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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루미소 Sep 06. 2016

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초인, 2015

딱 요즘 날씨 같은 화사한 분위기가 스크린 곳곳에서 반짝이고, 책에 몰두한 채 미끄럼틀에 앉아있거나 역동적으로 덤블링을 하는 그야말로 젊고 순수한 모습의 두 청년 최수현과 최도현이 있습니다. 젊고 순수해 보이는 것만 같을 뿐 뭔가 달라 보이는 두 사람이 우연한 기회로 세 번이나 마주치게 됩니다. 병원에서, 놀이터에서, 도서관에서. 첫 마주침이 비록 매우 껄끄러웠고, 우연의 횟수를 더해가면서도 ‘이쯤 되면 운명’인가보라는 도현의 넉살도 먹히지는 않지만, 그만큼 가볍지 않아서 더욱 안심 되는 우연의 만남들이 이어집니다.

인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우연이 모여서 서로를 알게 되고, 터놓고 얘기를 나누게 된 관계. 그리고 서로를 쿨하게 찾게 되는 관계까지. 하지만 그 관계란 단순히 젊은 남녀간 사랑의 감정을 표면에 드러내지 않은 채, 그보다 더 중요한 사랑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관계로 그 맥이 이어집니다. ‘더 중요한 사랑’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먼저 찾아야 하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두겠습니다.

치매에 걸린 배우 출신 어머니를 홀로 보살피는 도현, 비닐에 가짜로 그려진 책이 꽂혀있는 책장을 가진 수현. 이들은 다른 모양새로 ‘상실’이라는 같은 뉘앙스의 삶을 살아갑니다. 상실한 것에 집중한 나머지 그들 자신의 삶 따위 잃어버린 혹은 잊어버린 그들.

한 명은 체조를 하면서도 꿈을 잃었고, 한 명은 꿈 속에서 얼굴이 책 뒤에 가려진 소녀를 마주칩니다. 그 꿈의 상실을 합리화 시켜주는 것은 치매 걸린 어머니이며, 얼굴 없는 소녀의 방에서 수현이 칩거하는 이유는 친구에 대한 죄책감입니다. 누군가의 뒤에 숨어 찾아야 할 무엇인가가 필요한 상황에서, 문득 수현은 영화의 제목 ‘초인’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삶을 사랑하고 창조하는 사람이면 다 초인이래. 그런데 현재의 삶을 사랑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그 고통을 견디고 극복하면 우리 삶은 변화가 일어나고 그렇게 되면 자신의 사람을 새롭게 창조할 수 있게 된대”


사실 초인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저서를 통해 말한 실체입니다. 신을 부정하고 인간이 자신을 극복하여 그 불완전성을 극복할 때 다다를 수 있다는 ‘초인’. 수현은 아주 친절하고 쉽게 어떻게 하면 방황하는 두 사람이 초인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줍니다.

이들은 인간의 모든 꿈과 기억이 모여있는 서대문의 어느 작은 ‘도서관’을 매개로 모여, 벌써 수차례 대출한 책을 또 대출해 가면서 초인이 돼가는 과정을 밟습니다.

이제 그들은 누군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게 될까요? 갑자기 누군가 물었을 때 잊지 않고 자신의 이름을 얘기해줄 수 있을까요? 그 모든 것을 찾은 후 그들은 ‘아무 생각없이 재미있게 달릴 수’ 있을까요?


영화 자체가 아기자기 하거나 화사한 빛깔을 적절히 띠면서 칙칙한 분위기로만 일관하지 않았고, 재미난 상징적 기재들을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저는 ‘책이 대충 그러나 촘촘히 그려진 비닐을 뒤집어 쓴 책장‘이 너무나 마음에 들었으나 스틸컷을 찾을 수가 없네요.) 일반 대중이 보아도 지루하지 않은 독립영화로서 제 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습니다. 한가지 덧붙여 배우 김옥빈의 막냇동생이 최수현 역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것도 살짝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찾길 바라는 ‘나’와 ‘나타샤’의 시를 읊어드리겠습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 본 리뷰는 스포일링을 최소화 하고 여러분의 영화 관람 선택을 돕기 위해 작성 됐습니다.

예술적 재미 : ★★★☆☆

예술적 표현의 과격성 : ★☆☆☆☆

상업적 재미 : ★★★☆☆

감동 : ★★★★☆

스토리 구성 : ★★★★☆

엔딩의 충만함 정도(허무하지 않은 정도) : ★★★★★

허드서커 상상력 : ☆☆☆☆☆

<영화 포스터/스틸컷 출처 : 영화 ‘초인’ , 네이버 영화, 제작 : 퍼레이드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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