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이후 첫 번째 해외 출장지로 뉴욕이 결정되고선 짬을 내 하고 싶었었던 건 관광객으로서는 가봤지만 이제 다시 가보고 싶은 MoMA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고 나선 안 가봐서 더 가보고 싶은 휘트니 미술관을 가보는 것이었다.
휘트니는 다행히 법인과 같은 블록에 있어 가장 먼저 가기 좋았다. 이곳엔 최근 책으로 접하고 관심이 가기 시작한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와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 있다 한다.
Highline Park 남단입구와 바로 붙어있는 휘트니 미술관은 허드슨강을 옆에 두고 탁 트인 시야와 자연광 아래에서 작품관람을 할 수 있는 구조다 (프리츠커상을 수상했으며 파리의 퐁피두센터로 유명한 렌조 피아노가 설계했다)
하이라인 파크 위에서 바로 보이는 휘트니 미술관
오른쪽 검정 구조물이 하이라인파크 남단 입구이다
휘트니는 예술에 관심이 있으나 못 와 볼 사람들을 위해 금요일은 10시까지 열기에 7시 30분에 저녁을 먹고 나와봤더니 매진.
나님 방심했다...
덕분에 토요일 11시 오픈시간에 맞추어 다시 예매, 여유롭게 보라는 계시인가 보다 (좋은 면을 봅니다)
구조를 보니 관람은 8층부터 1층까지 쭉 내려오며 보는 게 좋고, 8층과 7층이 주요 전시, 6층부터 1층까지는 현재 WHITNEY BIENNIAL 중이었다.
8층에 도착하면 바로 오키프의 작품이 있다. 이후 7층과 8층에 두루 있는데, 1920년 즈음의 작품들 위주다.
98세로 세상을 뜨기까지 꽃, 빌딩, 동물뼈, 사막 등을 그렸는데, 특히 나는 카라 그림과 동물뼈 그림이 좋았다 (여긴 지금 아쉽게도 없다)
<Black and White> 1930
<Music, Pink and Blue No. 2> 1918
<Flower Abstraction> 1924
<Abstraction> 1926
오키프는 미국 최초 여성 추상화가로서, 아직 그녀에 대해 책 한 권 읽은 수준이지만, 진취적이고 자기 주관적이며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남준이가 언젠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뭐냐는 질문에 조지아 오키프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다.
오키프는 사실 나는 아래 카라 작품(Two Calla Lillies on Pink)을 책으로 처음 접하고는 눈이 번쩍 뜨였고, <여름날, Summer Days>라는 작품이 가장 좋았다. 이 <여름날>이라는 작품은 특히 휘트니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어서 기대했는데 현재 전시돼있지 않아서 너무너무너무 아쉽다.
내 눈을 번쩍 띄운 카라꽃, 작품명은 <Two Calla Lillies on Pink> (왼쪽) / 휘트니가 소장하고 있어 단지 <Summer Days>
다음은 에드워드 호퍼
호퍼는 1900년대 초반 이제 막 근대로 접어든 사회의 외로움 들을 잘 표현했는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는 이 특성이 더욱 진화해 피폐한 미국인들의 절망감과 고독감을 그 특유의 감성과 해석으로 표현해 내 또 국민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Early Sunday Morning> 1900
<Soir Bleu> 1914
휘트니에 걸려있는 호퍼의 작품들 중엔 위 두 작품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다. 일요일 아침의 휑함이나, 피에로가 미술역사에서 차지하는 메타포적 의미, 즉 '나를 감추고 웃음을 짓는 자아'가 화면의 모든 정서를 집어삼킨 <Soir Bleu (Blue Night)>는 그 시대 미국인뿐만 아니라 현대의 우리, 그리고 과거의 그 누군가가 봤더라도 대단히 공감할 만한 작품이다.
<호퍼의 자화상> 이리 생기셨군요
<A Women in the Sun> 1961
오키프와 호퍼의 작품이 비교적 많고 눈에 띄는 유명작가들의 작품도 보인다.
미국 팝아트의 거장 앤디워홀의 <Before and After>. 타이틀을 보기 전엔 어디가 다른 건지 작품이 크다 보니 한눈에 안보였다가 제목을 보고는 하나둘씩 달라진 곳이 보인 작품.
그리고 쟈스퍼 존슨의 그 유명한 깃발 연작 중 하나.
예상보다 훨씬 거친 붓질로 정교하고 아름다운 그림은 아니어서 어떻게 보면 왜 이 깃발들은 그렇게 유명하며 비싼 그림인가.. 싶은 생각이 드나, 작품은 기술이 아니라 의미라고 볼 때 그 시대 미국인이 생각하는 국가를 국기로 치환하여 그 시대의 정서를 표현해 낸 것이라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Three Flags> 1958
외부 갤러리테라스로 나가는 길에 알렉산더 칼더의 모빌 작품이 있다. <Big Red, 1959>와 <Hanging Spider, c. 1940>. 이렇게 우아하고 귀여운 거미라니..
그리고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 여인.
그저 돈 많은 어느 귀족의 안부인이신가... 싶었는데 휘트니 미술관을 세운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 본인이다. Robert Henri의 작품으로 이 미술관을 세운 설립자를 향한 아부가 아닌 존경과 사랑이 담겼다.
그녀 자신도 뛰어난 조각가인 거트루드 밴더빌트 휘트니는 미국아티스트에 대한 사랑으로 평소 5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보유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기부의사를 밝혔었는데, 유럽 미술이 주를 이뤘던 그 시대에 미국미술은 천시당해 거절당하고는 그 본인의 작품들을 시발점으로 이 미술관을 열어버렸다.
역시 깨어있고 간지 나는 다이아몬드 수저
그녀가 아니었다면 유럽에 가려 미국미술은 얼마나 더 뒤처졌겠는가. 현재 현대 미술은 유럽과 미국이 양대로 나뉘어 지배하고 있는데 그녀가 이 구도를 만들어낸 주요 인물 중 하나였던 것이다. 미모로도 이미 아름다운데 더욱 대단한 여성
그 외 나는 모르는 작가이나 재미있는 여러 작품들도 많다.
휘트니미술관은 갤러리테라스가 3층에 걸쳐 만들어져 있어 전시를 보다가도 이 구역으로 나오면 시야가 뻥 뚫린 뉴욕시내와 허드슨 강을 볼 수 있다. 그래서 눈도 쉬고 마음도 쉰다.
6층부터는 Whitney Biennial이다.
여러 신진작가들 속에 한국작가도 보이고 (Teresa Hak Kyung Cha), 여러 재미있는 시도들이 한 Pot에 끓고 있는 용광로처럼 신선하다.
총알 껍질로 바닥을 채웠다.
오키프의 <여름날>을 못 봐서 어찌할 줄 모르는 아쉬움이 계속 머리에 남았지만, 인상파, 유럽 미술에 너무 많이 집중되다가 아는 작가 속에 모르는 새로운 작가들을 많이 접하니 그 나름으로 좋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