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뮤지엄, 라익스뮤지엄 (Rijksmuseum)
네덜란드로 미술관여행을 가려한 단 하나의 이유가 페르메이르다.
미술을 좋아한 후 몇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많은 작품을 보고 그 작가들을 알고 그들의 삶을 알게 되는 것이 좋았다. 그러다 보면 마음에 하나둘씩 담는 작가가 생긴다. 작가들을 마음에 담다 보면 대표작은 물론이고 그 옆의 다른 어떤 작품이 더 좋아지곤 하는데 그러면 그 작가가 더 좋아진다.
그래도 좋았다가 싫증이 나기도 하고 더 좋은 작가가 생겨 까맣게 잊기도 하며 내 마음에 여러 작가들이 들어왔다 나갔다 머물렀다 하는 중에 내가 오래 멈춰 흔들리지 않는 작가가 있어 '이 사람이 내 최애인가' 생각들게 한 작가가 바로 페르메이르다.
그는 알폰소 무하나 케테 콜비츠처럼 비장하지도 않고 피카소나 모네, 윌리엄 터너 처럼 대표성을 갖는 것도 아니며, 반고흐나 모딜리아니처럼 비극적이지도 않다. 그의 삶은 축약하자면 결혼을 잘해 처가덕을 봤지만 자식이 많은 집 가장으로 한 도시에서 평생을 살며 충실히 그림을 그린 보통의 화가이다. 아내 사후 하녀와의 염문같은 류의 이야기는 사소하다.
그는 대작을 그린 사람도 아니고 평생 그린 그림이 36점 정도로 적다. 그림의 스타일도 거의 정해져있다.
그런데 그런 그의 작품이 좋다.
그의 작품은 단정하고 정밀하며 시각적으로도 스토리적으로도 켜켜한 겹을 가지고 있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대단한 스펙터클의 주인공 스토리가 아니라 그 시대 소박한 플랑드르 지방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진다. 들어가서 펼쳐지는 삶은 제각각이다. 참 신기한 노릇이다.
그런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보러 가는 것이다.
먼저는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인 라익스뮤지엄(Rijksmuseum)에 갈 예정이고 몇일 후 마우리츠하위스로 가서 또 페르메이르를 볼 것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클텐데 걱정을 한아름 안고 라익스로 향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뮤지엄스트리트에 반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시립미술관등 유명 미술관들과 함께 자리잡고 있다. 물론 뮤지엄 스트리트 가장 중심에 자리를 잡고 다른 미술관들을 거느리는 느낌이다. 나는 이 지역에 호텔을 잡고 도보로 매일매일 여러 미술관을 드나들었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인 라익스 뮤지엄 (Rijksmuseum)은 국립의 이름에 걸맞게 건물부터 훌륭하다. 나중 얘기지만 안쪽의 뮤지엄 카페도 기가 막히다.
미리 예약을 하고 가서 바로 입장을 하고 꼭대기 층부터 찬찬히 걸어내려왔다. 주요 작품은 2층에 가장 많다.
여기가 2층
이 층은 페르메이르와 렘브란트가 씹어 먹었다고 보면 되는데 페르메이르의 <우유를 따르는 하녀> <골목길> <연애편지> <편지 읽는 여인>의 총 4개 작품이 있고 (페르메이르의 작품 편수를 생각하면 라익스는 모국 버프 받고 최고의 컬렉션이다), 렘브란트의 그 유명한 <야간 순찰>이 가장 중심대형 유리벽 안에 전시되면서 그의 또다른 대표작인 <유대인 신부> 아들 티투스의 초상화, 그 자신의 초상화등 소위 유명작품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페르메이르의 작품 4점이 전시되 있는 공간
이른 오전에 갔는데 이미 이 곳은 사람들로 빽빽하다.
작품들이 사람의 눈높이에 걸려있고 큰 호수가 아니라 머리 위로도 보이는 부분이 적어 사람들이 빠지길 한참을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려 드디어 본 <우유 따르는 하녀>
이 분이 바로 페르메이르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두 여인 중 한명이구나~
(다른 한명은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 곧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에서 볼 예정임).
페르메이르를 몰라도 이 그림은 본적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그림
왼쪽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고 그 안쪽으로 당시 생활가구와 소품들이 놓이면서 그림의 주인공이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은 페르메이르의 화법 그대로다.
정교한 붓질로 그림에 거친 부분이 보이지 않으며 레드와 블루 옐로우의 아름다운 색대비와 조화가 그림을 한결 세련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부드러운 빛과 그림자 표현이 그림에 따뜻하고 풍성한 양감을 불어넣어 준 것이 너무 좋다.
이 여인을 두고는 갖가지 성적 해석들이 나오는데 그런 부분도 물론 있지만 내게 더 많이 보이는 것은 그녀의 고단한 얼굴과 노동으로 단단해진 근육들이다. 마른 체구가 아닌 풍만한 몸매의 젊은 여인은 곱고 말랑한 살결을 갖았다기 보다 탄탄한 생활근육을 가졌다. 페르메이르는 간단히 그녀의 팔을 보여주는 것 만으로 그녀의 삶을 어떠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수 있게 해준다. 게다가 그녀의 얼굴에선 젊은여인의 싱그런 활기보다 무념한 태도가 베어 나온다
힘을 뺀 그녀의 표정이 그녀의 몸이 가진 생기와 대비되 묘한 긴장감과 함께 매력이 터지는가 보다.
파란 식탁보와 노란 빵의 대비, 파란 (앞)치마와 붉은 치마의 대비. 그렇게 색이 쌓이고 가장 위 여인의 상의에서 밝게 빛나는 노란색은 그림의 정점을 이루었다. 그녀의 상의 색이 노란색이 아닌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이번 암스테르담/헤이그/브뤼셀의 모든 작품을 보고나서 가장 좋았으며 직접 본 전세계 여러 미술관의 무수한 작품들 중에서도 카스파르의 <바닷가의 수도승>과 함께 가장 마음에 두게 된 작품
<골목길>
책에서 처음 이 작품을 보고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늘 상상했었다. 엄청 좋겠지.. 상상은 했는데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
내가 글을 써야 되는데, 써야 되는데.. 생각은 하고 6개월이나 지나 글을 쓰게 된 핑계를 이 작품에 둔다 해도 아주 거짓은 아니다. 나는 내가 받은 감동과 마음의 동요를 글로 써낼 재간이 없고, 허투루 쓰자니 그 순간이 그저 평범하게 글로 박제될까 두려웠다.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이 그림을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고 확대도 하고 잘라도 보고 그러다 드러누워 저 골목길, 그 앞 운하에 나를 가져다 놓고 자박자박 걷고 노는 상상을 하다 3시간이 지났다.
3시간이 지나고 나서도 여전히 나는 이 그림이 너무도 좋은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못찾았다.
건물도 좋고 건물 안 깊숙한 은밀함도 좋고, 회색의 하늘과 탁한 붉은 벽돌의 대비도 좋다. 건물 안에서 각자 할일을 하는 여인들의 단정함도 좋고 커다란 개와 꼬마여자인 줄 알았는데 확대해보니 어른의 사람들이 뭔가의 노동을 하는 모습인 것도 재밌다. 수직과 수평의 단순한 구도도 좋고 쨍한 색들을 전혀 쓰지 않았는데도 밝은 느낌이 나는 것도 좋다.
나에게는 거의 무결점에 가까운 그림이다.
페르메이르의 <편지 읽는 여성>
아마도 임신을 한 듯한 동그란 배에 아름다운 파란색의 옷이 그림의 중심을 단단히 잡는다.
빛의 명암대비가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강해 주인공 여성에 빨려 들어가게 되는데 그녀가 읽는 편지가 사랑하는 이의 편지여서 기쁜 것인지, 나쁜 소식이 담겨 있는 내용이어서 우울한건지 알수 없이 묘연하다.
이 상황이 무엇인지는 보는 이의 해석에 달렸다. 나는 페르메이르를 이런 부분에서 더욱 좋아한다.
관객이 그림을 놓고 여러 갈레의 상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이제 막 하녀로 부터 연애편지를 건네 받은 여인
하녀의 표정은 온화하고 여인은 들킨 듯 놀랜 얼굴이다.
미소가 퍼지는 장면
설명판엔 17세기에 바다는 보통 사랑을 뜻하고 배는 연인을 뜻한다고. 여인의 뒷 벽에 걸려있는 커다란 배가 떠있는 바다는 연애편지를 받은 여인의 상황을 더욱 잘 설명해 준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은 컬렉션이 대단히 넓고 깊으며 전시방법도 뛰어나다. 하루종일 라익스에 있으면서 페르메이르와 렘브란트, 프란스 할스에 빠져 행복했다. 게다가 중간중간 다리가 아프고 배가 고프면 카페로 내려와 커피를 마시다 밥을 먹다 할 수 있었다. 카페가 크기도 크거니와 2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천장이 열려있어 시야가 시원하고 편안하다.
카페가 잘 되 있어 더욱 별표 다섯을 외치고픈 라익스 뮤지엄!
<골목길> 앞에 오래 서 있었더니 한 어르신이 돌아보라며 이레 사진을 찍어주셨다.
작품들을 다 보고 종료할 때 즈음 다시 페르메이르가 있는 구역으로 올라왔다. 미술관 문을 닫을 때 까지 20여분이 남았을 때인데 사람들이 많이 빠져 운좋게 한산하다. 이 타임에 또 온전히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들여다 봤다. 오래 들여다 봤더니 한 어르신이 사진을 이렇게 이쁘게 찍어주셨다.
<골목길>과 한컷에 들어간 나, 너무 좋다.
행복한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