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 시내 구경 & 알함브라 야경
시내 곳곳을 걸으며 이곳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면서 그라나다에서의 둘째 날 일정을 시작했다. 산 중턱에 위치한 그라나다는 바닷가 옆에 있는 바르셀로나나 말라가와는 달리 따뜻한 햇볕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가을 같은 서늘한 기후를 느낄 수 있었다. 얇은 겉옷을 입고 나온 부모님과 나와 달리 이러한 기후가 익숙한 현지인들은 9월 중순임에도 가벼운 반팔 차림으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라나다 구시가지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제니일(Genil) 강변을 따라 멋진 산책로와 정원들이 이어지는 파세오 데 라 봄바 공원(Paseo de la Bomba)이 나온다. 공원 곳곳에는 시원한 분수와 노천카페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잠시나마 여유롭게 머무를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시원한 바람과 푸른 풍경을 즐기면서 그라나다 특유의 편안함과 여유로움이 온전히 느껴졌다. 이번 스페인 여행 동안에 화려하게 꾸며진 공원이나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곳들을 많이 방문했지만, 파세오 데 라 봄바 공원만큼 '편안하다'는 감정을 강하게 준 곳은 없었다. 그동안 유럽 여행을 다니며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도시는 거의 없었지만, 그라나다만큼은 꼭 한 번 더 오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했다.
강바닥까지 매끈하게 콘크리트로 포장된 제니일 강을 보면서 처음엔 이건 강이 아니라 수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서 꽤 신기했다. 강폭도 생각보다 좁고 유량도 생각보다 적어서 '이게 강이면 양재천도 여기 기준에서는 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동안 여행했단 다른 유럽 도시들을 지나가는 강들을 떠올려보면,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강'들이 서울의 양재천이나 탄천하고 비슷한 규모인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강'이라 하면 자연스럽게 한강이나 낙동강이 떠오르는 내 기준에서는 꽤 낯선 풍경이었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스페인 돼지고기를 가장 기대했었지만 생각보다 맛있지 않았다. 대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애플망고가 가격도 저렴하고 맛있어서 거의 매일 사 먹었다.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산 애플망고는 1kg에 2유로 수준이었고 스페인산 애플망고는 평균 2.5유로에 팔리고 있었다. 확실히 바다를 건너온 남미산 애플망고보다는 스페인 현지에서 재배한 애플망고가 가격이 조금 더 높았지만 특유의 진한 향과 맛이 더 뛰어났다.
그라나다의 주거지역을 구경하던 중 스페인산 애플망고를 파는 과일 노점상을 발견했다. 한국과 달리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는 팻말이 있어서 어머니와 함께 신나게 과일을 담았는데 10유로도 나오지 않아서 매우 만족스러웠다. 물가가 비싼 유럽도 동남아처럼 맛있는 과일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는데, 한국에서도 과일 가격이 이 정도만 되면 얼마자 좋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어느덧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골목길은 석양에 물들며 붉고 평화로운 풍경을 만들어냈다. 그때 골목 어디선가 한 음악가가 'Recuerdo de la Alhambra'를 연주하고 있었는데 황금빛 석양과 어우러진 그의 기타 연주는 정말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완벽했다. 그의 연주에 정말 감명 깊어서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거리 음악가에게 감사의 의미로 팀을 남겼다. 다만 그때 녹화한 동영상이 날아가서 그의 음악과 SNS를 남기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큰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언젠가 다시 그라나다를 방문하면 꼭 다시 그의 연주를 듣고 싶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곳은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을 즐기면서 저녁 식사를 즐긴 카르멘 미라도르 데 아샤(Carmen Mirador de Axia)이었다. 블로그 후기를 통해 이 레스토랑을 알게 된 후, 그라나다에 머무는 날들의 날씨와 일몰 시간까지 확인해서 석양이 알함브라 궁전을 비추기 바로 직전의 시간대에 예약을 했다.
사실 풍경만 기대하고 가서 이 레스토랑은 어떤 요리를 메인으로 하는지 전혀 모르고 방문했다. 메뉴판을 펼치니 참치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레스토랑이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직접 간 토마토 주스에 올리브 오일이 들어간 웰컴 드링크가 나오고, 어떤 메뉴를 주문해야 할지 몰라서 이름과 가격만 보고 주문했는데,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참치 조각과 감자샐러드가 들어간 타파스(Bocados Ensalailla)와 참치 안심 타르타르(Tartar de Lomo)를 에피타이저로 주문하고, 메인으로는 꿀매구 구이(Lomo Bzacalo Asado)와 참다랑어 리조또(Risotto con Atun Rojo)를 선택했다. 특히 꿀대구구이는 부드럽게 익힌 대구살에 꿀이 은은하게 발라져 있었고 바르셀로나의 V모 식당의 것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이 레스토랑이 단순히 멋있는 전망 덕분에 유명해진 곳이 아니라 요리의 완성도와 맛 그 자체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특히 결제를 하면서 식사가 만족스러웠는지 묻는 직원이 물어보자 '이번 여행에서 맛본 요리 중에서 단연 최고였다'라고 말하니 그 직원은 정말 뿌듯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곳이 진심을 다해 요리하는 레스토랑이란 점이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 만약 패키지여행이었다면 이런 식당을 오기 힘들었겠지만, 자유여행이기에 누릴 수 있었던 최고의 경험이었다.
붉은 석양에 잠겨있던 알함브라 궁전은 해가 완전히 지고 어둠이 내려앉자, 본 보습을 숨겨두었다가 드러내듯이 웅장하고 압도적인 존재감을 내뿜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알함브라는 조용히 색을 달리하면서 변해갔다. 붉은 석양 아래의 여운에서 시작해서 차분한 황혼을 지나 황금빛 조명이 비추는 밤의 궁전으로 변모하자 왜 알함브라 궁전이 무어인들의 나스르 왕조가 스페인에 남겨놓은 가장 위대한 유산인지를 단번에 이해시켜 주었다.
식당을 나서기 전, 알함브라 야경을 배경으로 부모님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사진 속 부모님의 표정에서 '우리가 스페인에 왔구나!'라는 만족감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두 달이 지난 지금, 여행기를 쓰고 있는 내 뒤로 어머니가 다가오셨다. 그리고 사진들을 보시고서 "이번 스페인을 다녀와서 정말 좋았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한마디에 이번 여행의 모든 준비와 선택들이 다시 한번 더 뿌듯하게 느껴졌다.
파세오 데 라 봄바 공원(Paseo de la Bomba)
주소 : P.º del Salón, Centro, 18009 Granada, SPain
평점 : ★★★
후기 : 역시 공원이 있어야 도시의 가치가 올라간다.
크리스토 데 라스 아수세나스 광장 (Placeta Cristo de las Azucenas)
주소 : Pcta. Cristo Azucenas, Albaicín, 18010 Granada, Spcain
평점 : ★★★★
후기 : 니콜라스 전망대와 비슷한 풍경에 사람은 훨씬 더 적다.
카르멘 미라도르 데 아샤(Carmen Mirador de Axia)
주소 : Carril de San Agustín, 2, Albaicín, 18010 Granada, Spain
평점 : ★★★★★
후기 : 자릿세 10%를 더 내더라도 공식 홈페이지로 좋은 자리를 예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