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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열&통증은 쉬지 않고 계속된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도 나는 괜찮다

by 미리나


고통은 내 것이 된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더 큰 힘을 준비하는 과정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설명할 수 없는 무게.
그 무게를 혼자 견디고, 다루어낸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 흔적은 나에게 남는다.

고통은 여전히 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고통의 근원을 깨달았다면
이제 행복의 출발점도 찾아야 한다.

신체적 통증과 마음의 고통을
구분할 줄 안다면 삶을 장악하지 못한다.

마음의 혼돈조차 관찰하고
허용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한다.


의사 선생님들은 귀한 1분 1초를 생명과 연결해 사용한다. 그 귀한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시는 모습 앞에서 늘 숙연해진다.


끝없는 진료와 치료를 이어가시면서도 한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는 듯 온전히 마음을 쏟는 그들의 모습은 진정한 희생이자 봉사다.



그 헌신 앞에서 살아있음의 은혜를 다시 배운다.







안녕하세요, 행보칸 환자 미리나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느라 한동안 연재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어지는 통증이 버겁기도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병원 생활이 제법 즐거워서(^^) 글을 쓰려면 자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게 되어 집중이 쉽지 않았습니다.



고통 때문에 멈춘 것도, 작은 즐거움 때문에 산만해진 것도 모두 나의 시간이었지요. 그동안 소식을 기다려주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지금은 퇴원한 지 열흘이 지났고 외래 치료를 받으며 차츰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상태도 많이 호전되어 거의 회복 단계에 있습니다.



메일로 따뜻한 마음과 걱정을 전해주신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가을날 되세요!




지난 화

https://brunch.co.kr/@mirinakim/167



며칠 전, 9월 중순쯤, 주치의 선생님이 한 학생의 사례를 들려주셨다. 학생 어머니가 대학병원에서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해주신 모양이었다.

학생의 행동을 보면 게임만 하고 엄마 말을 잘 안 듣는 것처럼 보였지만 대학병원 교수님은 “이 아이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마자 눈물이 났다.


병명이 있으니까 “너는 문제가 있다”라고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판단하지 않는 태도에.




원장님이 나를 그렇게 봐주셨기에 회복에 대한 감사함이 차올랐다. 진단명이 삶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큰 위안이다.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고 지금 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가능한 한 나 자신을 지지하는 방법을 찾는 것! 그게 회복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싶다.



병명은 그냥 이름일 뿐이다.
‘나는 ○○병 환자야’라는 틀에 나를 맞추면 모든 경험과 감정이 틀 안에서 재단당하는 느낌이 든다.


“이 정도 아픔이면 이렇게 느껴야 해”라는 사회적, 의학적 기대가 뒤따르기도 한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그 기대에서 살짝 떨어져 서서 내 몸과 마음이 진짜로 보내는 소리를 듣는 일 같다.


통증은 그대로인데 내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 하루의 색깔이 달라진다.


진단명이 아무리 무겁게 느껴져도 내 경험과 해석을 억지로 이름에 맞추지 않으면 통증은 현상일 뿐 나를 통제하지 못한다.


통증이 나를 지배하지 않을 때 선택권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자유는 진단명에서 오는 게 아니고 어떻게 받아들이고 응답하느냐에서 비롯됨을 깨달았다.




이름에 갇혀 울거나 분노할 필요는 없다. 도로 위 표지판이 길을 알려주지만 내가 그 길을 따라가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듯 진단명도 내 삶을 제한하지 않는다.


다만, 의사에게는 필요하겠지?

그래야 문제를 확인하고, 무엇부터 치료할지, 어떤 접근이 이 환자에게 맞을지 판단할 수 있을테니까.



나 같은 경우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진단을 받으면서 내 증상에 맞춘 주사치료, 물리치료, 생활 습관 같은 우선순위와 전략을 세울 수 있는 지도가 생겼다.


그렇다고 진단명이 나의 정체성이나 삶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았다. 진단은 어디까지나 치료와 이해를 돕기 위한 장치일 뿐, 나의 가치나 가능성을 제한하는 감옥이 아니다.




첫 치료를 시작할 때, 2년 전이었다.
그때 나는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의사를 따라 나도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환자가 되겠다고 이름을 바꿨다. 그러면 빨리 나을 것 같다는 희망.


어쨌든 묶여 있던 긴장과 불안이 조금씩 풀렸고 몸과 마음이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원장님의 바람대로 행복한 의사가 있다면 환자도 그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의사 선생님이 행복하면 말과 손길, 공간에 흐르는 에너지와 마음의 톤이 달라진다.


그대로 전해져 신뢰와 회복의 힘으로 이어져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믿음과 에너지를 받으니 나는 더 이상 아프기만 하지 않았다.


행복한 환자가 된다는 것은 나를 존중하고 선택과 경험을 받아들이며 아픔을 경험하면서도 삶의 색깔을 잃지 않는 상태였다.




의사와 환자 모두 행복할 수 있어야 진짜 치료가 가능하고 그 행복의 기반은 서로에게 닿는 마음과 신뢰에서 시작된다.


진단명을 이해의 도구로 활용하면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더 정확히 읽고 효과적인 치료를 선택하며 삶을 스스로 설계할 여지가 생긴다.


진단명은 해결을 위한 안내서일 뿐, 내가 나로 살아가는 한, 어떤 진단도 나를 가둘 수 없다.








2024년 9월 4일 수요일


어김없이 주치의 선생님이 내어주신 발열체크 숙제를 보내드렸다. 기록을 적을 때면 문득 내가 내 차트를 쓰는 ‘나만의 의사’가 된 기분이 든다.


“음~ 지난주보다 호전되었군!” 하고 혼자 속으로 손뼉 치며 자기만족에 잠깐 취해보는 재미도 있다.




옛날처럼 고통을 마구 꺼내놓지 않아도 된다. 오늘 아침이 좋다고 말할 수 있고 메모할 수 있는 것도 기뻤다. 마치 나의 몸과 마음이 비밀리에 벌이는 조금 꼬였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는 파티였다.



의사도 환자에게 일상을 보고하다니(?)


아무리 바빠도 업무는 보고, 우리는 모두 사는 게 다르지 않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치의 선생님의 메시지에는 언제나 삶을 대하는 태도가 묻어났다. 그걸 보며 나도 덩달아 배우게 된다.


특히, 불편과 공존하는 태도!


열보다 두통이 더 불편하다는 말에서 휘둘리지 않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열은 분명 긴장을 준다. 그런데 그 긴장마저 관찰하고 받아들이는 건 쉽지 않았다.


두통을 꾸준히 관리하며 자율신경 치료를 병행하면 된다는 대목에서는 위안이 되었다. 문제 해결의 구체적 방향을 제시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든든한 일이다.


불평이나 걱정보다 조율과 실천, 그리고 일상과 치료의 균형.


의사 선생님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컨디션이 완벽하지 않아도 일상을 이어가며 출장 계획을 세우고 움직이니까.



“늘 행복한 지구별 소풍날 되세요!”라고 하시는데 저 날은 바쁘셨나(?) 보다. 메시지에 웃음이 났다.



하루를 특별한 경험처럼 바라보는

작은 마음가짐이 삶의 생기를 지켜주었다.


원장님의 "몸과 마음을 밝히는 언어"는 읽을 때마다 기분을 들뜨게 했다.


그 에너지 덕분에 불편한 증상이 있어도 삶의 장애물이 아니라 동행하는 손님처럼 대할 수 있었다. 다스릴 방법을 찾으면서도 일상과 행복을 놓지 않으려 애쓸 수 있었다.


불청객 같은 열과 꾸준히 관리해야 할 나의 두통이
삶의 일부일지라도, 긴장을 내려놓고 계획을 세우며 삶을 소풍날처럼 바라보는 시선.


아마 이것이 치유의 가장 빠른 징표가 아닐까.








나는 언제나 몸의 통증도 힘겨웠지만 그보다 머릿속 생각이 더 사납게 고통스러웠다.


걱정, 해석, 기억들이 하나둘 얹히며 실제 아픔보다 훨씬 크게 부풀어 올랐다.


불안, 후회, 두려움 같은 생각들이 통증 위에 기름을 끼얺고 불길처럼 번져나갔다. 통증은 순간적인 현상인데 생각은 그걸 서사로 만들어 끝없이 이어 붙였다.


그래서 삶 전체가 흔들렸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전부가 아픈 건 아니고 한 부분만 국소적으로만 머무른다.


마음이 장난치듯 조금씩만 엉뚱하게 날 괴롭힌다.

고통은 몸만의 문제가 아니고 머릿속이 얼마나 장난을 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생각을 관찰하고 한발 떨어져 바라볼 줄 알면 통증마저 조금은 덜 심각한 손님처럼 맞이할 수 있다.


자율신경주사 한 번이 전기 회로의 스위치를 잠시 꺼주는 것 같았다. 통증이 순간적으로 줄어들면 머리와 몸이 서로를 질책하며 키우던 드라마가 잠시 멈췄다.


그 틈에 숨을 고르고 몸이 보내는 신호를 조금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아팠으니까.


그러나 아픔이 내 전부를 장악하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픔이 불편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무대 위 여주인공으로서의 나와, 관객으로서의 내가 간격을 두고 공존한다.








치료가 진전을 보이자 주치의 선생님이 늘 이야기하셨던 언어도 조금씩 달라졌다.



“이제 좀 견딜 만하네”라는 말이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안도의 숨이었다. 아픔은 여전히 존재했지만 그것이 내 전부를 정의하지 못한다는 것이 조금씩 피부로 와닿았다.


조금씩이라도 내 무대 위에서 여주인공이 아닌 관객이 되어 아픔은 잠깐 머물 뿐, 흐름을 지켜볼 여유도 생겼으니.


아픔이 내 삶을 지배하지 못하게 되면 나는 비로소 혼자 만든 드라마 속에서 작은 웃음을 흘릴 여유를 얻었다.




고통보다 무거운 건 마음의 이야기였고 그 이야기를 바꾸니 아픔도 다른 얼굴을 했다. 이전엔 아픔이 내 전부였는데 이제는 그 위에 얹힌 기억과 예측들이 더 시끄럽다.


아픔을 부풀려 포장한 건 내 머리였고 고통은 잠깐이었는데 드라마는 내가 만들었다.


무대 위 비련의 여주인공도 늘 나였다.

눈물 한 방울에 조명이 켜지고 한숨 한 줄에 막이 내렸다. 관객도 연출도 없는데 혼자 열연했고 넘어져도 괜찮다며 다시 일어섰다.


자기 연민이라는 감독 아래, 나는 하루 종일 오디션을 보는 배우이자 관객이었다.








작년 추석 연휴도 길었구나!

몸이 좋아진 걸 느끼며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안심이 되면서도 곧 찾아올 추석 연휴에 서울로 가는 길이 기다려진다. 마음이 설레어 SRT를 미리 예매해 두었다.




원장님은 감사하게도,

서울에서 진료 볼 수 있는 병원을

소개해주셨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장해 두라고 당부하셨다.





또 발열 파티가 시작됐다.



온몸은 달걀 프라이처럼 붉게 익어가고 머리는 솜사탕처럼 녹아내리며 손가락은 미끄러져 춤춘다.
“봐라, 내가 또 통제불능이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세상은 평온한데 나만 혼돈과 폭죽이 방 안에서 터졌다.

나는 그저 내 몸과 마음이 벌이는 ‘혼란 잔치’에 초대된 불쌍한 손님일 뿐, 저항할 힘도 나아갈 힘도 없었지만 원장님께 죄송한 마음을 무릅쓰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 와중에 민폐일까, 귀찮게 하는 건 아닐까.


간호선생님들과 원장님께도 서울 간다고 인사도 다 하고 왔는데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몸은 이미 한계였고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원장님의 답장뿐이었다.


보내놓고도 마음 한쪽이 죄책감으로 저려왔다.


"혹시 나를 부담스러운 환자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래도 답이 오면 안심할 수 있겠지’ 하는 작은 희망을 붙들고 있었다.





서글프고 서러워 눈물이 멈추지 않던 그날, 열차표를 취소할 정신조차 없어서 차표는 허공으로 날아갔다.


병원에 들어서자 여러 선생님들이 놀란 얼굴로 나를 부축하며 진료실까지 함께 데려다주었다. 원장님을 뵈는 순간, 또다시 눈물이 와구 쏟아져 내렸다.




의자에서 일어나자 몸이 흔들렸다. 진료실 오른쪽에 있는 전신거울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겨우 정신을 붙들었다. 그러나 거울 속 내 얼굴은 이미 달아올라 있었다.


열로 달궈진 뺨, 붉게 번진 눈가, 숨이 가쁜 내 모습에 매일 기겁했다. 그럼에도 나는 눈을 떼지 않고, 숨을 고르며 나 자신을 마주해야 했다.



몸과 마음이 또 따로 노는 나를.




"서울에 가서 또 이렇게 되면 어쩌지, 아니 가는 도중 그러면 어떡하지?"


원장님은 조용히 진료실 의자에서 일어나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얼마나 힘든지 이해합니다. 잠시 먹구름이 지나가고 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잘 치료해 주겠다고, 서울 못 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고, 일어나지도 않을 일을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그리고 주사를 맞았다. 순식간에 몸이 가벼워졌다.

그간 꽉 막혀 있던 불편이 눈앞에서 풀리듯 흘러나갔다.


늘 어이가 없었다.


이제 아프지 않은 게 너무 신기해서 내 몸이 아까까지의 고통을 농담처럼 기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 어처구니없는 황당함과 안도감이란...


이 사진은 24년 11월, 이해를 돕기위해 첨부한다.


좋아서 웃음이 나왔지만 매일 반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렇게 쉽게 좋아져도 되나’ 하는 묘한 허탈감도 있었다.


자율신경실조증이 내게 남긴 불명열은 주사 한 방으로 순식간에 풀려버려 씁쓸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늘 재미있는 장난처럼 느껴졌다.


이유는 글쎄, 아무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잠시 장난을 치고 나는 그 장난에 어리둥절하며 의사 선생님과 여러 선생님의 얼굴을 보고 웃을 뿐이었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기뻐했고 안심된다며 웃어주었다.

그 웃음 덕분에 서울로 가는 길도 무사히 올라갈 수 있었다.




아이러니의 맛



잘 생각해 보면 나의 회복은 늘 끝머리에서 뜻밖의 이벤트를 터뜨렸다. 삶도 계획하고 준비하지만 현실은 늘 내 뜻과 다르게 움직인다.


삶의 아이러니.

회복의 아이러니.

그리고 내 허당 같은 운명.




과정 대부분은 안정과 반복으로 지루하게 흐르지만 마지막에 나타나는 사건은 인간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자, 여기서도 배워라!"하고 새로운 방향을 슬쩍 열어준다.


삶 그리고 나의 회복은 완전한 통제를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예측할 수 없을 때 나는 나를 다시 확인하고 의미를 재발견한다. 그래서 회복의 끝머리에서 찾아오는 이벤트는 실패나 방해라고만 할 수 없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주사치료를 했지만 몸은 “응! 그거 내가 바로 안 들어줄게”라고 대답한다.


왜 이렇게 오래가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도 답은 늘 미묘하게 엇나간다. 주변에서는 “이 병, 저 병 아니냐”, “왜 이렇게 오래가?”라며 압력을 넣기도 했지만 나는 속으로 말한다.


“그래, 너네들이 아무리 수군거려도 난 내 선택을 믿을 거야.”


점진적인 회복은 슬로 모션처럼 느리게 다가온다.
하루하루 조금씩 눈에 띄지는 않지만 분명히 좋아지고 있다.


즉각적인 기적을 기대하면 실망만 쌓인다.

그러느니 조금씩 기다리는 법을 배운다.


"인내"




인내심? 이제는 내 VIP석이다.




몇 번의 치료로 모든 것이 나아지지 않는 현실!



나는 배우고 있다.

회복은 점진적이라는 사실을.

신뢰와 경험이 의심과 불안을 조금씩 덜어준다는 사실을.


바로 낫지 않아도 괜찮다. 중심을 잡고, 내 선택을 지켜보는 힘이 회복과 이어진다.


나는 오늘도 슬로 모션 회복을 증명하는 유일한 관찰자다. 내 몸의 느린 장난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나는 항상 “바로 낫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마음으로 치료를 해왔다. 현실적 이유를 이해하고 나만의 확신과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점쟁이라도 되는 듯, 나의 앞길을 미리 들여다보며 “여기서 조금 기다려, 다음 단계가 온다”라고 말하며 나를 안심시킨다.


나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균형을 맞춰준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몸과 마음을 이렇게까지 들여다보는 사람이 있다는 건 축복이다.


내 느린 몸, 환자를 믿어주는 의사, 그리고 이 세상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단 한 명의 의사와 단 한 명의 환자가 만들어가는 조금은 꼬이고 기묘한 연극 같다.




“저 이대로 괜찮은 거죠?”




그때는 잘 몰랐던, 나의 상태를 재확인하고 싶어 하는 것이 메시지에서 꽤나 자주 보인다. 몸과 마음이 여전히 불안정하기 때문에 외부의 확답이 필요했던 걸까.


불안과 경계사이에서 한편으로는 ‘정말 괜찮을까?’라는 작은 의심과 경계심이 보인다.


어쨌든 확답을 받고 나면 잠시 마음이 놓였고 자기 조절이 가능해졌다.


이 시기, 나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원장님의 큰 도움에 대한 감사, 그리고 스스로 몸을 잘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도 교차했다.





불안은 기대의 배경이다.




늘 무언가를 바라면서 그 기대가 빛날 때는 설레지만 그 기대가 어두워질 때는 불안이 덮쳐왔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괜찮을 거야”라고 주문을 걸었지만 “혹시 안 좋아지면 어떡하지”라는 그림자가 졸졸 따라다녔다.

원장님이 말씀하신 어찌 되어도 괜찮다는 태도가 얼마나 듬직한 평온을 주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기대가 덜어지면 불안도 잦아들고 어떤 결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생긴다. 그 말이 이렇게 절절히 다가오는 건 나도 불안과 오래 함께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불안이 사라지진 않겠지만 함께 걸어가는 것처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사 선생님이 내 몸의 불편함을 이렇게 세심히 살펴주고 작은 변화에도 칭찬해 주며 내가 해낸 것을 자랑스럽다고 말해주었다.


몸이 힘들어 지쳐 있을 때, 누군가가 내 노력을 알아봐 주고 인정해 주는 것이 이렇게 큰 힘이 될 줄 몰랐다.


치료 이상의 그 어떤 것이었다.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대해야겠다.
나를 함부로 다그치지 말고 작은 걸음 하나도 칭찬해 주며 살자.”








자율신경실조증 불명열 치료를 위해 소개해주신 서울의 한 병원.


아닐 거라고 확신하면서도 만약에 ‘혹시 수 없는 반복 치료로 더는 부담이 되어 쫓겨나는 건 아닐까’ 하는 조금의 불안이 있었고 서울에 있는 동안은 마치 보험처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는 느낌이었다.


수년 전에도 한두 번 서울 소재의 타 병원을 소개해주신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때처럼 고통이 크지 않아 돌이켜보면 그렇게까지 불안하지는 않았고 희미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 기억을 더듬어도 마음속 불안이 훨씬 깊게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낀다. 고통이 깊어짐에 따라 기억 속의 그때와 현재의 마음이 대비된다.




마음은 두 갈래였다. 한쪽에는 의사 선생님과 함께한 안정감과 신뢰, 다른 한쪽에는 이제 서울에 있으니 모든 상황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약간의 외로움과 불안.


아직 확실치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과 대비를 위해 나는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조만간 그런 사건이 올 거라고?




마음속에서 작은 경보가 울렸다.


"또 그럴 수 있다?"
아니, 확답하신 거잖아.


그렇다고 생각하니 한편으로 무서웠다.

내 마음은 동시에 두 가지를 하고 있었다.


불청객처럼 올 수 있는 열을 미리 걱정하며 긴장하는 한편, 확실한 답을 듣고 싶어 안달하는 나 자신을 바라보며 또 놀란다.


통제할 수 없는 몸, 미리 다가오는 사건의 그림자.


그리고 그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음.


모두가 내 손을 벗어나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불안을 관찰하고 공포를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내가 중심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만으로도

작은 안도가 되었다.



듣고 싶던 말을 들은 듯 원장님의 답장을 보고 마음이 한결 놓였다.




작년 9월만 해도 나는 믿기 어려울 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SNS에 올린 사진마다 활기가 묻어 있었고 주위에서도 더 이상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 너무 잘 사는 거 아니냐”며 응원과 놀림을 반반씩 섞어 보내왔다.


그들의 농담조차 그때의 나에겐 건강해졌다는 가장 확실한 표식처럼 느껴졌다.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러 다니며 바람을 가르던 그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나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시간은 나를 다시 같은 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2025년 9월, 퇴원한 지 겨우 열흘밖에 되지 않았지만 나는 또다시 회복의 흐름을 타고 있다.




2024년 9월 25일 수요일


드디어 무발열!


숙제를 보내는데 덜덜 떨렸다.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폴댄스를 몇 달째 배우고 있었다.




다른 사람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나는 내 몸과 생각과 감정을 분리할 줄 몰랐다.


마치 손에 장갑도 끼지 않고 벽난로 속 불을 만졌다가, 바람과 말린 장작 냄새, 어제 읽은 무서운 이야기.


“혹시 불이 날까?” 하는 생각까지 겹쳐 겨우 화상을 피한 사람처럼 겨우 조금 덜 아프게 지내고 있다.



한때 스스로를 바보 멍청이라고 머리를 쥐어박기도 했다. 너무 세게 쥐어박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면 짜증이 올라왔다. 몸은 실제 손상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거기에 내 짜증, 분노, 자책이 겹쳐 들어오니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이 손을 잡고 신나게 춤추는 느낌이었다.


불에 손을 집어넣고 ‘왜 뜨거운지 모르겠지?’ 하고 혼자 투덜대는 사람 같았다.


몸은 작은 불꽃일 뿐인데 생각은 소방차를 불러 삐용삐용 경보를 울리며 불을 키웠다.


내 머리를 세게 쥐어박는 건 불꽃 위에 다시 기름을 붓는 진짜 바보스러운 짓이었다.




실제 통증은 명백한데 머리는 또 그걸 비난하며 불을 키웠으니 말이다. 시나리오를 쓰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몸이 느끼는 통증 위에 과거 기억, 미래 예측, 감정 해석이라는 추가 장면들을 쌓아 올렸다.


그 뭐지? 작은 불꽃 위에 드라마틱한 CG와 장작 냄새까지 덧씌운 것과 같았다. 현실의 통증은 그대로인데 뇌와 몸이 만들어낸 드라마 속 아픔 때문에 통증이 더 강해졌다.


결국 몸은 고통을, 머리는 자책을 성실히 연기하는 관객 없는 극장 위에 올라 있었다.






주치의 선생님은 늘 아플 때 ‘미칠 것 같다, 미치겠다, 돌아버리겠다’ 같은 말을 하면 통증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늘 당부하셨다.


그 말이 실제로 몸과 마음을 자극해서 증폭시킨다고.


그런데 요즘 다시 가끔, 나도 모르게 “아, 진짜 미치겠다”라고 내뱉을 때가 있다. 흥미로운 건 그럴 때 몸은 아무렇지 않다는 거다. 온전히 마음만 폭풍을 일으켰다.




몸이 말썽을 부릴 때 나는 배우지만 마음이 날뛸 때 나를 관찰한다.통증 없는 혼돈 속에서 나는 마음이 얼마나 쉽게 날 흔들고 또 얼마나 스스로를 조롱하는지 배운다.


몸이 아플 때는 치료가 필요하지만 마음이 아플 때는 관찰하고 조금 꼬여도 허용할 줄 아는 마음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통증이나 마음이 나를 잠식할 때 그런 말은 진짜로 내 몸과 마음을 끌고 가서 힘들게 만들 수 있다.


반대로 내가 통제할 수 있을 때 기분이나 상황 때문에 ‘미치겠다’라고 말해도 그 말이 이제는 나를 지배하거나 아프게 만들지는 않는다.


내가 몸과 마음을 얼마나 통제할 수 있느냐에 따라 그 말이 힘을 가지느냐 마느냐가 달라지는 것 같다.




말은 내가 조종할 수 있으면 그냥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고 내가 휘청이면 몸과 마음을 휘감아 진짜 폭풍처럼 몰아친다.


‘미치겠다’라는 말은 도구일 뿐인데 내가 얼마나 허술하게 잡고 있느냐에 따라 나를 찌르는 칼이 되기도 하고 그냥 바람 소리가 되기도 한다.


말도, 몸도, 마음도 내 드라마 속 소품일 뿐이다. 내가 얼마나 현명하게 다루느냐에 따라 아픔의 무게도 달라진다.

그 말이 자꾸 입술 끝에서 튀어나오지만 요즘은 쓰지 않으려고 애쓴다. 한때는 버릇처럼 내뱉던 “미치겠다.”
나의 엄마도 “미치지 말고 파쳐!”라고 말할 정도였으니, 가족도, 주변도 같은 맥락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뿐 아니라 주위를 봐도 부모 말은 잘 안 듣고 의사 말은 듣는다.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 보면 그 이유는 간단치 않다. 부모님의 말은 어릴 적 습관과 기억, 그리고 나름의 감정 코드가 얽혀 있어 마음 한구석에 반항심과 자책을 남겼다.


반대로 의사 선생님의 말은 지금 여기 내 몸과 신호에 직접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통증과 몸의 경험이라는 현실적 상황에 내 머리와 몸이 바로 반응했으니.




그래서 의사가 말할 때는 통증을 조금 덜 증폭시키며 받아들일 수 있었다. 말이 힘을 가지는 건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얼마나 내 몸과 마음을 통제하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


부모 말은 오래된 드라마의 대사라 소심한 반항이 따라오지만 의사 말은 지금 무대 위에서 내가 배우이자 관객인 순간과 연결된다.


말이 몸을 흔드는 정도는 내가 얼마나 현명하게 드라마를 지휘하느냐에 달린 것 같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은 겉모습과 결과만 본다. 사물이나 사람의 진짜 힘은 결코 잘 드러나지 않는 듯하다.


나무가 강인해 보이는 이유는 뿌리가 땅속 깊이 뻗어 있기 때문이고 인간의 지혜가 빛나는 이유는 경험이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이다.


본질을 아는 것은 눈으로 보는 걸까.
시간을 들여 느끼고 이해하는 일일까.




원장님은 몇 달 전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미리나님은 압력을 견딘 보석과 같아요."

그 말이 참 좋았다고 하니 반짝이는 것은 겉모습일 뿐 진짜 힘은 속에 있다고 하셨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나 화려함만으로 내가 얼마나 평가해 왔는지...




진짜 힘과 가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 경험과 인내, 견딤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되었다.

압력에도 무너지지 않고 스스로를 지켜낸 시간과 노력과 성숙함이 본질이라는 거겠지?


겉모습에 흔들리지 않고 내면에서 반짝이는 힘을 알아보는 눈을 많이 많이 기르고 싶다.




삶에서 바꾸고 싶은 것들이 늘 있었다.


하지만 바꿀 수 없는 것, 통제할 수 없는 것,

감당하기 버거운 내 약점과 불완전함이 항상 내 앞에 버티고 서 있었으니.


그걸 뿌리치고 달려보았지만 발바닥만 닳았다.


억지로 바꾸려 안간힘을 쓸 때마다 스스로를 질식시키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내 삶을 진짜 바꿀 수 있는 건 '허용'이라는 느릿느릿한 열쇠뿐이라는 것을.


열쇠를 천천히 돌리자,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스르르 열리고 마음을 허락하자 숨이 트였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며 삶이 조금씩 움직였고 거친 파도가 지나간 뒤 바다처럼 마음에 작은 평온이 깃들기 시작했다.


저항을 허물고 나를 허용하는 동안 행동과 관계가 바뀌었다.

삶을 바꾸려 안간힘을 쓰는 건 물속에서 발버둥 치며 하늘을 잡으려 하는 것과 같았다.


허용은 기술이나 계획, 그 어떤 화려한 방법도 필요 없었다. 자신과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허용만 있으면 되었다.


나는 가끔 허탈하게 웃는다.


“이걸 이제야 알았다고?” 하고.



삶이란 결국 스스로를 이해하며 품는 연습의 연속이란 걸 나는 늘 이제야 안다.



24년 9월도 행복했다.

배울 수 있어서...



그러나...



끝난 줄 알았던 게임은,
서울 오자마자 또 열이 났다.



발열과 통증은 끊임없이 다시 반복된다. 오늘도 나는 배우이자 관객이 되어 혼자 장면을 채워 넣는다.


무대 위에서 울면서도 이제는 아픔에 조금 덜 속는다.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덜 바보스럽게.

조금 더 나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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