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라나다 - Day 10

그라나다 이동 & 시내 구경

by 미르

인상 깊은 추억을 쌓인 말라가를 뒤로하고 이번 스페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그라나다로 이동했다.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도시 간 이동은 비행기로 주로 이동했지만, 말라가와 그라나다는 비교적 가까운 편이라서 말라가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말라가가 바르셀로나만큼 큰 도시는 아니지만, 막상 말라가 터미널의 규모는 예상보다 작았고 전체적인 분위기도 90~00년대 반포 고속버스터미널을 떠올리게 하는 소박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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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짐을 버스 트렁크에 싣고서 마음 편히 탑승하지만 스페인에서는 트렁크에 실린 짐을 훔쳐가는 사례가 있다고 들었다. 실제로 버스를 기다리기보다는 사람들의 캐리어를 유심히 훑어보는 사람들이 보이고 버스 트렁크 문이 양쪽으로 열려있어서 순식간에 짐을 훔쳐가기 편해 보였다. 그래서 부모님께 먼저 탐승하시라고 말씀드리고 내가 짐을 마지막에 싣고 미리 준비한 자물쇠와 체인으로 잠그고서 버스에 타기로 했다.


다행히 Alsa 버스의 유니폼을 입고 계신 옆 버스 기사님이 본인의 운행을 마치고서 다가오셔서 승객들에게 편히 반대편에 짐을 실으라고 손짓을 하시길래 모두가 짐을 편히 싣기 시작했다. 혹시나 누군가 짐을 훔쳐가지 않을까 지켜봤지만, 기사님 두 분이 트렁크 바로 옆에서 티켓을 확인하셔서 우려했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하고 창문 밖으로 승강장을 바라보니 내가 눈여겨본 사람들이 여전히 있는 것을 보고서 그들이 승객이 아닌 도둑들이란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라나다 터미널에 도착하고서 다른 도시에 도착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숙소까지 Uber로 이동했다. 숙소 건물 안에 들어가자 작은 분수와 소파들이 놓인 아담한 중정이 우리를 맞이했다. 전체적으로 하얀 톤을 꾸며진 이 중정은 잠시 앉아서 천장을 올려다보며 정원을 감상하라는 듯 차분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리고 벽에 설치된 전구색 조명들을 보면 저녁에는 낮과 전혀 다른 분위기로 변할 것 같아서 은근히 기대가 되었다.



숙소는 Booking.com에서 본 사진과 동일하게 깔끔하고 차분한 인테리어였다. 침대 밑에 베드버그가 있는지 꼼꼼히 확인했지만 다행히 관리가 아주 잘 되고 있는 숙소였다. 게다가 리투알스(RITUALS) 브랜드의 제품들이 어메니티로 제공되고 있었고 수건까지 넉넉하게 준비되어 있어서 전반적인 만족도는 높았다.


다만, 우리가 머물렀던 방이 거리를 향하고 있어서 숙소 바로 앞에 늦게까지 영업하는 바가 있어서 외부 소음은 큰 편이었다. 그리고 부엌의 식기세척기가 고장이 난 상태라 전원을 켜면 시끄러운 경고음을 내고 있었고, 직원에게 말하니 우리가 체크아웃한 이후에나 수리 일정이 잡혀있다고 했다. 전반적인 숙소 퀄리티는 좋았지만 이러한 작은 불편사항들이 쌓인 게 이 숙소의 '옥에 티'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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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에서 그라나다로 이동하면서 점심을 샌드위치나 과자로 해결해서 그런지 저녁시간이 되기 전에 생각보다 매우 배가 고파서 숙소 근처의 L모 식당에 방문했다. 곧 브레이크 시간이 시작하기 전이라서 입구에 있는 서버의 안내를 받아서 안에 앉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르셀로나의 V모 식당보다 이 식당은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가장 큰 실망을 안겨준 곳이었다.


우리가 앉은 구역을 담당하는 서버는 우리가 자리에 앉은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거의 20분이 지나도 메뉴판을 가져다주지도 않았다. 이에 처음 우리를 안내한 서버를 통해서 메뉴판을 받고서 빠에야와 연어 스테이크를 주문할 수 있었다. 무료 타파스로 제공된 치즈와 올리브는 그라나다의 타파스 문화를 즐기기에 아주 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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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식당의 빠에야는 이번 여행에서 먹은 음식 중 단연 최악이었다. 절반 가까이 거의 '생쌀' 수준으로 거의 조리가 덜 되어있었고 바르셀로나에서 먹었던 빠에야와 비교하면 해산물 비린내도 심한 편이었다. 결국 빠에야는 반 이상 남길 수밖에 없었고, 그나마 맛있었던 연어 스테이크를 나눠 먹으면서 이 식당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우리 구역을 담당하는 서버가 다른 테이블에 영수증을 가져다주고 결제를 도와주는 모습을 식사를 하면서 봤었다. '설마 우리만 끝까지 무시하는 것은 아니겠지?'란 생각이 들었는데, 그 설마가 현실이 되었다. 이 할배와 분명히 눈을 마주쳤을 때 영수증을 부탁하니 고개를 끄덕이길래 곧 가져오겠지 싶었지만 10분이 지나도 영수증을 주기는커녕 유리잔과 식기를 닦으면서 딴청을 피웠다.


다행히 우리를 처음 안내했던 서버가 창문 너머로 우리의 상황을 보고서 야외 테이블 서빙을 잠시 멈추고 안으로 들어와 결제를 도와주었다. 그녀는 우리의 표정을 보고서 우리가 매우 불쾌했음을 눈치채고 자신이 아는 한국말을 써가며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했지만,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계속 이어진 불쾌함을 바꾸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유럽의 여러 도시를 여행했지만 인종차별을 겪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쾌한 경험을 겪게 되어서 매우 아쉬웠다. 그래도 그라나다 구시가지를 천천히 걸으면서 분위기를 느끼다 보니 금세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바르셀로나와 말라가와는 또 다른 느낌의 오래된 골목과 그라나다만의 색감이 이곳의 매력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 앞에서 성악가로 보이는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울려 퍼지는 노래와 작은 광장이 묘하게 어울리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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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바닥에 깔린 대리석과 양옆 건물들의 화려한 아라베스크 문양은 알카세리아 재래시장(Alcaiceira)이 마치 스페인이 아닌 북아프리카의 시장에 온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좁은 골목을 따라 줄지어 있는 기념품 가게들이 파는 북아프리카풍 물건들과 샤프란 등의 향신료는 그라나다가 과거 무어인들의 중심지였다는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샤프란에 관심이 많은 아버지께서 이곳에서 모로코산 샤프린이 다른 지역산과 얼마나 다른지 궁금하시다면서 한 상점에 오래 머무르셨고, 어머니께서 먹지도 않을 샤프란에 왜 시간을 낭비하냐고 아버지를 구박하면서 작은(?)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버지는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샤프란을 찾았다면서 들뜨셨지만, 어머니는 사봤자 먹지도 않는데 돈 낭비라고 하셨다. 나는 그 상황을 뒤에서 지켜보면서 최대한 웃음을 참으면서 부모님의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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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가 터미널(Estación de Autobuses de Málaga)
주소 : C. Eguiluz, 5, Distrito Centro, 29006 Málaga, Spain
후기 : 소매치기오 도둑들을 조심해야 한다.


로스 마누엘레스 몬하스 델 카르멘 (Los Manueles Monjas del Carmen)
주소 : C. Monjas del Carmen, 1, Centro, 18009 Granada, Spain
평점 : ★
후기 : 친절한 서비스와 최악의 서비스를 모두 할 수 있다.


그라나다 왕실 예배당 (Capilla Real de Granada)
주소 : Calle Oficios, s/n, 18001 Granada, Spain
평점 : ★★★
후기 : 좁은 골목 사이로 드러나는 근엄함과 아담함이 인삭적이다.


알카이세리아 재래시장 (Alcaiceria)
주소 : C. Alcaiceria, 1, 3, Centro, 18001 Granada, Spain
평점 : ★★★
후기 : 그라나다를 기억할 기념품을 구입하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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