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보관소]
사서 고은나래입니다.
누구에게나 때묻지 않은, 투명했던 시절이 있었을 거예요. 마치 작품이 만들어지듯 시간이 흐르며 우리는 이리저리 깨지고 물들면서 각자만의 모양과 색을 띠게 되죠.
무질서하게 흐르는 레진처럼 방황했던 미성년 시기는 어쩌면 가장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을까요. 비로소 아름답게 완성되어 견고해진 작품은 언젠가 맞이하게 될 우리의 성년이라 기대해 봅니다.
녹녹한 미성년을 거쳐 단단한 성년이 되는 과정을 닮은 레진 공예 클래스를 진행하고 작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를 소개하는 글, <BOHOLICA>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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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기 어린 미성년의 기억 속에서 뭉툭한 조약돌 하나를 발견했다. 소금기 섞인 바람을 타고 과거의 추억이 흘러들었다. 그날의 나는 누군가와 함께였던 여름과 쓸쓸했던 겨울의 모래사장 위에 서 있었다. 고개를 들어 먼 수평선을 바라봤을 때, 끝을 알 수 없는 어딘가에서 지구의 심장 소리가 들려왔다. 보호리카는 그곳의 모든 존재를 담고 있다. 요동치는 수면의 일렁임과 깊은 데서 숨 쉬는 푸른 생명의 소리를.
바다를 기억하며
보호리카는 자유분방함의 상징인 보헤미안의 약자 ‘boho’와 임예지 작가의 활동명인 ‘lica’를 합쳐서 탄생한 브랜드명이다. 어린 시절부터 예술과 연이 두터웠던 리카 작가는 순수 미술을 전공하며 그 끈을 이어나갔다. 졸업 이후 학과와 전혀 관련 없는 IT 업계에 종사하면서도 예술을 향한 열망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는 프리 다이빙과 스쿠버 다이빙을 즐겨하며 오랜 시간 물과 함께했다. 반짝이는 윤슬과 모래알 사이로 부서지는 파도 거품의 형태. 조개껍데기의 기하학적인 패턴 그리고 산호초의 신비로운 색감은 모두 창작의 영감이 되었다.
그는 직접 경험한 바다의 자유롭고 편안한 느낌을 일상의 오브제에 담고자 했다. 레진을 이용한 플루이드 아트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물속의 세상을 비추기에 제격이다. 특히 재료의 흐르는 성질이 빚어내는 우연성은 작품에 유일한 가치를 더한다. 보호리카는 상품을 판매할 뿐 아니라 클래스를 통해 평범한 물건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방법을 알려준다. 바쁜 일상 가운데 이곳을 찾아온 사람들이 여유를 가지고 자신만의 흐름을 만들어가길 바라며.
우리의 허파를 위하여
물의 무수한 변화 뒤에는 부정적인 면모도 숨어있다. 인간이 초래한 오염은 매 순간 물의 정화 능력을 앗아갔고, 그로 인해 해양 생물의 목숨 또한 점점 멎어갔다. 리카 작가는 다이버로 활동하며 그 찰나를 자주 목격했다. 공장의 폐수, 방대한 양식장 사료와 폐어망, 인간이 버리는 생활 쓰레기가 원인이었다. 이런 오물에서 기인한 온실가스는 모든 해양 생물의 서식처인 산호에게 위협이 된다. 그래서 버려질 물건을 지속 가능한 제품으로 재활용하는 방법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보호리카만의 특별한 ‘에코데이’가 생겨났다.
에코데이는 가정에 있는 오래된 접시나 망가진 액세서리를 멋진 소품으로 업사이클하는 클래스로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에 열린다. 재료비만으로 진행되는 이벤트 클래스에서 모인 금액은 산호 심기, 제주 돌고래 지킴이 활동 등 해양 봉사 비용으로 쓰인다. 보호리카는 가장 심미적인 방법으로 바다의 허파라고 불리는 산호를 살리는 데 동참하고 있다.
어쩌면 물은 순환의 모양인 ‘원’의 형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멈추지 않고 흐르며 돌고 돌기 때문이다. 우리의 세상도 그와 같다. 무심코 행하는 행위 하나하나가 커다란 해일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온 경험을 한 적 있지 않은가? 이제는 사람이 자연을 보살필 차례이다. 물과 우리의 찬란함을 지키기 위하여.
마침내 견고해지며
투명하고 녹녹했던 미성년을 거쳐 견고한 성년이 되기까지. 그 일련의 과정은 레진 공예와 닮아있다. 누구에게나 레진 본연의 투명함과 같았던 때가 있었다.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상태였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지녀 그 자체로 맑고 빛났다. 작품이 만들어지듯 우리도 수많은 시간을 겪으며 자신만의 색깔과 형태를 찾아간다. 어떤 이는 동트기 전 새벽 하늘의 짙은 색을, 또 어떤 이는 이름 모를 해변에서 보았던 일몰의 빛을 띠게 된다. 색을 입은 후에는 모양을 갖춰간다. 거기에는 유려하게 그려진 곡선이 있는가 하면 뾰족하게 솟아있는 모양도 있다. 마침내 단단한 성년이 되면, 우리는 흠이라 여겼던 작은 기포마저 품에 안은 채 더 넓은 세상에서 유영하고 있을 테다.
Mini Surf Cheese Board
바다의 물결을 한껏 머금은 미니 서프 치즈 보드. 서핑 보드를 닮은 외형과 반짝이는 아트는 치즈와 함께 곁들일 음식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어떤 음식이든 이 위에 올려 두면 당신의 식탁을 한층 분위기 있게 바꿔줄 것이다.
Wavy Key Chain
플루이드 아트의 기본이 되는 색상 배합이 두드러지는 키 체인. 우주에 단 하나뿐인 패턴을 주머니 속에 간편하게 지닐 수 있다. 작은 소품에 담긴 컬러로 밋밋했던 일상을 다채롭게 꾸며보자.
Turn Tray
회전이 가능한 트레이로 케이크 데코 시 주로 사용한다. 볕이 잘 드는 오후, 이 트레이와 함께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건 어떨까. 액세서리와 같은 오브제를 올려두어 디스플레이 용도로 사용해도 좋다. 집 안 어디든 유연하게 녹아드는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발산할 테니.
흐르는 물결처럼
흰색 레진으로 잡은 큰 틀을 따라 컬러가 겹겹이 쌓인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레진은 다시 저들끼리 섞여 새로운 색과 무늬를 만들어낸다. 뭉쳐있던 펄이 깨지면서 텍스처가 나타난다. 미처 메우지 못해 조바심 내었던 틈은 모순되게도 흔들리며 채워진다. 이리저리 치이고 부딪히며 보드를 덮는 레진을 보니 방황했던 시기가 떠오른다. 내가 택한 길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기우는 대로 무력하게 흘러내렸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장면이 깨지고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흩어진 진주알들은 눈앞에 탁 트인 광경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감추어야 한다고 여겼던 틈은 아직 채워지지 않았을 뿐이라고. 나를 휩쓴 너울도 광활한 바다 앞에서는 스쳐 가는 움직임에 불과했다. 계속해서 생겨나는 파란도 결국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작은 모래알과 같다고 생각했던 내가 사실은 그 모든 바람을 쥐고 있었다. 처음 만든 파도 위에 또 다른 흐름을 그린다. 작품이 점차 완성되어간다. 마지막으로 제일 화려한 금가루를 조심스레 흩뿌릴 즈음 깨달았다. 어찌할 도리 없이 무너져 가장 어둡고 무질서하다 여겼던 때, 나의 미성년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던 시절이었음을.
INFO
Instagram l @boholica
Website l www.boholica.com
Address l 서울 용산구 소월로38길 30
Vol.19 <BOHOLICA> 中
Editor 조아현
Photographer 장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