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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미소 Nov 10. 2016

바다와 바람의 소리 그리고 밀물

다가오는 것들, l'avenir, 2016


바다와 바람의 소리

프랑스 브르타뉴 생말로 해변가에 있는 샤토브리앙(Chateaubriand)의 무덤은, 잠시 그 앞에 멈춰선 여행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un grand écrivain français a voulu reposer ici pour n'y entendre que la mer et le vent" (한 프랑스 대작가가 바다와 바람의 소리만을 듣기 위해 이곳에서 쉬기를 원했다.)


썰물일 때만 모습을 드러내는 그 무덤 앞에서 나탈리의 남편은 한참을 서성거립니다. 물이 들어와 그곳을 곧 덮을텐데 말입니다. 그곳에서 어떤 답이라도 얻으려는 듯. 프랑스의 대작가가 듣고싶어하는 바다와 바람의 소리는 아닌 듯 하군요.


그가 어떤 얘기를 하건 달과 지구 사이에 있는 그 무덤은 당연하다는 듯 밀려오는 물을 받아들일 겁니다.


그리고 밀물

고등학교 철학 교사인 나탈리와 역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남편 하인츠는 퇴근후 교육과 책에 대해 얘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인텔리 부부입니다. 아이들은 독립해 두 사람만이 그들의 공간을 채우고 있죠. 그러던 어느날 남편이 낯선 얘기를 꺼냅니다.


“다른 사람이 생겼어”


나탈리는 큰소리로 남편을 나무랍니다. 그런데…가만히 들어보면…남편에게 여자가 생겨서만은 아닙니다.


“내게 왜 그걸 말하는 거야. 그냥 모르게 지나갈 수는 없었어?”


소설이나 드라마에서처럼 그 나이 여성에게 당연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듯 그녀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하지만, 남편이 한번 내뱉은 말은 그렇게 밀물이 되어 다가와 그녀의 삶을 침잠할 기세입니다. 그래서 그녀는 화가 납니다. 바다와 바람소리만 들리는 평화로운 시간은 브르타뉴 생말로의 해변가에서나 가능한가 봅니다.


나탈리는 사유와 추론에 익숙한 철학자이지만,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올 것이 왔다는 식의 태도로 삶을 지탱해 갑니다.


받아들이는 방법

나탈리는 버스에 앉아 혼자 흐느낍니다. 그러다 새로운 애인과 길을 걸어가는 남편을 창밖으로 우연히 보고는 어이 없다는 듯 웃기 시작합니다. 가족과 학생들 앞에서 한 올 흐트러짐이 없는 그녀도 혼자 앉아서 가는 버스에서는 이렇듯 울다 웃기를 반복합니다.


그것은 아마도 이 모든 ‘밀려오는 것들’을 마주하며 그녀가 내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혼자 감당해야하고 한 올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이러한 악순환은 한동안 계속됩니다.


“여자는 마흔이 넘으면 쓸모가 없어져”


극단적이지만, 이 모든 ‘밀려오는 것들’을 싸잡아 퉁칠 수 있는 나탈리의 논리.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합리화와 일반화이지만, 왜 갑자기 남편의 외도가 일어났는지, 어째서 엄마의 바보 같은 고양이를 자기가 맡아야 하는지, 애제자에게 왜 그런 도전을 받아야하는지를 모두 그녀에게 설명해보라고 요구하는 것은 더 가혹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순식간에 무엇이 옳은 것인지, 무엇이 좋은 것인지 판단하기조차 버거워진 지금도 자욱한 안개 저 반대편에 누가 노를 저어 나탈리를 만나러 올지 모릅니다.


여자의 삶?

섬세한 연출력의 미아 한센-러브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탁월한 배우인 이자벨 위페르가 만난 영화였습니다. 두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연출과 연기였다는데는 모든 이가 공감할 것입니다. 그들이 표현하려는 일련의 사건과 감정들을 ‘여자의 삶’에 얹어 관객들과 만났고, 성공한 실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나탈리와 더불어 관객들은 충분히 ‘담담함’과 ‘뒷골 땡김’ 사이에서 분주했습니다. 영화관을 나설 땐 마치 챙겨야 할 것을 잊고 집문 밖을 나설 때와 같은 찝찝함이 계속 됐고, 몇일 동안 장면 장면을 생각하다가, 비로소 인정하고 마음이 가라앉는 감정 순화의 과정도 겪은 듯 합니다.


‘여자의 삶’으로 줄거리가 전개됐지만, 이 영화를 보는 남성분들도 나탈리의 마음으로 2시간을 살게 될 듯 합니다. 어쩌면 2,3일 정도..? ^^


※ 본 리뷰는 스포일링을 최소화 하고 여러분의 영화 관람 선택을 돕기 위해 작성 됐습니다.

예술적 재미 : ★★★★★

예술적 표현의 과격성 : ★☆☆☆☆

상업적 재미 : ★★★☆☆

감동 : ★★★☆☆

스토리 구성 : ★★★★☆

엔딩의 충만함 정도(허무하지 않은 정도) : ★★★★☆

허드서커 상상력 : ☆☆☆☆☆

<영화 포스터/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수입배급 :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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