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종결, 새로운 시작
치유의 자석으로 악몽이 해독되다
주치의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악몽’ 관련 글은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내 마음에 달라붙었다. 무언가 내 속 깊은 안으로 '철컥!" 하고 당겨진 느낌이었다. 마치 서로 다른 극이 억지로라도 끌어당기듯, 몸이 반응했다.
믿음과 신뢰는 나를 움직이게 한 "동력"이었다.
치료에 대한 신뢰가 고통 속에서도 시도를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100% 확신은 없었지만 무언가 변화할 수도 있다는 기대가 내 몸을 다시 움직이게 했다.
그날, 서점에 들러 관련 책을 찾아보고 집에 돌아와서는 꿈과 심리에 관한 두 권의 책을 들뜬 마음으로 펼쳤다.
검색으로 얻은 단서들을 꼼꼼히 메모해 두고 원장님이 보내주신 자료와 나란히 놓고 비교했다.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지만 이토록 열정을 쏟는 의사 앞에서 환자인 내가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고마움과 책임감이 함께했다.
치료가 늘 드라마처럼 기대에 부응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받았고 의사의 진심과 노력을 헛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완벽하지 않음을 받아들이면서도 최소한의 성취만큼은 지켜내려 했다.
간절한 마음으로 회복의 가능성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명장이 흙을 빚고 유약을 입히듯, 환자와 의사의 정성이 모여 마침내 한 점의 도자기처럼 완전한 치유가 빚어진다.
몸의 악몽(고통의 역설)
2024년 10월 6일 일요일, 원장님께 장문의 톡이 왔다.
잘 주무셨어요? 악몽을 몇 주간 계속 꾸셔서 힘드셨던 것 같아요. 저도 그 악몽에 대해서 깊이 공부한 적은 따로 없습니다.
이번에 미리나 님 그렇게 악몽 꾸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면에 대해서는 제가 좀 알고 있었지만 악몽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해야 될 것인가에 대해서 깊이 있게 공부한 것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얘기를 듣고 나름대로 좀 찾아보고 제가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들하고 좀 연결을 해봤습니다.
물론 이게 정답이라고는 할 수 없고 그냥 참고로 들어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앞쪽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대부분 과학적인 진실입니다. 맨 마지막에 이제 제가 추천드리는 것은 제가 이 악몽 탈출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제 개인의 의견이라 참고만 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 꿈은 주로 이제 시각 이미지로 많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감각적으로 이제 다양한 것을 느낄 수는 있는데 운동이 실제 팔다리가 움직이는 그런 운동은 잘 안 되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 전두엽이 그 운동을 계획하고 그다음에 실행하고 하는데 그런 것들이 다 안 되기 때문이에요.
기본적으로 꿈은 내용 자체가 맥락이 좀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깊은 의미를 두실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 장면이나 스토리의 소재는 낮에 경험했거나 그 이전에 머릿속에 오랫동안 의식하고 있었던 대상들이 있을 텐데 그런 것들이 맥락 없이 뒤섞이기 때문에 꿈 이야기는 다소 황당하거나 불편할 수도 있죠.
그런데 악몽을 연속해서 꾼다는 것은 유쾌한 경험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악몽을 통해서도 뭔가를 배워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꿈에서는 내가 마음대로 몸을 움직일 수는 없고 순수하게 경험만 하기 때문에 이번 불쾌한 경험을 그대로 느끼기보다는 생생하게 바라보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악몽을 꾸는 것이 아주 좋은 수행의 한 방편이 될 수 있습니다.
갑자기 악몽이 많아지는 것은 세로토닌 분비량이 많아지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울하거나 안정감이 없을 때는 세로토닌이 떨어져서 항우울제 종류들은 대부분 우리 몸에서 세로토닌의 양을 높이는 데 쓰입니다. 그런데 항우울제를 써서 세로토닌 양이 높아질 때 한 가지 부작용이 악몽을 꾸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기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자세히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세로토닌의 양이 늘어나면 악몽을 꿀 빈도가 높아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마 이번에 미리나 님께서 몸을 완전히 회복하시고 자율신경이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세로토닌의 양이 갑작스럽게 많이 분비되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세로토닌의 양이 늘면 몸이 이완되고 삶에 대해 긍정적으로 느끼는 좋은 효과가 있는 반면, 밤에는 악몽을 꾸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죠.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번 일도 분명히 그냥 지나갔겠지만 이번 일을 통해 악몽을 자세히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 저는 좋을 것 같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일어났을 때 악몽의 내용에 대해 생각나는 대로 "악몽 일기"를 적어보는 것입니다.
제목은 "악몽"이라고 붙이지 말고 "또 다른 나의 경험"이라고 붙여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낮에 경험하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을 밤에 자면서도 하게 되는 셈이니까 나의 또 다른 경험이라고 제목을 붙이고 꿈에서 깬 직후에 써야 됩니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직후에 쓰는 것이 좋습니다.
대부분 꿈은 렘수면에서 꾸게 되는데 이 렘수면은 하룻밤에도 한 4번에서 6번 정도 반복됩니다. 꿈이 너무 강렬하고 불편하면 렘수면에서 다시 깊은 잠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그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바로 깨어버리는 일이 새벽에 종종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면 취침등을 켜고 꿈의 내용을 적어보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이 꿈이 자각몽으로 바뀔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이 꿈이 꿈이라는 것을 내가 꿈속에서도 알 수 있다면 이런 것을 "자각몽"이라고 하는데 내가 꿈속에서도 "이게 꿈이구나"라고 알면 내가 그 불편한 상황을 그대로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한 것을 내가 인지하게 되거든요.
이런 연습이 많이 될수록 낮에도 내가 그 불편한 상황을 경험만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불편한 상황을 떠올라서 바라보는 그런 연습을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꿈에서 높이 떠올라서 그 아래쪽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을 높은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그렇게 자각몽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물론 단번에 쉽지는 않겠지만요.
아세틸콜린이 높아질 때 악몽을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세틸콜린은 우리가 인지가 높아질 때 많이 나타나는 물질이고요. 아세틸콜린이 낮아지면 약간 둔하고 무덤덤하며 기억을 잘하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반면, 아세틸콜린이 높아지면 생생하게 기억하고 그 상황 하나하나가 더 선명해지는 것이죠.
아세틸콜린이 낮아지는 병이 알츠하이머 치매입니다. 아세틸콜린이 높아지면 학습 능력이 높아지고 기억을 생생하게 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악몽을 더 생생하고 오래 기억한다면 그게 결코 도움이 될만한 일은 아니기 때문에 그 악몽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기억하는 것이 불쾌할 수 있겠죠.
이 상황에서 미리나 님이 좀 더 꿈의 내용을 생생하게 잘 기록할 수 있고 그중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때로는 낮에 내가 미처 인지적으로는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어떤 경험들이 지나갔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의식적으로는 그걸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런 것들이 내 뇌리에 남아 있다가 밤에 꾸는 꿈 속에 조각조각 들어가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잘 필터링하여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돌아보고 특히 잠들기 전 좋은 음악이나 설교, 강의를 들으며 좋은 경험을 쌓는 것도 악몽 탈출법 중에 하나입니다.
첫째, 꿈 자체는 맥락이 별로 없는 것이므로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할 필요는 없다.
둘째, 현재 악몽이 자주 발생하는 것은 세로토닌이 높아진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세로토닌은 낮에 안정감을 주고 삶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행복 호르몬이기 때문에 억지로 낮출 필요는 없다. 다만 밤에 악몽이 나타날 가능성은 높으므로 그 내용을 잘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 꿈에서는 팔, 다리를 저항하거나 물리칠 수 없기 때문에 그 내용을 생생히 경험하는 동시에 떠올라서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아채보자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넷째, 아세틸콜린이 높아져 악몽이 더 생생하고 오래 기억될 수 있으나 이는 학습 능력이 높아졌음을 의미하므로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내 머리가 그만큼 잘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고 이것은 업무 효율성하고도 연관될 가능성이 많아서 굳이 낮출 필요는 없다. 높은 의식으로 바라보고 조절한다면 배움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물론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제일 좋죠. 저는 사실 잘 꿈을 꾸지 않기 때문에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동안 수면과 꿈에 대해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리고 이번에 미리나 님이 악몽을 꾸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고할 만한 것들을 찾아 조언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해결책에 대해서는 제가 전문가가 아니므로 ‘이렇게 하면 된다’라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고 참고하고 늘 그렇듯이 불편한 상황이 우리에게 고통이 아니라 배움의 문이라는 사실을 이번에도 기억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메시지를 보냅니다. 오늘은 꿀잠을 주무시기를 기도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원장님이 보내주신 정보는
내게 "꿈의 언어"였다.
정작 꿈도 잘 꾸지 않으신다던 분이 악몽의 단서를 붙잡고 이토록 깊이 공부하시고 자료를 찾아 알려주신 그 모습을 보며 형언할 수 없는 감사함을 느꼈다.
"뭐 그리 대단한 환자라고 이렇게까지 애쓰실까" 하는 부끄러움... 하지만 곧, 나의 가장 무의식적인 영역까지 이해하고 도와주시려는 그 마음이 나의 가장 깊은 곳을 어루만져 주었다. 마치 길 잃은 아이가 따뜻한 어른의 손길을 느낀 것처럼 말이다.
표면적인 껍데기 너머에 있는 나라는 존재의 전체를 보시고 삶이 보내는 절규임을 읽어내주셨다.
나는 감히 원장님의 마음을 짐작해 보았다.
당신께 환자란 단순한 질병의 집합체가 아닐 거라고.
이 환자의 병은 주사나 재활치료만으로는 풀 수 없는 깊은 마음의 매듭에서 시작되었다는 의사로서의 본능적인 확신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전문 영역을 넘어 환자의 삶에 깊이 들어가려는 그 고군분투는 나는 당신의 고통을 결코 외면하지 않겠다는 진심 어린 마음은 의술을 넘는 인술이었고 나의 회복은 치료의 성공보다 더 드높은 주치의 선생님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악몽을 ‘배움의 통로’로...
악몽을 직면하며 얻은 안도감
고통스러운 악몽을 또 다른 경험(배움)으로 받아들이기란 정말 쉽지 않았다. 속으로는 '나 진짜 못하겠어!' 하고 주저앉아 소리치고 싶었다.
악몽은 끈질기게 따라왔다. 어쩌면 트라우마의 그 잔여물이 지독하게 남아서 그런가 싶었다. 나는 원래 머리만 대면 어디서든 잘 자는 편인데, 이 상황이 도통 납득이 가지 않았다.
차라리 진단하기 까다로운 자율신경실조증 증상이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텐데" 하고 바람까지 품었다.
그런데 세로토닌 영향 때문이라니 너무나 다행스럽고 안도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고 의학적으로 조절 가능한 영역의 문제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이라는 명확한 원인을 가졌다는 사실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마치 컴퓨터의 오류가 바이러스 때문이 아니라 설정 문제임을 확인한 것 같았다.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부끄러움과 자책의 사슬에서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이 또한 지나가는 고통, 치유 가능한 삶의 한 장면일 뿐이라는 믿음이 나부꼈다.
마음의 겨울이 녹기 시작했다.
악몽은 분명 고통이었지만, 그 의미를 너무 깊게 두지 않으려 했다. 우선 깨어나면 원장님의 조언대로 기억나는 대로 폰이든, 노트든 적었다. 처음은 엉성했지만 반복할수록 꿈의 패턴이 선명해졌고 밤과 낮이 연결되는 자각이 커졌다.
악몽과 감정이 이어져 있음을 이해하면서 낮의 감정을 꿈에서 발견한 적도 있었다. 가끔 꿈속에서 '이건 꿈이구나' 하고 꿈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떠올라서 바라보기가 실제로 가능해졌고 덕분에 낮의 불안과 스트레스도 덜 압도적이었다.
꿈 일기와 자각몽 경험은 수면의 질뿐 아니라 낮의 평온함까지 이끌어주었다.
발열은 6개월째 이어지고 있었다. 도저히 노트에 끄적이기 힘든 날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통증 기록 어플을 보며 만든 분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이 있는데 잘 활용해야지" 그렇게 마음먹고 꼼꼼히 기록했다.
언제까지 병원과 원장님께 의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내 몸을 돌볼 기회는 지금뿐이었다.
의사는 의사대로, 환자는 환자대로 "나"라는 사람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원장님은 대부분 증상에 대해 물어보셨지만 기억이 나지 않을 때면 내가 기록한 앱 화면을 보여드리거나 보내드리곤 했다.
치료의 진전이 좋은 날이면 좋은 날대로, 힘든 순간은 그 순간대로 서로 무언의 눈빛을 주고받거나, 너무 힘들 때는 숨겨진 동지처럼 하이파이브를 했다.
치료는 어느새 두 사람의 공동작품이 되었다. : )
컨디션이 완전히 망하는 날에는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비극적이라 생각했던 나날들도 내 몸과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하는 선물이었다.
기록은 삶을 해독하는 도구가 되어주었다.
날씨 예보를 미리 확인하는 것처럼 열이 가장 심한 시간대에는 무리한 일을 피하고 휴식을 취하거나 상대적으로 증상이 가벼운 시간대에는 중요한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이런 패턴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통증 어플의 가장 큰 장점이다. 몸의 상태가 한눈에 정리되어 오늘은 어디가 더 예민한지, 어떨 때 긴장을 느끼는지,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는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모든 기록은 내 몸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게 해주는 나만의 비서가 되어주니 굳이 안 쓸 이유가 없었다.
2024년 10월 11일 금요일
또다시 발열이 시작됐다.
10월 15일 화요일, 다시 치료를 위해 대구로 향했다.
생각이라는 불씨를 끄다
치료 뒤 며칠이라도 발열이 잠잠해지면 그게 그렇게 기뻤다. 한겨울에 창문을 열었는데 뜻밖에 부드럽고 따스한 햇살을 만난 듯했다.
원장님이 발열 여부에 대해 물으시면 나는 금방이라도 꽃망울이 터질 것처럼 들떠서 “이제는 안 날 것 같아요!” 하고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럴 때마다 잔잔히 웃으며 “다 생각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ㅎㅎ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그 한마디에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불이 번질까 싶어 불씨가 커지기 전에 살짝 물 한 바가지를 끼얹어주는 것처럼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주셨다. 나중에서야 그 말이 격려로 들렸다.
열이 날 것 같은 예감이 불안을 자극하고 불안은 다시 몸을 더 예민하게 만든다. 그 결과로 정말로 열이 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불러온다.
열을 부추기는 건 두려움이지, 회복의 길 위에 있었다.
몸보다 생각이 먼저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은 불안이 드리운 그림자를 걷어낸 뒤였다. 그 그림자가 사라지자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보였다.
회복은 몸의 일이기 전에 마음의 일이구나...
신체가 극도로 긴장할 때 산소가 부족한 건 아닌데 뇌와 몸은 그렇게 느꼈다. 시공간이 단절되고 말과 단어가 순간적으로 떠오르지 않았다.
실제로는 주변과 연결되어 있지만 몸과 마음은 분리된 듯했다. 가끔 주사 후에도 누워 있어야 했던 상태처럼 몸이 축 내려앉는 느낌은 신체적, 정신적 긴장 해제 후 찾아오는 탈진 상태로 주변에서도 말해주었던 공황발작의 흔한 여파였다.
운동을 하다 숨이 막혀 눈물이 흐른 적이 있었는데 몸이 아직 긴장하고 있어 작은 자극에도 증상이 다시 올라올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악몽을 꾼 뒤의 상태는 무기력과는 조금 달랐다. 꿈속에서 공포와 불안을 호되게 맛보고 나면 깨어나서도 긴장과 놀람에 지쳐 멈춰 버린 동물이 된 기분이었다. 깨고 나서도 교감신경이 활활 타올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기운이 빠진 무기력과는 달리, 몸이 얼어붙어 움직이기 어렵거나 긴장이 풀리지 않아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무기력은 대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특별히 아픈 건 아닌 상태다.
무기력이 꺼져버린 전자기기(고장)라면 악몽 후의 몸은 고장 나기 직전의 기기(과열)처럼 불안정하게 떨린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불에서 몸을 꺼내는 것도 멀고 먼 우주여행처럼 느껴지고 계단 몇 칸 오르내리는 것도 대단한 일처럼 느껴졌다.
하고 싶은 일도 떠오르지 않고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전원이 꺼진 기계처럼 몸이 켜지지 않았다. 아무리 잠을 자도 충전되지 않는 배터리 같았고 자꾸만 고장 나는 자명종처럼 일상은 계속해서 어긋났다.
반복되는 무기력과 몸의 반응들, 감정의 굴곡들로 의욕과 추진력이 빠져나간 상태로 몸이 흐물흐물해져 움직일 수 없었다. 악몽, 무기력 둘 다 점점 꺼져가는 촛불 같은 상태였다.
생각해 보면 그건 게으름도 아니었고 의지 부족도 아니었다. 의지로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는데 나는 왜 그렇게까지 나를 의심했을까.
엔진 고장 난 자동차를 두고 왜 안 달려! 왜 안 움직여! 하고 다그친 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몸에게 미안할 뿐이다. 이미 망가진 신호등 아래서 초록불이 들어오길 기다렸던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보이지 않는 회로에 과부하가 걸려 신호가 엉뚱하게 흘러갈 때면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긴장과 이완, 각성과 휴식! 그 균형을 조절하던 리듬이 통째로 무너졌다면 내가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불안과 스트레스는 찌개처럼 끓여낸 뒤 버리지도 못하고 냉장고 구석에 넣어둔 채 계속 상해 가고 있었다.
그 냄새가 새어 나와서야 몸이라는 그릇을 통해 문제가 드러났다.
그런데 그게 좋기도 했다. 피곤하고, 울고 싶고, 이유 없이 모든 게 버겁게 느껴졌던 날들은 사실은 이유가 있었다는 거니까.
아무 이유 없이 망가진 게 아니라는 걸, 내가 나를 버텨온 시간들이었단 걸, 늦게나마 알아챌 수 있었으니까.
그제야 고쳐주세요! 보다는 돌봐주세요!라는 말이 더 가까운 마음이라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고장이 아니라 지친 거였다.
수리보다 보살핌이 필요한 상태였던 거다.
티도 안 날 정도의 사소한 일부터 하기 시작했다. 일어나기 힘든 날엔 억지로 움직이지 않았고 눈을 감은 채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것부터.
하루에 한 끼라도 따뜻한 밥을 챙겨 먹는 것, 감정을 써 내려가며 마음의 먼지를 털어냈고 날씨가 좋으면 햇살을 곁들여 앉아 있기.
집 앞 공원에서 참새 구경하기 등 이런 별것 아닌 일들이 모여 시들시들 꺼져가던 촛불에 작지만 따뜻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비록, 용량 다 된 아이폰 배터리처럼 반나절이면 꺼져버렸지만 좋았다.
아주 가끔, 분기당 한 번쯤 의욕이 불타오른다기보다는 잠깐 스파크가 튄 적도 있다. 문제는 그 외침 또한 늘 수명이 짧았지만 지구 반대편에서 성냥을 한 번 그었는데 뇌에서 번개처럼 튀어올라 지금이다! 하고 외쳐댔다.
갑자기 냅다 맨발로 걸었다. 지구와의 교감이 시급해진 사람처럼, 지압판 위를 걷는 수도승처럼 발바닥에 생명력을 되찾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그러다 문득 토끼풀을 보며 생태계의 순환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다.
핸드폰에는 명상 앱을 깔고 ‘이제 나도 아침형 인간이 되는 거야’ 하며 다짐하지만 그 앱은 한 번도 켜지지 않은 채 홈 화면 어딘가에 숨어 나중에는 '언제 이것도 깔았지' 하며 슥-지운다.
어느 날은 갑자기 일을 하다 말고 삶을 싹 갈아엎겠다는 뜬금없는 결의가 솟아오른다. 영양제를 있는 데로 다 꺼내 꼼꼼하게 나눠 정리하고 대청소를 하고 일기를 하루에 세 개씩 쓰고 윗몸일으키기나 스쿼트를 하다 말고 “이건 루틴으로 만들어야 해” 하며 스스로 감동한다.
그리고 또 어딘가에 적으며 다른 일을 한다. 그러고 반나절도 안 돼 또 꺼진다.
내 열정은 늘 짧고 비장하게 타올랐다.
때론 뜬금없는 결의로, 때론 들뜬 감탄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그 진심의 생애주기는 짧았다.
그것이 진짜였기에 안타까웠지만 어쩐지 다음에도 또 믿고 싶어졌다. 다음에는 다를 것 같았고 이번만큼은 진짜 시작일 것만 같았으니까.
의욕이라는 건 원래 전기장판처럼 서서히 데워지는 온기에 가깝다. 한순간 확 켜진다고 바로 몸과 마음이 달려 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열이 퍼지면서야 움직일 힘이 생긴다.
아직 내가 나를 못 다룬다는 생각도 들곤 했지만 그 과정의 일부였다. 조급해하지 않고 그 미묘한 온기를 느끼며 내 자신을 기다려주는 것이 의욕을 다루는 시작이었다.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다소 장황한 이름은 진단이라기보다 몸과 마음이 균형을 되찾아가는 과정의 표시일 뿐이다.
회복이라는 건 작은 생명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을 배워가는 일이 아닐까.
모든 아픔은 내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말해주고 고통은 나의 경계선이자 최대치와 최소치를 알려준다.
아프지 않은 순간은 그저 예외적인 휴식일뿐이다. 고통은 삶에 깔려 있는 기본 베이스이고 평온은 잠시 주어진 한 극에 불과하다.
인간은 아플 수밖에 없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희망과 연결된 삶을 꿈꾸는 것!
무언가 끝났다고 믿은 자리에 사라지지 않는 ‘나’가 늘 머물고 있다.
그런데 삶은 가끔 조용하다.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살아 있다는 것조차 잊게 만든다. 언제나 그 아찔한 찰나에서 다시 걷는 법과 다시 느끼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기억해 두렴, 가장 깊은 어둠 속,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이 너를 새로운 삶으로 이끄는 문턱이란다.”
"나는 그동안 치유를 늘 결과만으로 판단하려 했구나."
원장님께서 지금껏 해주신 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통증, 눈물, 고통 속에서 끝없이 흔들리던 나 자신에게도 배울 것이 있었고 이해해야 할 순간들이 있었음을.
그래서 나는 더 알고 싶어졌다.
더 배우고 싶어졌다.
악몽을 통해 나 자신에게 조금 더 관대해질 수 있었고 그동안 나를 밀어붙이며 버티게 했던 외로움과 두려움도 이제는 더 따스하게 껴안아줄 수 있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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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원장님께는 결핍이 없어 보이셨다.
늘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결핍이 없으니 남을 의심하지 않고 자신과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유...
예를 들어, 내가 악몽처럼 “좋아지고 싶다”라고 마음먹으면 그 마음을 가볍게 넘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시며 길을 열어 도와주셨다.
결핍이 없어 보였던 이유는 자신 안의 두려움과 불안을 충분히 마주하고 채워야 할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여유는 나에게 생경하면서도 안정적이기도 했다.
공포와 불안 속에서 몸부림치던 마음은 이해와 안전이 부족했던 기억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내 악몽도 어쩌면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