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나의 바람을 지켜보는 '용기'
두 번째 감정 프로젝트 (2023.12월)
화려한 야시장, 몸이라는 상점
의사는 이 시장을 정리하려 애쓴다. 환자는 매일 장사꾼의 변덕에 지쳐서 오늘도 어디서 어떤 고통이 나올지 몰라 불안한 눈으로 진열대를 바라본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의사는 묻고, 전날 팔던 환자의 통증은 자취를 감추고 불안과 무기력 새로운 증상이 슬그머니 자리를 차지했다. 의사는 진심으로 돕고 싶다. 환자는 정말 좋아지고 싶다. 하지만 이 몸이라는 장사꾼은 자기 마음대로 물건을 내놓는다. 조율되지 않는 진열, 설명할 수 없는 재고...
시장은 매일 같으면서도 전혀 다르다. 그래도 의사는 포기하지 않는다. 환자도 병원에 온다. 그리고 둘은 생각한다.
"오늘은 이 진열대부터 치워볼까?"
"이 고통은 어떻게 재배치하면 덜 괴로울까."
완벽히 정돈되지는 않겠지만 의사, 환자 함께라면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큰 병입니다.
병원에서 진단 하나만 받아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주변을 봐도, 드라마를 봐도 그 한마디에 세상이 정지한다. 문제 있는 사람이 되고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던 일상이 위험한 시간이 된다. 병은 몸보다 마음을 먼저 덮친다.
8년 전, 뇌종양 진단을 받았을 때였다. 교수님은 무심하게 말했다.
종양의 크기와 수술 방법을 설명했지만 그 차가운 말투가 불안을 키웠다. 수술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죽음과 악수한 기분이었다. 이전에 견딘 수술들은 멀쩡히 해냈는데 '뇌'라는 말 앞에선 흔들렸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게 끝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보통의 하루들이 사실은 빛나는 날이었다. 보석은 늘 지나치고 나서야 반짝인다. 불안할 때마다 나는 삶을 아는 척했다. 어떤 불행이 닥칠지 미리 예고해 두면 그 불행이 재미없어져서 나를 비켜가주지 않을까. 그런 이상한 계산이었다. 실은 아무것도 몰랐다. 덜컹대는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였다. 이어서 ㅅ브란스 교수님을 만났을 때 추적 검사만 하면 된다고 하셨다. 결과적으로 수술은 하지 않기로 했고 그날 병원을 나올 때는 마음이 조금 더 가벼워졌다.
백발성성한 교수님이 차후에도 늘 웃으시며 "추적검사 해야 하고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어! 근데 지금 괜찮아!" 반말이었지만 신뢰의 상호성을 느꼈다. 말만 반말이었지 태도는 다정하고 근엄했고 짱 친절하셨다. 나는 아무래도 다정한 의사 선생님을 좋아하나 보다. 나는 그것을 일종의 정서적 계약이라고 느낀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묵시적으로 맺어지는 그런 종류의 맥락이랄까.
안 나으면 어떡하지?
더 아프면 어떡하지?
이러다 진짜 큰일 나는 거 아냐?
내가 어떤 질환이 있다는 걸 알면 몸을 그렇게 아끼고, 닦고, 다듬어놓고, 막상 또 다른 이유로 아프면 그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아무리 잘 챙겨도 아픔 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스팔트 위에 쏟아진 물처럼 일순간에 퍼져버린다. 막으려 할수록 몸은 더 젖어간다. 하루를 망치는 건 의외로 간단하다. 단 한 번의 불안과 두려움이면 충분하다. 그 둘은 하루를 삼키고 하루는 일주일을 꿀꺽 삼키고 일주일은 한 달을 먹어치운다. 그렇게 어느새 모든 게 삼켜져 버린다. 걱정은 나를 포장하는 포장지다. 벗겨지려 할수록 더 칭칭 감긴다. 결국, 나는 나를 꺼내지 못한 채 더 구겨진다.
그렇게 1년, 2년
슬금슬금 ‘사는 것’과 ‘버티는 것’ 사이에서 길을 잃는다. 사는 줄 알았는데 그냥 닳아가고 있었다.
언제부터 삶은 해야만 하고, 되어야만 하고, 이겨내야만 한다는 알 수 없는 계약처럼 바뀌었을까.
왜 속고 속아 이상한 계약서에 서명해 버린 걸까. 삶은 원래 그런 게 아니었는데... 어릴 때는 그냥 넘어지고 울다가 땅바닥에 주저앉았다가 문득 개미를 발견하고 웃고 또 웃고 그랬는데...
흙바닥을 맨발로 뛰어다니던 때 구름 한 조각만으로도 하루가 꽉 찼던 시절, 그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는가! 어른이 된다는 건 충분함을 자꾸 깎아내는 일이었다.
삶은 전투 끝에 얻어내는 트로피가 아니라
흐르는 강물에 발끝을 담그는 일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걱정을 떠내려 보내고 두려움을 실어 보내고 지금 이 물살 위에 가만히 떠 있는 것.
조금 덜 걱정하는 하루
조금 덜 애쓰는 하루
조금 더 살아 있는 하루가 아닐까!
그렇게 하루를 천진하게 살아가다 보면,
아픈 몸도, 아픈 마음도 언젠가 물 흐르듯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주치의 선생님 메시지 발췌 2024.05 ☁️
지금도 힘겨울 때면 이 메시지를 본다.
근데 이렇게 귀여운 말이었나?
"천진스럽고"
작년에 보자마자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가장 진짜라는 걸 그 순간 알았다.
누군가 내게 자유롭게, 천진스럽게 "놀아도 괜찮아"라고 말해줬다면...
나는 애쓰며 어른인 척하지 않았을 텐데,
더 오래, 더 자유롭게 나로 살았을 텐데.
세상이 나를 무조건 이해해주지 않아도 나 자신은 그럴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 더 부드럽게 나를 안아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니, 아픔이 조금 덜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천진스럽게 살리라!
지켜보는 용기를 가지길
마음속에 쓱 내려앉았다.
생각이 아니라 감정이었다.
말도 없이 들어와서는, 자리를 잡았다.
불안과 두려움을 향해 으름장을 놓았다.
“그래, 와도 된다고!! 대신, 주인 노릇은 하지 마.”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다독였다.
예전에는 감정이 파도처럼 쓸어갔다.
내가 바라는 것이 나를 무섭게 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이제는 그 바람이 나를 데려갈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 바람은 나를 흔들기도 하지만 어쩌면 어디론가 이끌어줄지도 모른다.
그리고, 주치의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사실, 늘 나를 바다라고 생각했다.
넓고, 깊고, 쉬이 잊히지 않는 바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나는 한 번도 나에게 잠수해 본 적이 없었다. 그저 해안가를 맴도는 관광객에 불과했다.
사진을 찍고, 예쁘다 말하고, 모래사장에 가만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내가 내 바다인 줄도 모르고.
모래처럼 흩어지던 마음이, 이제는 바람에도 버티는 법을 안다. 조금씩 단단해지는 중이다.
그걸 안다.
이젠 정말 안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것!!
단순한 진심 하나 믿고 나만의 바람을 따른다.
어디로 데려가든 그 바람이 내 바람일 테니...
길이 거칠면 발을 더디게 디디면 된다.
오늘도 걷는다.
그 끝에 작은 평온 하나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별거 아닌 줄 알았다.
정말 별거 아닌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늘 쓰던 컵, 늘 듣던 음악, 늘 걷는 길.
어쩌다 한 번쯤 없으면 허전한 것들.
그러니까 있는 줄도 모르고 살다가 없으면 허둥지둥 찾게 되는 것들.
오늘도 그 컵에 물을 마셨다.
손에 쥐었을 때 딱 그만큼 잡히는 두께, 입에 댈 때 덜컥하지도, 설렁하지도 않은 온도.
예쁘지는 않은데 나를 지켜줬다.
마음이 텅 비었을 때 몰래 안에서 물을 채워주는 컵이었다.
오래된 밴드의 드러머처럼 늘 뒤에 있는.
눈에 안 띄지만 없으면 안 되는.
나의 컵. 나의 드러머.
어떤 날은 너무 별일이 없어서 울컥했다.
울컥했는데 또 그 별일 없는 하루가 내일도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무심히 적어둔 메모장 속 문장 하나, 아무 말도 없이 옆에 앉아준 사람, 후루룩 먹은 따끈한 국물 한 숟갈.
처음엔 다 별거 아닌 줄 알았다. 근데 다 나를 살게 했다. 살맛까지는 아니어도, 살만하게는 했다.
오늘도 그 ‘별거 아닌 것들’을 마음의 서랍에 곱게 접어 넣는다.
나는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학회만 다녀오면 다 괜찮아질 줄 알았다.
마치 신입사원이 ‘이 프로젝트만 끝나면 인생 펴진다’고 믿는 것처럼.
세상 모든 문제가 ‘몇 가지 조건만 맞히면’ 풀릴 거라는 조금은 위험한 신념에 매달려 있었다.
의사 선생님의 좋은 말, 통증의 원리도 나름 머릿속에 넣었겠다, 그러고 나면 잘 풀릴 줄 알았다.
마음도, 몸도, 내가 조종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랬다.
근데 몸은 지식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식은 무기였지만 그 무기를 휘두를 손은 덜덜 떨렸다.
뭔가를 알게 되면 그 알게 된 것들이 나를 다시 흔들었다.
앎은, 힘이기도 하지만 힘이 부담스러운 날엔 짐이었다.
통증을 잡으러 병원에 갔다.
"오늘은 물리치료만 받고 갈까? 무력하니까!"
무력해서 그런 건지, 무력해지기 싫어서 그런 건지.
“허리를 곧게 펴 보세요.”
“호흡 한 번 해보세요.”
“천천히 깊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천천히 내쉬세요."
의사 지시에 따라 숨을 들이쉬었지만 숨을 쉴 때마다 등이 아파서 못하겠다고했다.
'집중이 잘 안 되네." 속으로 중얼거렸다.
명상도, 호흡도, 무기력한 지금의 나에게는 버거웠다. 차라리 넘어지고 부딪히더라도 몸을 좀 쓰고 싶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는 건 지금의 나와는 영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머릿속에선 "오늘 누구 생일이었지?"
"왜 이렇게 목이 아프지?"
"나 잘 살고 있는 걸까?"
허공 속 루프에 갇혔다.
통증이 줄어든 날엔 정신이 산만해지고 기억을 붙잡다 감정에 빠지고 감정을 누르다 통증이 튀었다.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가만히 있으면 '나'라는 사람이 사라질까 봐.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나날들이었다.
그날 아침.
눈뜨자마자 밤사이 고드름이 목덜미에 꽂힌 것처럼, 누가 내 경추에 얼음조각 넣은 줄 알았다.
이불은 저쪽으로 탈주했고 폼롤러는 침대 밑에서 뒹굴거리고 꿈에서 철권을 뛰었나 보다.
낭만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폭격 크리스마스가 되겠군!
[진단서] 증상명: 감정 휘몰이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
[진단명] 소진전초기 (Pre-Burnout Phase)
정서구름반응증(Emo cloud Reaction)
상태: 마음 배터리 20% 이하
처방: 아무것도 하지 않기 + ‘나’에게 집중
[처방약] 나 괜찮정 (自安停)
1일 필요시 수시 복용.
불안 차단 패치 10매
명상 10분
있는 그대로 정 30분
주의사항 무기력을 저항하려 하면 더 깊어질 수 있음.
이 감정이 곧 나라는 착각 금지.
[효능/효과] 스스로에게 관대해질 수 있음.
원인 모를 피로가 걷힘.
감정의 파도에 중심을 잡을 수 있음.
[부작용] 졸릴 수 있음.
갑자기 웃거나 눈물이 나올 수 있음.
무기력을 즐기세요.
마음이 흐린 날에도 감정을 억지로 맑게 하려 애쓰지 마세요. 구름처럼 지나가는 중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오늘은 꼭 생산적일 필요 없습니다.
가장 빠른 회복은 저항하지 않을 때옵니다.
그렇게 끝날 것 같지 않은 감정의 대환장 파티는 막을 내렸다. 애프터까지 끌려갔고 남은 건 감정의 숙취였다. 잔해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쓸어 담을 힘도 없어서 그냥 바라만 봤다. 기분은 끝났는데 여운은 마음속에서 구질구질하게 눌어붙어 있었다.
언제나 풀리지 않는 질문 앞에 선다. 의미 없어 보이는 것만 같은 일상 속에서 ‘이건 분명 무언가를 뜻할 거야’라며 의미를 덧붙여가며 살다 보면 그것이 삶을 견딜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또 한편, 매 순간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지치게 했던 건 아닐까.
그냥 흐르는 대로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고 살면 조금 더 평온할 수 있지 않을까.
정답은 없었다.
세상은 말한다. 과거에 머물지 말고 지금을 살라고.
나에게 과거는 아픔만을 기록한 시간이 아니었다.
아팠지만, 충만했고, 힘들었지만, 매 순간 진심이었고 그 모든 것들이 내게 여전히 살아 있다.
잊는 것이 지금을 사는 것조차 불성실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시간들은 내 몸과의 대화였고 회복이라는 희망을 가졌던 마음의 기록이었다.
오늘도 나는 그 시절을 놓칠세라, 잊힐세라, 기억들을 쓸어 담는다. 아픔 속에서 피어난 작은 웃음들, 눈빛 속에 담긴 따스한 온기들, 그 모든 것들을 꾹꾹 눌러 담으며 나는 그 고락의 여정을 ‘행복’이라 부르고 싶다.
고통은 흔히 개인의 내면에 국한된 체험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
몸이 아프면 나의 일, 마음이 괴로우면 내 이야기.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고통을 설명할 때 늘 조심스럽다.
“이게 정말 아픈 건지, 아니면 내가 예민한 건지”부터 먼저 따진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겪는 고통은 정말 ‘진짜’ 고통일까?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고통은 혹시 더 깊고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은유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보면, ‘진짜’라는 말부터가 애매하다.
고통을 정확히 정의하려는 시도일 뿐, 고통이란 이름조차 고유하지 않다.
누구에게는 날카로운 통증이고 누구에게는 텅 빈 허무감일 수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고통’이라는 단어 아래 묶여 있다.
나는 고통을 불편함이라고만 여겼던 것을 반성한다.
내가 경험한 고통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무엇보다 이해 불가능에 가깝다.
한 사람이 문지방에 발을 부딪힌 순간의 상상 속 통증과 다른 이의 수술 후 고통은 분명 질적으로 다르다.
하지만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고통이란, 서로의 느낌을 동일선상에 올려두게 하는 말 같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이해한 척하는 위태로운 말처럼 느껴져 그만큼 외롭고 그래서 또 필요한 말이다.
이 고통의 계절을 나는 ‘장마철’로 비유하고 싶다.
비는 누구에게나 내린다. 비를 보며 화를 내는 이는 없다. 누구나 비에 젖고, 기다린다.
그리고 믿지 않는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질 거라는 것을!
몸도 마음도 고통이 한창일 땐 그게 전부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계절은 바뀌고 몸은 스스로 회복하려는
힘을 가지고 있다. 고통은 '악천후'다. 피할 수는 없지만, 지나간다.
지금 이 시기는 ‘장마철’이다. 이 계절은 누구의 잘못도, 결함도 아니다.
다만, 통과해야 할 삶의 한 국면에 불과하다. 빗속에서 춤추는 법은 아직 배우지 못했지만 비를 어떻게
맞을지를 배우고 살아있는 나를 알아가는 법을 배운다. 고통은, 꽁꽁 얼어붙은 하나의 계절이었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이제야 나를 찾아간다.
그리고 나는, 나를 이제는 진심으로 이해한다.
증상 하나로도 들썩이게 했지만 치료 내내 참으로 많이 배웠던 '행보칸 환자'였다.
마음공부의 시간은 고통과 안도의 리듬이 교차하는 화려하지만 어딘가 허물어진 야시장 같았다.
하지만 그분은 억지로 물건을 치우지 않았다. 고치려들지 않았다.
대신, 어떤 아픔은 접어두고 어떤 아픔은 바라보는 방법을 알게 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정신과는 낯선 골목 간판처럼 멀어져 갔다. 이제 시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픔이 진열된 골목을 지나며 "오늘은 이 정도면 잘 버텼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할 줄 알게 되었다. 고통과 안도가 뒤섞인 이 시장 한가운데 의사와 환자는 작은 리듬을 만들었다. 불완전하지만 아름다운, 살아 있는 시간의 리듬을...
✿ 고통을 배울 건가 피할 건가! 당신은 지금 어디쯤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