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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미소 Sep 06. 2016

성실과 실성 사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2014

어떤 여인네가 조용하게 그러나 당당하게…일찌감치 귀를 닫아버린 치료와 대화의 방으로 잠입합니다.


그리고 여인네는 이상한 방식으로 퇴근시간보다 일찍 귀를 닫아버린 심리상담사와 대화를 시작하려 합니다. 책상 위에 칼을 꽂고 상담사는 의자에 묶은 채로. 무슨 일일까요. 영화 초반, 관객들은 이렇게 호기심만 무성한 채로 이 여인의 이야기를 무작정 듣기 시작합니다. 앞뒤 없이.


앞뒤 없이 무작정 듣기 시작하는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입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대상에 빛나는 영화이며, 1996년 이후 20년만에 청룡영화제에 참석했던 배우 이정현은 깜짝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이정현은 영화 ‘꽃잎’ 이후 오랜만에 즐기러 왔다가 상까지 탔다고 하시는데, 실제 영화를 보면 이정현을 위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여우주연상이 놀랍지 않을 정도의 연기력을 보였습니다.


거기다 총 예산 3억의 이 영화에 출연하면서 노개런티로 활약했고, 스탭들 식사까지 챙겨줬다는 훈훈한 앞(?)얘기도 있었습니다.


소개는 이쯤 하고 다시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시죠.

인질극에 준하는 이 상황에서 감독은 배우에게 우스꽝스런 모습을 주문합니다. 인질이 된 상담사가 벌벌 떨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는 인질극 같은 긴장감은 없습니다.


다만, 어둠이 내리기 직전의 옅은 빛에만 의존해 방안을 밝히고, 책상에 칼을 꽂은 채로 도시락을 까먹는 주인공 여인네의 모습에서 관객들은 뭔지는 모르겠지만 매우 엽기적이거나 잔인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다는 중압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긴장의 속도감은 없지만, 감정을 누르는 무게감이 관객의 어깻죽지를 경직시킵니다.


하지만…적막을 깨고 입을 연 여인네. 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데, 코믹한 분위기가 나는 것일까요. ‘그래서 더욱’ 엽기 상황 기대지수는 높아지고 관객은 귀를 기울이며 눈을 가늘게 뜨고 보게 됩니다.

이 여인네의 이름은 ‘수남’입니다. 자신은 학생시절 진로 결정의 기로에서 여공의 길을 갈 것이냐, 엘리트의 길을 갈 것이냐를 정해야 했답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은? 엘리트의 길이었답니다. 그래서 그녀는 무려 ‘자격증 최연소 최다 보유자’가 됩니다. 그녀가 그렇게까지 달렸던 이유는 ‘약속된 엘리트의 삶’


그러나 세상으로 나간 그녀는 자신의 능력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이질감에 힘들어 하고 당황해 합니다. 아무것도 약속된 것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선생님은 말로 소통하는 것이 아닌 ‘몸’으로 소통하는 것을 조언해주기도 합니다.

세상과 얘기 나누는 방식에 또는 그것을 포기하는 방식에 익숙해져 가는 그녀에게 사랑이 생깁니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그녀에게 소리를 질러댑니다. 왜 그럴까요? 이럴 수가… ‘내 남자’가 잘 듣지를 못합니다! 그녀에게 가장 가깝고 그녀의 얘기를 들어줘야 할 구세주 같은 인물의 신체가 ‘듣는 기능’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집을 먼저 사자’ ‘귀를 먼저 고치자’며 옥신각신 신혼의 꿈을 꾸며 열심히 사는 부부가 됩니다. 그러던 그들에게 위기가 닥쳐옵니다. 그것도 남편이 더 이상 소리를 지르지 않게 된 날부터. 행복을 약속했던 현대의 과학은 달콤한 꼬임으로 다가왔지만, 씁쓸한 부작용을 그들 부부에게 선사합니다. 큰 돈을 주고서야 만날 수 있었던 기득권 사회의 과학도 이들에게 대화의 기회를 찾아주진 못합니다. 오히려 재앙의 씨앗을 남편의 귀에 심어줍니다.

여기서 잠시…수남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고 있을 상담사를 잠깐 들여다볼까요? 격하게 자신의 인생 역정을 얘기하며 결국은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수남 앞에서 엉덩이가 배기고 밧줄이 영 불편하게 조여옴에 몸을 꼬고 계시는 상담사.


영화는 이렇듯 내내 ‘소통 없음’을, 아니 ‘소통 할 수 없음’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현합니다. 눈과 코가 없는 듯한 담임 선생님, 그녀의 능력을 업신여기는 사회, 상담시간 내내 우는 상담 고객과 칼을 가운데 둬야만 열리는 두 여인의 대화, 소리를 질러대는 남편. 수남이 ‘왜 자꾸 딴소리야!’ 하고 이 세상에 소리를 지르듯 대거리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결국 그러니 ‘닥치고 들으라’는 식으로 상담사에게 입을 연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그런 현실 속에서, 이미 목까지 물이 차오른 현실의 수조 안에서 마술사를 기다릴 시간이 없는 그녀는 스스로 탈출을 계획하고 사방의 유리를 두드리기 시작합니다. 조금이라도 유리에 금이 가기를 기대하며…

이 리뷰를 쓰면서 남발하게 되는 ‘하지만’이라는 접속사. 그것은 그녀와 세상과의 관계가 관객의 기대에서 자꾸 어긋나기 때문인 듯 합니다. ‘그녀는 이런 사람이야. 하지만 세상은 그걸 몰라줘.’, ‘그녀는 이런 말을 해. 하지만 세상은 저렇게 들어.’, ‘그녀에겐 이게 필요해. 하지만 그녀는 저걸 갖게 돼.’…이런 식이죠.


기대에 어긋나리라는 기대 그대로 그녀는 전자계산기가 아닌 주판을 두드리며, ‘이런 식이면 21년을 같은 짓을 하며 살아야 한다’고 푸념 합니다. 위기 상황의 전환기를 노리건만 상황이 악화되는 속도는 그녀가 주판알을 굴리는 속도에 비할게 아닙니다.

어쨌든 수남은 상황의 반전이 필요합니다. 그 반전의 계기는 엉뚱하게도 오토바이를 탄 삐끼의 ‘명함 던지기’ 신공. 벽과 벽 사이, 차문 사이 등 조그만 틈새라도 보이면 ‘휙!’…백발백중 명함전단을 꽂아 넣는 청년을 수남은 ‘이 수조에서 나를 꺼내줄’ 마술사를 찾은 듯 넋을 놓고 쳐다봅니다. 그리고 그야말로 ‘밥 먹고 이 짓만 하면 못할게 뭐 있냐’의 정신으로 신공을 터득하고야 맙니다. 


이 신공으로 그녀는 ‘소통 할수 없는’ 무림의 고수들과 맞서 나갑니다. 영화는 이제 시작입니다. 기나긴 서론을 끝내고 험한 무림에서 좌충우돌 활약하게 되는 그녀는 결국엔 물이 가득 차 올랐을 수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요? 환하게 웃을 수 있을까요?

약속된 엘리트의 삶을 꿈꾸던 그녀가 사는 곳은 저기 어디쯤 있습니다.


이 나라에서 아직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북적이며 모여있는 저 집들 속 여러 가지 사연들은 단순히 돈과 물질이라는 기준으로 쳐놓은 금줄 너머로 넘어오지 못한 채 삭막한 골목에서 사그라질지도 모릅니다. 금줄을 쳐놓은 이들은 팔짱을 끼고 그 광경을 건조하게 쳐다봅니다.


이 영화에서처럼 그 사연이나 광경이 우스꽝스러울수록 현실은 더욱 잔인하게 불거지고, 이 잔인한 상황 속 주인공들은 건조한 시선들에 둘러싸여 탈출구를 찾지 못합니다.


그 시선들을 젖히고 바깥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성실’이 아니라 ‘실성’입니다. 사실 감독이 공들였을지도 모를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영화 제목에서 우린 쉽게 그 해답을 눈치 챕니다. ‘성실한 나라의 실성한 앨리스’라고 해석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실성한 쪽이 어느 쪽이냐, 어느 쪽이 먼저 실성 했냐에 대한 무수한 해석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애초에 먼저 현실이 ‘실성’했다는 것에 한 표를 던지도록 하겠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에서 그 세상을 즐길 수도, 다시 현실로 돌아올 수도, 새로운 세계를 만들 수도 있겠지만, 실성한 나라의 앨리스는 꿈을 꿀 수도 없습니다. 성실하게 꿈을 좇아 갔다가는 결국 실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조심하세요.


※ 본 리뷰는 스포일링을 최소화 하고 여러분의 영화 관람 선택을 돕기 위해 작성 됐습니다.

예술적 재미 : ★★★★☆

예술적 표현의 과격성 : ★★★★☆

상업적 재미 : ★★★☆☆

감동 : ★★★☆☆

스토리 구성 : ★★★★☆

엔딩의 충만함 정도(허무하지 않은 정도) : ★★★★☆

허드서커 상상력 : ★★★☆☆

<영화 포스터/스틸컷 출처 :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 제작 : KAFA FILMS, 배급 : CGV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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