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마음 처방 No.001] 감정=구름

감정은 구름처럼 지나갑니다

by 미리나


첫 번째 감정 프로젝트 (2023.12월)


의사의 시간은 48시간이다.

오늘은 의사 선생님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의사의 하루는 24시간 아니, 그분의 시간은 48시간을 사는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것 같았다. 딸바보가 아니라 환자바보라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존경을 담은 표현이다. 그 모습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까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다른 환자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다 고마울 정도였다. 그런 마음 끝에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좋은 것이 생기면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처럼 이 따뜻한 치료도 아버지께 선물처럼 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왜 이렇게까지 '잘'해주시나요?”

그 말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얼른 삼켜졌다. 입을 열었다간 성경의 구절부터 불경의 지혜, 명상의 고요함, 철학의 깊이, 인문학의 질문까지, 세계의 모든 현자들의 언어와 삶의 언어들이 비트처럼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았다. 진료실이 강연장이 되는 건 원치 않았다. 당시 나는 진지함을 오래 붙들기엔 좀이 쑤셨고 조금 서툴렀다. 아마 그분은 담담하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건, 의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나의 혼란이 들킬까 두려워 마음으로만 답했다. 당신의 시간이 길게 이어지기를, 그 48시간이, 다른 환자들에게도 조금 더 많은 치유와 안심이 되기를, 진심을 다해 물개박수를 보냈다. 마음이 먼저 튄 박수, 어설픈 말 대신, 두 손으로 전한 찬사의 몸짓, 그 순간만큼은 나도 그분의 평온에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꽤 자주, 묻지 말아 줘요! 입 안에서 맴돌다 "네." 짧은 대답이 비릿하게 목에 걸렸다. 그 시절 내 상태는 진심을 알고 나면 진심을 받아야 할 것 같은 이상한 의무감이 따라왔다. 진짜 맛없는 밥인데 “너 위해 세 시간이나 걸렸어.” 그 말이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그 밥을 삼키지 못했다. 거짓말을 하면 입 안에 오래 남는 맛이 있었으니까.


모닥불이 피워진 방 안, 사람들은 따뜻하다고 말했다. 나는 왜인지 자꾸 추워졌다. 그 따뜻함을 내가 누릴 자격이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분의 편지 한 장이 한순간에 내 마음의 도화선이었지만 정신과를 쉽게 못 간다는 생각은 마음에 급소를 눌렀다.


정신과 예약도 취소했으니 속이 시원해야 했을 텐데 체한 줄 알고 가볍게 트림했더니 묵직한 것 하나가 위에서부터 끌어올려졌다. 안도일 줄 알았던 감정은 막상 올라오니 무거운 슬픔의 맛을 닮아 있었다. 몸은 놓았는데, 마음은 아직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대했던 해방감은 오지 않고 붕괴만 남았다. 그날, 나는 누군가 쓰다 버린 종이컵 같았다. 포장지 안에 들어 있던 빈 상자.


사실, 원장님은 정확히 건드렸다. 내가 가장 숨기고 싶었던 곳, 말하지 못했던 결핍을.


그때부터 무너진 나를, 천천히 주워 담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감정을 먹통처럼 주렁주렁 달고 다닌다.


감정을 똑바로 마주 보기엔 삐딱선이 놓여 있었다. 감정이 느껴지지도, 흘러가지도 않고 몸에 걸쳐진 짐처럼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크리스마스카드는 나에게는 한 여름날, 이미 흘릴 만큼 흘린 땀 위에 보온 찜질팩을 올려놓는 듯한 과한 친절이었다. 감정이 눈치를 먹고, 진심에 압도당했다. 다 그대로인데 변해있던 건 내 시선이었다. 몸도 그날따라 더 뻐근했고 나는 더욱 작아진 마음으로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왔다.


대실망이었다. 나 자신에게.


감정이라는 파도에 더는 휩쓸리지 않겠노라 다짐했고 그 다짐은 나를 제법 씩씩한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누군가 진심을 다해 차려준 정갈하고 따뜻한 한 상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속이 허해 숟가락만 만지작거리던 날처럼.

"맛이 없어요."라는 말 대신 "너무 맛있네요." 입에 발린 인사말을 꺼내고는 진심은 꿀꺽 삼켜 목울대에 걸렸다. 진심을 피력하지 못한 그 무게가 속을 서늘하게 적시고 있었다. 널을 뛰는 이 감정에 나도 지쳐버렸다.

'왜 이러지? 또 왜 이러지?' 내게 던지는 질문은 반복될수록 무기력해졌다. 내 상태를 설명해 주는 단어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랬다면 나도 조금은 덜 혼란스러웠을까, 남들도 나를 함부로 판단하지 못했을까, 스스로를 변호하는 것 같아 더 쓸쓸해졌다.



“나는 지금 상태가 이런데 고작 기분장애라니!! 기대한 진단명이 아니었다. 갓 그물에서 튀어 오른 가자미처럼 물 밖에서 제 몸을 어쩌지 못하고 날뛰고 있는데 세상은 "너 자신을 사랑해야 해. 자존감을 높여야지."


사랑? 나는 바닥난 배터리를 들고 살겠다고 병원이라는 충전소에 들락거린다.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대체 얼마나 더 나를 끌어안을까. 피가 마른 심장까지도 짜내야 하나.


자존감은 빛나는 무언가가 아니라,

매일 좌절하면서도 꿋꿋이 내 자리를 지키는 그 꾸역꾸역에 있었다.


"신이시여, 하나님, 부처님, 당신이 건넨 이 삶의 숙제는 불공평한 것 같아요. 좋아지게나 하지 말던가요.
그럼 기대도 실망도 안 하게!!" 악에 받쳐 겁 없는 소릴 했다.


의사는 정말 나를 위해 애써주는데 나는 그냥 집 가고 싶다, 말 걸지 말아 주세요, 저 감정 표현 불가능한 인간이에요.’ 이러고 있었다. “많이 힘드셨어요? 혹은 아프셨어요?”라고 물어보면 “그냥 뭐, 살만한 통증이에요.” 답했다. 감정이 머리에서 시작도 안 됐는데 벌써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고 입으로 나가야 할 말들은 혀끝에서 멈췄다. 어떤 날은 울다가 웃고, 웃다가 속상해하고, 미안해서 또 가만히 있고 무슨 감정이 이토록 부주의하게 튀어 다니는지 조절이라는 단어는 나를 스르륵 비켜갔다. 감정이 나를 데리고 노는 느낌이었다.


나는 조종사가 아니라, 그냥 조종당하는 중이었다.


머릿속에서 ‘이건 아닌데... 입에서는 ‘괜찮아요’가 튀어나오고 그러니까, 이건 내 마음이 문제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사방에 날이 서 있는 감정들이 서로 충돌 중이었다.


와장창창!!


온몸이 감정이라는 파편으로 뒤덮여 터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중이었고 그 애씀마저 엉망이었다.



배고프다. 왜 이렇게 맛이 없지? 고개를 돌렸을 때 불어 터진 라면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의 과도한 생각이 소화계뿐 아니라 탄수화물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 걸까, 결과적으로 이건 무의식적 다이어트였다.



2023년 12월

[진단서] 의도 없는 식욕 억제, 과거의 생각에 의한 현재상실, 사고에 의한 섭취 방해


[처방약] 있는 그대로 정 (현재停)

1일 3회 식전 복용, 깊은숨 캡슐 2정, 스트레칭 방울 1회분, 감정 구름정, 감정 유연액, 지금 시럽, 마음 스트레칭정, 회복 패치 5매, 치유 패치 100매


[효능/효과] ‘지금’이 끓어오를 수 있음, 마음이 가벼워질 수 있음

[주의사항] 과거와 미래에 오래 머물 경우 온도와 식감을 잃을 수 있음

과거와 미래를 오가다 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감정의 온도와 식감을 놓치게 된다.
지금 느낀 행복, 슬픔도 그 자리에서 느껴보지 않으면 휘발되어 버릴 수 있다.

생각공장 Finish!!



감정은 피할 대상이 아니라 지나가도록 허락해주어야 한다.

흔들려도 끝은 온다. 그 끝은 나를 성장시켜 준다. 좋았던 기억은 나를 붙잡아주는 힘이 된다. 왜냐하면 나중에 힘든 시기가 왔을 때 그때 참 좋았지!라는 기억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거친 풍파를 겪고도 그때를 여전히 그리워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지금의 좋음을 충분히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미래의 나를 위한 정서적 저축 같은 것이 아닐까. 3개월 만에 트라우마를 잊었다. 아니, 잊었다기보다 트라우마라는 낡은 필름이 갑자기 끊겨버렸다.


어디선가 ‘딱’ 하고 상영이 멈춰버린 느낌.


고장 난 영사기처럼 더는 그 장면이 떠오르지 않았다. 무서웠던 기억도, 몸을 움츠리게 하던 장면도, 기억의 서랍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다. 한때는 흐릿한 상처처럼 남아 있던 장면들도 안개가 걷히듯 사라졌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애써 열 필요도 없는 먼 곳이 되었다. 마음은 평온했고 남은 것은 맑고 투명한 하늘뿐이었다.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의사는 나를 고통의 굴레에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안전한 시간’으로 옮겨주었다.


목에 꽂힌 주사 바늘을 타고 투명한 액체가 목을 타고 뇌로 퍼지는 느낌은 나에겐 포도당 약물이 아니었다.
내 기억과 몸에 남아있던 오래된 공포가 서서히 녹아 사라지는 듯 등 위로 서늘하게 퍼지는 그 청량감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얼음 결정이 내 어딘가를 타고 천천히 흐르며 그동안 굳어 있던 고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깨트려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때로는 그 청량감이 머리끝까지 도달했다. 혈류를 타고 오래된 기억의 먼지를 휩쓸어가며
머릿속 구석구석을 청소해 주는 느낌.


끈적한 공포로 덮여 있던 마음에 한겨울 첫눈이 내리는 듯한 경험이었다. 그 모든 순간이 중독적이었다. 몸이 먼저 회복의 문을 열었고 기억은 그 문 너머로 어딘가에 뿌려졌다.
그렇게 나는 고통을 잊은 것이 아닌, 고통을 더 이상 붙잡지 않아도 되는 상태가 되었다. 그건 잊을 수 없는 자유였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정서적 자산을 축적하셨던 걸까? 그렇게 씨앗을 뿌리셨던 걸까?

언제나 차분하고 침착하게 내가 겪을 고통을 알고 계신 듯 나를 살뜰히 보듬어주셨던 그 날들.


그때는 고통의 시간 같았지만 지금 이렇게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 그 정성스러운 투자가 시간을 거쳐 이제야 꽃을 피운다. 그때, 나를 믿어주셨으니 지금의 나도 있다. 감정이 잦아들다, 다시 떠오른다.

물결이 잠잠해졌다가 또다시 일렁이듯, 어떤 날은 얌전히 가라앉고 어떤 날은 말없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출렁임을 바라보고 견디는 게 요즘 내 하루다. 1년 전, 나는 감정에 먹통이었던 사람이다. 지금은, 감정의 온도를 느끼고 있다. 지금 이 순간의 향기, 온도, 감정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면 충분히 잘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감정은 지금 여기에 머물러 있을 때 제 온도와 맛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다.


과거에 오래 머물면 감정은 식어버리고 미래에 오래 머물면 감정은 아직 덜 익은 채로 남는다. 과거와 미래를 오가다 보면 지금 눈앞에 있는 감정의 온도와 식감을 놓치게 된다. 지금 느낀 행복, 슬픔도 그 자리에서 느껴보지 않으면 휘발되어 버릴 수 있다.


통증이 자주 찾아옴
감정의 흔들림이 지나치면 몸도 함께 반응.

자주 찾아오는 피로감과 신체적 통증이 그 이유다.

과거와 미래를 넘나듦
감정에 휩쓸리다 보면 현재에 집중하기 어렵다.

과거의 아픔이나 미래의 걱정이 현재를 덮어버린다.

과도한 상상력
감정이 깊어지면 그 상상이 현실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런 일이 생길 거야"라는 생각들이 과한 예측이 돼서 지금을 왜곡시킬 수 있다.
지금 느끼는 감정은 따뜻할 때, 살아있을 때 그 자리에서 한 입 베어물 듯 느껴보자.


***님, 걱정 말아요, 지금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습니다. 다 지나갑니다.

지금도 귓가에 음성지원된다.


구름처럼 흘러가듯 감정도 있는 그대로 감상해 보세요.



빈자리에 공허함이 들어섰다. 내가 아팠던 시간이 내게 말을 걸 때 나는 그것이 지나갔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저 숨(만)을 쉬고 있을 뿐인데 그 숨이 나를 조금씩 다시 살아가게 했다.


원장님, 부디 이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이 말 한 줄에 제가 지금 어떻게든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을, 당신 덕분에 저는 힘든 날에도 사랑하는 나의 존재를 부지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온기는 제 삶의 균열을 메운 축복이었습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