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WC 프로젝트때문에 바르셀로나로 출장을 가는 날, 그 날 따라 공항에 연예인들이 꽤 보였다.
이종석, 윤여정쌤, 한소희
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신입은 수속대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에 오지는 않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제 앞에 이종석 지나가요, 우아!!!! 엄청 잘생겼어욧!!"
그리곤 이종석의 사진을 보내왔다.
'멋있네, 인즈엉'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이종석이 내가 수속하고 있는 수속대 앞을 유유히 지나간다.
'비율이 장난 아니고만'
몇분 후 뛰어온 신입과 만나 수속을 하고 있는데
헐, 나 내 눈 의심, 내 앞에, 맞나? 맞는거 같은데, 조.성.진.인거 같은데... 이틀전 역사적으로 다시 없을 대한민국에서 동타임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 4명이 4대의 피아노를 한꺼번에 두고 연주한 위대한 공연, 그래서 그 현장에 있었을 현대가와 현대가가 초청한 정관재계 사람들이 너무 너무 너무 부러웠던 그 연주를 마친 바로 그 조성진?
나 심장 밖으로 터져나오는 줄.
나 현재 우리 방탄 제외 팬심 품은 유명인은 클래식계의 조성진, 임윤찬 딱 둘이다. 그 조성진이 무대 위 최고 연주자의 포스를 넣어두고 이리 마알간 옆집 청년의 얼굴로 내 앞에 바로 서 있었다.
내가 너무 떨리기도 하고 정신이 없기도 하여 신입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을 했더니 "누구예요?" 몇번을 확인하고는 내 등을 걸고 (나 거기 있었던 거 인증, 거참 일 잘해 ㅎ) 몇 컷을 찍어준다. 이름은 아는데 어케 생긴지 잘 모르고 어케 생긴지 대에강 생각이 났는데 실제 보니까 모르겠다며, 내가 이종석 대하듯 무념무상했다.
"봐봐, 신입아, 조성진은 앞으로도 80세까지 유명할 사람이고, 우리 나라 사람으로 시간을 더해가도 계속 더 위대해질 몇 안되는 사람이야" 했더니 "그러네요, 근데 팀장님은 그렇게 좋아하면서 어케 하나도 티가 안나요?" 한다.
이게 바로 '아미력' 이라고 하는거다. 언제 어디서 우리 방탄이들을 만날지라도 모르는 척, 안놀랜 척 그의 사적 시간과 공간을 지켜주자는 아미들간의 암묵지. 나 이번에 처음 그거 꺼내 써봤네!
그렇게 20여분 수속을 하는동안 (수속도 바로 옆에서 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연주자와 같은 시공간에 있었음에 감사했다. 베를린필에 적을 두고 있으니 프랑크푸르트 즈음으로 가 베를린으로 환승할 터, 나는 파리를 거쳐 바르셀로 들어가니 그를 마지막으로 보고 있는 지금 이 20분이 참으로 소중했다. 그리고 언젠가 이렇게 우리 방탄이들도 보면 좋겠다, 그때도 나는 아미력을 꺼내 이리 무심한 듯 행동할 수 있겠다, 리허설한 듯 뿌듯도 했다.
수속을 마치고 면세공간에서 할일 들을 하다 마지막에 커피 한잔을 사느라 게이트가 닫힐 무렵 타이트하게 비행기에 올랐다. 나와 신입이 타고 한팀인가가 더 타고는 문이 닫혔다. 정신없이 내 자리를 찾아 좌석번호를 확인하며 들어가는데 죠 앞쯤에 후광이 비치고 있다.
뭐지? 왜지?생각도 잠시, '와, 조성진이 있네!'
그는 예의 그 말간 얼굴로 이미 이륙준비를 마치고 우아하게 앉아 있었다. 순간 전체 공간이 한눈에 후루룩 스캔이 되었는데 30여석의 비즈 좌석은 이미 다 찼고 조성진 옆으로만 빈 자리가 둘, 내 번호가 12A니까 저 빈 두 자리 중 안쪽 창가자리가 내꺼다.
'아싸!'
같이 들어오던 신입이 눈이 커졌다. 너무 빠르게 일어난 일이라 아직 아미력을 장착못한 나와 내가 얼마나 조성진을 좋아하는지 아는 신입이 정신을 가다듬을 순간없이 맞은 이 순간에 나온 반응때문에 조성진이 우리를 인식했다면 1시간여 전 수속대에서는 아니고 바로 이순간이겠다 싶다. 내가 내 자리를 찾아 들어가 앉으면서 스쳐지나 이코노미쪽으로 더 깊게 들어가는 신입이 눈으로 "팀장님, 대에박!" 했다.
이륙전까지 13시간의 비행동안 쓸 물건들을 몰아넣은 파우치를 가방에서 꺼내고 책2권도 꺼내고 두 번의 식사를 뭘로 할지 스튜어디스와 결정을 하면서 내 옆자리에 아무도 앉지 않기를 빌었다. 나는 창가 자리고 조성진은 복도 건너 바로인데 내 옆자리가 빈다면 조성진이랑 옆에서 갔다고 한들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니까 (결과적으로 아무도 앉지 않았다!)
게다가 바로 옆이면 오히려 부담이다. 사람이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이 있어 내가 그의 팬인 것을 그는 직감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고 더욱이 예술가는 일반인보다 더 민감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니 더욱 알아챌 것이다. 그러면 그도 나도 심히 불편할 것. 나 불편한건 소올찍히 상관없다만 그가 불편해 하면 그건 너무 미안한 일이다.
이륙전 조성진이 뜬금없이 칸막이 넘어 내쪽으로 고개를 크게 내밀고 똑바로 쳐다봤다. 나의 팬임이 분명한 이 여성과 이리 가까이 13시간을 어떻게 같이 갈지 가늠이라도 하려는 듯이...
30여개의 비즈석에서 대부분은 중년 이상의 남성이라 조성진을 알지도 못하고 알아도 별로 관심이 없을 것인데 하필 옆자리에 자기 팬이 앉아 시종일관 일거수 일투족 자기를 지켜본다고 생각하면 그제 힘든 연주를 끝내고 비행기에서 긴 휴식을 취할 계획이 심히 어그러지는 것이니...
내가 조성진을 좋아하는 것은 다음 이슈고, 나는 그가 편하길 바랬다. 나를 신경쓰지 말고 그저 온전히 쉼을 갖길 원했다. 나는 빠르게 아미력을 되찾았고, 그가 고개를 내밀고 내쪽을 쳐다봤을 땐 이미 좌석간 칸막이를 꼭대기까지 올리고 '나는 당신을 쳐다보지 않겠어요!'의 의지를 보여줬다.
내 자리에서 그의 머리 쪼끔만 보이지만 그와 나 사이에 아무도 없어 나는 어떤 대화를 하지 않아도 온전히 세기의 연주자의 기운을 느끼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팬인 내가 옆에 있는 것을 그가 신경쓰지 않도록 2권의 서로 다른 분야의 책을 번갈아 읽는 장거리 출장지 비행기에서의 내 루틴을 포기하고 불을 꺼주었고 잠을 잘 때도 덜 뒤척임으로 그의 휴식을 응원했다.
그는 나와 신체리듬이 비슷한지 밥을 먹고 바로 잤고, 내가 한참 꿀잠을 자고 일어나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도 일어나 화장실을 갔다. 한 잠 자고 화장실을 다녀와 원래는 책을 보기 시작하는데 불을 켜는 것을 포기했으니 비행기의 컨텐츠를 뭐라도 볼까 싶어 뒤적이는 사이 그도 이리저리 비행기의 컨텐츠를 뒤졌다. 13시간의 비행동안 그는 나를 경계하지 않고 잘 잤고 잘 먹고 잘 쉬었다. 그것이 마음이 참 좋았다.
내릴 즈음엔 이런 기회가 다시 안 올 것인데 사인은 하나 받아도 되지 않나, 가벼운 목례라도 하며 "팬이예요! 그제 공연 너무 가보고 싶었어요! 나중에 꼭 연주하는 모습을 볼께요!! (내가 안가는게 아니라 티케팅이 피케팅인거다)" 정도는 말할 수 있지 않나.. 수십번 생각을 했는데 모두 포기했다.
그것이 아쉬워 가정으로라도 연주자와 팬으로 대화를 했더라면 나는 무슨 질문을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어제 있었던 4인 연주, 다시 없을 세기의 연주였다는 평이다, 개인적 소회는 어떠했나?"
"베를린에 적을 두고 있지 않나, 나는 클래식 초심자지만 작년에 내한한 4대 오케스트라 연주를 욕심부려 모두 보았다, 그 중 베를린필이 키릴 페트렌코와 하는 연주가 최고 중의 최고였다, 그런 베를린필과 일상에서 공연한다는 것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실황으로는 임윤찬의 베토벤 황제, 반클라이번 라흐 피협 3번을 유투브로 자주 본다. (저작권이 있을 수 있는데 일단 올라와 있어서 볼 수 있음) 그 공연이 대중적으론 그를 대표하는 공연이 아니었다 싶다. 당신이 과거로가 이건 나의 최고였다, 생각하는 공연을 추천해 준다면?"
"쇼팽연주자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프랑스계열 작곡가들의 앨범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연주자로서 어떤 작곡가와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하는가?"
"최근 전세계적으로 가장 투어를 많이하는 피아니스트 탑3안에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투어가 당신에게 어떤 에너지와 영감을 더 주는가?"
"어제 4인 연주에서 함께 한 김선욱의 커리어를 눈여겨 보고 있다. 정명훈과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로 시작해 지휘까지 그 영역을 확장한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장한나는 첼로에서 출발했기에 또 다르긴 하지만 피아니스트로서 지휘를 해볼 생각은 없는가? 또는 작곡은? 또는 그 다른 무엇이라도?"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클래식 초심이라 이 질문들이 어느 수준인건지 모름) 실제 대화를 하지 못해 상상으로라도 어떻게든 대화를 하고 싶었던 내 모습이 웃기면서도 마음에 든다.
사인하나 못받고 사진하나 같이 찍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순간은 너무나 좋았어서 이리 길게 기록해 둔다. 언젠가 내 행사에 조성진을 초청할 수도 있고, 그러면 이 비행기 에피소드로 대화를 시작해 그 때 묻고 싶은 이런 질문들을 하며 편하게 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꿈을 꾸고 있다.
덧붙여, 덕계못인 나는 우래기들, 특히 남주니를 언젠가 미술관에서건 동네에서건 만나도 이렇게 아미력을 부리고 상상대화로 만족하는 글을 써야지 미리 결심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