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날을 빼앗긴 뒤, 다시 걸음을 배우기까지
'신체'와 '감정'은 분리되지 않는다. 나는 그 단순한 진실을 아물어가는 상처 곁에서 배웠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억눌렀던 두려움과 외면한 슬픔은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얼굴로 다시 나를 찾아와 감정을 내 곁에 놓았다.
그래서 감정을 삶의 중심에 놓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감정을 피하지 않으면 삶의 키를 쥔 선장이 된다. 그러나 이제 이 허술한 선장은 고장 난 조타키를 버리고 감정이라는 나침반을 들고 다시 출항한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를 비춘다. 판단도, 꾸밈도 없이 감춰진 것마저 드러낸다. 마음을 지켜본다는 건, 그런 거울 앞에 내 감정과 생각을 세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행복이든 두려움이든, 분노든 연민이든, 비난 없이 바라보는 것!
그 마음의 거울이 의식(awareness)이다.
의식은 마치 마음이라는 사진기의 초점을 맞추는 일과 같다. 흐릿했던 감정과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 나는 나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자각이 언제나 고귀하지는 않다. 어떤 날은 내 우스운 집착과 사소한 분노를 마주한다. 그럴수록 판단 없이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진실하게 바라본다면 삶이 바뀌고 나를 사랑할 기회가 열릴 수 있다.
내 주치의 선생님은 환자들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연금술사 같다. 고통이라는 원재료를 소중한 작품(나^^)으로 바꾸어 주셨으니.
내게 불안의 뿌리는 기대에 닿아있어 그렇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고통스러운 치료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을 때 들은 이 말은 곱씹을수록 진실이었다.
내가 세상의 모든 것에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을 때, 그제야 불안의 그림자도 희미해졌으니 말이다.
나의 불안은 언제나 "어떻게 될까"라는 미래의 빈칸에서 솟아났다.
이 빈칸은 무색의 캔버스 같아서 어떤 기대라는 물감을 들이붓느냐에 따라 불안의 표정 자체가 천변만화한다.
기대가 밝은 색채로 채워질 때 불안은 그 흉측한 얼굴을 잠시 가리고 설렘과 긴장의 역동적인 이중주로 변한다. 마치 시험을 앞두었을 때 떨림, 무대 위로 오르기 전의 전율처럼 이 불안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엔진이 된다.
대개 나의 기대는 어두운 잿빛이었다. 암울한 예감으로 덧칠된 기대 앞에서 불안은 재앙을 예고하는 위협으로 맹렬히 돌변하여 몸과 마음을 꽁꽁 조이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혹시 더 안 좋아질지도 몰라" 그 생각 하나가 신체의 모든 반응을 증폭시키는 섬뜩한 악순환의 기폭제가 되었다.
나의 문제의 핵심은 불안 그 자체가 아니었다. 불안의 본질을 어떤 색깔의 기대가 물들이고 있는가였다.
그러나 "괜찮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기대"는 불안을 무겁게 하지 않았고 쇠락한 긴장을 활력이라는 에너지로 뒤바꿔주었다.
몸의 회복을 지켜보는 이 여정에서 "또 아플지 모른다"는 생각은 나 스스로에게 내린 금기어와 같다. 그 대신 "이번에는 조금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의 염색을 더하면 불안의 그림자는 옅어지고 몸은 안정과 회복이라는 길을 순탄하게 걸어갈 수 있다.
생각해 보니 불안은 내가 기를 쓰고 없애야 할 숙명적 적이 아니다. 불안은 그저, 내가 어떤 마음으로 미래를 응시하고 있는지를 비추는 정직한 거울이다.
내가 거울에서 마주한 것은 고통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열리고 있던 나의 표정이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순간에 올라오는 몸의 반응을 긴장, 부담, 두려움 같은 단어로 쉽게 단정 짓고 그 단어 안에 자신을 가두는 것 같다.
"너무 긴장해서 망칠까 봐 걱정돼요."
이런 말을 반복하다 보면 몸이 보내는 신호를 위협으로 오해하고 감정을 피하거나 억누르게 된다.
주치의 선생님과 나눈 짧은 대화가 지금도 떠오른다.
내가 참석했던 23년도 11월, 의사 선생님들의 학회 강연 전, 긴장되지 않으셨냐는 내 질문에 곧바로 “설레었다”라고 답하셔서 멈칫했다.
자율신경실조 때문인지, 혹은 평소보다 예민해진 시기여서 그런지 나는 그때 유독 긴장 조절이 어려웠다.
그런 나에게 '설렘'이라는 단어는 긴장을 다른 에너지로 전환시키는 마법 같은 말이었고 긴장을 "기회"로 바꾸는 연금술 같았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그 감정을 활용하겠다는 의식적인 선택처럼 느껴졌다. 당시 교회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처음온 내게 주목하자, 불안의 얼굴을 하고 있던 감정이 잠시 다른 색으로 물들었다.
똑같은 감정을 두고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아마 내가 치료를 순탄하게(?) 쭉 이어올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의 언어가 지닌 따뜻한 온도 덕분이 아니었을까.
나는 고통을 껴안을 때 되려 샘솟는 역설의 에너지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불안을 차가운 벽처럼 밀어내려 애썼고 부정해야 할 적, 외면해야 할 흉물처럼 느꼈다. 감정을 얼음장 밑에 가두려 애쓸수록 그것은 나를 소진시키는 진짜 고통이 되었다.
하지만 그분의 언어는 불안을 뜨거운 난로처럼 대하게 만들었다.
"이것도 나다."
그렇게 밀어내지 않고 따뜻하게 껴안고 인정하니 내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긴장은 두려움이 아니고 무언가를 진심으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배운 뒤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돛단배에서 키를 쥔 주체가 된 것 같았다.
나는 그동안 꽤 자주 수동적인 주체로 나를 표현하곤 했다.'떨려서 제어가 안 돼요''불안감에 압도당했어요' 이런 말들이 내 입에 자연스럽게 붙어 있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감정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끌려가고 있었다. 감정은 나보다 훨씬 더 힘이 세 보였고 나는 그저 떠밀리고 떠내려가는 피해자 같았다.
그 무력감이란!! 참으로 깊고 지친 감정이었다.
그러던 중, 의사 선생님의 능동적인 주체의 언어들은 내게 전혀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내가 이 에너지를 무대를 위한 동력으로 쓰겠다."
감정을 누르지 않고 도구 삼아 경험을 새롭게 창조해 내는 주인의 언어였다. 생각이 사람을 바꾸듯 촉매가 되었을까.
이후, 치료의 효과는 놀라울 만큼 깊고도 빠르게 찾아왔다. 그분의 말은 단순한 현상을 넘어 본질을 꿰뚫는 울림이 있었다. 그 말에 이끌려 나는 더 단단하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갔다.
이제 나는 감정이라는 물살에 매일 휘둘리는 돛단배 같지 않았다. 스스로의 중심을 지켜낸 것이 뿌듯했다.
뱃머리를 잡고 있는 나, 방향을 결정하는 나.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항해의 바람으로 삼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늘 성공적은 아니다. 안될 때가 더 많다.
일반적인 대화에서는 주로 현상을 말하는 단어를 쓴다. "힘들어요! 피곤해요! 긴장했어요!" 이 말들은 겉모습은 설명할 수 있지만 길을 찾을 순 없다. 공감은 줄지언정, 같은 지점을 맴돌게 할 뿐이다.
언어를 능숙하고 우아하고 섬세하게 다루시는 그분 덕에 나는 언어라는 창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을 뜨게 되었다. 모든 사물이 언어의 빛으로 다시 보이는 프레임을 선물 받았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내면의 나의 생명력을 두드려 깨워주었다. 어딘가에 갇혀 미궁을 헤매던 나에게 세상을 보는 렌즈를 통째로 갈아 끼워주는 경험이었다.
나도 몰랐던 변화의 가능성을 타고, 빛이 방향을 틀 듯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 따뜻하고 깊은 울림의 언어들은 내 상처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다그치지도, 외면하지도 않았다.
새로운 활력이 끓어오르자, 억압이 풀리듯 고통이라는 좁은 감옥을 깨고 나왔다.
감정은 더 이상 나를 위협하지 않았다. 길들이고, 이해하고, 그 위에 서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두려움에서 벗어나 자유로움을 맛보았다.
기억은 사기극=현재의 렌즈
감정과 해석, 기대와 불안이 손잡고 기억을 조작한다.
완전한 사기극이다.
같은 사건도 사람마다 기억이 다르다.
마음이 주목한 것, 해석한 것, 덧칠된 감정이 전부다.
기억은 자꾸 지우고 덧칠한다.
남는 건 사건이 아니라 뒤틀린 그림이다.
기억과 마음은 공모한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사건 전의 예감은 의미를 바꾸고 사건 후의 기억은 그 틀에 맞춰 편집된다.
과거를 보는 눈은 늘 현재의 마음에 따라 비틀린다.
나는 삶의 편집자다.
장면을 자르고 덧붙이며 기억 속 주인공을 내 식대로 만든다. 그래서 속는다. 객관적 사실? 없다.
기억은 기록이 아니다.
감정, 기대, 신념이 카메라의 앵글과 조명이 된다.
기억은 과거가 아니다.
현재의 마음이 들이댄 렌즈다.
자기기만과 믿음이 동시에 작동하며 기억은 그렇게 농락당한다.
하지만 불완전함은 때로 선물이다.
경험을 의미로 바꾸고 서툴지만 성장을 남긴다.
그 불완전한 기억을 바라본다면 나는 현재를 창조하는 주체가 되고 의미를 붙이는 방식에 따라 같은 경험도 다른 배움이 된다.
나는 믿는다.
기억이 재구성되더라도 그 속에서 성장할 수 있다면 그 믿음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아마도 그 믿음 때문에 나는 오늘도 또 속으며 살아간다.
건강할 땐 외면했던 진실이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이름 앞에서 드러났다. 억눌린 두려움, 묻어둔 불안, 숨기고 싶던 감정들이 감출 수 없이 올라왔다.
감정이 아니라 증상처럼, 몸이 떨릴 때마다 함께 올라왔다. 마치 누가 현실을 조작해 내게 마법진 안에 머물라고 명령하는 것 같았다.
피부 아래 숨어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입을 틔우고 쏟아져 몸이 감정의 부화장처럼 느껴졌다.
천둥도 없이 쏟아지는 폭염 같은 감정의 폭주.
제어할 수 없는 자연재해같은 무력감 속에 증상은
모래밭을 헤치고 튀어나온 벌레떼처럼 기어나왔다.
나는 내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대신, 내 몸이 다 말해줬다.
감정은 표현되지 않으면 몸에 저장된다.
가방 안에 구겨 넣은 삼각김밥처럼 참고 눌러온 것들이 있었다. 지금은 말하면 안 돼! 이건 감정이 아니야! 그 모든 참음이 심박수에 올라타고 피부까지 달라붙었다. 몸이 부르르 떨릴 때 내가 떤 게 아니었다.
감춰둔 감정이 떨고 있었다. 숨을 참을 때마다 억눌린 내가 심장을 쿵쿵 두드리며 여기 있다고 말했다.
그 병명은 내 몸이 나에게 보낸 사직서였다.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당신은 무시했지만 나는 계속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직서를 받았을 때는 일도, 관계도, 삶 자체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알았다.
"이걸 그만뒀어야 했구나."
증상들은 내 마음 안의 노동자였다. 그들이 더는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밀며 나를 떠났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은 껍질을 벗는다. 가장 맨몸일 때 마음은 제 얼굴을 드러낸다. 감정은 숨을 곳이 없다. 진짜 마음은 가장 아플 때야 말문을 연다.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병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무자비하게 나를 가르쳤다. 감춰둔 마음을 끝끝내 끌어내 나를 나와 마주 서게 만들었다.
이 병명은 겉으로 보면 티가 잘 나지 않는다. 병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다행일지 모르지만 그 때문에 더 외로운 병이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을 갖고 있지만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설명하려 하면 늘 망설여진다. “피곤하다”는 말로 대신하지만 피로 이상의 불안과 어지럼, 그리고 알 수 없는 공포가 있다. 이런 복잡한 느낌들을 말로 꺼내면 상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더 조용해진다.
외로움은 그곳에서 시작된다. 다른 이들은 병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나는 나의 고통을 감추며 지낸다. 아무도 모르는 싸움을 혼자 이어가는 느낌...
힘든 것은 몸의 통증에 비해 겉이 멀쩡하다는 이유로 도움을 청하기도, 위로를 기대하기도 어려웠다.
대화가 겉돌고 관심이 일방적이면 내 마음의 초대장은 늘 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것 같다.
SNS, 회식, 모임... 연결은 많지만 공명은 적다.
사람이 많아 보이는 무대지만 정서적 지지는 무대 뒤 커튼처럼 가려져있다. 사람 많음과 외로움은 반비례가 아니다. 주변이 아무리 붐벼도 내 마음과 닿지 않으면 외로움은 혼자 드럼을 두드린다.
나 혼자서 연주하는 밴드 그게 바로 외로움이 아닐까.
그런데도 친구처럼 내게 묻는다.
"너는 어떤 마음을 숨기고 있었느냐"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나 자신과 연결될 수 있다면... 그림자는 조금 뒤로 물러서는 것 같다. 그 질문 앞에서 외로움은 이해로 모습을 바꾼다.
치료는 한 시즌으로 끝나지 않았다. 끝난 줄 알았지만 다시 재발했다.
그 재발은 너무도 무겁고 힘들어서 마치 코끼리 500마리가 내 어깨 위에 올라탄 듯한 고통이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듯 끊임없이 들썩이며 깡충깡충 뛰었다.
그런데 그 고통이 없었더라면 나는 그냥 계속 똑같은 행동만 반복하는, 감정 없는 기계처럼 살았을 것이다. 스스로도 한 걸음도 떼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아니, 그냥 문을 확 열어버렸다.
나는 익숙한 길 위에 서 있었다.
하지만 그 길은...사실 오래전 폐쇄된 철로였다.
그걸 모르고 계속 울며 매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나를 그 레일에서 끌어내어 낯설지만 새롭고 신비로운 오솔길로 데려다주셨다.
나의 치료는 고치는 것보다 해체와 재조립의 과정이었다. 고장 난 나를 더 깊이 살펴보는 과정!
내가 당최 어디까지 망가졌는지 알아보는 느낌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멀쩡히 웃고 있었는데 갑자기 통증이나 증상들로 화장실에서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이게 "회복 중이다"라고 믿는 건 아무 근거 없는 신앙처럼 느껴졌다. 불안과 의심이 올라왔다.
나는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런데도 주치의 선생님은 끝까지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으셨다. 그게 더 미칠 노릇이었다.
사실 그것은 실패나 좌절이 아니었다.
이 방법은 막혀 있으니 이렇게 틀면 길이 열린다는 안내문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치료는 순식간에 끝나는 요행이 아니다. 한 방에 해결되길 기대하는 나는, 내가 만든 덫 속에서 혼자 허우적대는 바보였다.
재발이 발목을 잡고 작은 성취 하나에도 나는 왜 이렇게 느린가 자책하게 만들었다.
빠르게 달리고 싶은 마음과 달리, 몸은 녹슨 기어처럼 힘겹게 움직였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관찰이었다.
반복과 반대 시도를 차분히 기록하며 균형점을 찾아갔다. 통증과 몸의 반응을 세심히 기록하고 기존 방식과 새 접근 사이에서 효과와 부담을 함께 견디며
가장 매끄러운 균형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2024년 9월 13일 금요일
치료를 받고 서울에서 나름 잘 지내고 있었다. 한두 차례 열이 났지만 일부러 기록하지 않았다. 기록을 통해 다시 문제를 끌어오고 싶지 않았다. 마음으로 회복을 경험하고 주어진 평온을 온전히 느끼고 싶었다.
그날의 선택은 통증과 증상 중심의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나만의 작은 시도였다.
2024년 10월 2일 수요일
드디어 또, 무발열!!
사실 나는 반복되는 열에 너무 지쳐 있었다. 마치 끝없이 흔들리는 시계추 같았다.
열이 스르르 떠났다가 다음 날, 또 다음 날, 삼일, 일주일... 다시 나타났다, 떠나기를 반복할 때마다 기뻤다가 또 실망했고 결국은 나 자신에게도 가혹한 실망을 안기고 말았다.
내 과민한 자율신경처럼 마음도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래서 무발열의 깃발을 품에 안고서도, 너무 들뜨지 않으려, 오버하지 않으려, 애를 쓰며 나를 다독였다.
환희가 절반이라면 불안이 나머지 절반을 짓눌렀다.
그래도 그때, 열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았다.
원장님! 이제야 브레이크가 잡히기 시작했어요!
발열이 멈췄다는 건 경보 시스템에 드디어 브레이크가 걸리기 시작했다는 거죠? 이 모든 게 너무 과하게 켜져 있던 스위치 때문이었다니!!
제 자율신경은 페달만 밟히고 브레이크는 실종된 자전거 같았습니다.
파선 직전의 조타키를 쥔 난파선처럼 한 번 방향이 틀리면 광란하듯 빙빙 돌았죠. 그 과도한 항진 상태가 영혼까지 붙잡고 흔들었습니다.
깊은 슬픔에도 진득하게 잠기지 못하고 눈물을 쏟다가도 불시에 박장대소를 터뜨리는 통제 불능의 희비극.
항진된 교감신경이 저를 강제로 물 위로 튕겨 올렸습니다. 삶이 곤두박질쳐도 그 고통을 되씹을 겨를조차 없었어요. 곧바로 극단적인 급발진을 하며 겨우 정상 코스프레를 했죠.
덕분에 이제야 이 불길한 엔진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잔혹한 자전거에서 두 발을 내릴 수 있게 됐어요!
이게 바로 집중력 부족만큼이나 과민한 자율신경이 저에게 내린 훈련이었습니다. 감정의 깊은 곳에 머물 여유, 영원히 지속되는 슬픔은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 데 정신적인 소모가 너무 컸던 거예요.
하지만 이젠 다릅니다. 무발열은 제 몸이 더 이상 과열 상태가 아님을 증명합니다!!
이제 저는 강제로 튕겨 오르지 않고 제가 원할 때 천천히 감정의 키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드디어 고장 난 조타키를 버리고 제 인생의 운전대를 잡을 수 있는 희망이 보입니다.
"원장님, 다시 태어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쓰고 싶었으나 자중했다.
열이 다시 찾아올까 봐 조마조마함이 뼛속까지 박혀 마냥 춤을 출 수는 없었지만 이 기쁨을 쏟아냈다.
나는 감정이 아니다!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의사 선생님의 답장에서 "모든 선악 판단은 우리의 뇌가 만든 기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에 극 공감되었다. 편도체가 불안을 자극해 세상을 위협적으로 채색한다는 신경과학적 언어들이 나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원장님이 해주신 이야기를 통해 불안과 두려움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과거의 전략이었지만 이제 그것에 압도되지 않고 흐르는 현상처럼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경험은 내 회복의 결정적 힘이었다.
주사와 약보다 끝까지 남은 건, 진심과 기다림이었다.
몸과 마음이 지켜온 나의 시간을 존중한다.
10월 10일까지 그 짧은 날들 동안 무발열이 선사한 평화는 그야말로 사치스러운 행복이었다. 고통이 멈춘 시간 속에서 온전히 안식을 누렸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조만간 그런 사건이 또 오고 갈 것"이라는 냉정한 예고(?)를 던지셨을 때 차가운 섬광 같았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그 경고를 외면했다.
미래의 불행에 대한 예감 때문에 지금 당장의 이 맑은 행복을 저당 잡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평온이 유예된 것임을 알면서도 찰나의 햇살을 탐하는 존재처럼 그 시간을 소박하게 즐기고 매달렸다. 불안이 드리울 그림자를 알지만 기어이 얼굴을 들고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을 만끽하는 것!
그것이 그 짧은 무발열 기간 동안 내가 누릴 수 있었던 가장 절실하고 의미 있는 반항이었다.
하지만 악몽이 문을 열었다. 그때부터 내 삶은 또다시 평범하지 않았다. 한 달 가까이 고통스러운 밤이 이어졌다. 낮에 잠시 눈을 붙여도 악몽을 꾸었다.
"왜 내 증상은 끝이 없을까?"
절친이 소개해준 의원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지만 결국 답은 약이었다.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악몽으로 거의 한 달을 지새운 그때, 주치의 선생님께서 내가 커뮤니티에 남긴 글을 보셨다며 일요일임에도 연락을 주셨다.
휴대폰 화면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봤다.
그 작은 화면에 한줄기 숨구멍 같은 빛이 깜박였다.
심장이 타는 듯 매운 악몽이 계속 달려들었다. 잠깐이라도 마음을 놓는 건 불가능했고 숨 쉬는 것도 전투 같았다.
원장님은 모든 걸 알려주시면서도 늘, “참고만 하세요”라고 하신다. 악몽과 수면 문제는 사람마다 다르기에 정확한 답을 알 수 없다는 겸손이 신뢰를 깊게 했다.
선택권과 자율성을 주는 의사는 참 드문 일이다. 정답은 없다! 는 말은 내가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라는 배려 같았다. 긴장, 통증, 불안, 심리 상태를 스스로 조절하며 필요한 것만 취하라는 조언.
이 모든 걸 참고하라고 하셨지만 정답처럼 받아들였다.
내 삶이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는 부엌 싱크대 위 접시 더미만 봐도 알 수 있다. 복잡하게 꼬여 손대기조차 싫은 숙제 같았다.
그런데 그 어지러운 접시들 사이에 누군가 적어둔 듯한 쪽지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이 순서대로 닦으세요.”
정답은 없다고 늘 그러셨지만 그 쪽지는 적어도 하나씩 집어 들어 내 방식대로 닦아도 괜찮다는 여지를 보여주었다.
뭐, 쉽진 않았다. 나는 여전히 허술한 초짜였다. 접시 하나 떨어뜨릴까 봐 손은 벌벌 떨렸고 물에 손을 적시고 나서도 한참을 망설였다. 그래도 쪽지가 있었기에 어쨌든 나는 한 걸음씩 내디딜 수 있었다.
갑자기 멈춘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남는다.
그 마음도 함께.
어둠 속에서 나는 두 종류의 촛불을 보았다.
하나는 겁에 질려 위태롭게 흔들리는 악몽의 촛불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무도 켜주지 않아 차가운 무기력에 잠겨버린 촛불이었다.
그 모든 불안과 고통의 시간을 지나 나는 이제 나 자신으로 남는다. 다시 켜진 시계와 함께 그 치유의 마음 또한 굳건히 남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차후 방문한 병원에서 원장님께서 차트에 진료 기록을 적으시는 모습을 보며,
"악몽에 서울 상경 예정 날짜까지 적으시냐?”며 너스레를 떨 때, 그만 마음이 아려왔다.
통증, 재활, 마음에 이어 악몽까지 정성껏 치료해 주시다니.
그 모든 순간이 내가 치료에 나름 열심히 임하고 병원을 행복하게 다니는 이유가 되었다.
#자율신경실조 #자율신경실조증 #악몽 #수면장애 #불안장애 #우울장애 #무기력
#브런치#에세이#수필#나를사랑하는법#자기계발#주체성회복#인식의전환#마음챙김#의식#내면의힘#자율신경실조#자율신경실조증#불안#불안장애#우울#우울장애#무기력#무력증#만성피로#만성통증#만성통증증후군#목디스크#등통증#날개뼈통증#견갑골통증#악몽#꿈#수면장애#대구#심리치료#마음행복한에이치병원#행복한H병원#김정훈원장님#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