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힐리아나 당일치기
세비야 대신 말라가를 선택하면서 론도를 가지 못했지만 그 대신 '프리힐리아나(Frigiliana)'를 당일치기로 다녀왔다. 스페인어로 버스표를 터미널에서 구입할 자신이 없어서 미리 Omio 앱으로 '말라가 ↔ 네르하' 왕복 티켓을 미리 예매했다. 당일 아침 말라가 버스 터미널에서 Alsa 버스를 타고서 약 1시간 20분 정도 가니 프리힐리아나로 향하는 환승지인 네르하(Nerja)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말라가와 네르하를 왕복하는 Alsa 버스표는 앱으로 예약하거나 터미널에서 신용카드로 구입할 수 있지만 네르하에서 프리힐리아나로 올라가는 마을버스는 오직 현금으로 버스 기사님에게 지불해야 한다. 전날 편의점에서 콜라를 사 마시고 남은 현금이 있어서 ATM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피할 수 있었다. Alsa 버스에서 내린 건너편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약 20분 정도 올라가니 하얀 마을 '프리힐리아나'에 도착했다.
한때 이베리아 반도를 지배했던 이슬람 세력과 무어인들이 그라나다에서 밀려나 이곳에 정착하면서 시작된 프리힐리아나의 슬픈 역사와 달리 프리힐리아나의 풍경은 '스페인의 산토리니'라고 불릴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골목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확실히 사진으로만 접한 산토리니와 비슷한 것 같았다.
하지만 산 중턱에 프리힐리아나 자리하고 있어서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1시간 정도 골목을 걷다 보니 마치 등산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 주민들이 사는 동네라 햇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거의 없어서 아쉬웠다. 그늘을 찾으려면 카페나 식당에 들어가야 했는데 아직 정오도 지나지 않아서 대부분 영업 준비 중이었다. 온 동네를 돌아다니고서 마을 입구 근처의 카페에서 잠시 햇볕을 피하며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카페에서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면서 건너편 산 중턱을 바라보니 한국과 색다른 스페인 남부의 산 풍경이 펼쳐졌다.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한국의 산과 달리 스페인은 낮고 건조한 황톳빛 언덕의 낮은 나무들이 눈에 띄었다. 처음엔 날씨가 건조해서 나무들이 낮게 자랐나 싶었는데, 아버지께서 카메라 줌을 최대한 키워서 살펴보시더니 '저거 올리브 나무들인데? 올리브 농장인가 보네'라고 하셨다. 농림부에서 근무하면서 여러 현장을 다녀본 경험이 있으셔서 바로 알아보신 것 같았다. 낯선 스페인에서 발동된 아버지의 짬이 신기하면서도 기억에 잘 남을 것 같다.
유럽 여행을 가면 기회가 될 때마다 길거리 화가의 작품을 사는 편이다. 여행의 기념품으로도 좋고, 언젠가 화가가 유명해진다면 구입한 그림이 하나의 투자 상품이 도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리힐리아나 골목을 걷다 보니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전시된 작은 스튜디오의 앞에 있는 '사진 촬영 가능'이란 팻말을 보고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프리힐리아나와 그라나다의 풍경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리는 화가의 작업실이었다. 스튜디오를 천천히 둘러보니 마음에 딱 드는 그림이 있었고 바로 구매하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 이미 판매가 완료되어 곧 구입한 손님이 해당 그림을 픽업해 갈 예정이라고 했다. 다른 작품들도 살펴봤지만 어떤 작품은 캐리어에 넣기엔 너무 크고, 또 어떤 작품은 가격이 꽤 높아서 선뜻 구매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결국 어떤 그림도 사지 못하고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도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프리힐리아나를 충분히 둘러보고서 말라가로 돌아가는 버스 시간을 맞추기 위해 네르하로 향하는 마을버스를 조금 일찍 탔다. 정류장은 골목처럼 그늘이 전혀 없어서 많은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가고 있었다. 반면 어머니께서 미리 챙겨 오신 양산을 펼쳐서 햇빛을 피하시자 앞에 서있던 영국인 노부부가 우리를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엄치를 치켜세웠다. 그렇게 마을버스를 타고 굽은 산길을 내려가면 프리힐리아나를 뒤로 하고 짧지만 인상 깊었던 프리힐리아나 당일치기 여행을 마무리하고 말라가로 돌아왔다.
네르하 (Nerja)
주소 : C. Antonio Jiménez, 37, 29780 Nerja, Málaga, Spain
후기 : 여유가 된다면 네르하 해변도 가보고 싶다.
Studio 55 Art Space
주소 : C. Real, 55, 29788 Frigiliana, Málaga, Spain
인스타그램 : @studio55.es
후기 : 다음에 또 온다면 작품 하나는 구입하고 싶다.
프리힐리아나 (Frigiliana)
주소 : Plaza de las 3 culturas, 29788 Málaga, Spain
평점 : ★★★
후기 : 그리스 산토리니는 안 가봐도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