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율신경 치료 후 달라진 변화(예민함)
몇 해 전 릴스나 쇼츠에서 유행한 "요랬는데~ 요래 되었다가 요래 됐습니당!"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의 유쾌한 리듬감을 기억하시나요?
자율신경 치료 이후, 둥둥 떠 있던 감각이 서서히 가라앉고,
제 삶은 어느새 고해상도로 초점이 맞춰진 듯했습니다.
그 시간을 녹여보았습니다.
고해상도의 삶
나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4K 화질로 수집하는 고해상도 레이더였다. 타인이 무심코 던진 말들은 내게 오면 정교하게 가공된 화살촉이 되어 날아왔고 여과 없이 가슴에 꽂혔다. 그 자리에 남은 시퍼런 멍을 보며 사람들은 나를 마음이 여려서 그렇다고 했다.
나라고 해서 얇디얇은 점막 같은 마음의 질감을 원했던 건 아니다. 감각의 촉수가 남들보다 조금 길고 깊어서 타인의 신발 밑창에 묻은 진흙 같은 기척까지 모조리 읽어버리는 건 일종의 ‘설계 오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나의 예민함은 가끔 성능이 너무 좋아 탈이 나는, 고가의 하이엔드 오디오 같았다.
남들은 배경음악 정도로 흘려보낼 세상의 잡음을 나는 돌비 서라운드로 입체감 있게 감상해야 했으니 말이다.
이 촉수가 나를 찌르는 가시만은 아니었다는 걸, 몸이 조금 회복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구석에서도 피어나는 따뜻함과 여운을 포착하는 특권적 시력이기도 했다는 것을.
가끔 그런 감정들을 줄이고 싶어 하면서도 그 덕분에 놓치지 않았던 장면들을 떠올린다.
어쩌면 문제는 예민함보다 그 예민함을 다루는 나의 손놀림이었는지도 모른다.
칼날이 날카로운 건 죄가 아니다.
그것을 쥔 손이 지나치게 힘을 주고 있었을 뿐.
나는 아직 그 모든 통증을 통제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이 나라는 존재의 '오답'이나 혼자만의 '결함'이라고 여기지는 않게 되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세밀하게 조율된 악기일지도 모를 나의 주파수에 관하여, 조금 더 깊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1) 0.1초의 뉘앙스를 읽는 초능력
사람들이 '분위기'라는 말로 뭉뚱그리는 모호함 속에서 나는 타인의 감정이 발효되는 냄새를 맡는다. 누군가 말의 어미가 떨릴 때 0.1초 정도 머물다 사라지는 것을 볼 때 슬픔의 깊이를 가늠한다.
피곤한 일이지만 타인의 마음속 가장 깊은 방에 노크도 없이 입장할 수 있는 마스터키라도 된 것 같다.
누군가 "쟤 오늘 왜 저래?"라며 지나칠 때 나는 따뜻한 커피를 책상에 놓아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의 뇌피셜이다. 사실 눈치가 없는 허당이라는 말을, 친한 친구들에게서 종종 듣곤 한다.
내 예민함은 타인의 절망뿐 아니라 세상의 경이로움을 수신하는 레이더이기도 하다. 누군가에게는 지나가는 풍경일 뿐인 길가의 이름 모를 꽃도 내 망막에 걸리면 한 편의 대서사시가 된다.
비가 오기 직전 흙이 머금는 폭신하고 포근한 내음, 계절이 바뀔 때 바람이 살짝 거칠어지는 순간들. 평범한 점심 식사 자리에서도 찌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모양새에서 삶의 활력을 읽고, 퇴근길 노을의 채도가 어제보다 1도 낮아진 것만으로도 가슴 어딘가가 젖는다.
세상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굴러가는데 나만 미세한 명암의 변화를 붙들고 서글퍼하거나 감동하는 것이다.
나의 신경세포는 세상이라는 전시회를 휴관도 없이 24시간 내내 맨 앞줄에서 관람하는 VVIP 티켓 같다.
이토록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산다는 건 피할 수 없는 노동이기도 하지만, 저무는 해의 끝자락에서도 의미를 캐내고야 마는 이 마음이 결국 나를 살게 한다.
2) 내 몸은 가장 정직한 셋톱박스
과거에는 예민함을 유통기한이 지난 통조림처럼 취급했다. 불쾌한 가스가 차오르고, 따자마자 사방으로 비린내가 튀는 처치 곤란의 결함.
왜 나만 전신에 센서를 주렁주렁 매단 채 수온이 0.1도만 변해도 경기를 일으키는 해파리처럼 태어났을까 자책했다.
그 시절 내 예민함은 나를 보호하기는커녕 나를 찌르는 화살이었으나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이것은 세상의 무례를 감지하기 위해 내 몸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초정밀 보안 시스템이라고.
누군가 선을 넘으려 할 때 명치끝이 딱딱해지거나 목덜미가 뻐근해지는 ‘불길한 예감’은 내 신경들이 나에게 보내는 긴급 SOS였다.
"여기서 더 참으면 네 마음이 다쳐, 어서 선을 그어!"라고 소리쳐주는 충직한 경비견을 나는 평생 미워만 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몸을 믿는다. 내 예민함이 '아니'라고 말하면 그것은 우주가 나에게 보내는 데이터니까.
아름다움을 4K 화질로 감상하는 대가로 육체의 고통 또한 초고해상도로 겪어내야 했다. 상처는 마음뿐만 아니라 육체도 아프게 한다. 가슴은 터질 것 같고 목구멍엔 이물질이 걸린 듯 호흡이 가빠지는,
병명도 생소하고 이름도 긴 "자율신경 실조증"
자율신경이 와장창 깨지고 나서야 알았다.
재작년 그날, 의사 선생님의 말은 지금도 기억의 언저리를 배회한다.
검사 결과를 보며 “폭발 직전, 뚜껑이 열리기 직전”이라고 하셨던 그 말은 시간이 한참 흐른 지금도 문득 등줄기를 타고 오르곤 한다.
그럼에도 내가 이렇게 밝은 얼굴로 치료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의사 선생님의 너른 마음 덕분이었다.
그분에게서 들은 가장 강한 표현은 ‘심하다’ 정도였다.
반드시 좋아질 거라며 그 이상으로 상황을 몰아세우지도, 큰일이라며 공포를 덧입히지도 않았다.
지금의 나를 겁주지 않고 견딜 수 있고 반드시 나을 사람으로 믿어주는 듯한 태도였다.
다행히 다정하고 좋은 의사를 만나 ‘나약함’이라 탓하지 않고 나의 ‘피로함’을 먼저 읽어주는 돌봄을 받았다.
내가 괜찮은 척을 해도 눈을 보며 마음을 읽어내주시던 그 온기.
교감신경의 과도한 파티가 끝나고 몸의 긴장이 이완되니 기적처럼 마음에도 ‘빈 방’이 하나 생겼다.
사실과 의견을 분리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진심 어린 조언이 몸의 소음이 잦아들자 뇌리에 적중했다.
원장님, 환자분들과 함께 매달 대구 앞산 고산골공원을 맨발로 처음 걷던 시간도 잊을 수 없다.
흙이 발바닥에 닿을 때마다 곤두섰던 신경들이 땅으로 접지되어 가라앉았다.
양을 세며 뒤척이던 고통스러운 밤들을 지나 깊은 숙면이 찾아왔을 때 '남들은 이런 튼튼한 지지대 위에서 살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외롭게도 했으나, 내게 찾아온 평온만 오롯이 간직했다.
내 몸과 화해하는 법을 조금 알 것 같다.
상처받는 나를 미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
신경이나 통증은 나를 괴롭히려는 빌런이 아니었다는 것.
어떻게든 나를 보호하려고 애쓰던 충성스러운 보디가드였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만큼 정교한 안테나로 태어나 우주의 신음소리까지 늑골에 새겨 넣는다.
안테나를 꺾고, 화질을 뭉갠다.
그 진공의 고요를 즐기며 나의 슬픔을 사랑하기로 한다.
이제는 외면하지 않는다. 예민함이라는 고성능 렌즈에 '자기애'라는 필터를 끼우니 세상이 이토록 다정한 화질로 변했다.
그들이 과로하지 않게 가끔 긴장을 풀어주고 이완시켜 주는 것만으로 나는 지금 충분하다. 그리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