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진통제_치료는 약뿐만이 아니다
'우당탕탕!'
거실에 있던 고양이가 갑자기 놀라며 방으로 도망친다.
철퍼덕!!
지난번 앞산에서 다쳤던 꼬리뼈, 이번엔 욕조에서 미끄러져 또다시 다쳤다. 일어나다가 욕조에 이마도 부딪혔다. 한 번 넘어지면 왜 자꾸 다시 다치게 되는 걸까.내 몸은 다친 곳으로 가는 길을 그리듯 끊임없이 어긋난다.
이제는 뭐, 그리 놀랍지도 않다.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삶의 일부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치료실.
내 앞에서 간호사 선생님 두 분이 말을 주고받는다.
“아이구 부었죠? 우야노ㅠㅠ”
“걷는 게 힘들어 보여요.
원장님께 말씀드려야겠어요.”
그 말이 공기 중에 채 떠내려가기도 전에 원장님이 바람에 실린 듯 후다닥 다가오신다.
“넘어지신 거예요?”
이마를 보시곤 살며시 찡그리신다.
“부었네요, 이마는, 어떻게 하다가?”
나는 말끝을 흐리며 욕조 얘기를 꺼냈고 부끄러운 꿈을 누군가에게 들킨 기분이었다.
수회 넘어지는 게 그렇게 수치스러웠다.그러나 원장님의 표정엔 나무 그늘 같은 평온함이 있었다.
“어제, 오늘 컨디션은 좀 어떠셨어요?”
그 물음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요, 완전 잘 걸어요.”
그 말은 진심이었고 약간의 허풍이었고 한 줄기 바람을 따라 떠보려는 연 같기도 했다.
약으로 전두엽 깊숙이 각인된 고통의 흔적까지 모두 지워지는 건 아니겠지만 그때의 나는, 변덕이 죽 끓듯 들끓고 식어가기를 반복하던 감정 덩어리였다. 기분이란 것이 오래 끓는 국물이 아니라 불 조절 안 되는 인스턴트 라면 같아서 끓었다가 넘치고 금세 퍼져버리곤 했다.
그렇게 들끓던 나는 어느 날부턴가 어떤 약도 복용하지 않고 ‘완치’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만큼 기적처럼 회복되었다. 그런데 그 회복이라는 게 비 오는 날 잠깐 개는 하늘 같았다. 단 3일도 온전히 가지 못했다.
바람 한 줄기에 다시 젖었고 기억 한 모서리에 곪아 있던 감정은 다시 부풀었다. 회복은 완성이 아니라 수정테이프처럼 덧칠된 것이었고 그 위로 또다시 삐뚤어진 감정이 쓰이곤 했다.
치료 중 다치고, 또 다치고, 나으면 감사하다가, 다시 아프면 그 감사를 잊었다. 감사하면서도 감사하지 않은 모순은 꽤 오랜 시간 내 곁에 있었다.
원장님이 늘 소리치듯 말씀하신다.
"고관절 제어가 아직 안 돼요.", "동작이 너무 빨라요. 천천히 하셔도 돼요. 급한 거 없어요."
"천천히."
감정은 구름처럼 흘러간다며 하늘을 보듯 마음을 들여다보게 했고 병아리나 강아지 같은 감정의 소리에
덜컥 끌려가지 않도록 마음의 리드줄을 쥐어주셨다.
하지만 나는 수많은 병원을 떠돌다 습관처럼 ‘눈치’라는 갑옷을 두르게 되었고 진료실은 늘 “빨리 말해라, 빨리 나가라”는 무형의 공기로 가득한 전장 같았다.
의사의 무심한 말투, 내 증상을 캐치 못한다는 실망...비우지 못한 불친절함의 잔을 나는 손쉽게 '그들 탓'이라 부르며 비겁하게도 내 죄책감을 외부에 적립했다. 그러다 또다시 모든 원인을 나 자신에게 되감으며 자책의 미로를 빙빙 돌았다.
그 반복은 익숙한 노래처럼 틀어놓으면 자동으로 따라 부르게 되는 내면의 배경음 같았다. 무의식 속에서 ‘천천히’라는 그 한 마디는 파문 없이 잔잔한 연못 위에 똑, 하고 떨어진 빗방울처럼 외부를 탓하다가 다시 나 자신을 탓했고 그 끝없는 왕복은 고정된 레일이 되었다.
이건 습관이 아니라 이제는 거의 취미처럼 고통을 되새김질하는 일.
잊힌 영화의 슬픈 장면을 일부러 다시 재생시키는 듯.
아픈 세계를 걷고 있는 나를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모두가 각자의 속도로 제 세계를 건너느라 고개 한 번 돌릴 여유조차 없었다. 그때의 나는 투명한 방호복을 입고 단 한 명만 통과할 수 있는 고요한 재난구역을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바깥세상은 평온한데 내 안의 세계는 물속처럼 먹먹했고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는 통증은 나를 아득한 섬으로 데려갔다. 아픈 섬... 이 통로는 나만 아는 나의 세계였다.
그 섬에서 나는, 마음의 바람 소리와 몸의 균열음만 들으며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티고 있었다.
세상은 날마다 등을 떠민다.
"더 빨리, 더 멀리."
멈춘다는 건 곧 낙오라는 듯, 모두가 발뒤꿈치를 들고 살아가는 풍경 속에서 멈춤은 죄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멈추지 않으면 언젠가는 무릎이라도 꺾이며 강제로 멈춰지게 된다는 걸 몸이 먼저 배웠다.
자주 아프고, 자주 넘어지고, 자꾸만 내 몸이 말을 안 들을 때마다 그동안 외면해 왔던 말이 뼛속 깊이 각인되어 버렸다. 천천히 가도 괜찮은데... 애써 붙잡고 있던 것들...나는 그것들을 단단한 구조물처럼 여겼지만 실은 물 위에 던져진 나뭇잎처럼 하나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제야 서늘한 진실이 보였다. 차디찬 공기처럼 나를 감싸 안던 외로운 체념...그 감정은 오래된 절망 같기도 했고 처음 마주한 낯선 나 자신 같기도 했다. 그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끝끝내 붙들고 있던 환영을 내 의지로 놓아준 결심이었다. 허상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현실이라는 캔버스 위에 처음부터 나를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연필심처럼 가늘고 섬세한 선으로 삐뚤삐뚤하더라도 천천히. 한 획, 또 한 획. 그려나갔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두 번째 용기가 깨어났던 것이.
비장한 얼굴로 거울 앞에 섰다. 입술을 꼭 다물고 “이번엔 나를 놓지 않겠어.” 다짐하며 스스로를 바라보았다. 고통은 내게 사람처럼 다가와 정면에서 나를 응시하게 만들었다. 피하고만 싶던 그 얼굴을 마주 볼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은 가볍지 않다. 괴롭고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 자체로 치유의 작은 불꽃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시간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처럼 내 마음의 시계를 다시 맞춰주었다.
그날, 의사 선생님의 말이 종일 머릿속에서 재생됐다.
힘들수록 기록을 더 했던 것 같다. 한 날 3번도 썼던 걸 보면 말이다.
23.12.19화
통증이 네 것이 아니라는 생각! 하지만 나는 계속 변해. 그렇다면 통증도 영원한 것이 아니라 결국 변한다는 뜻이겠지. 언젠가는 흐려질 수 있고 혹은, 다른 의미로 자리 잡을 수도 있을 거야. 지금도 너는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어!그냥 그렇게 느끼고 그렇게 흘러도 괜찮아. 수고했어.
원장님께서 고함량 비타민을 먹어야 된다고 하셨다. (어지러움이 2주 정도 있었다.)요즘은 주사가 덜 아파서 기분이 좋다. 행보칸 환자? 백수? 사람들과 교류가 줄어 사회성이 걱정! 나랑 놀아주는 선생님들이 고맙다.
23.12.20 수
통증으로 깨는 것이 일상! 오늘은 원장님이 off라 나도 쉰다. 조금 우울함이 차올라서 누워서 다리운동을 했다. 목이 아프다. 저녁에 음식을 시켰다. 플라스틱 용기가 얼마나 단단한지 열리지 않아 심술이 났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주먹으로 가운데를 톡! 치니까 열렸다. 웃음이 났다. 계란이 두 개나 들어있어서 또 웃었다.
행복은!! 행복하다, 별로다, 판단하려 들기에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사방을 둘러보면 행복이 천진데 삶은 문득 비빔밥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재료가 특별하진 않아도 한데 섞일 때 깊은 맛을 내듯 내 인생도 버무려져서 맛있게(?) 살고 싶다.
그날 밤 일기
부정 나가! 아프다! 깨서 짜증 난다! 두 번 울었다. 병원 가기 싫은데 걷는 게 아프고 힘들다. 다녀오면 행복하다. 긍정회로를 돌려야 한다.
원장님이 자꾸 나를 성장시키게 하는 것 같다.
보인다 느낄 수 있다.
무거운 책임감을 짊어지고 계시는 게...
환자만도 아닌 모두의 몫인듯하다. 잘 이겨내고 싶다. 내일은 웃으면서 지내야지!
12월, 무력감이 찾아오면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과 죽을 용기도 없는 마음 사이 진창 속에 묶여 있었다.
서점에서 몇 권의 책을 고르며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을 자기 계발서들이 지금은 내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장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은 아프면 그 아픔이 전혀 다른 사람의 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공명처럼 어느 한 구절도 내게 낯설지 않다.
고통의 언어와 맞닿은 문장들이 곳에서 숨은 감정들을 꺼내어 놓았다. "우와! 이건 완전 내 얘긴데?" 하며 나는 그 문장에 이끌리게 되었다. 그러면서 의사 선생님과 나눈 대화의 현실감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조언과 치료법이 이렇게까지 내 삶에 투영될 수 있다니 다시 한번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트라우마와 통증, 그 모든 고통이 나를 괴롭혔음에도 불구하고 그 경험을 통해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그것은 내가 반드시 이겨내고 나를 찾겠다는 것이다. 고통은 나를 정의하지 않으며 나는 그 고통을 딛고 일어설 힘을 내 안에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 대신 싸워줄 수 없는 고통이라면 그 무게만큼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
진심은 기술보다 먼저 닿는다.성탄절 즈음, 작은 봉투 하나를 받았다.
하얀 봉투에 정성스레 꾹꾹 눌러쓴 손글씨.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이 카드 보면서 마음 편하게 지내세요.”
입에서 사이렌 소리가 났다. 으아아악!! 눈물과 웃음이 뒤섞여 나오는 진짜 감탄사.
병보다 나를 먼저 봐주는 사람,기술보다 마음이 먼저 닿는 치료실, 아팠지만 덜 외로웠다.
간호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좋으시겠어요. 빨리 나으셔야죠!”
이따금씩 수험생들에게 또는 환자들에게도 카드를 건넨다고 들었다. 그때도 대단하고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엔 그 특별함이 내 몫이 되었다. 죄송하고 감사하고 정말 어쩔 줄 몰랐다.
참,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 선물 중 손에 꼽을 만큼 그 순간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정갈하고 신중한 손길이 그 순간의 감동을 더욱 깊게 새기게 해 주었다. 아무리 좋은 약도 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 무엇보다 소중한 진심을 처방해 주신 의사 선생님께 그날 나는 조금 덜 아팠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빛난다니..."
집에 와서 거울을 보았다.
동태눈에서 내가 그토록 바라던 빛을 찾을 수 있을까 했지만 내 모습만 돌아왔다. 얼마 전, 원장님께 마음을 쏟아내듯 이야기했다. 또 안 좋은 생각이 든다고...움직이면 등이 부서질 것 같았다. 차곡차곡 쌓여 있던 통증이 한순간에 달려들었다. 얼마나 오래 아팠을까... 마음이 뻐렁쳤다.
의사 선생님께 받은 편지 한 통은 약도, 주사도 아니었지만 한동안 나에겐 가장 잘 듣는 천연진통제였다.
의외로 오래 간직할 수 있는 진심은 가끔씩 꺼내 먹는 초콜릿처럼 책장 한편에서 내 마음을 달랜다.
방부제도 없는데 썩지 않고 색도 맛도 변하지 않는 신기한 말들.
" ** 정신건강의학과입니다!"
"안녕하세요! 며칠 전 예약했던***라고 합니다. 제가 건강이 좋아져서 안 가도 될 것 같아서요.
예약취소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급하다고 최대한 빠른 날짜 부탁하던 환자가 며칠 만에 좋아졌다고 하니 병원 측에는 황당했을 것이다.
근데 정말 괜찮아져서 내가 더 황당했다.
집에 와서 방바닥에 콕 엎어져 나 왜 이러지, 왜 이렇게 조절이 안되지... 하릴없이 울었다. 찬바람이 사무치던 행복하면서도 아릿했던 23년 12월.
한참 좋아져서 자신감도 생겼는데 다시 위축이 들었다. 나아졌다는 믿음 위에 서 있었는데 금세 흔들리고 말았다.
삶은, 정말 알 수 없는 비빔밥 같다. 감정이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한다. 행복 한 숟갈, 짜증 한 줌, 불안 조금, 우울 조금, 그리고 어제의 눈물까지, 보기엔 엉망진창이어도, 어떻게 섞어내느냐에 따라 오늘의 나, 그리고 내 삶이 조금은 괜찮아진다. 가끔은 뭘 넣을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비벼야 할지도 몰라서 젓가락만 망설일 때가 있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날은, 그냥 대충 섞었을 뿐인데 뜻밖의 맛이 나는 날이 있다.
행복은 노~오란 달걀
슬픔은 어두운 나물
화남은 빨간 고추장
설렘은 초록빛 채소
불안은 마늘 한 조각
그리움은 참기름 향기처럼 내려앉는다.
따로 보면 짜고, 쓰고, 맵고, 어지럽다. 그런데 다 함께 비벼보면 참 맛있다. 그래서 오늘 저녁, 내 하루를 힘껏 비벼본다. 그 이름도 유쾌(육회)한 비빔밥! 그 안엔 나와 삶이 정말 잘 버무려져 있다. 가끔은 비비는 손이 느리고, 입맛조차 없는 날도 있지만 그런 날엔 그냥 한 숟갈 쉬어가도 괜찮다. 그렇게, 또 하루를 삼킨다. 짠 인생도, 쓴 마음도 한 끼처럼...감정도 기억도 섞여있지만 맛없는 날도 곁들이면 괜찮은 것 같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