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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속에서 찾은 고요함

by 미리나

작년 4월, 치료 초기에 주사 치료의 효과가 특별히 행복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그날의 감정과 신체 상태가 절묘하게 맞물렸기 때문이었다.

몸이 고요하고 안정적일 때 감정도 여유를 찾고 그로 인해 행복감은 배가된다.

2023년 9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1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중간중간 치료를 쉬기도 했지만 치료가 끝나갈 무렵, 지난해 11월 말에는 문득 정신과 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만큼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애프터파티는 잊을 만하면 꼭 나타나 주었고 도대체 어디서 스파크가 튄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다시 한번 나를 불안의 터널로 초대했다.

그날 내 상태는 혼란 그 자체였다.
집에서부터 열이 나기 시작했지만 병원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열이 가라앉았다.

나: "오늘은 주사 안 맞을게요."
누가 보면 대단한 결심을 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웬걸? 그분은 내게 쉬이 자리를 내어주지 않았다.

대기 중 또다시 열이 올랐다.





결국, 주사를 맞겠다고 말했다.
말이 뒤집히고, 생각이 엉키고, 나조차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몸은 지쳤고 마음은 한계에 다다랐다.
어떤 판단을 내려도 그것이 옳은지 확신할 수 없었다.

모든 게 버겁고, 온몸이 아프고,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절박했다.
이럴 때마다 나는 통나무도 아닌데 언제까지 참아야 하는지 답답했다.

약을 먹기 싫으면서도 먹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내 상태를 알고 그나마 통으로 이해해 줄 사람은 내 앞에 있는 한 분 뿐이었다.



의사 선생님: "주사를 맞고 싶으세요?"
아까보다 얼굴색이 돌아오긴 했지만 다시 물어보며 생각하시는 듯 보였다.

"조금 지켜보는 건 어떨까요?
수액실에서 조금 쉬었다가 많이 힘드시면 그때 주사를 맞는 걸로 하지요."

나: "안 맞을게요!" (그때까지 사실 괜찮지 않았다.)
"저, 정신과에 가야 할까요? 약을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열이 치고 올라와서 힘들다는 말만 반복했다.
몸은 이미 한계를 느꼈고 마음은 기계처럼 멈춰버린 듯했다.

의사 선생님: "지금 몸 상태가 이렇게 힘든데 힘든 건 당연한 거예요.
힘들 때는 어떤 결정이나 판단도 하면 안 됩니다.
다 생각이에요. 지금은 또 아까보다 괜찮아요."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알아주시니 감사했다.
무엇을 하든 어떤 결정을 내리려 해도 의도대로 될 리 없었다.

내 몸과 마음, 의지가 3종 세트로 모두 하나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주사도 맞지 말고 지켜보자고 하셨을 때는 내 상태를 다 알고 계시는 듯했다.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는 찝찝함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일까?





"에라이, 모르겠다." 결국 스스로를 다독이며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먹기로 하고, 그렇게 마음을 천천히 가라앉혔다.

그날 밤, 폭풍이 지나간 뒤에야 그날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떠올렸다.

그런데 희한하게 맛난 음식을 먹으면 괜찮아졌다. ㅎㅎ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먹으면 여기가 천국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갔다.
가끔 통증이 있다가 다시 괜찮아지고 또, 아무 일 없다는 듯 마음을 추스르곤 했다.

아무리 부작용이 없다 해도 병원에서 주사나 약을 많이 쓰지 않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의사 선생님은 매 순간 그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철저히 나의 상태와 전체적인 치료 계획을 고려해 더 나은 방법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몸이 아프고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때 무언가 즉각적인
해결 책을 찾고 싶은 마음이 들끓었다.





꿀통에 빠져드는 것처럼 치료의 효과나 원칙을 무시하고 달콤한 유혹에 빠지고 싶어진다.

그때의 충동적이고 즉각적인 요구가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시간이 흐른 뒤 깨달았다.

그 덕분에 치유와 회복의 방향을 알게 되었다.

약을 먹고 싶거나 주사를 맞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드는 것은 일시적인 고통을 피하고 싶은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이 방법은 순간적인 안도감을 주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 선택은 좋지 않은 결과를 주었다.

가뜩이나 지친 상태에서 결정을 내릴 에너지가 없었다. 차분히 몸과 마음이 회복된 후에 결정을 내리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감사하게 느껴졌다.

발열이든 통증이든 다시 오더라도 견디며 지내도 큰 일 안 나고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통증 경력이 있는 환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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