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미술관(The Art Institute of Chicago)을 보고
남준이(BTS RM)가 해외투어 중 공연이 없는 날 가까운 미술관에 갔다가 꾸준히 미술에 관심을 갖고 컬렉팅을 하며 현재 BTS 리더의 위상만큼이나 미술에서도 전세계적으로 막대한 영향력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너무 유명한 이야기이다. 이때 남준이가 우연히 가게 된 미술관이 바로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The Art Institute of Chicago).
세계 최고의 미술관에 가서도 감동을 하지만 동네 미술관을 가서도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시카고미술관의 면면은 이 둘 사이 어디쯤일까 내내 궁금했다. 시카고는 LA나 뉴욕처럼 비즈니스 출장으로 자주 가게 되는 곳도 아니고 일부러 여행지로 선택할 일도 별로 없어 마음에 담아만 놓고 잊혀져갈 즈음 CES때문에 라스베이거스로 출장을 와서 아웃 도시로 시카고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파리, 런던, 빈, 암스테르담, 베를린, 도쿄, 타이페이, 싱가폴 등 출장지에 붙이기도 하고 부러 미술관 여행을 하기도 하며 주요 도시들의 대표뮤지엄을 거의 대부분 갔는데, 단연코 시카고미술관은 내 취향과 성향에 꼭 들어맞는 최고의 미술관이었다.
컬렉션의 다양성, 연속성, 입체성, 주요 작가의 최고작품들, 전시기법 등 내 기준 미술관을 바라보는 주요 포인트를 놓고 생각해 볼 때 최고의 미술관은 뉴욕메트로폴리탄뮤지엄과 빈미술사박물관 그리고 암스테르담국립미술관(라익스뮤지엄)이다. 다만 이 세 뮤지엄은 내가 보지 않는 영역(박물은 안좋아함)과 시대(고대와 중세 미술은 관심없음)와 국가(이집트, 이슬람, 중국미술은 재미없음)의 작품들을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 규모에 과하게 압도되는 느낌이 있는데 (라익스는 좀 덜하지만) 시카고미술관은 정말로 모든 것을 망라했으나 양적으로 과하게 압도되지 않고, 있어야 할 작품이 있어야할 시대와 흐름 속에 과하게 넘치지도, 부족하게 쳐지지도 않게 컬렉팅되어 영리하게 잘 전시되 있었다.
하필 남준이가 이 위대한 미술관에 발을 들여 왠만한 다른 미술관에 가서는 이 만큼의 감흥을 못 느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면서도 하필 이 미술관이었어서 이 얼마나 다행이고, 이 얼마나 운명인가... 감탄을 했다.
지난 구정 연휴 하루를 통으로 털어 시카고미술관의 블로그글을 어떻게 쓸까 사진으로 정리하고 글구성을 했다. 다 하고 나니 오전일찍 시작해 꼬박 14시간이 걸려 9편의 글 구성을 마쳤다. 이제 주말마다 한편씩 두편씩 쓸 것인데, 단일 미술관으론 최장 시리즈이다. 그만큼 헛투루 된 작품이 없고, 빠지지 않게 기록하고 싶었다.
그 첫 시작인 이번 편은 만약 나의 신이 전세계 모든 미술관을 보는데 단 하루의 시간을 준다면 (공간 이동은 해주실꺼고요) 시카고미술관에서 이건 꼭 다시 보고 싶다고 생각한 세 작품으로 시작한다.
시카고미술관은 시카고의 유명한 밀레니엄 파크 바로 옆에 이런 외양을 하고 붙어있다. 도보로 묶어 여행다니기에도 참 좋은 위치
나의 첫번째 픽은 그랜트우드의 아메리칸고딕(American Gothic).
농부와 그 딸(부부 아님)이 오래전 가족 앨범 속 인물처럼 1880년 카펜터고딕 (Carpenter Gothic) 양식으로 알려진 집 앞에서의 모습을 그렸다. 이 단순하고 맥아리 없어 보이는 그림이 당시 경제공황을 겪고 있던 미국과 미국인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그래서 지금의 미국인에게 또는 세계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서 너무 좋았다.
1930년 이곳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 처음으로 이 작품이 걸렸을 때 그림의 모호성 - 인물, 스토리 등 - 때문에 관객들 사이에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고 하는데 정작 작가 우드는 시골 생활의 긍정적 가치를 표현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한다. 설명판엔 최초로 전시된 곳을 '시카고'라는 말 없이 그냥 'Art Institute'라고만 되어 있지만 이곳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를 의미할 것이라 사료되고, 그럼으로 이곳이 이 그림을 소장하는 이유가 될 것이며 영구히 그러했으면 좋겠다 (단, 그림의 배경은 아이오와주)
전세계적으로 탑오브탑급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미국출신의 단촐한 작가가 표현한 미국이 설명치 않고도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는 신기한 경험을 해서 나도 그림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래서 나의 3 Picks중 가장 앞줄에 이 작품이 선다.
나의 두번째 픽은 너무 유명해 설명을 붙일 것도 없는 에드워드 호퍼의 나이트호크 (Nighthawks)
에드워드 호퍼를 유명케 하고 평생을 천착하게 한 '대도시의 고독함'이 가장 극적으로 잘 드러난 작품. 호퍼의 작품은 뉴욕의 휘트니뮤지엄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데 (3100여점)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이 나이트호크는 시카고미술관이 가지고 있었다.
그랜트우드의 <아메리칸 고딕>은 시카고뮤지엄에 있는 줄 알고 왔고 명성대로 대단했어서 나의 탑픽이었는데 <나이트호크>는 시카고가 가지고 있는지 몰랐어서 더욱 좋았나 보다.
유리창 속 2명의 남녀 일행과 한명의 중절모를 쓴 손님(작가 자신을 투영한 듯), 한명의 요리사가 머무는 공간은 유리창 밖 진공된 거리의 모습과는 다르면서도 또 비슷하다. 그들의 말소리는 진공 속에 상대방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만 같고.
그림 속 초록과 노랑, 붉은색의 대비는 화려해야 하는데 적막하니 참 묘연한 색 쓰임이다.
그림의 정서가 외롭고 고독하여 오히려 현실의 내가 위로받는 느낌, 그것이 호퍼 예술의 힘이라고 늘 생각한다.
세번째 픽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조르주 쇠라 점묘의 최고봉을 보여준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를 뽑았다.
점묘작품은 특성상 많이 그려질 수 없기 때문에 점묘로 된 작품은 하나하나 성실히, 감사히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태도를 장착하고 보는데도 쇠라의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작품은 넘사의 수준이어서 겸허한 마음에 더해 마음속으로 무릎까지 꿇어졌다.
작품은 소재, 인물, 구성, 색감 모두 훌륭하고 규모마저도 커서 점묘로 이보다 위대한 작품은 있을 수 없겠다, 확신이 절로 들게도 한다. 작가의 천재성과 인내심, 집념이 만들어낸 인류의 위대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