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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리스 Sep 09. 2020

쉰이 되어보니

나의 짧은 히스토리 7

진통도 1도 없고 배도 처지지 않았고.

과연 오늘 아기가 나올지 아님 다시 짐 싸서 집으로 가야 하는지.


막달엔 순산하기 위해 산책도 많이 하고

아기가 많이 내려와 있지 않으면 방바닥 걸레질도 하고... 뭐 그렇게 하란 얘길 들었었는데.. 난 하지 않았다.

친정에 있는 동안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어 그냥 내 맘대로.


산전  마지막 검사 때, 아기가 3.5킬로가 넘을 수도 있으니 더 커지지 않게 많이 움직이고 주의하란 얘길 들었었다.

만약 예정일인 오늘 아가가 안 태어나고 며칠 더 간다면 뱃속의 아가는 더 커질 것이었다.

마치 내가 태어날 때처럼...

그럼 나도 엄마처럼 난산?

아기를 낳아본 적이 없으니 순산을 할지 진통만 며칠이 걸릴지 아무것도 모를 일이었다.


오전 10시 반쯤 유도분만 주사를 맞고 기다렸다.

기차를 타고 병원으로 곧장 온 남편을 한 달 만에 만나 같이 손잡고 기다렸다.


-아픈(기분 나쁜..ㅎㅎ) 추억 하나.

아가를 낳을 예정이라 화장기도 없이 풀어헤친 머리로 침대에 누워있는 퉁퉁부은(잉? 아기 낳기 전인데 왜 부음?.. 몰라!!), 원래 통통(내지는 퉁퉁)한 29살의 나. 청바지에 흰 티, 운동화를 신은, 호리호리한 30살의 남편.

간호사들이 보더니

"어머~~ 남편 분이 연하신가 봐요~~~^^"

.

.

.

"아.. 아닌데요.. 한 살 오빤 데요...ㅠㅠㅠ"

으...

이 치욕!!

기분 나뻐  - ㅎㅎㅎ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흘러도 내 배는 무 반응.

간호사가 진통이 없으니 밥을 먹어도 된다고  해서 남편과 같이 밥을 먹었다.


그리고 또 한 시간, 두 시간.

의사가 보더니 자궁이 하나도 안 열렸고 진통도  없으니 조금 더 기다려보고 진통이 안 오면 집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ㅠ ㅠ 버스 타고 2시간을 다시 가야 한다고?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있던 곳은 분만 대기실.

진통이 막바지에 이른 산모가 마지막 진통을 하며 분만실에 들어가기 바로 전에 머무르는 곳.

나는 아무런 진통도 없이 수다 떨고 밥 먹고 했는데, 원래는 그런 용도가 아니라 고통스런 비명이 가득한 곳이었던 거다.

오후에 들어서니 분만을 바로 앞둔 산모가 한 명 들어와 진통이 올 때마다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4시가 넘어가고..

5시를 향해 갈 무렵

허리가 살짝살짝 아파오기 시작했다.

흡사 생리통으로 허리가 아팠을  때처럼.

이게 뭐지?

진통 시작인가?

긴가민가..


조금 지나니 허리 아픈 강도가 점점  세졌다.

5시가 넘어가니 배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폭풍처럼 밀려오는 진통.

책으로 출산을 배웠는데..

책에 나온 거처럼 처음엔 30분 간격.

조금 지나면 20분 간격.

그러다 나중엔  5분.. 나중엔 1분 간격..

뭐 그런 게 없었다.

배가 아파오기 시작하니 곧장 1분 내지는 2분 간격으로 배가 계속 아파왔다.


배가 아파 소리를 지르니 간호사가 와서 소리 많이 지르면 나중에 기운 딸려 아기 낳을 때 힘들 수도 있으니 소리 많이 지르지 말라고 차갑게(으.. 산부인과 간호사들 좀 쌀쌀한 거 같애..ㅎ ) 말하고 갔다.


아니.. 그렇게 내가 걱정됐으면 나더러 머리맡 침대 기둥을 그렇게 꽉 잡고 비틀지 말라고도 얘기했어야지.ㅡ흠.. 내 걱정이 아니라 산모가 난산일 경우 겪을 의료진의 노고를 덜기 위해 그런 조언을 한 듯.. 흥!!!..ㅎㅎ

 손목 나가서 나중에 고생한다고.

그 얘길 해주지 않아 어찌나 침대 기둥을 잡고 힘을 줬는지 아기 낳고 손목이 약해져 한동안 고생했었다.


5시 30분 정도부터 폭풍같이 밀려왔던 진통.

1시간 30분 정도 거의 쉬지 않고 진통을 하다

결국...

.

.

저녁 7시경에 (우주인 같은..ㅋ) 딸을 출산했다.

(다행히 아가는 딱 표준인 3.3킬로.

키가 큰 편이라 예상 몸무게가 많이 나왔었나 보다.)


아.. 이런 인간승리가?

난 출산의 여왕이었던 것인가?

진통이 오고 한 시간 여만에 출산을 완료한

나란 여인!!!


ㅡ내가 출산의 여왕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는 건 이때로부터 5 년 후, 둘째를 낳을 때 다시 한번 명확히 밝혀지는데...ㅎㅎ

그때도 진통이 시작되고 약 50분 정도 후,

소리 지르지 말라는 첫째 때의 충고를 떠올리며 참다 참다 대략 3번쯤 소리를 지른 후,

아기를 쑴풍 낳았는데...

예정일보다 5일 더 늦게 태어난 울 둘째는...

"4.3킬로입니다~"

"네?? 4.3킬로요?"

정신없는 와중에도 어이가 없어 허허~~~ 웃었던 기억이..ㅎㅎㅎ


막상 겪고 나니 아찔한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나의 친정 집은 앞서 얘기했듯이 병원까지 자동차로 논스톱으로 달려도 한 시간여.

만약 집에 있다가 진통이 오고, 책에서 봤듯이 5분 간격으로 진통이 오면 그때 병원 가자~뭐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냈다면... 어쩌면 병원으로 오는 도중에 아기가 나왔을 수도 있다는... 흐미... 상상만 해도 뒷골이...;;;


유도분만하길 참 잘했네~~

우리 아가, 때 맞춰 나와주니 참 고맙네~~

아빠도 옆에 있고.. 참 완벽했어~~~!!


*어쩌다 출산 이야기로..ㅎㅎ

그야말로  나란  인간의 역사책이네..

아니 뭐.. 내 역사 내가 기억하고 기록해야지.. 누가 해주겠어요, 안 그래요???..^^


*다음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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