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적인 신약이 세상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획기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해도 그 약만으로 치유를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울과 불안을 겪는 이들에게는 섬세한 이해와 보듬음이 필요하다.
감사하게도 그런 보살핌을 넘치게 받았다.
내 나름의 경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내면 깊숙이 자리한 복잡한 감정은 물리적인 치료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봇물처럼 터져 나온 감정의 파도와 조우했던 지독한 고독 속에서 홀로 견뎌야 했던, 아픈 기억으로 꽤 오랜 시간 각인 되었다.
23년 9월~24년 6월까지 내 심장은 거칠게 뛰었고 고장 난 액셀과 브레이크처럼 제어되지 않은 채 얼어붙었다.
누군가로 인해 스스로 놀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듯 소스라치게 반응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 사과해야 할 정도였다.
절박뇨(소변이 강하게 급해짐)로 어쩔 줄 몰랐던 것은 해프닝이었지만 지렸던 일은 일상이었다. 성인용 기저귀는 나의 필수품이었다.
만성피로에 몸은 찢어질 듯 아팠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숨이 차올랐다.
머리는 누가 망치로 때린 것처럼 아팠고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웠으며 모든 것이 전투처럼 느껴져 고달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두 세시간 간격으로 열이 나고 최고 41도까지 오를 때면 뇌 속에서 압력이 가해졌다.
열이 나지 않는 선물 같은 시간들도 있었지만 신변 처리도 못한 채 죽는 거 아니냐고 주변에 말하면 쓸데없는 말을 한다며 핀잔이나 들었다.
초강력 진공청소기가 내 머리와 뇌를 강하게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 그 압박 속에서 내 모든 생각은 멈추고 전신은 물먹은 스펀지처럼 무거웠다.
해열제를 먹어본 적도 있었지만 초기 효과 외에는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증상들은 몇 달 동안 나를 집어삼켰다.
원장님은 이 시한폭탄 같은 상황을 지켜보시다가 안되겠으셨는지 "이상이 없을 거지만 괜찮다는 걸 확인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라며 감염내과를 권유하셨다.
"원장님, 저 안 가면 안될까요?"
............
병원이 누구라도 유쾌한 곳은 아니지만 나는 현재도 버겁게 느껴지는데 거기에 또 다른 혹을 더 붙일까 봐 두려워서 처음에는 가기를 주저했다.
판사가 판결을 내리는 듯한 병이 추가 될까봐 불편했고 그 순간 잠잠했던 내면의 불안정한 감정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솟구쳐 오를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 한참 뉴스에서는 파업 이슈가 연일 보도로 뒤덮고 있었다.
예약과 진료 접근이 제한된 상황임에도 자리가 났다는 전화가 와 내일 오라고 했다.
좋아해야할지, 감사하게도(?) 누군가 취소한 모양이었다. 서울행을 예정하고 있었기에 만약 안되면 서울로 가려고 계획했지만 차라리 잘된 일이었다.
원장님도 어떻게 이렇게 빨리 성공했냐며 잘됐다고 웃으셨다.
수액실에 누워 운 좋게 한 번에 성공했으니 "좋은 일이 생기려나 보다"며 나도 씩-웃었다.
대학병원 로비에 걸린 갤러리 액자를 보니 초딩 시절 박물관을 견학하던 기분이 들어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작은 폭포의 분위기에 취해 놀러 온 듯 셀카도 찍고 대기하며 맛난 밥도 사 먹었다.
병원은 또 다른 의미로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먼지 한 점 없는 공기를 들이키며 세상이 이토록 낭만적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무엇보다 감사했다.
교수님이 혈압이 떨어지거나 상태가 악화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하셨지만 열이 몇 달간 지속되는 일은 드물다고 하셨다.
우선 자율신경실조증이 무엇인지, 발열 외의 어떤 증상들이 동반되고 있는지,치료 방법에 대해서도 물어보셨다.
그쪽(재활) 선생님이 그냥 보내신 게 아니라 원인을 알아오라고 하신 것일 텐데… 하시며 설명도 잘 해주시고 참 친절하셨다.
<내가 겪은 자율신경 실조증 증상들>
두근거림(심계항진), 불규칙한 심장 박동, 기립성 저혈압, 혈압의 급격한 상승&하강, 두통, 어지러움, PMS, 생리통, 명치 답답함, 소화불량, 무기력, 집중력 저하, 공포,이유 없는 긴장감, 수면장애(예: 자주 깸, 악몽),근육 경직, 목디스크, 만성피로, 절박뇨, 빈뇨, 전신 통증, 발열(원인을 알 수 없는 '불명열') 등등.
다양한 증상은 의사 앞이어도 남사스럽기 그지 없었다. 세균 배양 검사와 감염 관련 검사를 진행했지만 결과적으로 염증 수치가 이토록 깨끗한 경우는 드물다고 하셨다.
좋아해야 할 일인데 그날 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 말로 다 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얽혀 있었다.
그 이면에는 매일 열이 나는데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엔 감염 내과에 가고 싶지 않다고 원장님께 말씀드렸지만 내면의 불안감을 쉽게 떨칠 수 없었다.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어도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불명열을 전문으로 보는 대학병원 내과에서도 딱히 방법이 없다니 씁쓸했다.
하지만 자율신경실조증 진단이 확실해지자 감사하는 마음이 들었다.
에휴, 아침엔 산으로 갔다가 낮에는 들로 가고 저녁에는 강으로 가는 내 마음을 누가 알리오.
감염내과뿐 아니라 그전에 통증의학과, 한의원, 정신의학과, 신경과, 신경외과, 부인과도 전전했다.
무기력증과 전신 통증이 심했던 지난해 3월,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조차 유지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간 류마티스내과에서 섬유근육통을 진단받았다.
이후 몇 개월 동안 모든 과에서 혈액검사를 하고 비뇨기과 검사까지 받았지만 돌아오는 건 항상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었다.
저렇게 많은 병원 투어를 해도 내 병을 정확히 진단한 의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옆구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신우신염이나 결석 가능성을 언급하는 의사도 있었던 걸 보면 원인을 찾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은 듯했다.
너무 지쳤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했다. '사는 게 너만 힘든 건 아니야.'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의료 파업 때문인지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교수님이 잠시 자리를 비우신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가느라 머리와 마음이 복잡했다.
교수님은 이렇게 열이 자주 나면 치료를 받지 않은 날은 어떻게 버티냐고 물으셨다.
주치의 원장님께 들은 바로는, 치료에 사용하는 포도당 치료제는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 하셨다, 주사를 맞고 나면 증상이 급격히 좋아지고 자율신경계의 균형 회복에 도움이 되어 현재 꾸준히 치료를 받고 있다. 발열의 강도와 빈도는 줄었지만 여전히 불편함은 남아 있다고 말씀드렸다.
한때는 의사라면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전문 분야가 아니면 모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게 되었다.
환자로서의 시간이 흘러 경력이 쌓이니 의사들의 고충이 보였다. 이렇게 친절하고 세심한 의사를 만날 때면 더욱 그렇다. 면밀히 물어봐주고 경청해 주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했다.
나에게 "혹시 의료 분야에서 일하시나요?"라고 물으셨다. 내가 메모해 간 기록과 체온 리스트를 보여드리자 "자신의 증상을 명확히 알고 기록하고 계시네요. 이런 증상들을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데 특히 불명열은 원인이 다양해서 더 어렵거든요."라며 칭찬해 주셨다.
그 당시 나는 염세적인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었지만 뜻밖의 칭찬에 건강을 더 관리해야겠다는 동기부여를 얻었다.
이어서 매우 희박하지만 자가면역질환, 호르몬, 심지어 암 등 숨겨진 원인이 있을 수 있다고 하셨다.
다만, PET-CT 검사 비용이 고가인 데다 비보험이라 '굳이' 원하면 해주겠다는 말을 덧붙이셨다.
순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환자사정을 고려한 듯한 설명이 하지 말라는 뜻으로 느껴졌기에 검사받지 않기로 했다.
대학병원은 복잡한 수술이나 희귀하고 중증인 질환을 다룰 수 있고 의료 장비와 다학제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내 증상은 응급도, 중증도 아닌 까탈스러운 상태였다.
감사와 동시에 "혹시 의사에게 버림받은 건 아닐까?" 하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대뜸 이게 무슨 뜻이냐고?
정신과 치료를 받는 친구 A가 자신을 치료해 주던 원장님으로부터 큰 병원에 가서 추가 검사를 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버림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아마 그쪽이나 이쪽이나 더 나은 치료를 위해 큰 병원으로 보낸 것을 "의사가 이제 나를 치료해 주기 싫어 떠미는구나"라고 받아들였다고 한다.
나 역시 '의사의 의도'와 '나의 감정' 사이에 간극이 생겨 그런 생각이 잠시 들긴 했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 생각도 약해지는구나.
처음엔 A의 감정이 와닿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마음을 어림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려운 병을 앓고 있을 때는 의사와의 관계에서 신뢰가 충분히 쌓여있어도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결과지를 건네며 "원장님!! 잘 다녀왔고요 제가 잘 낫지 않다 보니 부담스러워 저를 대학병원에 보내시려는 줄 알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