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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06. 2024

하나, 관계는 어른이 되어도 어려워!

"선을 지키며 다정하게 살아가는 법" 

이 선을 넘지 말아 줄래?

   백혜영 지음, 한울림어린이, 2022

 


  관계는 어른이 되어도 쉽지 않다. 어릴 때 생각엔 어른이 되면 다 해결될 것 같았던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어른이 되어갈수록 어렵기만 하다. 어느 정도가 적정한지, 좋다 싫다 말해주면 좋을 텐데 분위기를 파악하고 내가 예측해야 하는 상황들, 이유까지 내가 찾아야 하는 상황이라면 요즘 흔히들 말하는 MBTI-T인 난 너무나 어려운 숙제이다. 이런 사람사이의 관계는 태어나 처음 사회를 접해 보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특히나 우리 집 둘째는 코로나 초기 모든 단체행동이 제약되던 2020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도 못하고 한주 두 주 입학식이 미뤄지더니 5월이 지나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자 입학식도 없이 부분 등교한 학년이었다. 그렇게 2년을 보내고 정상적인 학교 생활을 했지만 이 학년 아이들이 가장 힘들어한 것은 학력이 아니라 친구들 사이의 관계였다. 싫다고 이야기하는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나는 하고 싶은데 왜 못하게 하는지 등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고 세상 억울한 일들 한가득이었다.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항상 하시던 말씀이


 “아이들이 선을 몰라요. 그러다 보니 자꾸 분쟁이 생기고 관계가 쉽지 않아요”


였다. 아이들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코로나 이후 관계를 힘들어해서 병원을 찾은 아이들이 받은 진단 중 많은 부분이 ‘사회성 결여’인 것도 사실이었다. 선! 뭔가 딱딱하고 구분 짓는 듯해서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누가 이름 붙였는지 상황을 이해하기에 정말 찰떡같은 표현이다. 이렇게 관계, 특히 초등학교 아이들 사이의 관계에 관심이 많을 때 만났던 책이다.



 오호, 제목 한번 강렬한데? 

단호한 선을 그은 듯 세로로 내려 쓴 제목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문제의 세로선을 연결해 제목 글씨를 디자인한 의도도 다분히 느껴졌다. 강렬한 빨간색 선을 사이에 두고 새 두 마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호기심 가득, 애정도 가득한 표정의 분홍색 새와 대조적인 표정의 연두색 새. 연두색 이놈의 표정은 한눈에 봐도 ‘얘가 왜 이러지’였다. 빨간선을 사이에 둔 두 마리의 새. 어른이라면 누구나 한눈에 알아챌 법한 ‘선 넘지 마세요’의 그 선을 찰떡같이 표현한 그림인데, 이 그림의 의미를 아이들도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선 너머의 깊고 복잡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품고 새 두 마리의 책을 들고 교실에 들어섰다. 


  분홍새가 길을 가다 지렁이를 한 마리 잡았다. 

“맛있겠다~~” “맛있는 건 나눠먹어야지. 누구랑? 너랑.”

친한 친구인 ‘너’와 같이 먹으려고 너에게 간다. 

“지렁이 같이 먹.... 악! 이게 뭐야?”

 너 앞에서 만나게 되는 빨간 선!! 지렁이를 들고 신이 나서 걸어가던 분홍색 새 앞에 친구인 너는 보이지도 않고 기다란 빨간 선이 놓여있다. 

“잠깐! 지금은 내가 좀 바빠서...”


그림 배치가 기가 막힌다. 열심히 걸어간 분홍새를 느낄 수 있도록 펼친 면의 오른쪽 끝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신나서 가다가 딱 막힌 느낌.

  “무슨 일 있어? 엄청 맛있는 지렁인데.... 그럼 내가 좀 기다릴게.”

 “아니야 아니야. 배고플 텐데 기다리지 말고 혼자 먹어” 

얼굴은 보이지도 않고 멀리 말소리 뿐인 연두색 새.

“에이, 같이 먹어야지. 그러지 말고 이 선 좀 치워봐”

“있잖아... 날 생각해 주어서 정말 고마워. 그렇지만 난 진짜 괜찮아. 내 몫까지 맛있게 먹어.”

분홍새는 계속되는 거절에 돌아가 보려고 한다. 듣고 있던 교실의 아이들도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더해져 

“이유가 있겠지~~” “싫다잖아..” “그냥 가서 혼자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선을 긋지 말고 말을 해! 말을~~!”“어휴~답답해!!” 이런 반응까지 나오다니!


  하지만 정말 정말 같이 먹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는 분홍새는 

“아냐! 그래도 싱싱할 때 먹어야 제 맛이지! 우리 사이에 이까짓 선이 뭐라고!!”

선을, 잘라, 버린다.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선을 잘라 좀 더 다가갔는데, 더 많은 선이 지그재그로 그어져 말글대로 철벽을 쳐 두었다. 분홍새는 놀랐다가 점점 슬퍼지기 시작한다.

  “무슨 일 있나? 나한테 화났나?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나? 지렁이 같이 먹으려고 한 건데....”

그리고

“나를 싫어하나?”

 하며 좌절한다. 이때 빼꼼히 등장하는 너.

 “너 울어? 왜 울고 그래..”

 “사실 나.. 지렁이가 너무 무서워.”

“뭐라고? 그럼 말을 하지 그랬어!”

“ 네가 그렇게 신나 있는데 어떻게 그러니? 그래서 계속 돌려 말했는데...”

 “난 너도 당연히 지렁이 좋아하는 줄 알았지!”

 “ 새라고 다 지렁이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아기새 둘의 대화가 너무나 우리의 일상이다. 나는 너무너무 좋아해서 맛있게 먹어 줄 가족을 기대하며 음식을 한다. 하지만 남편이 밥상의 음식을 보고는 라면 끓일 물을 올린다. 이때 나의 마음이 분홍새의 마음이었을까. 말을 하지 그랬냐는 분홍새의 말에 네가 그렇게 신나 있는데 어떻게 이야기하냐는 너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그래서 배고프지 않다고 그렇게 돌려 말했건만. 배고프지 않다는 말만으로 지렁이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힘이 든다. 더군다나 내가 좋아하는 ‘너’이니까. 그렇게 둘은 서로 마주 보며

“네가 지렁이를 무서워하는 줄도 모르고... 미안해.”

 “아니야, 내가 속상하게 해서 미안해.”

“근데... 우리 배고프지 않아? 맛있는 거 먹자.”

“그럴 줄 알고 싱싱한 파리를 준비했지.”

이때 분홍새는 눈이 동그래지며 좀 전에 끊어 놓았던 빨간 선을 물어온다.

 “잠깐! 지금은 좀 내가 바빠서...”

마지막까지 미소 짓게 해 주는 고마움이다. 그리고 뒷 면지 파리를 뒤로 숨긴 채 신나게 걸어간다. “난 너도 당연히 좋아하는 줄 알았지.”라며. 아마도 둘이 키득키득 웃으며 걷지 않을까 앞모습이 그려진다.  




  나는 친구새인 ‘너’에게 많은 감정이입이 되었다. 최대한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도록 돌려서 돌려서 이야기해주는 친구 말이다. 지렁이를 무서워한다고 직접 말하지 못하고 괜찮다고만 이야기한다. 나 역시 어릴 때부터, 아니 어렸을 땐 더욱더 거절을 못했다. 내가 거절하면 저 사람이 날 어떻게 볼까 걱정하기도 했고 불만이 있거나 요구사항이 있어도 개선하기보다는 가능한 내가 맞추는 쪽을 선택했다. 그것이 배려라고 생각했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더욱 많아진 사람과 그들의 관계 속에서 내가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괜찮다고 이야기하지만 누구조다 내가 많이 불편하고, 많은 것을 수용하기엔 번아웃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어린 시절 만났던 인연 중엔 관계 조절을 못해 잃은 사람도 꽤 많았다. 그리고 이제는 나의 이런 성격이 나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가족의 문제가 되기도 하면서 조금씩 연습하기 시작했다.


상황을 바로 보고 내가 거절해야 할 것과 수용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너무 힘들지 않을 선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진정한 나를 알게 된 것이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 내가 주변 사람들을 잃지 않는 방법이었다.


  교실의 아이들이 선의 의미를 잘 이해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는 동안 “말을 해주면 쉽잖아”라고 이야기해주는 아이들을 보니 올바른 소통의 방법을 알아가고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했다.  

  선을 넘지 않고 적절하게 유지하는 것. 힘들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과제 같은 느낌이다. 친구 사이의 선고 그렇고, 선생님과 학부모 사이의 선도 마찬가지이다. 특히나 우리 학교는 학부모들만 가능하다면 학부모의 도움을 요청하는 학교라 참 감사한 일이다. 내가 선생님이라면 나의 교실에, 나와 아이들의 이 공간에 누군가 드나드는 것이 흔쾌히 좋을 것만 같지는 않은데 학부모와 함께하며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주고자 하는 선생님들이 존경스럽다. 이런 학교이기에 선생님도 학부모도 더 예의를 갖추고자 애쓴다.

호의가 호의로 남을 수 있도록, 호의를 악용하지 않도록 말이다.


조금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던 이 책의 제목 <이 선을 넘지 말아 줄래?>이 인생의 지침서 같은 느낌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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