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치유일기: 고통은 축복 중에 대축복이다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환자

by 미리나

작년 4월, 내 감정은 극도로 팽팽해진 현악기처럼 고조된 탄성의 연속을 이루었다.

세상은 온통 반짝였고 몸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안겨주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환상 속에서 행복을 느꼈다.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동안 나를 옭아매던 '거머리' 같은 '만성통증'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안도감에 괜스레 보호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과 마음이 다시 자유로워진 기분에 그동안 짓눌려 있던 모든 무게가 한꺼번에 내려가는 듯했다.

하수구가 막혔다가 뚫린 것처럼 숨이 탁! 트였고
오랜 시간 갇혀 있던 공기가 한순간에 빠져나가는 듯한 시원한 해방감이었다.

그날, 마치 화려한 파티에 초대받은 듯 긴장한 마음으로 분주하게 움직였던 내 모습은 병원의 진료실이라는 현실과는 어딘가 동떨어진 듯 보였다.

어느 병원이나 보통 진료실에 들어가면 의사 선생님 앞에 있는 의자에 앉는다.


조금만 걸어가면 되는데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이대로 걷다간 그대로 엎어질 것 같았다.

진료실 입구 벽에 있는 보호자 의자에 앉자마자 의사 선생님의 얼굴을 지그시 보는데 신처럼 보였다.
묵혀 있던 감정이 폭발하듯 몰려왔다.





"원장님, 저 오늘 통증이 하나도 없어요.
너무 행복해요. 진짜 감사합니다.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또 다른 행복이에요.
저 아파서 우는 거 아니고 치유의 눈물이에요."

그 눈물은 단순한 감정 표출이 아닌 깊은 감사의 눈물임을 나는 알았다.
꺼이꺼이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별수 있나.
눈물이 나오는데, 울지 않으면 어쩌랴.
창피함은 내 몫이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던 의사 선생님은 나의 울음을 평온한 시선으로 지켜보시다가 얼른 일어나 내가 앉은 곳까지 오셔서 이겨낸 것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하셨다.

"아이구, 이렇게 고통을 매번 이겨내 주어 제가 감사하죠. 저를 믿고 여기까지 따라와 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괜찮아요. 앞으로 더 좋아질 거예요."

온화하고 인자한 의사 선생님의 얼굴에는
"걱정 말아요, 남은 거 싹 다 고쳐줄게요!"라고 쓰여있는 것 같아 안도했다.

덕분에 잠시나마 세상과 나를 잊을 수 있었고 그 순간 나는 나 자신과 더 깊이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만약 여기가 카페라면, 대기 환자도 없다면 철판 깔고 더 눌러앉아 이 고양된 좋은 기분을 1분 1초라도 더 느끼고 싶었다.








정말 행복했다.

대개 불행한 기억은 쉽게 뇌리에 남고 행복한 기억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그날의 기억을 여전히 생생히 간직하고 있다.

마치, 먼지가 쌓이지 않은 오래된 사진첩을 펼칠 때처럼 기억이 날 때마다 매번 선명한 행복으로 나를 웃게 한다.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다고 했던가...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영원하다고 믿는 것도 한정된 시간 속에서 느껴지는 감각일 뿐, 절대적인 영원이라 단정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나며 형태를 바꾸거나 사라진다.
그래도 괜찮다.
잠깐의 행복은 영원하지 않더라도 그 추억은 내 삶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기에 차고 넘치는 감사함을 느낀다.

그 순간들은 내 마음속에 새겨져 오로지 모든 순간에 감사할 뿐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고조되었던 감정은 서서히 잔잔해졌다.
폭풍 뒤 고요한 바다처럼 평온이 다가왔다.

그 평온은 한여름 오후의 미풍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외부의 소란과 감정의 격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문득, 길을 잃고 방황하던 내가 이 모든 것을 놓치고 있었던 건 아닌지, 평온한 섬을 지나쳤던 듯한 아련한 아쉬움이 스며들었다.

내가 갈망했던 모든 것은 두려움 속에 있었음을 깨달았다.
두려움이 나를 주저하게 했지만 성장의 문턱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 병이 재발할 때마다 속상해하기보다는 불편함과 증상마저도 '반복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행복과 슬픔, 고요와 소란 속에서도 평온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은 나를 해방시킨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원했던 'original' 평온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폭풍처럼 일렁이던 감정이 이렇게 한 달 넘게 잔잔히 이어지다니, 그 변화에 나조차 놀라워하며 때로는 그 고요함에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자율신경이 안정을 되찾으며 의사 선생님께서 매일 반복되는 고통 속에서도 내가 잘 버텼다며 대단하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히죽히죽 웃음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다 큰 성인이 감정에 끌려 다닌다고만 듣고 있었으니 그런 칭찬은 반가울 만도 했다.
현대 의학 만세!

불사의 힘처럼 계속해서 나를 돕고 일으켜 세워주신 그분은 나의 유일한 베프가 되어주셨다.

다른 환자분들을 돌보는 모습에서도 감동과 그 헌신적인 모습은 강한 용기를 주었다.

저분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나아지겠다는 다짐이 마음속에 자리 잡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까지 생겼다.

친구들에게도 농담처럼 말했다.
"나 대단하지 않아?"
대부분은 응원을 보내주었고 일부는 장난스러운 말로 웃음을 주었다.
그 마저도 나를 지탱하는 커다란 힘이 되었다.

기대와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깊고 온전한 상태로 나아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불완전한 세상 속에서도 신뢰와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는 믿음은 경이로움을 안겨준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에게 주어진 자극에 따라 취향과 의지를 결정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만 하면 내가 진정 무엇에 재능이 있는지 알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몸 상태가 이러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2023년 하반기, 나는 진심으로 내가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였다.

비록, 잘 쓰는 편은 아니지만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살아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감정을 글로 표현하면 교감신경계가 쉬고 있는 듯한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연구에 따르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사람들은 우울증과 불안이 완화되고 심리적 회복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글쓰기는 해마와 전두엽을 활성화시킨다.
해마는 기억 형성을, 전두엽은 논리적 사고와 감정 조절을 담당한다.

또한, 트라우마나 부정적인 기억의 부담을 줄여주고 기억을 긍정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에게 글은 억눌린 감정을 안전하게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창구다.

외부의 약물이나 인공적인 도움 없이도 내면의 고통을 치유하는 이 과정은 나에게 가장 뛰어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천연 진통제와도 같다.

어쩐지 아프고 나서 글쓰기가 더 좋아졌다.
고통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그 고통이 없었다면 나는 이 소중한 감정들을 발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픔은 나를 더 사랑하게 했고 강하게 만들었으며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더욱 깊게 만들어주었다.

'성장'과 '사랑'을 가르쳐주었고 지금도 배워나가는 중이다.


병은 싸우라고 있는 게 아니라 나를 돌보는 기회였다.

안 그래도 아파서 힘든데 싸우지 말고 좀 봐줘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