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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 세계 3대 오케스트라 공연을 모두 보고 나서

빈필, 베를린필,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 LA필하모닉까지

by 미술관옆산책로

나도 올가을 내한한 세계수준의 오케스트라를 한번에 다 보게 될 줄 몰랐다. 클래식을 듣기 시작한지 1년여 정도 밖에 되지 않았고, 틈틈이 책을 읽긴 하지만 한번에 30분에서 1시간 30분도 가는 협주곡이나 교향곡들을 들어가면서 책을 읽자니 음악적 소양이 쌓이는 시간이 미술을 처음 시작할 때보다 훨씬 더뎠다.


방탄에 입덕을 하고 모든 순간 방탄곡만 듣기를 5년여 쯤 한 듯한데, 미술을 시작하고 3년여는 미술책만 읽은 듯하고, 작년부터 1년 동안은 클래식 책만 보고 클래식 곡만 들었다. 지금 내 플레이리스트에 클래식으로 600여 꼭지가 있는데 (한곡에 3~5악장짜리 교향곡, 협주곡들 포함) 아마 완전한 곡수로는 200여 곡이 있는 듯하다.


모든 오케스트라의 예매가 오픈될 때엔 이런 오케스트라가 온다는 것을 몰랐고 알아도 이리 비싼 공연을 볼 마음까지 가지 않았을 게 분명한 초심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정마에의 공연을 본 것을 계기로 슬슬 실공연을 보기 시작했는데 내가 들어왔던 음원이 주로 세계최고의 오케스트라들이 (라이브녹음은 덜하겠다만) 음원으로 반지르르하게 깍은 티없는 것들이었다는 것을 몰랐어서 실제 연주의 부산스러움에 당황하던 중 세계 최정상 오케스트라들도 그러한지 그렇다면 내가 들은 음원의 완벽성을 라이브 연주에선 어느정도 포기하자는 - 또는 라이브라서 겪는 새로운 경험이 있을 거라는 - 일면 현실타협적인 목적으로 최정상 공연들을 예매하기 시작했다.



처음 두다멜의 LA필 공연을 사기까지가 시간이 좀 걸렸지 이 공연을 보고나서는 다른 모든 공연을 봐야겠다 마음 먹었다. 클래식 공연만을 보기 위해 해외를 가진 않겠다만 - 방탄콘은 그렇게 한다만 - 혹 간다면 몇백만원은 들 것인데 내한 공연으로 몇십만원을 쓴다는 건 어떤 면에선 가성비다.


그래도 비싼 자리들만 남아서 한동안 망설이기도 했는데 결국 샀고, 빈필은 비싼 자리도 없어서 내내 노심초사하다 1주일 전 취소표를 잡았다.


세계 3대 오케스트라라고 했을 때 이견이 없는 빈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콘세트르헤바우에 이어 4대 부터는 뉴욕필, 시카고심포니, 보스톤시포니, 런던필등도 내가 4등이야 할 수 있겠다만 여기에 LA필이 손을 든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조합으로 총 4개의 공연을 보았다.



모두 보고난 후 4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프로그램과 연주에 대한 나의 느낌을 정리하자면


LA필하모닉 / 두다멜 구스타보 - 두다멜 지휘자의 통통튀는 밝은 에너지와 캐릭터가 좋다. 4대 지휘자 중 가장 호감이었으며 말러의 '부활'이라는 대곡의 에너지를 잘 끌어내 1시간 반동안의 공연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시종일관 '압권이다'라는 느낌을 줬다. 초반 오케스트라의 합이 다소 덜 맞았지만 곧 극복해냈다. 이번 시즌을 끝으로 뉴욕필로 옮겨가는 두다멜로 인해 LA필의 지휘 자리에 누가 올지 모르겠으나 LA필만으로, 당연히 두다멜의 뉴욕필도 내한한다면 꼭 보고 싶다


로열 콘세르트헤바우(RCO) / 클라우스 메켈레 - 29세의 지휘자는 화려한 스타였고, 100년이 넘는 오케스트라는 찬란했다. RCO자체보다 지휘자의 스타성에 기대 선택을 했는데, 메켈레는 앞으로 50년은 더 성장하며 성숙해 질 것이라 그 초년을 본 것만으로 의미가 있고, 가장 감동한 부분은 RCO의 엄숙함과 기본기였다. 세상의 어떤 어렵고 심오한 곡도 충분히 해석해 완벽에 가까운 공연을 보여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 / 키릴 페트렌코 - 최고중의 최고.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모두가 단연 탑 중에 탑이다. 스타 지휘자에 가려지지 않는 오케스트라, 오케스트라에 눌리지 않는 지휘자. 왜 독일 음악이 최고인지, 그리고 그 음악들을 표현해 내는데 본향같은 베를린필이 가장 적격인지 증명해준 공연. 베를린필은 대중적이기도 전통적이기도 해서 그 어떠한 곡을 가져와도 관객과 따로 놀지 않고 완벽히 호흡하며 하나되는 모습을 만들어 낼 듯하다. 지휘자는 당연하고 마지막 단원이 다 나가도록 기립박수를 치고 있던 관객들의 모습은 이 공연이 우리에게 어떤 감동과 기억을 선사했는지를 되짚어 줬다.


빈필하모닉 / 크리스티안 틸레만 - 무림의 고수란 이런 것인가. 드러내지 않는데 드러나고 애쓰지 않는데 베어나온 듯한 오케스트라다. 빈이 클래식 음악의 중심이던 시절의 자부심이 지금도 농후했던 공연. 대중친화적이지 않다는 (나쁜 의미 아님) 느낌이 있지만 오로지 곡에 충실하겠다는 뜻으로도 보인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5번 단곡으로 나 같은 클래식 초심자는 다소 어려웠다만 내가 수준을 끌어올리면 되지, 그들이 쉬운 곡을 선택해주었으면 싶은 마음이 들진 않은... 그냥 거기 계속 있어주면 내가 가겠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오케스트라



모든 요소를 한 팟에 넣고 정리하자면 지휘자로는 페트렌코 > 두다멜 > 틸레만 > 메켈레 순이고, 지휘자와 상관없이 오케스트라도 한번 정리하자면 베를린필 > 빈필하모닉 >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 LA필하모닉 순이다.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모두 베를린필이 최고였고, 지휘자로는 두다멜이 기대도 되고 매력적이다.


올 10월~11월에 걸쳐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를 한꺼번에 접하고는 가슴이 웅장해졌다. 내년 10월 빈필은 이미 내한이 정해져 있다. 어떤 레퍼토리로 한국을 다시 찾을지 심히 기대가 되고, 임윤찬의 연주에 눈물 흘리던 마린 알솝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도 내년 11월 내한이다. 2026년에도 아름다운 가을을 맞을 수 있을 듯하여 미리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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