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에 취해버렸다
몸은 똑똑하다. 생각보다 훨씬.
척척박사처럼 먼저 알아챈다.
기지개 한 번 켰을 뿐인데 목에서 ‘뿌드득’.
날이 궂은날이면 그 소리가 두 번이고 아픔은 곱절로 찾아온다.
내 몸은 늘 그랬다.
아침이 제일 아프고 이부자리는 늘 전쟁터.
꿈속에서 대체 누구랑 싸운 건지 기억도 안 난다.
비틀비틀 화장실로 가니 얼굴이 벌겋다.
"열나네."
어쩐지, 심상치 않더라니...
텅 빈 방,
스산한 아침.
정말 다사다난해서 웃음이 났지만 입 끝이 무거웠다.
“송년회래.”
흥청대는 분위기가 경쾌하게 들리는데 나는 아니다.
서울엔 언제 오냐며 톡이 몇 번 울려서 얼른 무음으로 바꿨다.
방 안은 조용하고 창밖은 어둡다.
불도 안 켜고 그냥 앉아 있었다.
올해는 그냥 좀 쉬기로...
거기까지 내 몸을 데려가는 일이 막막했다.
다리도 아직 믿을 수 없고 마음도 그렇다.
거울 앞에 다가가 내 눈을 내가 한참 바라봤다.
괜히, 어깨를 한번 두드렸다.
"고생했지. 정말 많이! 수고했다 나야."
사실 괜찮다고, 누군가 말해주길 조금 기다리고 있었다.
오래 서 있으면 스르륵 힘이 빠져 주저앉기 일쑤라 짝다리를 짚고 섰다.
그날도 그렇게 균형을 어설프게 맞춰가며 병원 내부를 바라봤다.
한 걸음 내디디는 것보다 가만히 버티는 게 더 힘들었다.
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오전 8시 30분
병원 가는 날!
환복도 해야 하고 병원에 도움 됐던 운동기구가 있어 하기 위해 일찍 도착했다.
자동문이 ‘드르르륵’ 열릴 참인데 오늘따라 문이 이상하게 느릿하다.
평소보다 조금 더 곧게 서서 앞을 보았다.
"멈칫"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장면이 펼쳐졌다.
영화에서도, 의학 드라마에서도 본 적 없는 풍경이었다.
이상하리만치 따뜻하고, 이상하리만치 들뜬 분위기였다.
간호 선생님들은 산타 머리띠를 쓰고 있었고 나에게도 씌워주었다.
모두가 어린아이처럼 웃고 있었고 나보다 먼저 온 몇몇 환자분들과 마주 보며 자연스레 웃음을 나눴다.
원장님은 보자기에서 정성스레 선물을 꺼내 한 사람, 한 사람의 손에 쥐여주셨다.
선물을 건네는 의사와 그걸 받아 행복해하는 환자.
" ***님, 올해 참 많이 우셨어요.
선물드려도 되나?ㅎㅎ
내년에는 웃는 날만 가득하셔야 돼요."
주위 선생님들도, 나도 웃었다.
아니라고, 그렇지 않다고 하고 싶었지만...
3개월 간 많이도 울었다.
괜찮지 않았던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잠들어 있던 무구한 동심도 사르르 눈을 떴다.
시간조차 잠시 멈춘 듯 모든 게 느릿하게 흘러갔다.
단체 사진을 찍자던 말에 얼굴이 붉어져 있던 터라 잠시 머뭇거렸지만 간호 선생님이 등을 밀었다.
“아까 사진 못 찍었으니 원장님이랑 찍으셔야죠.”
포즈를 잡아주고 구도를 맞춰가며 순간을 담아주셨다.
그 장면은 누군가에겐 흔한 사진 한 장일지 몰라도 내겐 고통의 긴 시간을 견뎌낸 훈장처럼 느껴졌다.
두 번 엉덩방아도 찧고 주저앉았지만 넘어져도 행복했다.
신기하게도 병원에 오면 아픔이 덜 느껴지는 날이 있는데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거울 속 웃고 있는 내 얼굴을 오랜만에 조금 오래 바라보았다.
나 자신의 모습이 조금 어색하면서도 참 고마웠다.
진료 전, 모두가 데스크 주변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과자 한 조각을 나눠 먹으며...
“여드름이 왜 이렇게 크게 났어요?”
“오늘도 컨디션 안 좋아 보여요.”
“쌤도 오늘따라 힘이 없어 보여요.”
이런 걱정 섞인 말들이 오가다가 어느새 화장품 얘기로 넘어갔다.
“요즘 그거 좋다던데요.”
서로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며 웃고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간의 본질은 고립이 아니라 고통과 연약함을 매개로 서로를 감싸 안으러 이 세상에 파견된 건 아닐까."
비록 강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아픔을 알아볼 줄 아는 눈을 가졌고 그 곁에 머물 줄 아는 따뜻한 본성도 지녔다.
그것은 말보다 깊은 이해.
상처 위에 손을 얹을 수 있는 마음.
신은 인간에게 큰 능력을 주셨다.
산타복을 입은 그가 다가오자 커다란 옷깃과 붉은 팔소매가 내 피부에 넘실거렸다.
왜일까, 의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익숙한 흰 가운이 아니어서였을까.
나는 분위기에 약하다.
주사를 놓는 손길에 쉽게 믿음이 가지 않았다.
익숙함이 만든 착각, 인식이 만든 믿음은 항상 나중에야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원장님은 내게 칭찬을 툭툭, 마치 갓 튀긴 감자처럼 건네셨다.
“지금 너무 좋아지고 있어요. 잘하고 계세요.
잘 따라와 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지셨어요.”
아직 할 게 많다며 웃으셨고
“다음 주에는 꼬리뼈, 목, 골반 중 하나는 마무리해야죠.” 이런 말들이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나라고 다를까.
말 한마디, 눈빛 하나로 바다 밑바닥에서 천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심연에 가라앉아 있던 나를 누군가 건져 올렸고 마음 안에서 춤추기 시작했다.
물속이든 삶이든 어디서든 숨 쉴 수 있다면 괜찮았다.
그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한 없는 고통에 밑줄이 그어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통증, 굴릴수록 커지는 눈덩이 같은 증상들.
그 무게는 내 하루를, 계절을, 해를 끌고 갔다.
올해 안에 이걸 끝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발...
그건 소원이라기보단 기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나는 생각보다 쉽게 부서지고 또 생각보다 금방 회복됐다.
그걸 굳이 ‘치유’라 부르지 않아도 몸은 먼저 알아차렸다.
회복은 늘 그렇게 별안간 몰래 다가왔다.
"죽고 싶다"는 말은 자주 반복되다 보면 일상의 조미료가 된다.
처음엔 혀끝을 얼얼하게 만들지만 어느새 밥상 위에 꼭 올라야 할 반찬처럼 익숙해진다.
옷에 밴 냄새처럼, 아무리 털어내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그 말은 내 마음의 색이 되었고 내 몸의 무게가 되었다.
사람들이 내게 말했다.
'괜찮아요.'
'잘하고 있어요.'
'당신을 보면 힘이 나요.'
'고마워요.'
'늘 응원하고 있어요.'
'늘 기도하고 있어요.'
그들은 헝클어져 있던 마음의 구석을 풀릴 듯 위태롭던 곳을 엮어주는 실처럼 나를 조금씩 메워주기 시작했다.
더 이상 살갗을 기어오르던 고통이 몸을 지배하지 않았다.
몸을 말아 쥐지도 않았고 숨을 삼키듯 울지도 않았다.
그리고 나는 고통의 진원지가 내가 아니었다는 걸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고통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졌다.
수시로 찾아오던 통증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은 적도 꽤 많았다.
처음에는 치료란! 망가진 나를 수리하는 일인 줄 알았다.
문제투성이인 나, 어딘가 결핍된 나, 흐트러진 나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일!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반듯하게 돌려놓는 일!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그 정상은 안갯속에 떠 있는 풍선 같았다.
닿을 듯 닿지 않아 자꾸만 손을 뻗었고 그러다 문득, 이제는 그 끈을 내가 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손에 멍이 들고 나서야 알았다.
그게 내가 갈 곳은 아니었다는 걸.
나의 감정상태는 "고침"이 아니라 '이해'였다.
왜 그렇게 반응했는지, 왜 그렇게 아팠는지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치유가 시작되었다.
행복감이나 안정감은 뇌에서 천연 진통제를 분비시킨다고 한다.
그날은 정말로 뭔가 더 커져가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 기운은 내 몸을 억지로 움직이게 하지 않고 그저 그대로 가만히 놓아두게 했다.
그렇다면 마음이 먼저 낫기 시작했던 것이다.
며칠 후, 고관절 통증은 80% 이상 가라앉았고 원장님도 "이제 씩씩하게 잘 걷네요"라며 흐뭇하게 웃어주셨다.
나는 돌이 지나 걷기 시작한 아기처럼 세상의 걱정도, 체면도 없이 걷는 것 자체가 자랑이던 그때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걸을 수 있다는 건 실은, 매우 매우 특별하고 생각할수록 기이한 현상이다.
무게를 가진 존재가 쓰러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건 평범한 아니, 놀랍고도 어마무시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2023년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던 감정의 먼지를 마침내 털어냈다.
그날 이후, '트라우마'의 ‘ㅌ’자도 기억나지 않았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한 사람의 삶을 이어가는 데에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길이 있다.
그 손길들에는 "따뜻한 눈빛"과 "다정한 연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도 누군가의 삶에 잔잔한 파문 하나쯤은 일으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잠시 흔들리더라도 고요로 이끄는 그런 물결. 그게 바로 내 삶의 의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정신과적인 치료까지 해주신 원장님께 나는 꼭 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겠다고 주먹을 불끈 쥐고 다짐했다.
이상한 책임감이 들었다.
그분을 뵐 때면 갈 곳 없는 형제자매들을 사택에서 품어주시던 어린 시절의 교회 목사님이 떠올랐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품어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참 닮았다.
오늘 내 하루는 어떤 감정의 알고리즘을 타게 될까.
좋아졌다가 가라앉았다가, 이유 없이 울컥했다가 괜찮아지는 하루.
이 감정들을 어떻게 따로 떼어 놓을 수 있을까.
기분이 하루를 만들어가고 하루는 다시 기분을 덧칠한다.
감정은 고정된 마음은 없고 지나가는 파도 같다.
파도를 붙잡으려 할 때,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슬펐던 것도, 외로웠던 것도 지나고 나면 희미해진다.
이 감정은 영원하지 않다고,
나는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된다고 늘 주문처럼 속삭인다.
성탄절 이틀 전, 마음을 가득 채운 그 날!
"망한 크리스마스가 될 거야"라고 믿었던 나의 사고가 얼마나 현실을 왜곡했는지 생각이라는 건 얼마나 덫이 되는지...삶의 선물을 가릴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생각에 갇히지 않으면 삶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선물을 준다.
아다리가 맞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특별한 성탄절 행사였다.
원장님께서 전공의 시절부터 성탄절마다 산타복을 입으셨다는데 얼마나 오래된 다정함일까.
그 마음이 해마다 쌓여 눈에 보이진 않아도 수많은 환자들 마음 위에 포근히 내려앉았겠지.
나도 환자 입장으로서 늘 같은 마음으로 사랑을 나눠주셔서 참 감사하다.
산타복 속에 담긴 따뜻한 진심이 누군가의 추운 마음에 온기가 되었다는 걸 나는 안다.
앞으로도 겨울을 기다리는 아이들과 어르신들 곁에 그 웃음과 포근한 기적을 오래도록 부지런히 전해주셨으면 좋겠다.
언젠가 시간이 쌓이고 세월이 깊어져 흰 눈보다 고요한 주름과 소복이 쌓인 흰머리가 얼굴과 머리맡에 내려앉더라도 그분의 따뜻한 발걸음만은 멈추지 않기를.
세상은 늘 변덕스럽고 가끔은 마음이 지치더라도 어떤 상황에서도 그분의 온기만은 조금도 줄지 않고 이어지기를.
그를 기억하는 마음들이 오래도록 기다릴 테니 그 기다림이 그분들의 길을 밝혀주기를.
산타의 건강도, 기적처럼, 이야기처럼 흰 눈과 흰머리 사이에서도 오래도록 따뜻하게 함께하기를...
나는 다시, 잦아든 물결 위를 맴도는 한 점의 빛을 오래도록 바라본다.
사라지는 것이 있고, 남는 것이 있다면 그 빛은 분명 마음에 남는 쪽이었다.
‘가라앉는 물 위의 반짝임.’
고통의 끝자락에서 처음 마주한 가장 따뜻한 희망, 슬픔이 다 젖고 난 자리에 평온하게 피어난 빛.
내가 살아 있음을, 그리고 살아내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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