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에의 충동

by 루체
어떤 때는 한없이 모호해지고 싶다. -최유수, 빛과 안개


도주

사소한 과오를 지울 수 없다는 것은 인생의 크나큰 괴로움이다. 쉽게 쓰고 지우는 것에 익숙한 세대에는 더하다. 앞으로는 더할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과오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도망치고 싶다. 아주 먼 곳으로 가야 할 것이다. 기차나 비행기는 타지 않는다. 두 발로 도망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피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단단하고 차가운 땅이 탁, 탁 소리를 내며 발바닥에 부딪히는 것이 느껴질 때까지. 종아리 근육이 터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나의 온몸이. 육체가. 감당할 수 없고 무슨 수를 써도 버리고 갈 수 없는, 나를 가두고 있는 육신이 진절머리 날만큼 생생하게 느껴질 때까지. 인간은 도주를 원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도주2

사무실에서 일을 할 적에, 문득문득 등 뒤에 있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을 때가 있었다. 단지 퇴근하고 싶은 감정은 아니었다. 죽고 싶은 건 더더욱 아니었다. 얌전히 앉아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했다. 아무 전조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 평범하게 창을 여는 나. 3층이 훌쩍 넘는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나. 어디도 다치지 않고 땅에 내려서서 그대로 뛰어가는 나.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지 들리지 않는지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뛰는 나. 어디로 가려는 생각도 없고 무작정 뛰다 보면 무언가의 끝이 있으리라는 믿음. 그게 세상의 끝이든 나의 끝이든 간에. 그 때의 나는 동네 공원을 달리며 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단순히 달리는 것을 욕망하는가 싶어서. 숨이 말 그대로 턱 끝까지 차오를 때까지, 다리에 힘이 풀릴 때까지 달려도 갈망은 채워지지 않았다.

'달려 나가기'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나는 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열린 결말을 상징하는 아득한 흰 빛으로 달려 나간다. 희망, 절망, 안정적인 미래, 자신을 던져넣을 과업 어떤 것도 없는 흰 빛으로. 그러니 나는 '달리기'를 원한 것이 아니다. '나가기'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단순히 일이 성미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실종

갑작스레 새 거처를 구하여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거처는 구하지 않아도 좋다. 그냥 어느 주말 아침에 나가고 싶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서. 출발지는 가족들이 있는 집이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나는 가방 하나만 멘 채 거실에 서 있다. 아침빛이 하얗게 들고 있으나 세상에 깨어있는 것은 나뿐이다. 나는 도피를 계획하고 있다. 실행할 것이다. 아침식사를 하고 깨끗이 치워 두었으며 이부자리도 단정하게 개켜 놓았다. 내 방은 조용히 그 자리에 있다. 모든 것이 가만히 있다. 무언가를 두고 가거나 마지못해 떠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가는 것이다. 평범한 체크아웃이다. 나는 굳이 기척을 죽이려 하지 않으며 집을 나선다. 도어락이 닫히면서 소리가 나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나온다. 아파트 단지는 조용하다. 모두가 게으름을 부리는 휴일이다. 나는 평소의 걸음대로 걷는다. 꺼진 신호등을 지나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음악도 없고 누군가의 발소리도 없다. 거울 속처럼 조용하다. 버스가 온다. 그러면 나는 영영 떠나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인 것처럼 그렇게.

새로 시작하려는 것이 아니다. 여행은 다시 돌아올 것을 전제로 하나 떠남은 오로지 저편으로 향한다. 가고 싶다. 서서히 작아지면서 사라지듯이. 실종되고 싶다. 아무도 애태우지 않고. 무엇도 나를 가두지 않았으니 부수기보다는 열고 나가기를 원한다. 뛰쳐나가기보다는 걸어 나가고 싶다. 끝내기보다는 여운이 되고 싶다. 자신에게서조차 실종되어 뒷모습을 바라보고 싶다.

여기가 아닌 곳에서 잘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살고 싶은 것이 아니다. 방향을 원하지 않는다. 바람에 날려간 꽃잎은 어디로 가는가. 처마에 내려앉았다가 다시 날아간 그는, 어느 집 지붕을 넘어간 그는 어디로 가는가. 그 순간 오롯이 존재했고 잡을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사실만이 남아 있다.

모든 것이 여전한 가운데 아득해지고 싶다.


흐려지기

<백만엔걸 스즈코>의 스즈코는 백만 엔을 모을 때마다 다른 곳으로 떠난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서다. 하지만 그는 꽤나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고 거절하는 법도 잘 모른다. 인간 관계에 저도 모르게 스며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화들짝 놀라며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간다.

나는 딱히 눈에 띄는 얼굴이 아니다. 얼굴을 내놓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커다란 안경을 끼고, 겨울에는 마스크를 하고, 모자를 쓰고 검은 옷을 즐겨 입는다. 주변에 사람을 두는 타입도 아니다. 사랑도 우정도 나의 것보다는 남의 것을 좋아한다. 경제 사정만 괜찮다면 언제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몸이다. 한 때는 1년마다 다른 도시에 가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건 물론 경제 사정 때문이다. 역마살도 없는데 그렇다. 지워지고 싶고, 흐려지고 싶고, 인식 밖의 존재가 되고 싶다. 자꾸만 유령에 관해 쓰는 것은 존재 흐리기의 욕망인 듯하다.

나는 나 하나로 충분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게는 온오프라인으로 연결된 친구들이 있다. 가끔 생사를 확인하러 오는 가족이 있다. 배달로는 채워지지 않는 냉장고를 가득 채워주고 생일 때 케이크를 사들고 오는 가족이. 가끔 내가 나 하나도 감당하지 못할 때 나를 내려놓으러 갈 집이 있다.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은 어느 한도 이상으로는 흐려지지 못한다.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도까지는 흐려질 수 있다. 꿈처럼 떠 가는 구름이 실은 형체 있는 물방울로 이루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한다.


유령

대학 근처의 카페에 나의 유령을 두고 왔다. 나는 창밖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그는 창가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든다. 시간이 멈추고 그는 영원히 잠든다.

비 오는 날 미술관에 나의 유령을 두고 왔다. 새하얀 벽에 띄엄띄엄 걸린 것은 흑백 사진이다. 흑백으로 입고 장우산을 든 내가 오도카니 앉아 있다. 빗소리는 영원히 들린다.

대극장에 나의 유령을 두고 왔다. 관객이 유난히 적던 실내악 공연. 공연이 끝나고도 나는 거기에 앉아 있다. 곧 불이 꺼지고 내 뒷모습이 어둠에 잠긴다. 페르마타는 영원히 지속된다.


백일몽

그러나 내 손에 무엇인가 뭉클 뜨뜻한 덩어리가 쥐여진* 것처럼 햇볕이 따듯해서 나는 꿈에서 깨어난다.


*이상, <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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