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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미소 Sep 06. 2016

침묵의 시선

The Look Of Silence,2014

1965년 정권을 잡게 된 인도네시아 군부는 공산당 세력을 정리한다는 명분으로 군부와 뜻을 같이 하지않는 100만명을 학살합니다. 군부는 그 잔인한 의도를 숨기기 위해 일반인들에게 감투를 씌워 이들이 공산당을 ‘정리’하도록 조정했으며, 이로 인해 이웃으로 살던 이들을, 조카들을 죽이는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은 2013년 ‘액트 오브 킬링’을 통해 그 가해자들의 목소리를 전달한 바 있습니다. 2014년엔 피해자들의 침묵에 대해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다큐멘터리 영화 ‘침묵의 시선’입니다. 이 침묵은 자발적 침묵이 아니라 강요된 침묵입니다. 50년전 대학살의 공포와 의도가 아직까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2014년 11월 인도네시아 내에서 결국 이 영화가 상영됐다고 합니다. 그것이 침묵을 깨는 첫 걸음이었겠지만, 영화를 보면 러닝타임이 흐를수록 이 절망이 언제 끝날 수 있을까 하는 절망 속에 빠지게 됩니다.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고, 세계 언론들이 영화와 감독의 목소리를 실었습니다. 우리나라엔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제 작품들 중 가장 주목받았던 영화였습니다. 올해 일반 극장들에서 개봉을 하였고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이 8월에 내한을 하기도 했습니다. ‘침묵’은 이렇게 서서히 세상에 알려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쉽게 봐지지 않는 영화이며, 진실이며, 현실입니다.

1965년 대학살에서 가장 잔인하게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람리의 동생 아디입니다. 그는 가해자들이 당시 살해 장면을 재연하는 모습을 모니터 너머에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의 형은 칼에 찔린 후 내장이 흘러나온 채로 집으로 도망쳐 왔다가 다시 끌려가 죽었습니다. 다시 끌려가는 아들을 잡지 못한 어머니와 가해자들의 입을 통해 그 안타까운 얘기를 전해 듣습니다. 그는 왜 사람들이 죽어야했는지 알기 위해 브라운관 앞을 떠나 가해자들을 찾아갑니다. 브라운관의 보호를 떨치고 위험한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아디의 직업은 ‘안경을 맞춰주는 사람’입니다. 아이러니 합니다. 가해자들의 시력을 측정하고 올바른 렌즈를 끼워주며, 세상을 잘 보게 하려고 애씁니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여전히 50년 전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습니다. 공산당 놈들은 죽어 마땅했고, 배우자를 바꿔 잠자리를 하는 놈들이었으며, 신을 잊은 자들이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아 얘기합니다. 자신의 공으로 세상이 깨끗해졌노라고 당당하게 당시의 무용담을 늘어놓습니다. 학살된 자들이 어떻게 피를 흘리며 죽었고, 어떻게 안죽으려고 발버둥을 쳤는지 그리고 그들을 또 어떻게 짓밟았는지 실성한 사람처럼 웃으며 얘기합니다.


아디는 이 실성한 얘기들을 계속 들으면서도, 시력을 측정하고 안경을 맞춰줍니다. 아디는 과연 그가 듣고싶었던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요? 가해자들은 ‘현재’의 아디를 어떻게 볼까요?

아디가 가해자들을 찾아가 당시 상황과 왜 그들을 죽여야했는지 캐묻고 다니는 것에 대해 한 가해자는 지금 아디가 하는 여정을 ‘공산당 짓’이라고 규정합니다. 계속 ‘공산당 짓’을 하다가는 그때의 그런 일이 또 일어날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1m 남짓 너머에 앉은 1965년의 가해자가 아디를 지긋이 노려보며 얘기합니다. 섬뜩합니다.


가해자들은 대학살을 통해 부와 명예(?)를 축적했으며, 현재 인도네시아의 기득권 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학교 역사시간에도 공산당은 잔인하며 대학살 때 죽은 공산당 무리의 아들은 공무원이 될 수 없다고 왜곡된 역사를 가르칩니다. 아디는 정말 위험한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50년 간 변한 것이 없는 생각의 틀, 왜곡된 사실들. 시간은 멈춰져 있습니다.

아디의 아버지는 람리가 죽은 후 매일 치아가 1개씩 빠졌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는 이제 람리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아디의 어머니는 아직도 큰아들을 그리워합니다. 하지만 어머니도, 당시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동네 아저씨도, 그때 그 일을 들추지 말라고 합니다. 이미 지난 일이라고. 신이 알아서 해결해주실 거라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가족 양쪽에서 아디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 깨기 힘든 침묵입니다.


영화의 시작과 끝, 중간중간에 끊임없이 풀숲 귀뚜라미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대학살의 밤엔 비명소리와 살려달라는 소리가 세상을 가득채웠을 겁니다. 하지만 그 소리들은 칼에 찔리고 강물에 떠내려가 이젠 귀뚜라미 소리가 가장 크게 들리는 적막한 밤만이 존재합니다. 귀뚜라미 소리를 계속 듣다보면, 그 비명들이 귀뚜라미 소리에 묻힌 듯 하고, 아직도 가해자들 발 밑에 억눌려 있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듭니다. 무서운 적막이고 한 맺힌 침묵입니다.


영화가 끝난 후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도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엔딩 크레딧의 절반 이상에 같은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ANONYMOUS (익명)’


※ 본 리뷰는 스포일링을 최소화 하고 여러분의 영화 관람 선택을 돕기 위해 작성 됐습니다.

예술적 재미 : ★★★★☆

예술적 표현의 과격성 : ★★★★☆

상업적 재미 : ☆☆☆☆☆

감동 : ☆☆☆☆☆

스토리 구성 : ★★★★☆

엔딩의 충만함 정도(허무하지 않은 정도) : ★★★★★

허드서커 상상력 : ☆☆☆☆☆

<영화 포스터/스틸컷 출처 : 영화 ‘침묵의 시선’ , 배급 : (주)엣나인필름>

※ 이 글은 허브줌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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