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미로 Dec 09. 2021

청년이여, 회사에 목숨을 걸어라! (4)

그래서 언제나 문제는 회사다?

I'm an alien, I'm a legal alien

I'm an Englishman in New York


<Englishman in New York 中>


영국의 전설적인 뮤지션 Sting의 명곡인 Englishman in New York의 가사이다. 노래를 통해 그는 자신이 에일리언(외계인, 외국인,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말한다. 커피를 즐기는 미국인과 달리 전차에도 찻물을 끓일 수 있는 포트를 구비해놓을 정도로 홍차를 사랑하는 영국인. 한쪽만 구워내는 토스트. 말할 때마다 확실히 드러나는 영국인 특유의 악센트. 그가 살아오며 즐기고 당연하게 사랑했던 모든 것들은 스팅이 미국이라는 외국에 도달함으로써 그를 이방인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는 바뀐 것이 없다. 바뀐 것이라곤 환경뿐.




우리의 직장생활이란 것은 사실 이것과 다를 바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에 진입하기 전 여러 가지 공동체 안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된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학원에서, 동아리에서 등등. 그리고 그렇게 체득한 경험과 지식들은 우리를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고, 그렇게 생성된 삶의 토양 위에서 우린 한 그루 나무가 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며 -좁은 의미에서, 직장 생활이라고 편의상 정의하겠다- 우린 수 도 없이 많은 좌절과 변화의 시간을 겪게 된다. 우리는 모두 다 각자의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전혀 다른 인간들인데,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그런 개성이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비전과 목표를 위해 얼마나 빠르고 오래 달릴 수 있는 것이냐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군필자라면 모두 공감할만한 이야기인데, 처음 입대를 하게 되면 정말 멍청해진다. 실제로 지능에 문제가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군대라는 집단은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일반적인 사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그 시스템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신병 시절은 그야말로 실수투성이 '멍청이'의 시간인 것이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둘러싼 환경이 너무나 달라져 버려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위에서 나는 우리의 성장을 나무에 비유했다. 씨앗으로서 20여 년을 땅 속에서 지내다, 싹이 트고 성장하며 대지 위로 불쑥 머리를 내미는 순간, 우리는 사회에 진입한다. 그런데 땅 위로 나와 보니 이게 보통 심각한 고행이 아니다. 계절 따라 날씨 바뀌고, 싱그러운 봄 지나 여름엔 찌는 듯이 덥다가도 가을 되면 선선해졌다가 겨울에는 세상 모든 것들이 얼어붙는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날씨 탓을 하면서 가만히 있을 텐가?


앞서 올렸던 여러 글에서 내가 주로 이야기했던 것들은 주로 근로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중소, 스타트업 기업에서의 애로사항들이다. 물론 이것이 모든 기업들에 통용되는 사항은 아니겠지만, 일단 내가 겪었던 경험에 기반한 이야기를 적은 것이고, 이것에 대해 공감하는 주변인도 꽤 많았다는 점에서 미루어보아 이런 상황들이 그렇게까지 희귀하진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들을 겪었던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느냐?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다. 왜? 이래야 먹고살 수 있으니까.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가 생계를 위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다양하지만, 모든 것이 다 완벽하거나 성공 확률이 높은 길은 아니다. 퇴사를 하고 나면 무얼 할 수 있는가? 여행을 갈 수도 있고, 몸이 안 좋다면 건강을 회복할 수도 있고, 가족이나 애인과 보내지 못했던 시간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우리의 삶을 책임지는가? 정말 엄청나게 슬픈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만 해서는 살 수가 없다.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일단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여러분이 그렇게 싫어하는 사수는 사실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인재일 수도 있고, 게을러 보이는 사장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 회사를 살리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 모습을 우린 알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언제나 회사의 시점과 근로자의 시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차이를 그저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일을 그만둬 버리면 어디에서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각해보라. 인사담당자가 내 이력서를 보았는데 이직을 3개월, 6개월, 5개월에 한 번씩 했다고 적혀있다면 나를 어떤 사람으로 생각할까? 그때부터 나는 더 이상 '먹고사는' 것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직장인은 다 자신만의 괴로움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어쩌면 인간관계일 수도, 적성일 수도, 혹은 출퇴근 거리가 멀어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 가더라도 우린 절대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고, 그런 인간이 만든 조직이 완벽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나 역시 인간이고, 불완전한 조직 구성원으로서밖에 업무에 돌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런 나를 바라보는 사장님과 상급자들 역시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그건 부당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본인이 창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산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여전히 노동을 통한 소득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마저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생존을 위해 싫어도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하는 게 옳다. 나는 이게 옳다고 생각한다. 죽는 것은 상상만 해도 너무 괴로우니까 나는 이게 옳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출근하고, 일을 한다. 물론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 수는 없을 테니 나름대로 나도 내 살 길 찾아보는 중이다. 이게 행복이지.

매거진의 이전글 청년이여, 회사에 목숨을 걸어라!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