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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미소 Nov 10. 2016

꿈 같은 흑백영화

춘몽, 2016

흑백 영화

사람 냄새 나지 않을 듯한 새삥(?)한 건물들로 가득찬 동네 반대편에 흑백으로 삶이 이어지는 수색이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다른 그 두 동네 사이에는 긴 터널이 있습니다. 터널을 사이에 두고 두 동네는 시간도 다르게 흘러가는 듯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영화라지만 너무도 뜬금 없이 어느 수색동 가정집 앞에 ‘고향주막’이라는 술집이 있습니다.


이곳에 도대체 어떻게 먹고 사는지 대책이 안서는 네 남녀가 살아갑니다.


장례식장에서 웃음보가 터지는 바람에 보스에게 찍혀 인생 추락한 익준. 김정은 마누라 리설주보다 예쁘다고 소문이 자자했던 여자친구와 탈북했고, 조울증으로 반년치 월급이 떼인 채 회사에서 쫓겨나서는 그 정문 앞에서 90도 인사를 계속 하는 정도로 전 사장에게 저항하는 정범. 부모에게 물려받은 집 한채에 세를 놓아사는 자칭 ‘건물주’지만, 간질을 앓고 있는 멍청이 종빈. 이 세 남자 사이에 여자 예리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연변에 있는 조선인 엄마와 바람 펴 태어난 딸이며, 기껏 한국에 와 찾았더니 바로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구구절절한 사연의 ‘고향주막’ 주인이 그녀입니다.


제목의 느낌을 극대화 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인지, 이들의 잿빛 삶을 표현하려는 감독의 의도인지, 영화는 흑백 필름에 담겨 돌아갑니다. 영화 속에서 네 사람은 거의 항상 같이 다니지만, 카메라는 네 사람의 인생을 돌아가며 클로즈업 합니다. 그래서 항상 같이 다니는 그들은 마치 익준의 꿈 속으로 들어갔다가 정범의 꿈 속으로 옮겨갔다가 하는 식으로 잇따라 어떤 이야기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웃음보가 뭐! 뭐!.터지고 싶어 터지냐”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익준은 잘 나가던 건달 넘버 쓰리, 포 정도 되었던 듯 싶습니다. “난 형이 잘 나갈 때 형이 좋았어!”라는 종빈의 말에 익준도 손바닥 뒤집 듯 한 순간에 가버린 자신의 전성시대가 아깝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웃음보가 터지고 싶어 터지냐. 내가 잘나가기 싫어서 이렇게 안 잘나가고 있냐.


정범의 입장에서 보면, 우울하고 싶어서 조울증 걸리냐. 종빈의 입장에서 보면 숨 넘어가고 싶어서 간질이 나오겠냐. 이렇듯, 무엇인가에 떠밀려 수색 골목까지 온 이들은 참으로 참하고 어여쁘고 교양 있는 예리 주변에서 이 모든 병들을 치유 받습니다. 모두 그녀의 짝이 되고 싶어하지만, 서로 질투하는 정도는 귀엽고 순수한 수준입니다. 어쩌면 ‘감히’ 그녀의 짝이 되는 건 꿈 속에서나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지요.


물론 예리를 사랑하는 오토바이 걸 주영의 시(詩)처럼 뭔가가 떠밀려간 자리에 다시 무엇인가가 들어올 테지만, 꿈 속에서도 왠만해선 원하는 대로 되지를 않죠. 손으로 잡힐 듯 하지만, 내 몸은 무중력 상태로 그녀를 지나쳐버리고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새로운 장면이 시작되는 그런 꿈처럼.


“우리 그냥 이렇게 살자”

길거리에 누군가 내다버린 옷장 속에 들어가 기도를 마친 예리가 ‘훅’ 하고 튀어나와 익준은 기겁을 합니다. 그리고는 예리가 머릿속이 복잡한 익준에게 훈계인지, 회유인지, 푸념인지 모를 당부를 하지요. 그냥 이렇게 살자. 여러가지 느낌이 전달됩니다. 무리하지 말고, 사고치지 말고, 욕심 갖지 말고 그냥 이렇게 살자.


제발 그렇게 살았으면. 관객들도 어느 결에 그렇게 기도를 하게 됩니다.


‘훅’

꿈을 꾸다 보면 갑자기 이 사람이 왜 내 꿈에 나오는거야 하고 놀랄 때가 많죠. 이 영화 역시 갑자기 ‘훅’ 들어오는 인물들 때문에 영화적 재미가 쏠쏠 합니다. 캐스팅을 보면 유연석, 신민아, 김태훈 등 우정출연 라인마저 호화롭습니다.


그리고 치매에 걸려 이 모든 꿈들을 휠체어에 앉아 지켜보는 유일하게 현실적인 인물 예리의 아버지. 그의 활약상도 만만치 않습니다.


장률 감독은 세 명의 남자 배우 역에 실제로 감독을 하고 있는 양익준, 박정범, 윤종빈 세 사람을 그들의 실명으로 캐스팅 했습니다. 이들의 ‘훅’ 가는 연기. 꿈 속에서 같이 만날 수 있습니다.


※ 본 리뷰는 스포일링을 최소화 하고 여러분의 영화 관람 선택을 돕기 위해 작성 됐습니다.

예술적 재미 : ★★★★☆

예술적 표현의 과격성 : ★☆☆☆☆

상업적 재미 : ★★☆☆☆

감동 : ★☆☆☆☆

스토리 구성 : ★★★★☆

엔딩의 충만함 정도(허무하지 않은 정도) : ★☆☆☆☆

허드서커 상상력 : ★★☆☆☆

<영화 포스터/스틸컷 출처 : 네이버 영화, 제작 : (주)률필름, 배급 : (주)스톰픽쳐스코리아 , (주)프레인글로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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