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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술관옆산책로 Aug 15. 2024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2_렘브란트 편

인생 뮤지엄, 라익스 뮤지엄 (Rijksmuseum)

페르메이르에 이어 라익스뮤지엄에서 인상깊은 작품은 렘브란트 컬렉션이다. <야간순찰>만 알고 왔는데 <유대인 신부>도 라익스가 보유하고 있었다. 


<Isaac and Rebecca, Known as 'The Jewish Bride', 유대인 신부> 1665-1669

페르메이르 작품들이 몰려있는 공간과 연결된 곳에 이 <유대인 신부>가 걸려있다. 


반고흐가 이 작품을 보고 "이 그림 앞에서 2주를 더 보낼 수 있게 해준다면 내 수명 10년이라도 떼어 주겠다"라고 할 정도로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는 작품이다.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개관년도(1885)에 이곳을 방문한 반고흐의 에피소드이니 이 작품은 개관이래 140여년 동안 이 곳을 지킨 작품이기도 하다. 


렘브란트가 화려한 인생을 지나 가난하고 초라한 말년을 보낼때 유대인 빈민지역에서 살았는데 그런 맥락에서 이 작품의 소재는 이해가 되었고 거의 말년작인 그림의 의미외에 그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젊은 부자 유대인으로부터 의뢰를 받은 그림을 그렸던 건가...생각해 본다.  


반고흐는 왜 이그림에 그렇게 감동을 하였을까.. 생각해 보면,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렘브란트도 가난과 싸우는 와중 이룬 결과물이라 반고흐 역시 팔리지 않는 그림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던 자기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서도 이런 명작을 남긴 것에 대한 감정이입지자 경의인 건가... 싶었다.


<The Wardens of the Amsterdam Drapers' Guild, Known as 'The Syndics', >1662

직물 길드 이사회를 그린 그림 

렘브란트의 마지막 단체 초상화다. 


그의 유명한 <야간순찰>도 시작은 단체 초상화였는데 그 그림을 기점으로 단체초상 주문이 줄어들었으니 이 작품은 <야간순찰> 후 20여년이 지나 희귀해진 렘브란트의 단체초상을 보는 의미가 있다. 


<야간순찰>의 교훈(?) 때문인지 등장인물의 비중이 거의 비슷하다;; 


이제 그 유명한 <야간순찰>(또는 <야경>)이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부터 보이는데 빼곡한 사람들 머리위로 웅장하게 올라온 초대형 그림이다. 그림이 한 시야에 다 안들어 올 정도로 크고 너무 유명해 대형 유리벽 뒤에 전시되 있는데 그림 중앙부를 나눠버리는 유리의 접지선과 빛반사가 그림에 다소 집중을 하지 못하게 하는 면이 있다


<The Night Watch, 야간순찰> 1642

원래 제목이 <프란스 반닝 코크와 빌럼 반 루이텐부르크의 민병대>로 후대에 <야간순찰, The Nightwatch> 로 부르게 된 그림 


화가들은 보통 기법상 그림보호를 위해 최종적으로 바니시를 바르는데 이것이 시간이 지나면 열, 산소에 반응해 검고 탁하게 색이 변하는 단점이 있다. 원래는 낮이었던 그림이 밤처럼 어두워져 버린건데 그래서 후대에 제목도 긴 블라블라 민병대에서 <야경>으로 부르게 된 것 


<야간순찰>은 렘브란트를 한순간에 몰락으로 이끈 그림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림을 의뢰한 민병대는 그림의 결과가 당신들의 기대와 다르게 나오자 비용 지불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민병대원들 입장에서는 등장인물들의 중요도와 비율이 비슷해야 비용의 갹출이 용이한데 누구는 크고 누구는 작고 누구는 중심에서 빛을 받고 누구는 구석에서 옆모습이니 화가날 법도 하다. 지금은 이런 다이나믹한 구성과 빛의 완급조절로 전세계의 보물같은 그림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그림의 주문이 뚝 끊겼다. 


만약 이후에도 다른 단체가 렘브란트를 알아봐 계속 주문을 주고 승승장구했다면 '자화상으로 쓴 자서전'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인간의 흥망성쇠와 내적 성찰이 잘 드러난 위대한 자화상들은 등장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느 것이 인류에 나은 것인지... 


나는 결과만 보면 렘브란트의 자화상들을 너무 좋아한다. 20대의 웃는 렘브란트도 60대의 허허로운 표정의 렘브란트도


Gerrit Lundens <Copy of The Night Watch> 1642-1655

그림은 너무 커서 원래 걸려있던 집이 헐릴 때 그림도 왼쪽 일부를 잘라냈다. 원본 그림을 축소하여 옮겨 그린 다른 작가의 작품이 전시장에 함께 걸려있어 원형을 확인할 수는 있다.  대단한 부분은 아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자마자 이런 대작을 인생을 놓고 그린 화가의 계획과 의도가 있을 건데 내 마음대로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단정할 수 있나.. 같은 생각이 스쳐 갔다. 


<Self Portrait> 1628

곱슬한 머리와 동글한 코, 동글한 눈이 완전 귀염상인 22살의 렘브란트


20대의 렘브란트는 이미 빛을 다루는데 일가를 이룬 듯하다.


<The Standard Bearer> 1636

Standard Bearer는 군대의 깃발지기, 즉 기수를 의미하는데 군대의 각종 상징과 형식미를 보여주는 모델로 렘브란트 스스로를 선택했다. 다른 의미론 기수의 형식을 가져온 서른의 자화상이다. 서른의 렘브란트는 앞의 22살때와 사뭇 다른 어른미가 낭낭해진 모습


<Self Portrait as the Apostle Paul,  사도바울 풍의 자화상> 1661

렘브란트는 제자들 중 사도바울을 가장 마음에 두었었나 보다. 바울은 예수의 초기 12제자는 아니나 이후 예수의 뜻을 따라 이방인 선교에 가장 앞장선 사도로 이 과정중 남긴 서간문들이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니 성경의 제1 저자로 성경과 가장 동일체되는 이가 사도바울. 


카톨릭 집안의 영향안에 살았던 렘브란트는 그런 바울의 모습에 빗대 성경을 들고 초연히 그림 밖을 바라보고 있는 초상화를 그려내었다


Jan Lievens <Portrait of Rembrandt van Rijn> 1628

스타일이 상당히 유사해 렘브란트 본인이 그렸다고 해도 그려려니 했을 듯한 다른 작가의 작품. 


본인이 본인을 그릴 때와 다른 이가 본인을 그렸을 때, 보통은 실물보다 더 잘생기게 그리는데 (스스로가 자기 외모 평가에 좀 더 가혹하다는 실험이 있다) 이 작품을 보니 정말 그렇다. 자화상 맨 위 그림도 22살의 렘브란트였는데 두 작품을 비교해 보면 같은 나이의 렘브란트여도 다른 작가가 그린 렘브란트가 더 앳되고 사랑스럽다. 특히 그림 밖을 바라보는 눈동자엔 따뜻함과 영민함이 묻어있다.


<Rembrandt's Son Titus in a Monk's Habit, 수도승 차림의 티투스> 1660

티투스는 렘브란트가 어렵게 얻은 아들이자, 유일한 아들인데 당시 유럽을 휩쓴 페스트로 27세의 나이에 사망해 렘브란트의 가슴에 한처럼 남았다.  렘브란트는 티투스의 19살에 수도승 차림을 한 초상화를 그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영원한 젊음과 삶을 선물했다.  


<Tobit and Anna with the Kid> 1626

눈먼자인 남자가 기도하는 모습과 그 아내의 놀란 표정이 생동감 있게 그려진 작품. 

그림도 웜톤이라 추레한 집안 환경이지만 따뜻한 정서가 물씬 풍겨 마음에 너무 든다.  


설명판을 읽어보니 Tobit이라는 자가 눈이 멀다 보니 가정이 가난에 빠져 있는데, 아내가 힘든 노동의 댓가로 어린 염소를 받아온 걸 Tobit은 이를 모르고 훔쳤다 생각해 절망에 빠져 스스로 빨리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라고 한다. 


영문을 모르겠는 아내는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싶은 놀란 표정이고 :-) 


낡았지만 따뜻한 옷감의 색들이 그림을 따사롭게 만들고 장님 남편의 리얼한 눈과 놀라서 토끼처럼 동그래진 아내의 눈이 대조를 이루며 위트가 넘친 그림 


렘브란트는 이런 스토리 구사에도 능했구나~~


<An Old Woman Reading, Probably the Prophetess Hannah, 예언자 한나> 1631

렘브란트의 어머니를 모델로 하여 성경을 읽고 있는 예언자 한나를 그렸다. 


쪼글거리는 얼굴과 손만큼이나 인생에 깊이가 있을 듯한 한나는 본인의 상체만한 큰 성경을 손으로 꼭꼭 짚어가며 주석들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읽고 묵상할 것 같은 모습이다. 


종교적 경건함과 신성함이 화면을 꽉 채운 작품


<Young Woman in Fantasy Costume> 1633
<Portrait of Haesje Jacobsdr van Cleyburg> 1634
<Portrait of a Woman, Possibly Maria Trip> 1639

렘브란트는 렘브란트라고 적혀있지 않았다면 그의 작품인지 몰랐을 지극히 전통적인 방식의 초상화도 그렸다. 붓자국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정교한 스타일인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손등에 솜털 조차도 한올한올 표현할 정도로 디테일에 공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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