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고비아 당일치기
이번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면서 마드리드에 대해 알아보니 다른 도시들에 비해 매력적인 관광지가 비교적 적어서 방문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마드리드 공항이 스페인 국내선의 허브 공항이라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마드리드 근교 도시를 알아보다가 로마 시대의 수도교가 남아있는 세고비아로의 당일치기 여행을 준비했다.
세고비아행 버스표는 미리 Omio 앱으로 예매를 하고서 다음날 아침에 몬클로아 버스 터미널(Intercambiador de Moncloa)로 향했다. 구글 지도의 안내에 따라 도착하니 터미널로 보이는 건물이 보이지 않아 잠시 당황했다. 그래서 근처에 있던 경찰관에게 길을 물어보니,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면 된다고 알려주었다. 알고 보니 몬클로아 터미널은 지상이 아닌 지하에 터미널이 있는 곳이었다.
한 시간 반정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니 세고비아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런데 스페인의 지방 소도치로 보이고 수도교가 보이지 않아서 순간 엉뚱한 버스를 탄게 아닌지 혼란스러웠다. 그래서 구글 지도의 안내에 따라서 골목 안을 들어가니 그제야 로마 제국의 흔적인 세고비아 수도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처음 수도교를 마주하니 정말 거대하고 경이로움을 느껴졌다. 1세기 경에 수도교가 지어진 것도 매우 신기한데 1973년까지 실제로 이 수도교를 상수도 시설로 사용했다는 것이 매우 놀라웠다. 그리고 20세기 초(1929년 ~ 1930년)에 콘크리트로 보수하기 전까지 한 줌의 시멘트와 모르타르 없이 오직 화강암을 깎아서 만든 블록만으로 건설했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금 봐도 놀라운데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아닌 악마가 만들어냈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수도교를 지나서 구시가지로 들어서니 세고비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세고비아 광장(Plaza Mayro de Segovia)과 웅장한 세고비아 대성당이 관광객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고 있었다. 세고비아 대성장의 섬세하면서도 장엄한 모습은 확실히 인상적이었지만 종소리는 매우 아쉬웠다. 한국 사찰에 있는 종소리처럼 깊고 맑으면서 웅장한 소리를 기대했지만 실제로 들리는 소리는 시끄러운 소음처럼 느껴져서 매우 아쉬웠다.
세고비아 대성당을 지나 계속 안쪽으로 걸어가면 디즈니의 백설공주에 나오는 성이 연상되는 알카사르(Alcazr de Segovia)가 모습을 드러낸다. 언덕 끝에 뾰족한 탑들과 성벽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은 동화 속 삽화가 현실로 튀어나온 듯한 느낌을 주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알카사르 내부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중세 기사들이 착용하던 전신 갑옷과 다양한 무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중세 시대의 병영이나 무기고를 그대로 복원한 것 같은 분위기가 공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갑옷과 무기들의 디테일을 보고 있으면, 알카사르가 단순한 성이 아니라 군사적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성 곳곳을 둘러보면 그라나다의 알함브라에서 보았던 아라베스크 문양과 유럽 기독교 건축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스테인글라스 같은 다양한 장식들이 함께 존재하고 있었다. 서로 다른 이슬람과 기독교의 미적 요소가 한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모습에서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얼마나 복잡하게 융합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더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과 그림들이 잘 복원·보존된 상태로 전시되고 있었다. 화려한 침대와 귀족들의 초상화, 실내 장식품까지 하나하나가 이 성에 살던 사람들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중세 유럽의 권력과 문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게 살아 숨 쉬는 듯한 공간이었다.
알카사르 창문 밖으로는 넓은 초원과 그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면 세고비아를 지배했던 귀족들이 왜 이 성을 자신의 거처로 선택했는지 바로 이해가 되었다. 푸른 하늘 아래 노란빛이 감도는 지평선과 숲의 풍경은 오늘날 관광객들에게도 충분히 인상적이지만 수백 년 전의 귀족들에게도 분명히 인상적인 느낌을 주었을 것 같았다. 권력과 부를 보여주는 것 같은 넓은 땅을 내려다보며 자신들의 권력을 시각적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큰 만족과 자부심이 생기지 않을까 한다.
세고비아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도시가 새끼 돼지고기 요리인 '코치니요 아사도(Cochinillo Asado)'의 본고장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유명 식당들을 미리 찾아두었지만, 웨이팅이 너무 많아서 아쉽게도 다른 식당에서 먹어보기로 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는 마치 북경오리와 같은 식감과 맛을 기대했다. 하지만 실제로 맛본 코치니요 아사도는 껍질은 바삭해서 신기했지만 간이 지나치게 강한 수육 같은 느낌이었다. 혹시 식당을 잘못 선택했는지 구글 리뷰를 확인했지만 그 식당의 평점이 4점 이상이라서 '원래 이런 스타일이구나'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게다가 식사 후 종업원에게 결제를 요청하고 영수증을 기다렸는데 20분이 넘게 가져다주지 않았다. 혹시나 인종차별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 매니저를 통해서 직접 결제를 했다. 알고 보니 종업원이 우리의 주문서를 분실하는 바람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매니저가 짜증 가득하면서도 난감한 표정으로 종업원을 바라보며 상황을 정리하고 내게 사과하는 것을 보면서 단순히 업무 능력이 부족한 종업원인 것으로 결론지었다.
세고비아 수도교 (Acueducto de Segovia)
주소 : Pl. Azoguejo, 1, 40001 Segovia, Spain
평점 : ★★★★
후기 : 악마가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알 것 같다.
세고비아 대성당 (Catedral de Segovia)
주소 : C. Marqués del Arco, 1, 40001 Segovia, Spain
평점 : ★★
후기 : 인상적인 고딕 양식의 성당이지만 종소리는 솔직히 깬다.
알카사르 (Alcazar de Segovia)
주소 : Pl. Reina Victoria Eugenia, s/n, 40003 Segovia, Spain
평점 : ★★★★
후기 : 중세 영주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