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혜다] # 감정 쓰레기통 # 감정 수용하기
오늘 쾌변 하셨어요?
여러분, 화장실 꿈꿔 보셨나요? 화장실에 들어가고 싶은데 안에 사람이 바글거려서 못 들어간다든지, 똥 누는데 왠지 시원하지 않고 찝찝한 기분이 든다든지 하는 그런 꿈이요.
꿈을 분석하는 심리학자들은 보통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잘 보지 못하는 꿈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는 상태라구요.
보통 그런 감정들은 부정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슬프고, 좌절스럽고, 시기 혹은 질투가 나거나, 막막하고, 분하기도 하죠. 그런데 어떤 이유로 자신이 그 감정을 느끼는 것을 용납할 수 없을 때 감정 똥이 마음에 쌓여 꿈에까지 나타나 우리를 괴롭힙니다.
반복적으로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지 못하는 꿈을 꾸는 분들은 만성적인 감정 변비에 시달린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는 왜 이렇게 감정적인 변비에 시달리는 걸까요?
아래와 같은 상황이 있습니다.
할머니와 걸음마하는 아이가 있지요. 아이가 잘 걸어가다가 넘어집니다. 아이는 아파서 웁니다. 좀 많이 웁니다.
할머니는 우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왜 울어? 별 거 아냐. 사내자식이 눈물 많아서 어따 쓰려고. 뚝!"
두둥. 아이의 감정 세계에 균열이 일어납니다.
'남자애는 눈물을 흘리면 안되나?'
'우는 건 나쁜 거다.'
할머니가 원하는 건 이런 태도였을 겁니다.
넘어졌지만 조금 아파하고, 툭툭 털고 일어나 금방 웃으며 뛰어가는 씩씩함.
그런데 내 아픔이 '별 거 아닌 것', '눈물은 쓸모없는 것'으로 피드백받을 때 아이는 아픔을 내색하면 혼나니까 앞으로는 울지 말자고 다짐했을지도 모릅니다.
할머니가 어떻게 이야기했으면 좋았을까요?
저라면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많이 우는 거 보니 정말 아팠구나. 그래. 자, 이제 일어나서 걸어가자."
첫 번째로 많이 아프다는 것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로는 그다음에 아이가 할 행동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넘어지면 아프다는 것을 공감받으면서도 씩씩하게 다시 일어나도록 격려받습니다.
이 같은 상황은 일상의 스쳐 지나가는 아주 작은 한 순간입니다.
이런 일 하나 겪는다고 해서 사람이 감정체계 전체를 억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감정을 억압하고 회피하도록 환경이 우리를 자꾸 부추길 때, 그래서 건강한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때 감정은 똥이 되고, 숙변이 되어 몸 안에 쌓입니다.
감정 똥이 우리 몸 안에 쌓이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그럴 때 대체로 우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런 감정 느끼면 안 되는데.."
"00 하게 느껴지는데, 그래 봤자 달라지는 것도 없고.. 소용없어."
"내가 00해 보인다고? 별로. 난 괜찮은데. (그런데 뭔가 찝찝함이 계속됩니다.)"
이런 일들도 일어납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데 풀 데가 없어서 음식을 욱여넣듯 먹고 후회합니다.
불안하고 초조해서 마음속으로 '불안해하지 마!'를 백만 번 외치면서도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생 다 그런 거라며 수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지만, 실은 허무주의적인 체념으로 괴로워합니다.
오랜 기간 감정을 억압하고 회피하며 살아가면 결국 자기 감각이 말해주는 신호를 신뢰할 수 없어 결정을 못하게 됩니다.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 않게 됩니다. 오늘 점심 메뉴로 무얼 먹을 건지, 밤에 과제를 할지 친구들과의 약속에 나갈 건지, 감기에 걸렸는데 거절하기 애매한 술 약속이 생겼을 때 나갈지 말지, 대학원을 진학할지 말지, 이 사람과 헤어질지 계속 만날 건지.
감정 변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나만의 감정 쓰레기통이 있나요?
제가 상담 수련을 받던 시절 감정조절을 다루는 한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어요.
집단상담이란 리더인 상담사 한 명과 5-10인 정도의 집단원으로 구성된 소모임을 말해요.
특정한 주제를 가지고 모인 사람들이 리더의 도움을 받으며 인간관계 및 성격과 관련한 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거예요.
무튼, 그 집단에서 알게 되어 제 나름의 방법으로 변형시킨 아주 좋은 감정 쓰레기통을 여러분에게 소개할까 합니다.
하얀 종이를 하나 꺼내세요.
그리고 최근에 가장 강하게 감정을 느꼈던 사건을 하나 골라 그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쓰는 겁니다.
좀 더 말씀을 드려야겠죠?
마음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감정에만 초점 맞추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을 겁니다.
상대 탓이나 비난으로만 흐르기도 하고, '화가 난다, 끝.'처럼 단조로운 감정 단어 너머로 그 무엇도 느낄 수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우리가 흔히 쓰던 일기장처럼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더 잘해야지' 하는 다짐으로 끝나기도 합니다.
앞서 이야기한 모든 것들은 감정을 방해하는 장애물입니다.
타인에만 초점을 맞춘 시선
느끼고 싶어도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상태
감정보다 앞선 의지
우리는 쓰레기통을 찾아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악취 나는 감정들을 끄집어내야 합니다.
사실 악취가 나는 거라고 혼자 생각하지만, 대개 사람이라면 느끼는 감정들입니다.
장애물을 치우는 방법은 이렇습니다.
(1) 타인을 비난하는 것으로만 흐르고 감정이 시원해지지는 않는 것 같다면, 타인 때문에 지금 '내' 기분은 어떤지 초점을 나에게로 돌립니다.
비난하는 말, 욕하는 말이 나올 때 계속 쓰세요. 휘갈겨 쓰세요. 그런데 계속 써 내려가는데도 마음이 답답하고 여전히 내 진짜 감정과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 같다면 잠깐 멈추세요. 그리고, 상대 때문에 '내가' 어떻게 느껴지는지 초점의 방향을 바꾸세요.
(2) 분명히 힘든데 느껴지지 않아 답답하다면, 나를 설명할 감정 단어가 뇌에 많이 저장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때, 감정단어를 많이 알면 도움이 됩니다. 인터넷에 '감정단어'를 쳐보면 감정과 관련한 단어가 매우 많이 나옵니다. 하나씩 훑어보면서 이게 내 마음을 잘 설명하는 것 같은지 체크해 보세요. 이런 감정도 있었는지, 혹은 이런 단어도 감정에 들어가는 건지 놀랄 수도 있을 거예요.
(3) 선생님께 검사받는 일기장을 생각하지 마세요.
예전에 일기장을 쓰면 담임 선생님께 꼭 검사를 맡았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자유롭게 마음을 쏟았던 사람도 있겠지만, 담임 선생님의 한 줄 평을 생각하지 않고 일기를 쓴 학생은 별로 없었을 겁니다. 우여곡절이 있지만 일기의 끝은 꼭 어떤 다짐으로 끝나게 되지요. (저만 그랬을 수도요.) 감정 쓰레기통을 쓰다 보면 그 감시자가 한 편에 살아나 지켜보는 느낌이 들 수도 있습니다. 예전엔 선생님이었지만 이제는 내 내면의 목소리가 된 거지요. 이 목소리를 이기고 내 감정에 충실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어야 합니다.
감정을 잘 꺼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내 마음이 시원해졌는가입니다.
똥을 쌌으면, 쓰레기를 버렸으면 시원해져야 합니다. 마음이 압니다.
너무 오래된 감정 똥이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걸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너무 화가 나는 일에 대해 감정일기를 썼는데, 욕으로만 A4용지 5장을 가득 채웠던 때가 떠오르네요.
네, 너무 억압하면 이렇게도 됩니다. 이렇게 쓰고 나서 시원했던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계속 쓰는데도, 감정을 모두 다 끄집어낸 것 같은데도 시원한 느낌이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이럴 가능성도 있습니다. 바로 '가짜감정'만을 느끼고 표현하고 있을 때요.
이를 잘 설명해 준 책 <가짜 감정>의 한 대목을 소개할게요.
감정은 참 오묘해서 때론 위장을 한다. 불안한데 화를 내고, 우울한데 즐거운 표정을 짓기도 한다. 진짜 감정을 숨기고 가짜감정으로 위장한다. 어떤 사람이 거슬렸다면 마음속의 뭔가가 건드려진 것이다. 거슬리는 감정은 어쩌면 두려움, 외로움, 열등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즉, 거슬림은 표면 감정이고, 두려움과 외로움은 이면 감정이다. 그런데 거슬리는 감정의 근원을 따라가 보면 궁극적으로 내 안의 수치심에 이르게 된다. 이를 심층 감정이라고 한다. 수치심이란 자신이 보잘것없다고 생각해 자기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이다. 모든 인간이 필사적으로 피하고 싶은 감정이다. 작아진 자신, 초라한 자신을 직면하는 일은 너무 괴롭기 때문이다.
-김용태 <가짜감정> 중에서-
감정을 쏟아놓다가 막히는 일이 생기거나 차마 부끄러워서 종이에조차도 감정을 쓰고 싶지 않은 순간이 온다면, 그래서 감정 쓰레기통을 더 쓸 수 없게 된다면 가만히 앉아 자신에게 시간을 좀 더 줘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자기 몸과 마음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지 기회를 주시길 바랍니다.
감정 쓰레기통이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면 예를 하나 보여드릴게요.
제가 수련 시절 적은 감정일지의 한 부분입니다.
상황은 제가 상담한 내용을 가지고 숙련된 수퍼바이저에게 지도를 받고 다른 수련생들은 참관을 하며 공부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일과 관련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 참관자에게서 혹평을 받으며 그렇게 상담하면 00만 원짜리 상담은 할 수 있겠냐는 인신공격을 받았습니다. 안 그래도 내담자와 잘 만나고 있는 건지 막막하기만 하고 잔뜩 쫄아 있던 저는 그 상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없었죠. 입도 뻥끗 못했습니다.
터덜터덜 패잔병처럼 집에 돌아온 저는 그날 밤, 수련받은 내용을 천천히 정리하고 나서야 억울한 마음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화는 점점 배에서부터 가슴으로 올라와 목구멍을 거쳐 입 밖으로 터져 나왔습니다.
혼자였던 저는 핸드폰을 꺼내 즐겨 쓰는 메모장을 켰습니다. 그리고 말하고 싶은 대로 모두 내질렀습니다.
아래는 그 일부분입니다.
짜증나고 화난다.
너의 소화하지 못한 슬픔과 분노를 왜 나한테 퍼붓는 것이냐. 나한테 역전이가 일어났겠지.
한숨 쉬고 하찮은 듯 보고 니가 뭘해줬냐고 해주는 듯 들린다.
.....
넌 초보일 때 없었니?
매 순간 이렇게 저렇게 해주는 이끌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하는 때 없었니?
왜 나 공격하니?
......
니가 내게 던진 쓰레기 같은 니 감정 사과해.
내가 잘못한거 아냐. 나는 내 최선 다했어.
니가 내게 한 짓은 잘못이야. 넌 내게 잘못했어.
사과해.
실제로는 더 깁니다.
마음 가는 대로, 남들 앞에서라면 하지 않을 말들 가감 없이 씁니다.
저 때의 저는 화가 너무 나서 존칭, 예의 다 버렸습니다.
'사과해'까지 쓰고 나서 제 감정은 후련해졌습니다. 제 욕구를 발견했거든요.
저는 그 사람에게 사과받고 싶었습니다.
감정 쓰레기통은 안전합니다.
감정을 쏟아놓는다고 해서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감정을 인정하고 나면 어떻게 행동하고 싶은지 자연스럽게 다음 스텝을 밟게 됩니다.
마음이 답답해지고 울적해질 때 감정 쓰레기통을 찾아 자기 마음을 잘 꺼내어 보고 흘려버리는 연습을 많이 하면, 어느 때에는 사건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감정 때문에 휘둘리지 않는 강단을 갖게 됩니다.
기억하세요!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는 것입니다.
정면으로 직시하는 것입니다.
감정 쓰레기통 하나를 잘 키워두면 관계도 일도 참 수월해질 겁니다.
인정하기 싫은 감정과 악착같이 대치하느라 힘 빼는 대신, 쏟고 싶었던 곳에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될 거예요.
일, 사랑, 성장, 내가 가치 있게 생각하는 그 모든 모습에요.
우리 모두 오늘도 쾌변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