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너야~~
『! (느낌표)』
에이미크루즈로젠탈 글/ 탐 리히텐헬드 그림/ 용희진 옮김/ 천개의 바람/ 2021
책방에서 한눈에 나를 사로잡은 책이었다.
샛노란색 표지에 검정색 느낌표 하나! 책등을 보고서야 제목이 정말 “느낌표” 임을 알 수 있었다. 노랑과 검정이라는 보색의 강렬함 속에 느낌표 아래 동그라미 속 당차지만 귀여움 가득한 표정에 마음을 빼앗겼다. 느낌표를 단순한 문장부호 중 하나로만 생각했던 나는 그림책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이 책은 여름방학이 지나고 2학기 첫 책읽기 시간에 읽어 주었다. 3학년이 되고 한 학기를 매주 만나고 보니 아이들 스스로 느껴가는 것 같았다.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누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이 서툰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반에서 그림은 누가 제일 잘 그리고, 영어나 수학은 누가 젤일 잘하는지 등등 어린 아이들의 시선이 나누어짐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면 내가 학교 다니던 그때도 그랬었다. 그땐 교외 대회도 많아서 그림을 조금 잘 그리면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가기도 하고 공부를 조금 잘 하는 아이들은 경시대회 같은 곳에 가기도 했었다. 본인이 좋아해서 각종 대회에 참여하며 성취감도 얻고 성장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성격상 혹은 다른 이유로 대회 참여가 싫었을 수도 있다. 이렇게 뭐든 서열화 하는 일이 당연시 되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땐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잘하는 아이 못하는 아이를 나누는 것 자체가 불편했었다. 이제 처음 경험해보고 알아가는 아이들이 제대로 해보지도 못한 채 스스로 선입견을 만들어 버리고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버릴까봐 걱정이 앞섰다. 어떤 것을 결정하고 단정짓기엔 너무나 어리고 가능성이 가득한 아이들이란 것을 알기에 한명 한명이 너무나 소중하고 모두가 다 다르다는 것을 전해 주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너희들이 보는 이 모습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같은 기준으로 친구들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결과에 상처받고 주눅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느낌표, 마침표, 물음표들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언제나 눈에 띄는 느낌표이다. 오밀조밀 귀여운 마침표들 사이에 유난히 큰 키의 느낌표는 어떻게 하면 친구들과 비슷해질까 고민이다. 앞에도 서보고 뒤에도 서보고 누워도 본다. 결국 누워있을 때만 조금 아주 조금 비슷해질 수 있다. 친구 마침표들과 똑같아지려고 애쓰는 느낌표가 너무나 귀엽고 귀여웠다. 우리 집 둘째 역시도 느낌표가 그랬던 것처럼 친구들이 무엇을 하고 노는지, 무엇을 입는지, 요즘 유행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집중했었다. 나 역시도 어릴 적 그랬었던 기억이 있었음에도 지나치게 친구를 따라가려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너다워져라~’를 주문처럼 외웠었다. 이렇게 친구들 속 하나로 있다가 ‘너다운 너’로 성장하겠지만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다그쳤던 기억이 있다. 책 속 느낌표 역시 다수의 친구인 마침표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한다. 느낌표의 그 마음은 작가의 종이선택에서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노란색 표지를 넘기고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부터의 종이는 노트를 그대로 옮겨놓은 줄노트 그대로이다. 줄노트 속 마침표와 키 차이가 세배, 네배도 넘는 느낌표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그 노트 속 느낌표의 마음이 너무 느껴져 안쓰럽기도 하다. 아무리 노력해도....마침표 친구들처럼 될 수는 없었어. 그리고 차라리 도망쳐 버릴까 생각하던 그때 운명처럼 한 친구를 만난다.
“안녕?” “이름이 뭐야? ”(15면) 운명의 친구, 물음표를 만나다. 물음표와 느낌표의 아래 동그라미 속 표정이 너무나 귀엽다. 똑같이 점 세 개로 표현했는데 너무나 다른 물음표와 느낌표의 표정이 놀라울뿐이다. 모든 것이 궁금한 물음표와 이 상황이 당황스러운 느낌표의 표정이 그림하나로 이해가 된다. 궁금한 것 많고 유쾌발랄한 물음표는 느낌표를 향해 수많은 질문을 쏟아낸다.
“몇 학년이야? 제일 좋아하는 색은 뭐야? 개구리 좋아해? 아이스크림은 무슨 맛 좋아해? 생일은 언제야? 좋아하는 만화영화는 뭐야? 중력이 뭔지 알아? 왜 그렇게 놀라? 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우리 둘 중에 누가 더 클까? ”
한 페이지 가득한 질문을 랩을 하듯 읽어 내자 듣고 있던 아이들,
“아~~그만이요. 계속 질문만 하니까 힘들어요” “물음표는 말이 너~~무 많아요”
책 속의 느낌표가 느끼는 것들을 듣고 있던 아이들도 느끼고 있었다.
“얘들아~~물음표는 세상 모든 것이 궁금해서 물어보는거야~~”
책 속 느낌표도 듣다 못해 “이 제 그 만!” 이라고 외친다. 그러면서 알게 되었다. 자신이 이렇게 소리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조심스레 표현해본다.
“안녕!” “우아!” “야호!” “잘했어!” “최고야!” “고마워!” 등.
자신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척 많다는 것도 알아가게 되었다.
“맞아요. 느낌표 많이 써요!” “감동받을 때, 응원할 때, 칭찬할 때도요” “느낌표의 표정이 처음엔 시무룩했는데 점점 신나게 변했어요 ”
자신의 특별함을,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된 느낌표만큼이나 아이들도 신이 나 있었다.
“지금은 어려서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를 수도 있고 그래서 조금은 답답하지? 친구 누구는 모든 것을 잘하는 것 같고 말이야. 그래서 때론 느낌표가 마침표와 똑같아지고 싶었던 것처럼 또래들과 똑같은 모습이고 싶어질 수도 있어. 하지만 친구인 물음표와 함께 많은 이야기를 나눠가면서 자신만의 특별함을 알게 된 느낌표처럼 너희들도 친구들과 신나게 생활해 가다보면 어느새 ‘나만의 특별함’를 알게 되는 날이 올거야~~” 라고 이야기해 주며 교실을 나왔다. 마지막 면지의 느낌표와 물음표의 대화마저 사랑스럽다.
“! 맞다. 내가 고맙다고 했나? , ? 얘 좀 봐! 여기서 질문은 나만 할 수 있거든”
느낌표와 물음표는 개인적으로도 인연이 있는 문장부호이다. 그래서 서점에서 처음 보았을 때 더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대학 3학년 때 만나 9년 6개월이라는 긴 연애 끝에 결혼식을 하고 1년을 일 때문에 주말부부로 지냈다. 4녀 1남의 장녀인 나와 6녀 1남의 장남인 남편이 결혼을 했다. 항상 가족이 많았기에 우리보다도 더 대가족인 남편의 집이 불편하지 않았지만 나보다 먼저 대가족의 힘듦을 경험하신 친정엄마의 걱정이 많았다. 걱정의 제일은 먼저 경험하셨듯 아들에 대한 부담감 이었고, 어느 누구도 아이를 빨리 낳으라고 하시거나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말씀은 없으셨지만 나 역시 부담은 있었다. 언제 적 이야기인가 싶겠지만 내가 살던 그때의 신세대였던 나조차도 상황이 그렇다보니 조마조마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다는 것이 마음대로 되는 일이던가! 계획대로 잘 되지 않았고 길진 않은 시간이지만 임신에 대한 기대의 기대를 거듭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결혼하고 3년차에 우리에게 와 준 아이였기에 태교부터 정말 정성스레 공을 들였고(물론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말이다) 그 때 TV방송에서 본 문구가 마음에 훅 들어왔었다.
물음표로 시작해 느낌표로 끝나는 아름다움
자꾸만 되뇌이고 곱씹게 되는 문구였다. 아기가 내게 오기 전 혹은 뱃속에서 자라고 있을 땐 모든 것이 궁금하다. 어떤 얼굴에 어떤 성격일지, 내가 운동할 때 움직이는 것을 보니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일지, 흥이 많은 아이일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태명인 ‘태양’이처럼 밝고 환한 아이가 되었으면...지혜로운 아이였으면...기대도 많았던 첫째였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어찌나 많은지 임신 사실을 안 날부터 태교일기를 시작해 성장일기를 써가기 시작했다. 그 일기의 첫 페이지에 써 넣었던 문구였다. 많은 궁금증과 기대을 안고 태어나서 건강하게 성장하고 ‘나는 이런 사람이구나!!’를 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자기 삶에 느낌표를 찍을 수 있는 태양이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일기에도 쓰고 입버릇처럼 되뇌였던 그 말들을 들어서인지 나에게 와준 첫째는 애기 때부터 누구든 보면 환하게 웃어주어 동네의 어르신들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아이가 되었다. 중학생이 된 지금도 밝고 따뜻한 마음으로 자라고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들어 자기 삶에 대한 궁금증과 막연함으로 물음표는 더욱 많아지겠지만 잘 헤쳐나가리라 믿는다. 딸이 많은 양가 집안에서 태어난 우리 집 첫째는 아들이다. 산부인과 선생님께서 아들임을 넌지시 알려 주셨을 때 시아버님께 전화 드려 알려드렸다. 아버님 말씀하시길 “아들이든 딸이든 그게 마음대로 되는 일이더냐. 나도 다 아는 일이다. 하지만 아들이라니 더 좋구나~” 하신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아들을 조금은 바라고 있었던 것 같다.
부모가 되고 어른이 되고 이제서야 긴 인생에서 학창시절의 조금 못하고 잘하고는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간다. 그림책 속 느낌표, 물음표처럼 각각의 역할이 있음을 알고 자기다움을 잘 살린 아이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하긴 나도 마흔이 넘어서야 알게 된 사실을 아직 어린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고 알까 싶기도 했지만 들어서 좋은 말, 사랑을 줄 수 있는 말이라면 많이 들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벌써 3년째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내아이 같은 교실의 이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어 외쳐주었다. 조금이라도 알아주길 바라며.
물음표로 시작하여 느낌표로 마무리되는 아름다움, 3학년 2반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