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여도 기회는 있다
오늘도 고통이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온다. 세상 속에 나 홀로 유배된 듯, 견딜 수 없이 아프다.
고통이 먼지처럼 흩어져 사라지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것을 대기 속으로 높이 올려 보내며 내 안에 맺힌 한(恨)이 풀리기를 바란다. 이 고통이 사라지기를.
11월 말, 대구의 날씨는 가을의 정취가 고요하게 퍼진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나무와 꽃들은 붉고 노랗게 물들어 가을의 마지막 색을 뽐내고 있었다. "우와, 예쁘다아아~~~"
몸이 아프면서 통증에만 몰두하던 시간이 길어지자,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더 깊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속도가 느려지니 작은 변화에도 예민해지고 자연스럽게 주변을 더 바라보게 된다.
얼마나 싱그럽고 예쁜지, 하나하나 눈에 담는다. 익숙한 풍경이 새롭게 보인다. 계절이 변하는 걸 실감하고, 바람의 결까지 다르게 느껴졌다. "세상이 언제 이렇게 변했을까?"
아니다! 내 시선이 변했다. 꽃은 늘 그 자리에서 예쁨을 간직하고 있었고 나는 이제야 그것을 온전히 마주하게 되었다. 마음속에서 작은 희망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나, 좋아지고 있구나."
만날 사람도, 갈 곳도 없었던 나의 유일한 외출은 가끔 하는 산책과 병원뿐이었다. 반복되는 하루처럼 느껴져서, 병원 생활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이제 정말 좀 살만해진 건지, 자만심이 생긴 건지, 여하튼 병원 그만 다니고 싶다. "아니야, 참고 다녀야 해. 또 아프면 어떡하지?"
좋은 나, 싫은 나, 누르는 나.
나에게 세 명이 달라붙어 괴롭히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처음엔 통증이 사라지기를 바랐다. 사라지지 않더라도, 견딜 만한 통증이길 바랐다. 통증이 익숙해질 무렵엔,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걸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리고 오래 서 있을 수 있기를 원했다. 그러다 멀쩡히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워졌다. 어제 간절했던 소망이 오늘의 기준이 되고 또 새로운 바람이 생겼다.
"그게 욕심이었을까? 아니다. 그것은 살아가려는 애씀이었다"
몸의 증상들이 스파크처럼 불쑥불쑥 튀어나와도 의사 선생님은 언제나 담담하셨다.
"원장님, 증상이 왜 이렇게 핑퐁처럼 오락가락하는 걸까요?"
"그럴 수 있어요. 괜찮아요. 다 지나갑니다. (언제요)" 이 특이한 증상을 보고도 저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며 점잖게 말하는 의사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결국 돌아오는 답은 본전도 못 찾았다.
의사가 괜찮다고 하는데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 질문에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전에, 정곡을 찌르는 말이 이어졌다.
“지금 마음이 좀 불안하신가요? 어떤 게 가장 불편하세요?”
“마음이요. 마음이 불안해서 죽겠어요. 목은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이렇게 하면 아프고, 등은 쪼개지는 느낌이에요. 골반은 저번보다 좋아진 것 같기도 한데요, 아, 아니 조금 나아진 것 같기도 한데, 그래도 아파요. 등을 세우지도 못하겠고 쩌릿하고 숙이면 더 아파서 미치겠어요."
조금이라도 더 말해야, 하나라도 더 덧붙여야 내 고통이 눈에 보일 것만 같았다. 그냥 “아파요”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몸이 찢어질 듯한 그 감각을 더 구체적으로, 더 생생하게 전해야만 내가 겪는 이 통증을 제대로 알아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말이 길어졌다. 두서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매번 증상이 다르니 원장님은 받아 적느라 바빠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왜 이렇게 차분하지 못했는지 하지만 그때의 내 모습이 필름처럼 지나간다.
그때 과연, 다 들으셨을까. 이 정신 사나운 나의 언어를.
치료실.
"원장님! 힘을 얼마나 주신 거죠? 거기 너무 아픈데요. 흑흑"
"치료할 곳이 많네요. 잘 치료해 드릴 테니 걱정 말고 금방 좋아지실 겁니다."
원장님께 통증을 호소했지만 혹시 내가 과장한 건 아닐까 스스로 의심했다. 정신없이 아파 말이 횡설수설 나왔지만, 한 번도 나를 이상하게 보지 않고 증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셨다. 그 덕분에 불안이 가라앉았고, 나는 그분에게 의지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치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스스로를 다잡으며 다시 나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커졌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나는 더 멀리 가고 싶다.
며칠간 치료를 받으며 감정이 괜찮던 날, 차분히 앉아 생각해 보니 치료 효과는 즉각적이지 않았지만 내 행동은 달라져 있었다. 예전에는 들고양이처럼 경계심 가득한 모습이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다녔고, 병원에 갈 때는 멋을 낼 일이 없다며 운동복 차림에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 모자를 벗었다. 생기 있어 보이고 싶어 메이크업도 하고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아도 분명히 나는 달라지고 있었다.
쇼핑몰에서 다양한 색상의 옷을 사 입고 쨍한 컬러를 입으니 기분이 전환됐다. 택배를 뜯을 때마다 콧노래가 절로 나왔고 쇼핑이 새삼 즐거워졌다. 뭐라도 재미를 붙이면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가지는 않았다.
어딘가 조금씩 흠이 생기고 있었다. 익숙해진 걸까. 예전보다 통증과 불안은 줄었지만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 마음이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주변에서는 좋아졌다고 했지만, 기대가 커질수록 조바심만 났다.
내가 다시 살아가는 법
모든 의사들이 환자의 쾌유를 바라겠으나, 원장님은 내가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보다 더 간절해 보였다. 주사를 맞으며 내 작은 반응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애쓰셨다. 통증이 심할 때 개미만 한 목소리로 말할 수밖에 없었고, 모든 걸 이해하려 귀 기울여 들어주셨다.
"호흡이 힘드세요? 주사가 아프세요? 잠시 쉬었다 할까요?"
"원장님, 저 이제 그냥 이렇게 살아야 하나 봐요."
"무슨 말이에요. 좋아집니다. 나아질 수 있어요. 뻣뻣했던 근육이 부드러워졌어요."
"정말요?"
늘 나의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셨다. 그냥 지나쳐 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하지 않던가!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들이 쌓여가며 정말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능적으로 힘을 내게 되었으며 "더디더라도 꼭 낫겠다"라고 다짐했다. 그렇게라도 약속해야 스스로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곧 서울에 가야 한다고 말씀드려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어느 날, 나는 하이텐션이었다. 통증이 확 줄어 걷는 재미가 생기자, 자꾸만 더 힘을 주며 움직이고 싶어졌다.
"원장님! 이제 안 아플 것 같아요! 이제 정말 잘 걸어요! 괜찮아요!"
자신 있게 말했지만, 치료실에서 그대로 넘어졌다. 꽈당!
"아휴~ 조심히!! 천천히 하세요." (등짝 스매싱이 날아왔다ㅋㅋ) 이만큼 고쳐놨으니, 다시 병원 올 때까지 넘어지지 마세요."
환자인 나도 재발 방지를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여야겠다. 희망을 품고 나아가면서도 그 희망이 조바심으로 변하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아야지. 이를 악 물었다.
초기엔 증상이 너무 심해 매일 고통 속에서 버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는 예전보다 조금 더 자유롭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원장님은 내가 서울에 갈 때마다 활기차게 인사해 주신다.
“조심히 잘 다녀오세요. 아프지 마시고...”
간호 선생님들도 날짜를 물으며 “보고 싶을 거예요!”라고 따뜻하게 배웅해 주신다.
눈물이 날까 봐 급히 인사하고 나왔지만, 본가에 온 듯한 그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다시 대구로 내려갔다.
23년 11월 7일부터 25일까지, 2주간 병원을 성실히 다녔다.
2주가 지났다.
“미리나님! 오랜만이에요!” 고작 몇 주 만인데도 선생님들은 반갑게 인사해 주신다. 내가 가본 병원 중 이렇게 환자를 환영해 주는 곳은 여기밖에 없다. 이 병원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내가 잘못 들어온 건가?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진료실에 들어가면 원장님도 활짝 웃으며 맞아주신다. 보통은 “안녕하세요!”라고 하시지만, 서울에 다녀온 날에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서 오세요!”
환자에게 “어서 오세요”라니. 고통을 쏟아내야 하는데, 이 분위기에서는 각이 잘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병원에서 듣는 “어서 오세요”가 어색했는데 이제는 그 인사가 없으면 오히려 허전할지도 모르겠다. 환복을 위해 탈의실로 걸어가며 치료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의사 선생님과 원만히 합의해 치료를 잠시 중단했는데 마음은 조용하지 않았다.
“괜찮을까, 다른 원인이 생긴 건 아닐까, 혹시 재발한 건 아닐까?”
내 증상이 ‘킹오브 노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배달 언제 오냐고 묻듯 “언제 좋아질까요?”라고 물었다.
처음엔 정신과 치료와 통증 재활을 병행하면 한두 달이면 나아질 거라 원장님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치료와 회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몸이 더 안 좋아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자주 잊었다.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질 때마다 원장님은 늘 “걱정하지 말고 잘해봅시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효과를 빨리 보고 싶었던 조급함, 비합리적인 기대가 또다시 나를 괴롭힐까 봐 두려웠다.
머릿속이 쉴 새 없이 재잘대며 뒤흔들 때면, 햇살에 잘 말려둔 빨래가 한순간에 흩어지는 기분이 든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원장님이 오라고 하신 날짜를 꼬박꼬박 지켰다. 집중 치료 덕분인지, 드디어 가만히만 있으면 목이 아프지 않은 시간이 찾아왔다. 거동도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산책하는 횟수와 시간을 조금씩 늘렸다.
이 정도면 살 만하다 싶어 치료를 잠시 쉬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원장님은 아직 집중 치료를 계속해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아직 집중 관리 대상이구나.’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웃었다.
언제 다시 올 수 있겠냐는 질문에 한 달이라고 답했을 때 생각에 잠기셨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더 병원에 와야 하고 언제쯤 나아질 수 있을까?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원장님이 강의를 하신다고?”
하루는 인스타를 스크롤하다가 다양한 표정을 지닌 사람들과 함께 보인 ‘통증기능분석학회’라는 단어가 눈에 띄었다. 어떤 강의인지 궁금해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특히 ‘세 번째 화살의 비밀’이라는 주제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학회를 앞두고 올라온 포스트였는데, 그 비밀이 무엇일지 궁금해 마음이 두근거렸다.
의사들의 학회라니, 닫힌 문 뒤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았다. 의사들만 공유하는 지식, 환자에게는 쉽게 전해지지 않는 이야기.
그곳에 가면 무엇을 알게 될까. 한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사들만 가는 자리라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단순한 호기심만은 아니었다. 나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있었다. 환자로서 듣는 설명 뒤에 어떤 맥락이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신뢰와 편안함이 있더라도 다 말하지 못하는 부분은 분명 존재한다. 그 간극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댓글을 남겼다.
“일반인도 참여 가능하다면 듣고 싶을 정도예요.”
예상보다 빠른 댓글이었다.
“감사해요. 분명 좋아질 거예요. 일반인 참여는 제가 알아볼까요?”
가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의외였다. 환자의 말로 넘길 수도 있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그 이후, 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머릿속은 온통 학회 생각뿐이었다. 통증조차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록 원장님은 그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셨다. 될지 말지 궁금하지만 연락이 왔냐고 여쭤볼 수도 없었다.
"혹시 워낙 바쁘셔서 깜빡하신 건 아닐까?" 나의 불안은 고맙게도(?) 이럴 때 열일을 한다.
이제 안 되겠다!! 지금 여쭤보지 않으면 이 한 번뿐인 절호의 찬스를 놓칠 것 같았다. 치료가 끝나고 나오는 길, 문이 살짝 열린 진료실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다.
똑똑!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원장님, 혹시 답변이 왔나요?” ^^
“말해 놓았는데 아직 연락은 안 왔어요. 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
연락을 주시겠다는 말만 들어도, 마음 한편이 이미 가벼워졌다. 거짓말처럼 머릿속을 누르던 걱정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래도 아직은 거동이 불편하고 자주 주저앉곤 해서, 혹시 가게 된다면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계단도 열심히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장님은 그런 걱정을 전혀 하지 않으신 듯,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셨다. 겉으로는 “안 되더라도 실망하지 않겠다”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그 연락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인스타 스토리에 ‘아싸!! 학회 갈 예정 ㅋㅋㅋ’라고 올리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의사만 가는 학회를 환자가 어떻게 가?” 원장님이 그냥 예의상 하신 말씀 아니야?”
“몸 상태도 아직 좋지 않은데, 재미없는 강의를 들으러 가?”
“***콘서트 있으니까 서울 오면 거기 가자.”
이미 마음은 단단히 정해졌다. 누구도 내 결심을 흔들 수 없었다. 나조차도 내 행동에 조금 놀랐고, 이런 면이 나에게 있는 줄 몰랐다. 오랜만에 친구들도 보고 싶었지만, 그들은 언제든 만날 수 있고, 나는 지금 학회에 온전히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안 돼, 나 못 갈 것 같아. 나중에 톡하자.”
원장님은 아랑곳하지 않으시며 참석 방법을 알아보겠다고 하셨다. 나는 이제 내 손으로 내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는 오만한 자신감에 마음이 단순해졌다.
고통이 영원할 거라거나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제 수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내 몸과 내 삶을 이해하고 선택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학회를 통해 내가 꼭 찾고자 했던 답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내 안에 용기를 불어넣었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한 걸음!!
아프든, 넘어지든, 어쨌든 나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동안 치료와 고통에 묶여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생각하기로 했다. 학회라는 핑계로 치료도 잠시 쉬게 되었다는 사실에 일석이조의 행복감이 차올랐다. 아픔을 잠시 잊고, 새로운 기회에 대한 기대감은 연인과의 데이트보다 더 설레었다.
설렘과 기대감으로 이미 서울 갈 준비를 하며 연락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다. 잠도 조금 설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