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선택
서울에 오면 몸도 회복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에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려 했지만, 고관절 통증은 계속되었고 나는 자주 주저앉거나 넘어지곤 했다. 무엇이 옳은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조차 알지 못한 채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고 있었다.
평소에도 목 디스크나 근골격계 문제로 치료를 받으면 3~5회 정도면 일상생활이 가능할 만큼 호전되곤 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치료를 받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폭행 사건 당시 나는 모든 일이 정해진 절차대로 흘러갈 것이라 막연히 믿었다. 치료도, 신고도 깊이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덮고 넘어가고 싶었다.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고, 혹시라도 보복이나 더 큰 갈등이 생길까 두려웠다. 절차를 밟는 과정 역시 버겁게 느껴져 피하고 싶었다.
나는 직장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고 그 시간들이 소중했다. 이 일로 직장을 잃게 되지 않을까 걱정됐고, 사건을 알리는 것이 내 일상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도 두려웠다. 당시 나의 심리적 상태로는 공론화하는 것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이걸 알려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 상황에서 나는 살아남았고, 지금도 살아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다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 일을 지나며 나는 성장할 기회를 얻었다. 어쩌면 역설적이지만, 그래서 나는 그를 ‘은인’이라 부르고 싶다. 그 말에 담긴 진실과 감정은 언젠가 더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보통 잘못한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나는 분명 피해자였지만 어쩐지 곤란한 상황을 만든 사람처럼 느껴졌고 도의적인 책임감까지 들었다. 사장님과의 신뢰가 흔들릴까 걱정했던 것 같다.
그의 진심 어린 사과에 감사했고, 감정도 조금은 가라앉았다. 그러나 마음 한편의 불편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타 부서 신입사원이었다. 회사 분위기에 적응할 틈도 없이 사건이 벌어졌다. 전체 회식을 앞두고 처음으로 모든 직원이 모이는 자리라 설레고 기대하던 날이었다. 평범한 하루였고, 퇴근 후 집으로 향하던 길에 갑작스럽게 일이 벌어졌다.
시간이 흐른 뒤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사장님의 조카였다.
소문 때문에 미행당하고, 흉기를 든 2차 피해 상황까지 겪었다. 후회와 두려움이 컸지만 몸이 얼어붙듯 마비되면서도 극도로 침착해진 자신을 알게 되었다. 나중에 경찰관이 “대처를 잘했다”고 말했을 때 안도와 감사가 느껴졌다.
회사는 점점 어색해졌고, 동료들은 쉽게 말을 걸지 않았다. 어느 날, 사장님이 눈시울을 붉히며 무릎을 꿇고 “너는 아무 잘못이 없고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 내가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그 모습에서 책임을 떠안으려는 고통과 죄책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소한 거절에도 폭발하는 태도와 날카로운 목소리에 공포를 느꼈지만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사장님은 병원 치료와 법적 조치 등 책임을 다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진심 어린 사과와 책임감이 상처를 조금이나마 덜어주기는 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사장님과 함께 경찰서에 가서 사건 관련 진술과 증거를 협조하며 심문을 진행했다. 심장이 요동쳤지만 사건을 확실히 처리하고 싶은 마음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교차했다. 결국 일상을 이어가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사직서를 제출했다.
얼마 후 사장님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복잡하고 속이 울렁거렸다.
심리상담소와 통증·재활의학과를 방문했다
도수치료와 전기자극, 냉각치료, 약물 처방을 받았고, 대학병원 방문도 권유받았다. 상담소에서는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냐며 다그쳤다. 폭력의 여파도 컸지만 나를 도와야 할 사람들이 던진 비난이 더 깊이 무너뜨렸다. 폭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신의학과 두 곳을 방문했는데, 한 곳은 상담소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그가 휘두른 손길뿐 아니라 차가운 말들까지 나를 덮쳤다. 좌절과 무너진 자존감을 견디기 벅찼다.
누구를 원망해야 할까? 악연과 악운, 적과 아군의 경계는 점점 흐려졌다. 가해자는 외관상 정상처럼 보였지만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그렇다고 파렴치한 행동이 정당화되진 않는다.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최근 5년 사이 이런 무분별한 폭력 범죄가 급증했다는 뉴스가 눈에 들어왔다. TV와 유튜브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끊임없이 보도됐다. 세상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된 걸까.
한의원도 찾았다. 평소 한의원은 좋아하지 않아 드물게 가는 편인데, 침과 추나치료를 권하며 턱관절을 강하게 누르자 온몸이 경직되고 머리가 하얘졌다. 반사적으로 “살려 달라”는 말이 튀어나왔고 목 디스크를 이유로 한약과 패키지 치료를 권했다.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곳이었고, 홀로 데스크부터 치료까지 모두 처리하는 모습에 불안함을 느꼈다.
몸이 아파 도망치지 못했고, 병원을 나오며 손이 떨렸다. 혹시 내가 예민한 걸까, 자책했다. 에너지도 없고, 모든 것이 내 문제인 듯 생각하는 게 마음 편했다. 가까이 사는 친구 A가 그곳에 다녀왔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정말 필요했던 건 안전함이었다. 나를 지켜줄 공간을 떠올리자, 마음이 조금 놓였다.
다시 다녔던 병원으로
1~2주 만에 병원을 방문했다. 의사 선생님은 다리 힘, 걸음, 통증을 꼼꼼히 확인하고 주사치료와 신경 검사를 제안하셨다. 검사 중 몸이 외부 힘에 반응하며 긴장이 풀리지 않았고 심리적으로 낯설고 불편하며 수치심과 과거의 고통이 떠올랐다.
진단 결과 신경과 근육에 이상이 없다는 말은 안도감을 주었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고통과 의문을 마주해야 했다. 과거의 상처를 붙잡고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기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연습을 다짐했다.
의사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와 위로는 큰 힘이 되었고 사람에게 상처받았지만 사람으로 치유받을 수 있음을 느꼈다.
원장님, 어려운 환자를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