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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다 Sep 09. 2020

7살 우리 아이에게
코로나 블루가 찾아왔다.

[육아를 혜다] 아이 마음에 심는 작은 심리상담사 

엄마, 화장실에 혼자 못 가겠어요.



언제부터인가 아이가 화장실에 갈 때 제가 쫓아가 줘야 하는 순간이 늘어났습니다. 하루에 한 번, 두 번.. 그러다 하루에 다섯 번 화장실 가는 내내. 얘가 요즘 왜 이러지? 깨닫는 순간엔 이미 전 아이의 화장실 메이트가 되었죠. 두뇌가 풀가동됩니다.

'둘째를 질투하는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하는 건가?'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에 못 가서 심심하니 엄마랑 더 얘기하고 싶은가?'

도대체 언제부터 이랬나 가만 살펴보니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한국에 폭발하듯 늘어나던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고 가정보육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아이에게 쏟는 태도가 유달리 달라졌거나 우리 가족의 신변에 큰 변화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별생각 없이 하던 일도 못하게 되다니.



그렇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코로나 블루가 찾아왔습니다.





괜찮아 보이는데. 멀쩡하게 잘 노는데?



아이가 특별히 코로나 이야기를 자주 하면서 무섭다고 하거나 밥을 잘 못 먹거나 징징거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너무나 잘 웃고, 잘 놀고, 잠도 잘 잤죠. 그런데 화장실! 그놈의 화장실을 갈 때만 되면 유독 엄마에게 매달리고 떼를 썼습니다. 한 번은 둘째가 화장실 근처에 앉아 놀고 있고, 저는 애가 뭘 주워 먹지는 않는지 힐끔힐끔 살피며 저녁을 바삐 만들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첫째가 절 부르며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합니다. 부침개가 탈까 봐 어물거리며 '동생 거기 앉아있네.' 했더니 들려오는 단말마 같은 외침.

"뽀송이는 소용이 없어요! 어른이 아니잖아요!"

하루에도 너덧 번 가는 화장실을 다 쫓아가기에 엄마는 바쁩니다. 7살 정도 되면 변기 뚜껑 닫고 물 내리고 손까지 깨끗하게 씻고 나오는 3종 세트는 못해도 화장실은 혼자 가야죠..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아이는 엄마, 아빠가 화장실을 함께 가줘야 하는 것에 점점 더 집착했습니다.









아이들이 불안하고 두렵다고 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 언어적으로 심리적인 자기표현이 가능한 나이일 겁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식은땀이 나며 긴장이 느껴지는 몸의 감각을 알아채는 과정이 먼저 일어납니다. 감정을 인식하면 이에 이름 붙일 수 있어야 하죠. 내가 지금 두렵구나. 뉴스에서 코로나 소식이 나오고 엄마, 아빠가 걱정하는 소리를 들으니 나도 갑자기 무서워진다. 이런 내적인 목소리는 밖으로 나와 다른 이의 지지를 구하거나 해결책을 찾게 합니다. 그런데 나이가 어릴수록 이 과정은 능숙하지 못합니다. 저희 아이처럼 갑자기 잘 가던 화장실을 혼자 가지 못하게 된다든지, 뚜렷한 이유 없이 두통이나 복통, 울렁거림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코로나 19 사태처럼 심리적인 충격이 큰 사건을 겪는다면 성인도 이런 신체 증상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물며 어린이와 청소년은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제가 상담심리사로 속해 있는 한국상담심리학회에서 제시한 코로나 19와 관련해 아이들이 불안해하는지 알 수 있는 사인 몇 가지를 덧붙입니다.



코로나 19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딴청을 부리거나, 평소와 달리 손발을 꼼지락거리는 등 행동이 부산스러워진다.

코로나 19에 대한 질문을 반복하거나, 관련 뉴스를 못 보게 한다.

주변 사람들이 코로나 19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예방 행동 수칙에 과도하게 집착한다.

신경질과 짜증이 늘었다.

출처: 섬세한 우리 아이 불안 달래기. 코로나 19 관련. 서울경제뉴스.





엄마, 갑자기 어른들 전부 죽어서 나만 남겨지면 어떡해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럴 일 전혀 없다고 한 마디로 일축해 버리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제 아이가 자기 직전 머리맡에서 걸어온 물음입니다. 엄마는 아이의 불안을 밀어내고 평화롭게 해주고 싶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해. 그런 생각 하지 마.', '그런 일은 안 일어나. 어른들이 한꺼번에 죽는 일은 없어. 이제 자자.'

그러나 이런 노력은 오히려 불안을 증폭시킵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마음속 감정은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두렵고 불안한 감정을 느낀 자신 역시 부정당한 기분이 듭니다. 엄마는 뭘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선 듣기 선택했습니다.


아이가 불안감을 표현하는 순간, 감정을 다 꺼낼 수 있도록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놀라지 않는 태도입니다. 

심드렁하게, 이전과 다를 바 없는 톤과 빠르기와 표정으로요.  

"그래? 어쩌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이런 엄청난 생각을 듣고도 엄마가 놀라지 않다니 내심 안도했을 겁니다.

그래서 계속 이 불안감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습니다. 7살 아이가 꺼낸 불안은 논리 정연하거나 들으면 마음이 쿵 떨어지는 그런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얼토당토않은 상상입니다. 갑자기 엄마, 아빠, 양가 조부모님이 코로나에 한꺼번에 걸려서 자신이 어디론가 보내지 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이요. 이제 아이가 고백하듯 쏟아놓은 이 두려움을 다룰 차례입니다.




두려움과 공포를 작고 안전하게 만들어서 아이가 소화할  있는 형태로 돌려주면 좋습니다.


제가 선택한 말은 '그런 생각이 들 수도 있지.'였습니다. 

'엄마도 어렸을 때, 갑자기 엄마 아빠 돌아가시면 어쩌나 무서워진 적이 있어.'하고 얘기해주면 아이의 불안감은 한결 내려갑니다. 나 말고 엄마도 느꼈던 감정이니 내가 이상한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네가 걱정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가볍게 이야기해줍니다.





압도당하지 않는 어른이 되어줄게.



그때 이후로 저희 부부는 첫째 앞에서 코로나 사태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니, 함부로 말할 수 없었습니다. 뉴스도 하루 종일 틀어놓지 않았습니다. 그전까지는 여러 이유로 뉴스를 종종 시청했습니다. 확진자가 얼마나 더 나왔는지 알고 싶어서, 우리가 모르는 소식이 또 있을까 봐, 마스크는 KF90을 써야 하는지, 면 마스크도 괜찮은 건지 하루 걸러 말이 바뀌니 당혹스러워서, 그 밖의 또 여러 이유들로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뉴스의 정보는 좋은 기능을 주었지만, 너무 많이 노출되니 그걸 보며 대화하는 우리 부부를 보고 아이는 긴장을 바짝 느꼈을 겁니다. 뉴스에서 일어나는 일을 아이가 물으면 대답해 주지만 너무 자세하게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까지 설명해주지는 않았습니다. 부정적인 얘기는 선별해서 꺼냈습니다. 백신 영영 개발 안되고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상상을 들어도 어른은 그냥 푸념 섞인 한탄이네 하고 넘어가지만 아이들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19 사태를 맞서면서 인간은 어떻게든 살아나갈 겁니다. 한국에 코로나가 찾아온 지도 벌써 6-7개월이 흘렀고, 이제 사람들은 외출할 때 마스크를 휴대폰 챙기듯 들고 나갑니다. 아니, 이젠 마스크 없이는 대중교통도 공중시설도 음식점도 이용하기 어렵죠. 유치원도 학교도 회사도 나름의 방법을 찾아 이 시기를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무더웠던 지난 7월. 놀이터에서는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웃으며 뛰어놀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벤치 한 켠에 앉아 우두커니 보고 있노라면 짠하고 기특하면서 어른으로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주고 싶은 책임감도 느낍니다. 부모는 아이가 겪을 세상의 모든 울타리가 되어줄 수는 없지만 자기 울타리를 튼튼하게 만들도록 재료를 줄 수 있으니까요.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무력해지지 않는 엄마가 되기를.

우리 모두 압도당하지 않는 어른이 될 수 있기를.




출처: 재난정신건강 정보센터 홈페이지.


제가 즐겨 읽는 브런치 중 정신과 의사이자 융학파의 분석가이신 정찬승 님의 글에서 가져온 홈페이지 주소입니다. 링크를 따라 들어가면 포스터의 각 내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놓았어요. 한 번쯤 읽어보셔도 좋아요.

 재난정신건강 정보센터 홈페이지의 아동/청소년을 위한 대처 요령: http://www.traumainfo.org/after/03





덧) 저희 아이의 코로나 블루는 3개월 뒤 유치원 등원 후부터(드디어!) 조금씩 잠잠해졌고, 이제 아이는 혼자서도 화장실을 아주 잘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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