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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Oct 26. 2024

Vol.25 <A PIECE OF SCULPTOR>

기록보관소

사서 최현준입니다.



여러분은 익숙함을 사랑해 본 적이 있나요? 매일 마주하는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본 적은요?


낯선 공간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습니다. 반면, 익숙한 곳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잘 느끼지 못하곤 하죠. 익숙함이 가져오는 감각의 둔화 속에서 강렬한 사랑의 떨림을 자각하기란 쉽지 않은 일 같아요.


그러나 여기, 익숙한 물건에서 낯섦을 포착해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방 안의 조각으로부터 과거와 미래의 나를 동시에 발견하는 예술가 ‘고요손’의 사랑을 <A PIECE OF SCULPTOR : GOYOSON>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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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모양의 조각인가요?


익숙함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당연해진 것들에 ‘원래’라는 당위성을 부여하기 쉬워진 세상에선 더욱. 작가 고요손은 자신에게 습관화되어 굳어진 부분을 좇으며 영감을 얻는다. 방 안의 오래된 물건과 존재조차 희미해진 채 구석에 방치된 재료들, 무의식적으로 고여버린 생각 따위가 그의 조각으로 빚어진다. 마주한 모든 것이 조각이 되는 작가 고요손을 소개한다. 그 조각 너머의 인간을 들여다보며

You're my Michel


익숙한 듯 낯선 물건들이 놓여 있는 하얀 방. 옷이 걸려있는 방 한쪽의 행거, 중간쯤에 놓여있는 욕조와 구름 모양의 샤워기 헤드, 형태를 칭할 수 없는 조각 식탁과 그 위에 올려진 한 뼘 크기의 음식 조각. 방 위를 날아다니는 바우새와 창밖을 향하는 망원경, 조각에 둘러싸여 굴곡을 따라 느리게 옮겨가는 달팽이, 그리고 16명의 미셸이 <미셸의 방>에 있다. 접점 하나 없어 보이는 이들의 사이는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나이도, 직업도, 성별도 다른 미셸들은 각자의 시선과 이야기를 담아 조각과 어우러진다. 20분가량의 모든 움직임이 끝나고 남은 잔재들을 관람하는 것. 그것이 ‘보고 있는’ 미셸인 관객의 역할이다. 


"미셸은 고요손인 저, 14명의 미셸, 보고 있는 관람객, 그리고 이 전시를 모르고 있는 다수의 사람이 될 수 있죠." 출처 : ARTLECTURE


조각과 공간, 움직이고 바라보는 미셸들의 과거와 현재가 겹쳐 온전한 하나의 작품이 완성된다. 그렇기에 고요손의 작품에서는 온전함의 정의에 대한 괴리가 커진다. 정적인 오브제들이 전부였던 전시 공간들과 달리 ‘미셸의 방’에는 고요한 바다의 파도와 같은 묘한 생명력과 생동감이 느껴진다. 가만히 서 있을 줄 알았던 조각이 바닥을 삥 두르며 돌아다니고, 달팽이는 집에 몸을 숨긴 채 조각의 꼭대기에 있다가 눈을 꺼내 바닥을 느릿하게 기어 다닌다. 미셸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움직임까지. 미셸의 방에 더해지는 변주들은 꽤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당연히 같은 형태로 멈춰있으리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예상을 벗어나는 순간, 작가는 조각으로 그 틈새를 정확히 비집는다. ‘살아있는 조각들 사이에서 놀아보세요.’ 하면서


낯설고 새로운 것들은 사람을 쉽게 움츠러들게 한다. 예상 밖의 리스크는 두려움의 대상이며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자꾸만 완전함에 집착하게 만드니까. 그러나 고요손의 작업 방식은 이와 정확히 반대된다. 내가 그려놓은 그림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그는 그것을 또다시 전시의 영역으로 기꺼이 들여보낸다. 예측 불가능한 것들이 던지는 부정의 파편에 “Why not?”이라고 담담하게 외치는 고요손의 작업은 모험의 연속이다.


<Bitrthplace>, 2020


당연했지만 당연하지 않은 것


예기치 못한 코로나 상황에 집 안에 발이 묶여 버린다면 어떻게 작업을 이어 나갈까 하는 고민이 프로젝트 <Birthplace>의 시작이었다. 그는 너무나 익숙해져 존재조차 희미해진 방 안의 물건들로 매일 다른 주제를 가진 작품을 만들었다. 작가 고요손은 어렸을 적부터 수집가이자 탐험가였다. 하찮은 길의 틈까지 들여다보고, 재활용장에 버려진 물건들을 하나하나 구경하던 어린아이. 모든 것을 사소하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의 조각은 안일함의 경계를 완전히 비틀어버린다.


전시장에서 가장 좁히기 힘든 간극은 무엇일까. 예술이 여전히 어려운 이유에 작품과 관객의 물리적 거리가 한몫하지 않을지 감히 짐작해 본다. 작품을 둘러싼 선은 보이든 보이지 않든 누구도 넘을 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 그러나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은 법. 그 때문인지 한 번쯤은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어가 <나 홀로 집에>의 ‘케빈’처럼 그 공간을 마음껏 헤집어놓고 싶다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다.


그래서 고요손은 디저트인 척하는 조각, 조각인 척하는 디저트를 만들었다. 섬세하게 쌓아 올린 것들을 단번에 부숴버리고 그 단면을 쳐다보다 몸 안에 집어넣을 수 있도록 말이다. 바라만 봤던 조각을 손길이 닿는 대로 파괴하고, 맛을 느끼면서 나의 조각으로 흡수하는 짜릿한 순간을 선물한다.


고요손은 항상 자신의 조각에 보는 이의 몫을 남겨, 관객이 그곳을 떠날 때 조각의 일부를 떼어내 준다. 다음번에 비슷한 작품을 마주친다면 자연스럽게 떠올릴지도 모른다. 저 조각은 무슨 맛일까?


나는, 우리는, 세상 어딘가의 X는 고요손의 조각과 꽤 많이 닮았다. 내가 속한 세계의 미셸들에 의해 색이 더해지고 다듬어져 나라는 조각으로 굳어진다. 나의 모양과 딱 들어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타인의 뾰족한 면에 찔려 움푹 파여버리고, 누군가의 조각과 나를 견주며 갖지 못한 면을 부러워하거나 좋아 보이는 부분을 나름 흉내 내기도 하면서.


어떻게든 변할 수밖에 없다.’와 ‘어떻게든 변할 수 있다.’는 결국 한 끗 차이다. 그렇기에 낯섦과 새로움에 의연하게 맞서며, 어디에도 없는 유일한 나를 조각해 보는 건 어떨까. 무모하고 용감하게 파도 위를 유영하는 서퍼 고요손처럼.


Editor 박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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