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2회 치료 후 서울로 도망쳤다

몸과 마음의 경계

by 미리나



그날의 기록




두 번의 주사를 맞고 물리치료도 받았으니 금방 나아질 거라 믿어본다. 의사 선생님은 다행히 뼈에는 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너무 아프다. 버텨온 시간이 무색하게 몸은 무너지는 것 같고, 마음은 그 모습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 맴돌지만,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를 포기하지 않으려 다시 숨을 고른다.


이번 일만큼은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잘 마무리하고 싶다. 무너진 마음 위에 책임감을 덧씌우며 마지막 매듭까지 정성껏 묶으려 한다.




나는 어디가, 언제부터 아픈지 말하기 힘들 때면 메모를 해왔다. 그 작은 종이 한 장이 방패가 되어 주었다.

통증에 정신이 없으면 질문도, 설명도 놓칠까 봐 걱정됐다. 몸의 긴장과 느낌을 정확히 전해야 치료가 빨리 끝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전신 그림을 출력해 아픈 부위를 표시했다.



과연 내 통증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까?




불안과 의문이 교차하며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아프다’는 한마디로는 이 감정을 다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더 답답했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죄를 지은 사람처럼 죄책감이 따라붙었다.


인생에 정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선택으로 모든 게 또렷해진다면 얼마나 편할까. 하지만 교과서에도 늘 명확한 답은 없듯, 삶에도 그런 해답은 없었다.


실제 병원



“오늘도 넘어졌다고 둘러대야겠다”는 각오로 진료실에 들어가 종이를 내밀었지만, 하필 그 순간 휘청이며 그대로 넘어졌다. 아픔보다 창피함이 먼저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적 속에서 떨리는 몸으로 일어나며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랐다.




원장님이 나를 부축하며 차분히 물으셨다.


“괜찮으세요? 다리에 힘이 없는데, 일단 여기 앉으세요.”


멍한 얼굴로 의자에 앉자마자 다시 물으셨다.


“월요일에도 많이 힘들어 보이셨는데, 다리는 무슨 일이 있었어요?”


말씀하시며 멍든 부위에 조심스레 손을 얹으셨다. 내 속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냥 지금처럼 넘어진 거예요.”


고개를 갸웃하시며 깊어진 눈으로 다시 말씀하셨다.


“넘어져도 이렇게 다리 전체가 멍들진 않는데요...” “왜 그런 건지 말해봐요. 괜찮아요.”


말하지 않아도 기다려 주겠다는 뜻이 표정에 담겨 있었다.



“서울은 언제 올라가세요? 올라가기 전에 집중 치료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3주 후예요.”, “한 달 후에 가요.” 하고 답하던 내가 이번에는 짧게 말했다. “내일이요.”


나는 떨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고 원장님은 내 결심을 다시 확인하듯 나를 바라보셨다.


사실 일상생활이 어려울 만큼 아팠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회사 일이 더 우선이었다. 몸이 조금만 나아지면 병가 대신 점심시간을 쪼개 치료를 받았고 연차를 나눠 쓰며 겨우 버텼다. 유연하게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밤을 새워 일을 이어가는 날도 많았고 그렇게 견디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1년에 한두 번만 보면 좋겠어요
식사는 하셨어요? 잠은 잘 주무세요


“어젯 밤 몇 시에 주무셨어요? 몇 시에 일어나셨어요?”


그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내가 만성 통증 환자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표시한 곳 말고 또 불편한 데 있나요? 지금 가장 아픈 곳을 짚어보세요.”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첫날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온몸이 다 아파요. 죽을 것 같아요. 오늘은 주사를 많이 맞으면 안 될까요? 많이 맞으면 좀 더 빨리 좋아질 것 같아서요.”


원장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우리 1년에 한두 번만 보면 좋겠어요. 병원에 자주 오는 건 안 좋죠.”


주사실에서 엎드리려는데 명치가 답답해 한참을 애먹었다. 도와주시면서도 다리를 유심히 보시던 원장님이 또 물으셨다. “다리는 왜 그래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짧게 답했다. “계속 넘어졌어요.”


환자가 숨기려는 것과 의사가 알아내려는 것 사이,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그리고 깨달았다. 주사를 많이 맞는다고 빨리 낫는 건 아니라는 것을. 조급함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하고 있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오니 온몸이 뻐근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마음 한구석은 허전했다.


고관절은 걸을 때마다 갈리는 듯했고, 체중을 실으면 뼈가 부서질 듯 아팠다. 앉았다 일어설 때면 골반이 찢어지는 듯 저렸고, 오래 서 있으면 엉덩이 깊숙이 쑤셔 절뚝이게 되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혹시 무너질까 불안했다.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조금이라도 덜 아픈 것. 하지만 그 소망조차 멀게 느껴졌다.


원장님은 좌절한 나에게 힘든 감정은 흘려보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당장은 어렵겠지만 놓아야 숨을 쉴 수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제발 나아지기를.
이번만은 견뎌내기를.


사람들은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데 나만 잠시 멈춰 선 기분이었다.




곧 닥칠지도 모를 고난을 모른 채 무거운 몸으로 서울행 열차에 올랐다. 열차는 거친 쇳소리와 진동을 내며 출발했고, 나는 조급함과 강박에 휩싸인 채 흔들렸다. 흐려지는 창밖 풍경과 달리 마음속 불안은 점점 또렷해졌고, 그 불안은 나 자신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속삭였다.




원장님의 선하신 얼굴을 마주하며 제 마음을 고백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낯선 병원이 이제는 두렵고, 치료에 방해가 될까 죄송한 마음입니다. 그래도 저는 꼭 살고 싶습니다. 도와주신다면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릴 때까지 기다려주실 거죠? 보살핌 속에서 큰 안전함을 느끼고 갑니다. 이곳이 얼마나 따뜻한 곳인지 알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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