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함브라 궁전 투어 & 그라나사 시내 구경
이번 스페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알함브라 궁전은 그라나다 일정의 세 번째 날로 잡아 두었다. 입장 티켓을 여행 전에 미리 예약해 두어서 이 날은 아침부터 마음이 이미 알함브라로 가 있었다. 숙소 근처에서 C30번 버스를 타고 정의의 문까지 한 번에 이동했다. 알함브라의 백미인 나스르 궁전의 입장이 조금 엄격하다는 후기가 있어서, 혹시 늦을 것 같아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오전 9시 즘에 입구에 도착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늘한 아침 공기와 동이 트면서 비치는 알함브라의 성벽을 보면서 묘한 긴장감과 설렘이 느껴졌다. 긴 줄이 조금씩 움직이면서 나스르 궁전의 입구에 다가가자, "진정한 무어 인들의 예술 작품을 마주하는구나"라는 설렘이 가득했다.
이미 말라가 알카사바에서 아라베스크 문양과 이슬람 건축 양식을 접했지만 나스르 궁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여기가 진짜 왕족들이 살던 궁전이었구나.'라는 사실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말라가 알카사바가 견고한 군사 요새이었다면 나스르 궁전은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갈수록 공간의 분위기가 점점 더 섬세하고 우아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특히 밝은 아침 햇살이 창과 아치 사이로 스며들며 실내를 은은하게 비추면서 벽의 문양과 기둥들에 생기가 도는 듯했다. 그 장면은 사진에는 담기가 힘들고 오직 아침에 그 장소에 있어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알함브라 궁전의 백미는 단연 오렌지 나무들이 늘어선 아라야네스 정원(Patio de los Arrayanes)이었다. 맑게 갠 하늘과 궁전 건물이 연못 위에 완벽하게 반사되면서 마치 공간이 두 배로 확장된 것 같았다. 그리고 정원의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분수에서 연못으로 물이 흘러가서 잔잔한 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연못에 비친 건물의 모습이 흔들릴 때마다 보이는 풍경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보였다. 정원의 양 끝에 서서 연못을 바라보는 동안에는 여행의 피곤함이나 잡생각이 모두 사라지고 오직 눈앞의 풍경만 보일 정도로 완전히 몰입했다. 알함브라 궁전이 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아라야네스 정원에서 사자의 정원(Patio de los Leones)에 들어서자 왠지 모르게 익숙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곧바로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우디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의 내부 분위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높은 천장과 화려한 천장 장식, 기둥들이 만들어내는 공간감이 놀라울 정도로 이곳과 매우 닮아 있었던 것이다.
부모님과 나는 "가우디가 대성당을 완전히 백지에서부터 설계한 것이 아니라 알함브라 궁전의 건축미에서 영감을 받았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함브라만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설계가 온전히 느껴졌다.
나스르 궁전을 둘러보면서 "스페인에 한 번 더 온다면 바르셀로나와 그라나다 중에서 어디를 다시 방문할 것인가?"를 두고서 부모님과 토론을 했었는데, 결론은 압도적으로 그라나다이었다. 바르셀로나에 가우디가 위대한 건축물을 남긴 것은 분명 감탄할만하지만, 더 깊은 인상을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어 인들의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알함브라가 있는 그라나다가 당연했다.
둘러볼수록 비슷한 듯하면서도 각기 다른 문양과 분위기를 뿜어내는 알함브라는 정말 매력적인 장소였다. 한 공간에서 수십 가지 패턴과 조각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디테일들이 계속 보이는 게 인상적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에 있는 반가사유상의 주위를 걸으며 감상하면서 계속 색다른 것처럼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아름다움이 계속 보였다.
"다른 곳은 몰라도 그라나다만큼은 꼭 가야지!"라고 강하게 주장하신 아버지는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하시며 "역시 내가 잘 골랐다니깐?"이라며 어깨를 으쓱하셨다. 사실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그라나다를 제외해야 할지 꽤 오래 고민을 했었다. 교통편이 좋지 않아서 이동 동선이 편하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님과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서 최대한 부모님의 의견을 반영한 것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알함브라 안에 있는 카를로스 5세 궁전에 들어가자 웨딩사진을 촬영하는 커플이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자 어머니께서 웃으시면서 "너도 이제 결혼을 고민하는 때가 왔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도 궁전이 예전에 여행한 바티칸 광장과 로마의 건축물과 비슷하시다면서 아버지와 함께 열심히 사진을 찍기 시작하셨다.
두 분이서 신나게 이곳저곳을 배경으로 촬영하는 모습은 마냥 즐거워 보였고, 이곳에서는 셀카보다 부모님의 뒷모습을 더 많이 담아두었다. 이렇게 장난기 많고 밝은 모습을 형과 나를 위해 오랫동안 묵혀두고 살아오신 두 분의 지난 시간이 생각하면 새삼 먹먹해졌다. 동시에 언젠가 나도 시간이 지나면 어떤 모습과 어떤 마음을 가지며 살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나스르 궁전 안의 아라야네스 정원이 예술작품처럼 정교하고 완성된 아름다움을 보여줬다면, 헤네랄리페 정원(Generalife)은 마치 숲 속 휴식처 같은 편안한 분위기의 정원이었다. 긴 연못을 성벽처럼 둘러싼 측백나무들은 외부의 번잡스러움을 차단해 주며 잠시 이곳에서 쉬어가라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여름 별궁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과 간결한 인테리어는 알함브라 궁전의 화려함과 대비를 이루며 이곳만의 담백함을 잘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찍던 와중에 갑자기 오른쪽 손목에서 따끔한 통증이 밀려와서 살펴보니 벌에게 쏘인 자국이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웃으시며 "스페인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더니, 공짜로 봉침치료를 스페인에서 받네?"라고 농담을 건네셨다. 사실 손목보다는 팔꿈치가 더 불편했어서, '차라리 팔꿈치를 쏴주지'라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알함브라 궁전 관광을 마치고 숙소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은 뒤, 그라나다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기 위해서 다시 시내로 나갔다. 바르셀로나 맛집들을 추천해 준 친구가 "그라나다에 가면 꼭 치즈케이크를 꼭 먹어봐"라고 강력히 추천해 준 케이크 집이 있었다. 그 친구는 치즈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라나다 여행 중 우연히 배 나온 스페인 아저씨들이 잭콕을 들고 케이크를 즐기는 모습에 따라 사 먹었다가 치즈케이크의 매력에 빠진 곳이라고 했다.
가게에 도착하니 이미 마감시간에 가까워서 남아 있는 치즈케이크는 많지 않았다. 어떤 것을 선택할지 고민되어서 주인에게 추천을 부탁했고, 그중 만체고 치즈로 만든 치즈케이크(Manchego Dop)를 추천해 주었다. 양젖 치즈 특유의 향과 고소함이 케이크와 놀라울 정도로 잘 어울려졌다. 평소 치즈케이크를 즐기지 않으시는 부모님도 "정말 맛있다"라고 하실 정도로 매우 만족스러웠다.
이번 스페인 여행을 다니면서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평소에도 종종 교외로 나들이를 가면 부모님이 손을 잡고 다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지만, 이번 여행처럼 여행 내내 손을 꼭 잡고 걸으시는 모습은 조금은 낯선 장면이었다.
그런데 곰곰이 지난 세월을 떠올려보면 이제 아버지도 가장으로서의 무게와 책임감을 조금 내려놓고서 어머니와 함께 편안히 걷고 싶으신 것 같았다. 두 분의 뒷모습에서 여행의 즐거움과 함께 낯선 곳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으면서도 지나간 시간과 세월이 느껴지면서 살짝 씁쓸함이 다가오기도 했다.
알함브라 - 나스르 궁전 (Alhambra - Palacios Nazaríes)
주소 : C. Real de la Alhambra, s/n, Centro, 18009 Granada, Spain
평점 : ★★★★★
후기 : 스페인에 왔다면 여기는 꼭 가봐야 한다.
헤네랄리페 정원 (Generalife)
주소 : Centro, 18009 Granada, Spain
평점 : ★★★
후기 : 화려함 속 평화로움과 함께 건강한 벌들이 가득하다.
킴케이크 (Kimcakes)
주소 : C. Puentezuelas, 38, Centro, 18002 Granada, Spain
평점 : ★★★★
후기 : 이게 진짜 양젖 치즈로 만든 치즈케이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