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말라가 - Day 9

말라가 알카사바 & 말라게타 해변

by 미르

스페인 여행의 절반이 지나면서 부모님도 나도 눈에 띄게 체력이 떨어진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말라가에서의 세 번째 날인 일요일에는 오전 내내 늦잠을 자며 충분히 쉬고 오후부터 천천히 돌아다녔다.


마침 일요일 오후 2시부터 말라가 알카사바에 무료입장이 가능했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일정으로는 딱 맞았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서 시간에 맞춰 알카사바 입구로 향하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무료입장을 기다리며 긴 줄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았지만 놀랍게도 모두가 자기 차례를 지키면서 줄을 서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 주변에 어떤 음악가가 북아프리카 풍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서 마치 무어 인들이 살던 시대로 초대하는 것 같았다.





말라가 알카사바는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처럼 견고한 벽돌로 쌓아 올린 전형적인 무어 인들의 군사요새였다. 입구부터 이어지는 모든 동선을 도보로 따라가다 보면 이곳을 지키던 병사들의 생활이 얼마나 고단했는지 자연스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가파르지도 완만하지도 않은 성 내부 길과 곳곳에 배치된 여러 내성문을 지나면서 이 요새가 방어를 위해 치밀 하계 설계되었단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요새 곳곳에는 물을 잘 다루었던 무어 인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건조한 돌길을 따라 잔잔히 흐르는 작은 수로는 알카사바가 단순한 방어 거점이면서도 실제 사람들이 머물며 생활했던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척박한 성 안에 물길을 설치하여 시원함과 생기를 불어넣는 이런 작은 요소들에서 당시 그들이 가진 뛰어난 건축 기술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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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 곳곳에 남겨진 아라베스크 문양의 스투코 장식은 그들의 고유한 디자인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복잡하면서도 화려한 패턴들은 단순한 장식을 넘어서 알카사바의 분위기를 한층 더 이국적으로 만들어준다. 특히 유럽의 성당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주면서 스페인이 아닌 북아프리카로 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확실히 유럽 전역에 있는 비슷비슷한 유적지가 아닌 스페인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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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작은 연못과 분수가 있는 아담한 정원이 있었다. 규모가 크지 않아서 관광객들은 빠르게 사진만 찍고 지나갔지만 나는 잠시 멈추어서 해가 지고 난 뒤에 이곳을 촛불로 밝혀둔다면 어떤 분위기가 될지 상상해 보았다. 붉은빛과 어둠이 어우러지면서 훨씬 더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펼쳐질 것 같았다. 만약 말라가 알카사바가 야간 개장을 한다면 이 직원 정원이 말라가 알카사바의 고유한 매력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줄 수 있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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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 곳곳을 둘러보다 보면 성벽과 망루 위에 올라가서 말라가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입구부터 완만하게 걸어 올라와서 느끼지 못했지만, 위에서 내려다본 성벽의 높이는 상당한 편이었다. 하지만 망루와 성벽을 올라가는 계단의 안전장치가 잘 되어있지 않아서 관광객이 많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조금 위험할 것 같다.


성벽을 가까이서 살펴보니 대부분 벽돌로 쌓여 있어서 만약 훼손된다면 어떻게 복원하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과거와 동일한 방식으로 벽돌로 보수하는지, 아니면 현대 기술로 만든 벽돌로 복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 실제 보수 작업이 이루어지는 구역은 출입이 통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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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 관람을 마치니 계획했던 모든 말라가 여행코스를 완주했다. 그런데 숙소로 돌아가려 하니 아버지께서 "스페인에 왔으니 지중해 바닷물에 발 정도는 담가보고 싶다"라고 말씀하셔서, 말라가에 도착한 날에 간 말라게타 해변으로 향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강릉에서 태어나고 자라 바닷가가 익숙하시지만 머나먼 유럽에 와서 지중해에 발을 내딛는 모습을 보면서 설렘이 묻어났다. 특히 바닷물을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에서 "나이 70을 앞두고 드디어 지중해에 왔구나"라는 감회가 담겨있는 듯했다. 부모님과 여행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아버지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이번여행을 계획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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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사바 (Alcazaba)
주소 : C/ Alcazabilla, 2, Distrito Centro, 29012 Málaga, Spain
평점 : ★ (무료입장 시 : ★★★)
후기 : 일요일 오후에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말라게타 해변(Playa la Malagueta)
주소 : P.º Marítimo Pablo Ruiz Picasso, Málaga-Este, 29016 Málaga, Spain
평점 : ★★★★
후기 : 잊을 수 없는 바닷가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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