.

그만둘 때 아기를 낳아야 해서 그만둔다고 하니 그제야

어머, 그렇게 말씀하시니 배가 나왔네요~하셨다.

(아가씨 때부터 똥배로 고민이 많았었는데 오히려 임신하니 배가 덜 나와 보이는 이유는 무엇?..ㅎㅎ)


아기는 어디서 낳아야 하나?

시어머니께 산후조리를 부탁할 수도, 부탁할 마음도 없었다.

요즘이야 산후조리는 대부분 산후조리원이나 산후 도우미 분의 도움을 받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때는 가급적 친정 근처에서 아기를 낳고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이 또한 세기말의 감성인가?^^)


그런데 나의 친정은 병원이 자동차로도 1시간이나 걸리는 산골짜긴데?(대중교통을 이용하면 2시간쯤?... 워후..;;;)

예정일이 6월 중순인데 그때쯤이면 농사짓는 엄마는 한창 바쁠 시기인데?

그래도 가기로 했다.

엄마 옆에서 첫 아이를 낳고 싶었다.


출산 한 달 전쯤부터는 출산할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아서 출산 한 달 전에 친정을 향했다.

출산 짐을 꾸려서 5월 어느 토요일 기차를 타고 친정으로 향했다.

기차, 버스 합쳐 반나절 이상이 걸리는.. 가까운 여정은  아니었다.

그래도 너무 좋았다.

엄마한테 간다니...

엄마 밥을 먹는다니...

대학 입학을 위해, 아니 그 전 고등학교 진학 후부터 집을 떠났는데... 내 엄마 옆에서 두 달여를 있을 수 있다니. 그렇게 오래 있는 것은 17살 이후 처음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남편은 이튿날 다시 서울로 가야 한다는 거.

출산 즈음인 한 달 후 주말에 다시 내려오기로 했다.

그전에, 혹은 그 이후에 아기가 나올 수도 있는데?

그렇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아빠 없이 아기를 낳아야 한다는 것을 뜻했다.


농사짓는 밭이 산등성이 하나를 넘어가야 하는 골짜기에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은 아침에 밭에 가시면 어두워져야 집으로 돌아오셨다.

무료한 낮시간, 남편에게 편지도 쓰고 태교 일기도 쓰고 엄마 오시기 전에 간단하게 밥이랑 국도 준비해놓고 아기 옷 빨래도 해놓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쨍한 5,6월의 햇빛이 마당에 내리쬐는 걸 보며 빈둥거렸다.


눈치 볼 시댁 식구 하나 없는 친정집은 천국과 같았다.

갇히지 않았으나 갇힌 듯 감옥처럼 느껴졌던 시집을  벗어나 유유자적 냇가를 거닐며 아기랑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 뱃속에서 수업하는 엄마를 따라 같이 공부하거나(그 덕분이었나? 큰딸은 아주 똑똑한 아이로 태어났다. ㅎ 태교의 힘?), 시댁생활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엄마 덕에 같이 스트레스받았던 아기도 엄마 뱃속에서 두 발 뻗고 평화를 누린 시간이 아니었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은 버스 타고 또 버스 타고 택시 타고, 어느 날은 버스 타고 기차 타고 택시 타고 2시간쯤 걸려 큰 병원이 있는 안동으로 검사를 받러 다녔다.

혼자서.

지금 생각하니 용감했네.

무식해서 용감했나?

저번 글에서 처럼 빈혈도 심했는데 보호자도 없이 씩씩하게 병원을 다녔다.


예정일이 다가오는데도 아기가 내려오질 않고 배가 깡총 위로 솟아있었다.

병원이 멀어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단은 예정일인 6월 19일에 유도분만을 하기로 했다.

마침 그날은 토요일.

남편도  곧장 병원이 있는 안동으로 내려오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 왈, 유도분만을 해도 진통이 오지 않으면 다시 집으로 가서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제 예정일 전까지 진통이 오지 않고  잘 지내다

예정일에 유도분만을 할 때 착착 진행이 잘 되어서 아기가 짠 ~~ 무사히 태어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예정일 전날까지 진통이 오지 않았다.

6월 19일 토요일 아침,

엄마와  함께 출산 준비물이 든 가방을 들고

버스 타고 또 버스 타고, 택시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음에 또 쓸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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